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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미국의 세인트존스대 학생들은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수로부터 강의나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읽어온 고전에 대해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배움을 얻고 평가를 받는다. 이 학교에는 독특한 ‘튜터’ 제도도 있다. 교수처럼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지혜를 끌어내기 위한 지식의 ‘산파’ 역할을 하는 강의 도우미들이다. 토론을 통해 배우는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듣기만 하는 학생들보다 궁극적으로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학습의 참다운 효과 자체가 뭔가 의문을 품고,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
강의가 주업이긴 하지만 나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의 수업방식에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고민을 하고, 배우는 사람은 별 고민을 하지 않는 곳에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나름 질문하고 답변을 하는 형태로 강의를 진행하려고 애를 쓴다. 완벽하진 않지만 성과는 분명히 있다고 평가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학습은 학생이 미리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해오는 것이다. 강의하는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논의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마무리는 강사가 한다. 실제 그런 식으로 강의를 하는 미국 대학이 있다. 바로 세인트존스대학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부터 모더니즘 소설 <더블린 사람들> <파이드로스> <향연>,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등등… 미리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이 학교의 방식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 학교에 대한 책,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을 소개한다.
강의도, 수업도 없는 학교
이 학교에는 강의와 수업이 없다. 100% 토론으로 진행된다. 그날 수업에 읽어야 하는 책을 미리 읽고 와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세인트존스는 가르치지 않는 학교다. 교수가 강의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책을 읽은 뒤 수업에 참여해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을 정리한다. 한편 교수가 아닌 ‘튜터(tutor)’로 불리는 선생들은 이러한 학생 하나하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비판하고 충고해준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고민하고, 깨닫고, 본인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낸다. 수업도구도 심플하다. 직사각형 테이블과 칠판 하나가 전부다. 보통 ‘수업’ 하면 뭐가 연상되는가? 교수는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 적는 것이 연상되지 않나. 이곳은 아니다. 여기서의 수업은 ‘授業’도 아니고 ‘受業’도 아니고 ‘修業’이다. 이 학교의 공부 방식은 ‘닦을 수(修)’가 어울린다. 학업이나 기술을 닦는다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 큰 테이블에 앉아 각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것이다. 토론 수업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교에선 의견을 말로 하지 않으면 탈락하고 만다.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전공과 시험도 없다.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철학 분야의 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전공이다. 수업 스케줄도 개인이 아닌 학교에서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점이 있다. 스스로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수학을 싫어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수학을 좋아하게 됐고, 잘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했단다. 그런 면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또 중간고사나 학기말고사가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수업이 사실은 시험이다. 매번 전 수업을 이해한 다음 수업 토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두 번 수업을 불참하면 따라갈 수 없다.
이 학교 졸업생인 저자가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렸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튜터가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학생들은 속으로 ‘오호, 휴강이다!’를 외쳤다. 그런데 한 친구가 튜터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이렇게 전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
그날 이 책의 저자와 동료들은 튜터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세인트존스에는 없는 게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강의, 두 번째가 교수다. ‘그게 대학이야? 그게 수업이야? 강의가 없고 교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대학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지?’라 묻고 싶겠지만 이곳에는 대신 토론과 튜터가 있다. 튜터는 개인지도교사, 과외선생 정도로 해석된다. 근데 왜 튜터라고 부를까?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수는 강의를 하지만 튜터는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 지식 전달이 아니라 어떤 주제나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해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튜터의 역할은 학생들로부터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튜터는 토론을 독점하는 학생을 견제한다. 안 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방향이 잘못되면 그 방향을 바로 잡기도 한다.
사람은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성장한다. 이 학교는 돈 래그(Don Rag)라는 평가 시스템을 갖고 있다. ‘돈(don)’은 교수를 뜻하고 ‘래그(rag)’는 ‘꾸짖다’ ‘책망하다’는 뜻이다. 교수가 학생을 꾸짖는다는 뜻이다. 교수가 학생을 공식적으로 꾸짖을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학생들을 뒤에 앉혀 놓고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담당했던 튜터들이 모여 학생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다. 학생들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그 자리가 상상이 가는가? 자신이 대해 튜터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그 학생은 맨날 아는 척만 해요. 그 학생은 늘 졸아요. 그 학생은 말에 조리가 없어요 등등….”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생각했던 자기 모습과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 사이의 갭 때문에 놀란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점을 듣기도 하고 새롭게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는 충격적인 순간이다. 돈 래그는 이 학교만의 평가 시스템이다. 튜터들의 뒷담화가 끝나면 학생들에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튜터들 얘기 중 자신을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도 한다. 돈 래그의 핵심은 “이 학생이 다음 학기 진급하는 것에 동의하는가?”에 대한 결정이다. 모든 사람이 동의를 해야 진급을 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논쟁을 하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총장 선까지 올라간다. 조건부로 진급을 결정하기도 한다.
3학년2학기 말에는 콘퍼런스를 한다. 이는 돈 래그의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학생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콘퍼런스의 핵심은 학생이 ‘얼마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콘퍼런스를 마지막으로 돈 래그는 끝이 난다.
이 학교 수업은 고전 그 자체만이 있을 뿐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학생들이 결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열심히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의견이 미리 정리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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