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s 페라리, 지옥 레이스 혁신 대결

42호 (2009년 10월 Issue 1)

1963
년 프랑스의 르망 자동차 경기장. 13.65km의 경기장을 24시간 동안 가장 여러 번 주파하는 팀(2명의 레이서가 2인 1조로 구성)이 우승을 차지한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6년 전이지만, 당시 이미 경주용 자동차의 직선 구간 최고 속도는 시속 330km를 넘나들었다. 24시간 동안의 평균 속도도 시속 210km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속도만이 아니었다. 자동차의 내구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절대 완주를 할 수 없었다. 레이서들은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를 벌여야 했다. 이날 혹독한 24시간 레이싱의 결과는 페라리의 독주였다. 페라리는 1위부터 6위까지 독차지했다.
 
페라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엔초 페라리는 3년 연속 우승을 지켜보며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경기 결과를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바로 포드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의 손자이자 당시 CEO였던 헨리 포드 2세였다.
 
한때 양산차 시스템으로 자동차 시장을 제패했던 포드는 당시 경쟁사들에 뒤처지고 있었다. 젊고 야심만만한 포드 2세는 회사를 부흥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포드의 기술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포드차에 ‘스타일’을 가미해 미국 자동차 회사 최초로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했다. 그의 야망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이탈리아의 페라리였다.
 

 
 
페라리, 수제 스포츠카로 성장
<Go like Hell>은 1960년대 중반에 르망 레이스를 둘러싸고 벌어진 포드와 페라리의 각축전을 다룬 책이다. 자동차 전문기자 출신인 <플레이보이>의 편집장 A J 바이메는 두 회사 최고 경영진의 자존심을 건 승부를 자동차 경주를 중계하듯 흥미진진하게 서술했다. 그 내용은 20세기폭스 영화사가 이미 영화 판권을 사뒀을 정도로 사실적이며 드라마틱하다.
 
포드와 페라리는 수년 동안 기술 개발과 레이서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회사는 자동차 제조회사라는 점 이외에는 다른 점이 훨씬 많았다.
 
포드는 저가(低價)의 양산차 판매를 통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뒤 레이싱카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반면 페라리는 수제(手製) 레이싱카를 소수로 제조하다 서서히 양산차를 만드는 방향으로 사업을 키워갔다. 1960년대 페라리에서는 400명의 직원이 1년에 600대의 차를 만들었다. 이는 포드 공장 하나가 이틀 동안 생산하는 규모에 불과했다.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일괄생산 방식을 통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효율성을 무기로 했다면, 페라리는 숙련된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장인 정신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페라리 공장이 있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모데나에는 페라리 외에도 마세라티, 두카티, 람보르기니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비슷한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여전히 기술 집약적인 소량생산 체제가 대세였다.
 
 
포드, 레이싱카에 항공기용 와이퍼 장착
기업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방식 또한 판이하게 달랐다. 이 영역에서는 페라리가 다소 유리했다. 포드 2세가 레이싱 도전을 선언한 지 몇 해가 지나도록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의 측근 한 명이 답답한 듯 동료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페라리에는 있는데 우리에게는 없는 게 뭐지?”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엔초 페라리지. 우리 같은 ‘협의회’ 구조에서는 절대 페라리의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따라갈 수 없어.”
 
당시 포드는 이미 상장회사였다. 포드 가문이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협의회 또는 이사회를 거쳐야 했다. 페라리가 더 가볍고 빠른 차를 만들기 위한 결정을 번개 같은 속도로 내리고 있을 때, 포드 2세는 일일이 협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초를 다투는 기술 전쟁에서 유리할 리 없었다. 일단 속도 문제에서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주주들의 의견을 모아 검증된 전략을 추구하는 포드가 불리했다.
 
