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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두산베어스 감독

잠재력 볼 줄 알아야 진짜 지도자

하정민 | 27호 (2009년 2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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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대 타자가 세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뒤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어떤 감독은 이때 이 타자를 버리고 확률이 높은 다른 선수로 교체한다. 그러나 다른 감독은 “3할대 타자가 연속 삼진을 당했으니 이제는 안타를 칠 때가 됐다”며 그 선수를 믿는다.
 
누구나 인정하듯 두산 베어스의 김경문 감독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수를 믿는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집요하게 안정적인 승리를 추구해 늘 승자의 위치에 머물기보다 뼈를 말리는 긴장, 드라마틱한 감동, 미래에 대한 기대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지도자가 바로 김경문이다.
 
‘안전한 1점’보다 ‘위험한 모험’을 택하고, ‘믿음’과 ‘고집’ 사이에서 날카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그는 어떤 철학을 갖고 있을까.
 
김 감독은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소위 ‘뚝심 야구’ ‘된장 빅 볼’이라 불리는 김경문표 강공 야구를 고수하겠다고 강조했다. 경험 있는 선수들의 노련함이나 가장 안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데이터보다 젊은 선수들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잠재력에 승부를 걸어 야구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전략은 도박에 가깝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할 확률 또한 매우 높다. 실제로 올림픽 때 그의 도박은 성공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데이터 야구’에 철저히 패배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김 감독은 경쟁심에 기초한 동기 유발도 효과가 있지만, 신뢰에 기초한 선수들의 능력 발휘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신뢰의 야구’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2004년 두산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5년 만에 4차례 포스트시즌 진출, 3차례 한국시리즈 준우승, 베이징 올림픽 우승 등을 일궈냈습니다. 6년차 감독으로는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현역 은퇴 후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91년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미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습니다.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저는 선수 시절부터 미국식 야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애틀랜타 생활은 미국 야구가 어떤지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교육 리그와 몇몇 구단의 스프링캠프를 보고 나니 ‘아 이것이 미국 야구구나’하는 감을 받았습니다. 교육 리그의 경우 각 팀에서 선수 몇 명을 보내면 메이저리그의 유명 인스트럭터들이 와서 직접 교육을 합니다.”
 
미국 야구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미국 야구 지도자들이 잠재력 있는 선수를 알아보는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인스트럭터들이 제게 ‘교육 리그에 있는 선수 중 누가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 것 같냐’고 묻기에 A라는 선수를 찍었습니다. 그 친구의 자세나 현재 실력이 가장 나았으니까요. 그러나 인스트럭터는 제 눈에 ‘뭐 저런 친구가 다 있나’ 싶은 B 선수를 찍더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명색이 메이저리그 인스트럭터가 사람 보는 눈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결국 그 사람 안목이 맞았습니다.
 
미국 야구 지도자들은 특정 자세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선수 개개인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애씁니다. 교과서적으로만 보면 B 선수의 자세가 아주 엉성해 보이고 가망성도 없을 것 같지만 이 친구에게 어떤 부분만 추가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교과서적 자세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죠. 물론 교과서적 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선수가 그 폼을 따를 수 없습니다. 다른 폼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켜 줘야 합니다. 잠재력을 볼 줄 아는 지도자가 진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신고 선수(한 팀이 KBO에 등록할 수 있는 정원 63명에 포함되지 않고 신고만 한 상태인 연습생 선수. 최저 연봉을 보장받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계약금도 없다)에 불과하던 김현수를 2008년 타격왕으로 키워냈습니다. 이종욱, 고영민, 오재원 등 무명 선수였거나 다른 팀에서 방출한 선수들의 조련을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무명 선수에게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배고픈 선수들이 잘 돼야 어린 야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팀의 대표 투수나 간판 타자는 학교로 치면 우등생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대우해 주고 장학금도 줍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잘하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무명 선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을 때 뿌듯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김현수 같은 선수가 귀감이 되고 희망이 되었기 때문에 야구 팬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김현수를 봤는데 ‘타격감은 있는데 다리가 느리다’는 평가가 많더군요. 그래서 ‘모든 조건을 다 갖췄으면 이미 메이저리그에 있어야지 왜 여기 있냐’고 그랬습니다. 김현수를 보니 참고 기다리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왔습니다.”
 
미국 생활 당시 재정적 압박이나 영어의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지금이야 구단에서 은퇴한 선수들에게 해외 코치 연수를 보내 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20년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습니다. 순수 자비로 미국에 갔습니다. 갈 때 하나 있던 조그마한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갔다가 1년 뒤 생활비 압박 때문에 팔아야 했을 정도입니다. 땅 넓은 미국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라면만 끓여 먹고 13시간씩 차를 몰고 가서 미국 야구를 구경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즐겁고 보람찬 날들이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얘기를 해 보죠. 2년 연속 SK에 막혀 우승에 실패했는데 아쉽지 않은가요. 전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에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못 살린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진 것은 진 겁니다. 프로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다 감독인 제 책임입니다.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진 김현수를 왜 계속 기용하냐고 말도 많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그 상황에서 김현수 말고 쓸 수 있는 다른 타자는 없었습니다. 설령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저는 같은 방식을 밀어붙일 겁니다. 언젠가 제가 믿은 선수들이 웃음을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준우승에 반성은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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