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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을 버려라,
유비의 굴신이 황제로 만들었다
Article at a Glance
유비는 당대의 라이벌이던 조조나 손권과 비교해 가진 자원도 적고 출발도 늦었다. 지명도뿐만 아니라 세력이나 특출한 능력이 없던 유비가 결국 삼국의 당당한 주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굴능신(能屈能伸)의 능력에 있었다. 유비는 항상 자신보다 나은 실력자에 기대어 성장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자신을 위협했던 세력과도 타협해 그들의 힘으로 재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그가 처세적 기교만 가졌다면 절대 역사적인 인물이 되진 못했을 터. 그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리더십을 발휘했고 부하들의 마음을 얻었다. |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훅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만하기 때문이다. 굽힐 때 굽혀야 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이 그걸 방해하는 것이다. 유비란 인물은 당대의 라이벌 조조나 손권과 비교하면 가진 자원도 적고 출발도 늦었다. 지휘력도 평범했다. 그런 유비가 삼국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능굴능신(能屈能伸)의 능력 때문이다. 굽힐 때 굽히고 펼 때 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런 것에 관한 책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란 책을 소개한다.
유비의 인성
유비는 어떤 사람일까? 유비는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대신 개와 말, 음악, 아름다운 의복을 좋아했다. 키는 7척5촌으로 손을 아래로 내리면 무릎에 닿았고 눈을 돌려 자신의 귀를 볼 수 있었다. 친구를 사귀는 재주가 있었다.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을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 표정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 호협들과 교우 맺는 것을 좋아하니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그를 따랐다. 한마디로 감정조절을 잘하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다. 항상 온화하고 치우침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비는 별다른 자원이 없이도 누군가의 지원으로 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예컨대 곤란이 닥칠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숙부 유원기는 유비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보태줬다. 그가 대성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북방 호족 공손찬은 정부 관리에게 유비를 천거한다. 사업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장세평과 소쌍은 처음 유비가 조직을 거느리고 사업을 일으키는 데 쓸 자금을 대주었다.
그렇다고 유비의 삶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유비는 생애 첫 출정에서 죽다가 살아났다. 황건족과의 싸움에서 참패를 했는데 죽은 척을 해서 간신히 살아난다. 이후 유비는 전투에서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한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때 공을 세운 자를 선별하기 위해 독우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독우는 금품을 요구하고 사적인 이익을 취했다. 유비도 그 소문을 들었다. 독우의 기세가 대단했다. 유비가 공적인 일로 만나기를 청했으나 계속 거절당했다. 분노한 유비는 곧바로 들어가 독우를 묶고 장 200대를 때렸다. 그리고 독우의 목을 말뚝에 맨 뒤 관직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 사건은 유비의 가치관과 리더십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다. 유비는 자신과 식솔들을 공손찬에게 의탁했다. 원소와의 싸움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비를 별부사마에 임명했다. 지금의 독립여단장에 해당한다. 여기서 여러 차례 공을 세우고 평원령을 맡게 된다. 작은 고을의 수령 격이다. 이곳에서 유비는 세 가지 일을 한다. 외부의 약탈을 막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 것, 지방경제 발전을 꾀해 백성의 생활을 개선한 것, 인재를 모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이 스스로 와 복종했다. 일종의 리더십 훈련을 한 셈이다.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
저자 자오위핑, 번역 박찬철, 위즈덤하우스, 2015
신뢰가 쌓여야 마음을 얻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근거지를 기반으로 발전해야 한다. 첫발은 공손찬의 도움에 기대어 작지만 소중한 평원현1 을 얻었다. 일반인 관점에선 나쁘지 않은 일이다. 지방의 행정장관으로 지내는 것은 괜찮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큰 뜻을 품었다. 지대자심고(志大者心苦)란 말이 있다. 마음에 큰 뜻을 품고 있으면 마음이 괴롭다는 말이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서주목 도겸이 조조의 대군에 대항해 서주를 지켜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당시 서주는 용담호혈이다. 용이나 호랑이가 거주하는 위험한 지역이다. 