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클라이스터리 필립스 CEO

위기는 직원들의 투지를 일깨우고 단결을 강화한다

44호 (2009년 11월 Issue 1)

필립스처럼 네덜란드에서 가장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마저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필립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는 필립스의 제품 포트폴리오와 조직 내부의 강점을 고려했을 때, 자신과 필립스는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이곤젠더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브라이트너 타워는 2002년부터 필립스의 본사로 사용됐으며, 현대 암스테르담 건축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의 로비에 들어서면 오늘날 필립스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즉시 알아챌 수 있다. 필립스의 핵심 가치는 두 가지다. 첫째, 필립스는 전통의 일부이지만, 전통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둘째, 필립스는 전 세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지만, 여전히 네덜란드에 뿌리를 둔다.
 
벽면 한 켠에는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베아트릭스 여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필립스 직원들이 5대륙 곳곳에서 촬영한 의료 현장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중환자실의 모습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왕진을 다니는 의사가 정글에서 진찰을 하는 상황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필립스를 총지휘하는 클라이스터리는 어떤 사람일까? 클라이스터리는 자신감이 넘치고 결단력이 뛰어나며, 대중적 명성을 좇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곤젠더: 회장님께서는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십니까? 이런 상황에서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상황이 좋을 때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까?
 
제라드 클라이스터리:저는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직원들을 평소와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좀 더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외부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기에 적응하려는 조직 내부의 움직임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들고 불확실한 시대에는 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좀 더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가령 인터넷으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호황기와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일 자체보다는 강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나쁜 소식은 어떻게 전달하십니까?
 
경영진이 한 번에 한 가지씩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살라미(salami)’ 전술을 택하면, 직원들 사이에서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게 됩니다. 직원들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우려를 품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필립스의 CEO로서 우리 회사의 현 상황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의 전략은 탄탄한가? △우리 회사의 재정 상태는 다소 좋지 않은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건전한가?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서비스는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매력도를 유지할 것인가? 등의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고, 그런 사실을 회사 전체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위기는 오히려 직원들을 결집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는 직원들의 투지를 일깨우고, 단결을 강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을 한곳으로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기치(旗幟)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필립스는 이미 과거에 확고한 공동의 비전을 세워두었으며, 현재 그 비전을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필립스는 최근 몇 년 동안 바로 그런 작업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지난 2007년 필립스는 4개년, 혹은 5개년 계획에 해당하는 ‘비전 2010’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최근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비전 2010의 일부였던 재정 목표는 수정했지요.
 
하지만 비전 자체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헬스케어와 웰빙 부문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은 그 어느 때보다 필립스의 직원들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모든 부문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주저 없이 “전략이 탄탄하기만 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지속해나감은 물론 직원들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필립스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조직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전술을 변화시키려는 것뿐, 전략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직원들, 특히 경영진과 우수 인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이들이 회사의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십니까?
 
먼저 조직 구성원 중 상당수(critical mass)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런 비전만 있으면 모든 조직원들이 저절로 동참하게 됩니다. 전략은 우수한 두뇌를 가진 ‘상아탑의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의 과정입니다.
 
전략은 자사가 확보하고 있는 자원과 자산을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조사한 다음,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먼저 핵심 팀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러고 나서 좀 더 규모가 큰 직원 그룹을 끌어들이세요. 조직 내 우수 인재들의 지지도 필요합니다.
 
경영자는 대화에서 직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거듭하면 피드백을 전략, 즉 모든 직원들이 공유하는 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전략은 항상 새로워야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경영자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수한 경영자들을 필립스로 유치해야 할 경우 어떤 논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직장으로서의 필립스를 어떤 곳으로 설명하고 싶으신가요?
 
다행스럽게도 우수 인재를 애써 유치해야 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우수한 경영자들이 자발적으로 필립스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필립스에는 우수 인재를 유인하고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저는 필립스가 인재 유치와 관련해 포지셔닝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우리가 헬스케어 및 웰빙 부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결정은 세계 어디서든 사회의 중요한 발전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헬스케어는 중요한 문제지만, 아직도 모든 사람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는 물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조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필립스는 복잡한 세상에서의 단순함이란 개념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이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만, 필립스는 기술을 기반으로 단순성을 키워왔습니다. 물론 필립스가 제안하는 솔루션에 복잡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용자들은 간편하고 손쉽게 필립스의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사용자 이용 부문으로의 사업 영역 이동, 마케팅 역량의 강화 등 모든 것이 필립스를 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필립스는 기술과 소비자 두 측면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단순히 세련된 가전제품을 파는 데에 멈추지 않고 소비자들이 좀 더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들을 선보이면, 직원들은 저절로 동기부여가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필립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냅니다. 따라서 필립스는 필요한 인재를 유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유능한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과 의사결정의 자유를 주십니까?
 