기술 개발에서는 포드가 다소 우세했다. 포드는 자체 개발한 350마력의 엔진에, 이 어마어마한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영국제 브레이크 시스템과 수년간 레이싱으로 검증된 이탈리아제 기어를 결합했다. 유리창의 와이퍼는 24시간 레이싱 중 있을지도 모르는 악천후에 대비해 보잉 707 항공기용을 장착했다. 이 와이퍼는 1분에 100회 이상 작동했다. 포드는 컴퓨터를 이용한 실내 엔진 테스트를 위해 GE가 개발한 수백만 달러짜리 측정기도 들여왔다. 경영진의 머릿속은 ‘미국 자동차’를 넘어선 ‘월드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페라리의 기술진은 주로 엔초 페라리의 집에 모여 새로운 기술을 논의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장에서 부품을 직접 하나씩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자동차의 속도와 내구성을 높여갔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디노 페라리(엔초 페라리의 아들)와 이탈리아 최고 기술자 비토리오 자노는 디노의 방에서 전설적인 1.5L 레이싱 엔진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레이싱사() 연구자들은 그 방에서 나눴던 대화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핵심 역량과 화무십일홍
이 모든 차이점의 이면에는 미국과 유럽의 시장 및 고객 니즈의 상이함이 있었다. 미국은 1950년대 경제 호황을 누렸고, 새롭게 떠오른 중산층의 자동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도로 건설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덕분에 자동차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광활한 지역을 달리기 위한 대형 엔진 개발도 활발해졌다.
 
반면 유럽에서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산업 시설의 복구가 끝나지 않았고,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도 두텁지 않았다. 유럽 시장은 작고 경제적인 차와 기술 집약적인 고급 자동차로 양분됐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회사의 경쟁은 과연 어떻게 끝났을까? 레이싱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포드의 압승이었다. 포드는 1967년을 시작으로 4년 연속 르망 레이스 우승을 거머쥐었고, 기세를 몰아 유럽 시장에 진출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 20여 년간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 세계적인 명차를 연달아 인수하며 상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 차에 밀리더니 지금은 주가가 1달러대로 떨어졌다.
 
페라리는 그 후로 한 번도 르망 우승컵을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1969년 50%의 지분(후에 40%를 추가로 매각)을 피아트에 매각함으로써 자본력과의 결합을 도모했다. 페라리는 이후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든 사람의 ‘드림 카’로 남아 있다.
 
적어도 헨리 포드 2세가 은퇴할 때까지 포드와 페라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그 원동력으로는 무엇보다도 자기 회사 특유의 ‘핵심 역량’에 집중해 경쟁력을 극대화한 CEO들의 확고한 경영 철학을 꼽을 수 있다. 포드는 막대한 자본력과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 글로벌 기술 및 인재 영입으로 불과 4년 만에 페라리를 추격할 수 있었다. 페라리는 핵심적인 엔지니어들과 가족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혁신을 거듭했고, 소수의 마니아 고객층을 유지함으로써 슈퍼 카로서의 명성을 지켰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개성과 장점이 있다.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이를 잘 활용하는 회사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게임기 시장의 빅 3라고 할 수 있는 Xbox, PS3, Wii는 다 비슷한 게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Xbox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의 집약체이며, 소니의 PS3에는 차세대 DVD 표준인 블루레이라는 차별화 포인트가 실려 있다. 또 게임기는 저가로 판매하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역량이 닌텐도 Wii의 기반이다.
 
그러나 누구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가는 꽃이 없다)’이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차별화된 핵심 역량을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언제나 장수의 비결인 ‘혁신’과 ‘차세대 핵심 역량’을 고민해야 한다. 포드 2세는 르망을 제패한 후 “이젠 일본이 두렵다”는 말을 던졌다. 이제는 그 일본 차의 선봉장이던 도요타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필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산업자원부에서 국제통상 업무를 담당했다. 공인회계사이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베인&컴퍼니 도쿄 및 시드니 오피스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 오피스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금융, 중공업, 인수합병(M&A) 및 인수 후 통합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