정치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들 사이에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비는 최선을 다해 도와줬지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감동한 도겸은 유비에게 서주를 넘겨주려 했지만 유비가 오히려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민심과 인기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현지 토호와 엘리트들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비가 서주자사를 사양하자 유비를 설득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 있다. 진등이다. “천하가 분열되고 사회가 혼란스럽지만 인구와 식량이 충분하고 돈과 병사가 있으니 조정을 위해 공을 세우기에는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라며 그를 설득한다. 유비는 자기 대신 가까이 사는 원술을 추천했다. 진등의 의견은 명쾌했다. “그는 교만하기에 난세를 다스릴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비는 형세가 무르익은 것을 본 후 서주목이 되기를 결정했다. 서주의 지방행정관 대표 미축, 제후세력의 대표 공융, 대표적인 실력파 진등이 모두 유비를 지지하자 비로소 서주목 자리에 앉는다. 밑천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 유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명도를 쌓고 명성을 먼저 쌓았다. 오늘날 경영에도 평판이나 지명도 같은 무형자산이 매우 중요하다. 뿌리가 깊어야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 뿌리가 깊지 않은데 겉으로 요란하게 자랑하면 더 빨리 넘어지는 법이다. 서른넷의 유비는 서주의 행정장관이 된다. 탁주에서 기병을 한 후 10년 만에 서주라는 큰 땅을 얻고 군웅과 각축을 벌일 준비를 끝낸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한다. 위기 또한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러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위기로부터 성장
195년 조조는 여포를 물리치고 연주를 탈환한다. 여포는 패잔병을 이끌고 활로를 찾아야 했다.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첫째, 북쪽 원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예전에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남쪽 원술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여포는 원술이 자신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원술은 여포가 수시로 안면을 바꾸고 이리 같은 야심을 품고 있어 그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결론은 동쪽 유비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유비는 기꺼이 여포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명성도 올라가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긴다. 또 다른 이유는 여포와 연합한다면 자기 세력을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비는 원술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196년 원술은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공격한다. 둘은 회음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유비는 중대한 실수를 한다. 장비에게 도겸의 장수 조표와 함께 하비성을 지키게 한 것이다. 장비와 조표가 갈등을 일으켰고 장비가 조표를 죽이자 조표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마침 원술이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자 여포는 유비를 배신하고 하비를 기습한다. 이 사건으로 유비는 서주라는 기반을 잃고 양쪽에서 적에게 둘러싸인다. 이 결정적 순간에 유비를 도와준 사람이 있다. 미축이다. 미축은 서주 최고 부자로 재산이 엄청 많았다. 유비에게 수천의 종복을 주어 병력을 충원토록 하고 아리따운 누이까지 내주었다. 어려움을 겪으면 진정한 친구가 누군지 알 수 있다. 빈천한 시기의 사귐은 잊을 수 없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일생 감사하고 기억해야 한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던 유비는 놀랄 만한 결정을 한다. 자신을 배신한 여포에게 투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는 여포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은 다 반대했다. 유비의 전략은 이랬다. 첫째, 주요 목표는 원술이지 여포가 아니다. 핵심은 이익이지, 도의가 아니다. 원술이 여포를 매수할 수 있다면 본인도 매수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세력은 너무 약해 투항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현재 두 명의 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한편 여포는 원술이 사전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나 있던 상태라 유비의 화친 요구를 받아들인다. 유비를 서주로 돌아오게 하고 세력을 합쳐 원술을 공격했다.
자신을 배신한 여포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비는 미래를 위해 잠시의 굴욕을 참기로 한 것이다. 이게 능굴능신이다.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비의 주특기이다. 자신을 굽혀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심각한 좌절을 겪은 후 냉정을 유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세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 한다. 적막함, 괴로움, 억울함을 잘 견뎌야 한다. 하나라도 잘 못 견디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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