대기업 내에서 인재들의 기업가 정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직에서 통제와 자율성(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좋은 성과를 내게 하는)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기업 내에서의 기업가 정신이란 일정한 틀(framework) 또는 경계(boundary) 안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립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를 훨씬 잘 규정하고 있으며, 그 경계로 인한 제약도 줄여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틀을 잘 이해하고, 틀 안에서 충분한 자유를 발견하면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인재를 유치할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필립스가 마케팅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마케팅에 필요한 인재를 어떤 식으로 채용하거나 양성해 오셨습니까?
 
우리는 비즈니스 리더를 내부에서 승진을 시키건, 외부에서 채용하건 간에 그의 마케팅 역량을 예전보다 한층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거 필립스는 오랜 기간 동안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생산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고위직에 앉혔습니다. 산업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재들이 필립스의 의사결정권자가 된 것이지요.
 
필립스의 포트폴리오가 업스트림 기술에 집중돼 있고, 공정 관리와 자본 지출, 또는 기술이 중요시됐던 시절에는 이런 방식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필립스의 포트폴리오는 (헬스케어와 웰빙 등) 사용자 중심의 다운스트림 응용 기술 분야와 소비자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가 바로 우리의 주요 사업 무대입니다. 따라서 필립스는 인재를 채용할 때 마케팅 역량을 중요 요건으로 봅니다. 뿐만 아니라 마케팅 역량을 보상 정책에 반영해 조직 전체에 “필립스는 고객을 잘 이해하고 고객의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해나가는 인재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왔습니다.
 
Royal Phillips Electronics감각과 단순성
 
안톤 필립스와 제라드 필립스 형제는 1891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생산하는 필립스 앤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이미 유럽 최대의 생산업체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필립스는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 실험에 참여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라디오 제조사로 성장했다. (과학 기술은 20세기 초 눈부시게 발전했다. 영상과 음향, 데이터의 처리, 보관, 전송 분야에서 커다란 약진이 있었다.)
 
오랫동안 네덜란드 경제의 주축 역할을 해왔던 필립스는 1990년대 초 재정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필립스의 CEO로 임명된 코 분스트라(Cor Boonstra)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필립스의 사업 부문 수를 절반 이상 줄였다. 당시 필립스는 거의 100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매각하고 수많은 생산 공장을 폐쇄했다.
 
필립스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도 변화와 성장을 이어나갔다. 2004년 필립스는 제라드 클라이스터리의 지휘 아래 ‘감각과 단순성’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약속을 공개했다.
 
필립스는 2006년의 반도체 사업 매각을 기점으로 경기 순환형 산업(cyclical activities)에서 사용자 이용 측면에 중심을 둔(application-focused) 기업으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필립스는 사업 구조를 간략화해 의료, 조명,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등 3개 사업부로 재편성했다. 2007년 필립스에서는 직원 12만4000명이 매출 268억 유로를 올렸다.
 
필립스도 물론 최근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를 느끼고 있다. 2008년 4분기 필립스는 6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했다.
 
(편집자: 2009년 3분기 필립스는 적자를 낼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1억7400만 유로의 흑자를 냈다.)
 
필립스의 경영진 보상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들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연간 성과급을 대개 각 개인의 책임 분야와 연계시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더군요. 최근에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모든 경영진의 성과를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어떤(우수한, 괜찮은, 만족스럽지 못한) 실적을 냈습니까? △당신은 업무 처리 방식과 관련해 어떤(훌륭한 역할 모델로 평가받는, 가치를 인정받는, 개선의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탕으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3칸으로 이루어진 표를 만들어 경영진을 평가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연간 보너스 총액에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배분 비율이 정해지지요. 연간 보너스의 총액은 필립스의 실적에 따라 결정됩니다.
 
