필립스처럼 네덜란드에서 가장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마저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필립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는 필립스의 제품 포트폴리오와 조직 내부의 강점을 고려했을 때, 자신과 필립스는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이곤젠더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브라이트너 타워는 2002년부터 필립스의 본사로 사용됐으며, 현대 암스테르담 건축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의 로비에 들어서면 오늘날 필립스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즉시 알아챌 수 있다. 필립스의 핵심 가치는 두 가지다. 첫째, 필립스는 전통의 일부이지만, 전통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둘째, 필립스는 전 세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지만, 여전히 네덜란드에 뿌리를 둔다.
벽면 한 켠에는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베아트릭스 여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필립스 직원들이 5대륙 곳곳에서 촬영한 의료 현장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중환자실의 모습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왕진을 다니는 의사가 정글에서 진찰을 하는 상황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필립스를 총지휘하는 클라이스터리는 어떤 사람일까? 클라이스터리는 자신감이 넘치고 결단력이 뛰어나며, 대중적 명성을 좇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곤젠더: 회장님께서는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십니까? 이런 상황에서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상황이 좋을 때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까?
제라드 클라이스터리:저는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직원들을 평소와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좀 더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외부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기에 적응하려는 조직 내부의 움직임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들고 불확실한 시대에는 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좀 더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가령 인터넷으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호황기와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일 자체보다는 강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나쁜 소식은 어떻게 전달하십니까?
경영진이 한 번에 한 가지씩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살라미(salami)’ 전술을 택하면, 직원들 사이에서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게 됩니다. 직원들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우려를 품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필립스의 CEO로서 우리 회사의 현 상황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의 전략은 탄탄한가? △우리 회사의 재정 상태는 다소 좋지 않은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건전한가?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서비스는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매력도를 유지할 것인가? 등의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고, 그런 사실을 회사 전체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위기는 오히려 직원들을 결집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는 직원들의 투지를 일깨우고, 단결을 강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을 한곳으로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기치(旗幟)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필립스는 이미 과거에 확고한 공동의 비전을 세워두었으며, 현재 그 비전을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필립스는 최근 몇 년 동안 바로 그런 작업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지난 2007년 필립스는 4개년, 혹은 5개년 계획에 해당하는 ‘비전 2010’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최근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비전 2010의 일부였던 재정 목표는 수정했지요.
하지만 비전 자체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헬스케어와 웰빙 부문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은 그 어느 때보다 필립스의 직원들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모든 부문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주저 없이 “전략이 탄탄하기만 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지속해나감은 물론 직원들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필립스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조직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전술을 변화시키려는 것뿐, 전략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직원들, 특히 경영진과 우수 인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이들이 회사의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십니까?
먼저 조직 구성원 중 상당수(critical mass)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런 비전만 있으면 모든 조직원들이 저절로 동참하게 됩니다. 전략은 우수한 두뇌를 가진 ‘상아탑의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의 과정입니다.
전략은 자사가 확보하고 있는 자원과 자산을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조사한 다음,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먼저 핵심 팀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러고 나서 좀 더 규모가 큰 직원 그룹을 끌어들이세요. 조직 내 우수 인재들의 지지도 필요합니다.
경영자는 대화에서 직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거듭하면 피드백을 전략, 즉 모든 직원들이 공유하는 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전략은 항상 새로워야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경영자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수한 경영자들을 필립스로 유치해야 할 경우 어떤 논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직장으로서의 필립스를 어떤 곳으로 설명하고 싶으신가요?
다행스럽게도 우수 인재를 애써 유치해야 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우수한 경영자들이 자발적으로 필립스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필립스에는 우수 인재를 유인하고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저는 필립스가 인재 유치와 관련해 포지셔닝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우리가 헬스케어 및 웰빙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결정은 세계 어디서든 사회의 중요한 발전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헬스케어는 중요한 문제지만, 아직도 모든 사람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는 물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조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필립스는 복잡한 세상에서의 단순함이란 개념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이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만, 필립스는 기술을 기반으로 단순성을 키워왔습니다. 물론 필립스가 제안하는 솔루션에 복잡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용자들은 간편하고 손쉽게 필립스의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사용자 이용 부문으로의 사업 영역 이동, 마케팅 역량의 강화 등 모든 것이 필립스를 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필립스는 기술과 소비자 두 측면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단순히 세련된 가전제품을 파는 데에 멈추지 않고 소비자들이 좀 더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들을 선보이면, 직원들은 저절로 동기부여가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필립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냅니다. 따라서 필립스는 필요한 인재를 유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