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리고 조명이 꺼지면 무대 뒤편에서는 누군가 숨을 죽이며 불안의 파동을 듣는다. 무대 위에서는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으로 섰지만 막이 내려가는 순간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한다.”
톱스타들의 인터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 장면은 무대를 비즈니스 세계로 옮겨도 낯설지 않습니다. 높은 성과를 내야 하는 임원, 승진 가도를 달리는 엘리트 사원들…. 연예인 못지않게 ‘퍼포먼스’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이들에게도 불안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입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실패에 대한 깊은 두려움(fear of failing)’이 자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 역시 “거대한 풍랑을 직감해 입술이 타들어 가고 잠이 오지 않았으며 깨어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룹 전체의 근본적 변화를 고민하며 겪은 불안은 결국 ‘신경영’으로 승화됐습니다. 이처럼 불안을 변화의 추진력으로 삼아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사실 드물지 않습니다.
문제는 고도의 책임감과 걱정 속에서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견하고 대비하려는 마음이 지나쳐 ‘고기능성 불안(High-Functioning Anxiety)’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기능성 불안을 가진 사람은 늘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작은 실수에도 과도한 자책에 빠지고 타인의 짧은 반응조차 비판이나 거절로 해석합니다. 완벽주의, 최악을 먼저 떠올리는 파국화 경향,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앞서 걱정하는 예기 불안, 모든 것을 떠맡는 과도한 책임감,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끝없이 추구하는 성취 지향, 모든 상황을 손아귀에 두려는 통제 욕구 등이 대표적 증상입니다.
이런 특성들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번아웃을 불러오고 조직 전체에 부정적 정서를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영국의 상담심리학자 랄리타 수글라니 박사는 DBR과의 인터뷰에서 고기능성 불안을 “개인의 건강은 물론 조직문화까지 갉아먹는 요인”이라 규정하며 결코 미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불안할까 봐 불안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불안이란 상태는 개인 차원을 넘어 오늘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서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풍족한 고소득 국가일수록 불안장애 유병률이 높다는 역설적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현대사회는 과잉 성장과 경쟁, AI 등 신기술의 급속한 확산이 빚는 조바심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소비자들 역시 불안에 시달릴수록 즉각적 보상과 충동적 소비에 이끌리며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불안이 낳은 새로운 소비 패턴이 또 다른 경제 생태계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이 만성 불안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먼저 불안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보지 말고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무모한 결정을 막고, 대안을 점검하며, 더 철저한 준비를 이끄는 긍정적 기능도 합니다. 다만 지나친 긴장감이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불안을 성찰과 혁신의 연료로 전환해야 합니다.
요즘 화두가 되는 ‘리더포비아’ 또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불안의 다른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더포비아에 대한 연구는 불안과 리더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줄 것입니다.
유독 긴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올해 후반기를 향해 달리는 시점에 DBR이 불안을 화두로 내건 것은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 리더들이 한 번쯤 ‘균형’을 생각해 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불안이 만들어내는 경계심과 추진력은 활용하되 불안 자체가 삶과 조직을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올해의 마지막 분기를 맞이하는 시기, 내면의 불안을 직시하고 다스리며 더 큰 도약을 도모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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