보너스 등 재무적인 인센티브가 갖고 있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가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필립스 인센티브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희는 얼마 전부터 장기적인 문제를 고려해왔습니다. 필립스의 보상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3가지로, 기본급과 기본급을 바탕으로 하는 연간 인센티브, 스톡옵션과 제한부 주식(restrictive share)으로 구성된 장기 인센티브 계획입니다.
 
장기 인센티브 계획은 최소 3년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필립스는 3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는 경영진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옵션을 행사하는 경영진이 없습니다. 우리는 옵션 만기가 지난 후에 주식을 사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한부 주식도 그저 모아두는 것뿐입니다. 경영진 중 제한부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주식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뿐이지요. 이런 방식을 통해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들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게 됩니다.
말씀하신 것 같은 경영진의 행동은 틀림없이 사내에 중요한 ‘신호’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필립스에서 좋은 비즈니스 행동이란 어떤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합니까? 회장님께서는 그 가치를 조직 전체에 퍼뜨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까?
 
우리는 2001∼2002년에 필립스의 중요 가치들을 업데이트했습니다. 현재 필립스의 가치는 4D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Delight our customers), 뛰어난 결과를 제공하며(Deliver great results), 인재를 양성하고(Develop our people),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는(Depend on each other)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는 전형적인 가치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4D는 비즈니스 윤리와 성실, 정직 등의 덕목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은 모두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4D는 아시아, 미국, 유럽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통용되는 필립스의 문화입니다.
 
전 세계에서 올바른 비즈니스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4D를 사용하시지만, 실제로는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가 각기 다르지 않은가요?
 
제가 경험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4D와 관련된 부분에서는요. 특히 4D 중 둘째, 셋째 요소인 ‘뛰어난 결과 제공’과’ ‘인재 양성’은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구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뛰어난 결과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걸 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는 쪽에 서고 싶어 하지요. 그 자체가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여러 곳의 리더와 임원들에게 ‘휘하 직원들의 패기를 고취시킬 목표’를 설정할 권한을 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인재 양성도 야심을 품고 필립스에 입사한 직원들의 열의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인재 양성은 회사가 직원들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직원들은 업무와 별개인 훈련 프로그램, 지도 과정 등을 통해 자기계발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필립스 직원들은 4D를 통해 회사가 인재 양성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지요. 필립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이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금전적인 방안을 제외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책은 무엇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정(recognition)입니다. 칼뱅주의에 입각한 네덜란드의 전통을 일반화시키려는 건 아니지만, 필립스는 예전에 직원들의 공로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칭송하는 기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필립스는 한층 다양한 ‘인정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단순성(simplicity)상과 고객만족상 등 여러 포상 제도가 있지요. 실행 방식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인정은 문화권을 초월하는 요소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전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좀 더 의미 있고 차별화되는 일을 원합니다. 필립스는 이런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에서도 역시 지역과 문화 차이가 존재합니다. 개도국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근면과 성실이란 전통적인 원칙을 중요시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젊은 세대가 일과 생활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지요. 하지만 이런 일과 생활의 균형이 필립스가 모든 곳에서 실현하고 싶어 하는 가치입니다.
 
생산 라인은 아직도 시스템적으로 운영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 노동자들에게는 근무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줍니다. 현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반드시 정해진 장소나 시간에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립스는 이런 부문에서 탄력성을 적극 장려합니다. 우리는 직원들이 투입한 시간이 아니라, 결과물을 평가합니다.
 
앞서 말씀하셨던 ‘정해진 경계 안에서의 기업가 정신’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지는데요.
 
중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입니다. 필립스는 무엇보다 직원들이 애착을 느낄 만한 도전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쏟아붓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마지못해 일하는 직원은 원치 않습니다.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냅니다. 필립스는 대기업이지만 사내에서 이런 형태의 몰입(engage-ment) 현상이 자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임무를 맡기는 것입니다. 필립스는 현재 이런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효율적인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기업은 직원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회사의 전략적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또 기업가 정신이 사내에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라면 직원들이 더욱 커다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회사와 직원이 목표와 목적, 가치, 비전, 전략을 공유한다면, 경영자가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알아서 올바른 일을 하게 됩니다.
 

