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에는 자원과 가치관의 충돌로 갈등이 불가피하다. 특히 ‘신념’이 맞부딪히면 타협은 더욱 어렵다. 조선 현종 때 예송논쟁에서 영의정 정태화는 남인과 서인이 각각 내세운 ‘왕자례부동사서’와 ‘천하동례’의 대립을 『경국대전』이라는 공통 규범으로 재프레이밍해 상복 논의를 기년복으로 정리하며 양 당파가 동의할 최소한의 접점을 만들었다. 이어진 2차 갑인예송에서는 현종이 강경 발언을 한 신하들을 처벌하되 서인 전체를 탄압하지 않고 감정적 극단을 피한 채 이성과 논리로 사안을 해결했다. 정태화의 프레임 전환과 현종의 절제된 대응은 신념 충돌을 효과적으로 관리한 리더십 사례로 평가된다.
갈등이 없는 집단은 없다. 집단 내 자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며 갈등을 촉발한다. 구성원마다 성향이 다르고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다른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유독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이 있다. 바로 ‘신념’이 부딪혔을 때다. 인간에게 신념은 삶의 원칙이며 관철해야 하는 대상이다. 신념을 꺾으라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라는 뜻으로 여겨질 수 있다. 조율이나 양보가 가능한 다른 갈등과 달리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그저 두고만 봐야 할까? 그랬다간 그 집단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조정함으로써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조선 현종 때 진행된 ‘예송(禮訟)’ 논쟁을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두 CEO, 현종과 영의정 정태화가 첨예하게 표출된 붕당 간의 신념 갈등, 이념 대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예송’은 왕실 의례에 관한 논쟁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1659년(현종 즉위년)의 ‘기해예송’과 1674년(현종 15년)의 ‘갑인예송’을 가리킨다. 모두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의붓어머니인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를 두고 벌어졌다. 유교 예법에서는 아들(며느리)이 죽으면 어머니(시어머니)도 상복을 입는다. 한데 장남(큰며느리)이냐 그 외의 아들(며느리)이냐에 따라 상복의 종류와 입는 기간이 달랐다. 1차 기해예송 때는 효종이 승하해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었고 2차 갑인예송 때는 효종비 인선왕후(효숙대비)가 승하해 역시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어야 했는데 효종을 장남으로 보느냐 차남으로 보느냐에 대한 판단이 붕당마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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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