제라드 클라이스터리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는 오랫동안 필립스에 몸담아왔다. 그렇지만 2001년 그가 필립스의 CEO가 되자 언론에서는 “클라이스터리가 누구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클러스터리는 1946년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예수회 부설 학교를 졸업한 후, 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필립스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입사 후 지금까지 필립스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클라이스터리는 1974년 필립스의 의료 시스템 부서에 입사해 제조 관리 부문의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일반 관리 부서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한 후인 1990년에는 아시아 지역에 파견됐다. 첫 발령지는 대만이었고, 두 번째는 중국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아시아 시장 내 필립스의 모든 활동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했다. 클라이스터리는 “아시아에서 일하면서 수차례의 개선 시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필립스를 괴롭혀온 회사 안의 영역별 다툼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필립스 부품 담당 부문의 CEO가 되어 유럽으로 복귀했으며, 그룹 경영위원회의 일원으로 선임됐다. 다음 해에는 필립스의 수석 부회장과 이사회의 멤버가 됐다.
 
2001년 4월 30일, 클라이스터리는 필립스의 회장 겸 CEO와 이사회 및 그룹 경영위원회의 의장이 됐다. 이런 여러 직책을 동시에 맡은 덕분에 그는 필립스를 구성하는 여러 세력을 통합해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클라이스터리는 구시대적인 기업 구조를 해체했으며, 최고 경영진 중 상당수를 교체했다.
필립스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아울러 직원들의 핵심 역량과 성격까지도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전 필립스와 현재 필립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인력 관리(human equation)에서 감성적인 면이 예전보다 한층 더 중요해졌습니다. 필립스는 기술 혁신의 전통을 갖고 있는 기업인만큼, 사람의 이성적인 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요즘 필립스의 제품 디자이너들은 다음과 같은 이슈를 다룹니다. △우리는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는가? △우리는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감성적인 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희가 단순히 성능이 뛰어난 CT 촬영 기기나 MRI 기기를 개발했다면, 지금은 환자들이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훨씬 유쾌하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이며, 기술적으로도 이런 측면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customer side of the equation) 있어서 경쟁사들을 앞서고 싶다면, 이성적인 연결고리보다 고객과 감성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회장님의 임기 동안 필립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필립스에 처음 입사할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또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혁신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는 성격이니까요. 저는 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필립스에 들어와서는 제조 부문에서 일했습니다. 이것부터가 ‘전형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공학 전공자는 연구개발(R&D) 부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제조 부문에서 일하던 중에는 마케팅과 판매 부문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필립스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권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판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판매 직원으로 입사해 판매 관리자로 승진해야만 했습니다. 평생 동안 판매 부문을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마찬가지로 입사할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면 공장의 보조 관리자가 되고, 결국 공장장이 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제가 판매부서로 옮기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경영진은 “자네는 판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안 돼”라고 일축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이 바로 제가 판매부서로 옮기고 싶은 이유”라며 “저는 좀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학습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의 호기심은 마케팅과 관련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마케팅에 대해 배우고 싶고, 마케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필립스의 성과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인재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성실과 실천(walking the talk)입니다. 필립스 직원들은 항상 저의 입장과 기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는 전혀 모호함이 없습니다. 저는 일관된 목표를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이 가치들은 제가 공장의 관리자일 때 받아들이고, CEO가 됐을 때 실행하게 된 것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은 다양한 요소들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뿐입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필립스의 가치도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필립스는 항상 사람 중심의 문화를 중시해 왔습니다. 저는 CEO가 된 후 여기에 ‘하나의 필립스 정신(single common Philips mindset)을 더했습니다. 예전에는 직원들이 다소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고객들이 보는 필립스와 우리가 출근해서 일하는 필립스는 하나뿐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개념이 한층 강해졌습니다.
 
지금껏 일을 하면서 가장 커다란 보람을 느꼈던 경험을 소개해 주신다면?
 
쉬운 질문이 아니네요. 최근의 예를 들자면 ‘비전 2010’을 만들고 공표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필립스의 ‘비전 2010’은 품질 개선을 위한 진정한 팀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결과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특히 보람이 컸습니다. 팀을 훌륭하게 이끄는 사람이 반드시 팀원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 구성원이 때때로 바뀌었음에도 ‘비전 2010’은 우수한 팀워크의 산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특히 보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라는 개인으로서 가장 보람찬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최고라 할 만한 경험은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전설적인 자동차 경주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192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1000마일 자동차 경주)’에 참가한 일입니다. 밀레 밀리아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공식적으로) 교통 법규를 위반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경찰들까지도 ‘더 빨리’를 외치더군요.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