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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 대신 독서와 토론…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는 게 진짜 공부

209호 (2016년 9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미국의 세인트존스대 학생들은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수로부터 강의나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읽어온 고전에 대해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배움을 얻고 평가를 받는다. 이 학교에는 독특한튜터제도도 있다. 교수처럼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지혜를 끌어내기 위한 지식의산파역할을 하는 강의 도우미들이다. 토론을 통해 배우는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듣기만 하는 학생들보다 궁극적으로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학습의 참다운 효과 자체가 뭔가 의문을 품고,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의가 주업이긴 하지만 나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의 수업방식에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고민을 하고, 배우는 사람은 별 고민을 하지 않는 곳에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나름 질문하고 답변을 하는 형태로 강의를 진행하려고 애를 쓴다. 완벽하진 않지만 성과는 분명히 있다고 평가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학습은 학생이 미리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해오는 것이다. 강의하는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논의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마무리는 강사가 한다. 실제 그런 식으로 강의를 하는 미국 대학이 있다. 바로 세인트존스대학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그리스의 서사시일리아스부터 모더니즘 소설 <더블린 사람들> <파이드로스> <향연>,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등등미리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이 학교의 방식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 학교에 대한 책,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을 소개한다.

 

강의도, 수업도 없는 학교

이 학교에는 강의와 수업이 없다. 100% 토론으로 진행된다. 그날 수업에 읽어야 하는 책을 미리 읽고 와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세인트존스는 가르치지 않는 학교다. 교수가 강의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책을 읽은 뒤 수업에 참여해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을 정리한다. 한편 교수가 아닌튜터(tutor)’로 불리는 선생들은 이러한 학생 하나하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비판하고 충고해준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고민하고, 깨닫고, 본인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낸다. 수업도구도 심플하다. 직사각형 테이블과 칠판 하나가 전부다. 보통수업하면 뭐가 연상되는가? 교수는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 적는 것이 연상되지 않나. 이곳은 아니다. 여기서의 수업은授業도 아니고受業도 아니고修業이다. 이 학교의 공부 방식은닦을 수()’가 어울린다. 학업이나 기술을 닦는다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 큰 테이블에 앉아 각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것이다. 토론 수업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교에선 의견을 말로 하지 않으면 탈락하고 만다.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전공과 시험도 없다.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철학 분야의 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전공이다. 수업 스케줄도 개인이 아닌 학교에서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점이 있다. 스스로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수학을 싫어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수학을 좋아하게 됐고, 잘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했단다. 그런 면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또 중간고사나 학기말고사가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수업이 사실은 시험이다. 매번 전 수업을 이해한 다음 수업 토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두 번 수업을 불참하면 따라갈 수 없다.

 

 

이 학교 졸업생인 저자가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렸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튜터가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학생들은 속으로오호, 휴강이다!’를 외쳤다. 그런데 한 친구가 튜터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이렇게 전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

그날 이 책의 저자와 동료들은 튜터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세인트존스에는 없는 게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강의, 두 번째가 교수다. ‘그게 대학이야? 그게 수업이야? 강의가 없고 교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대학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지?’라 묻고 싶겠지만 이곳에는 대신 토론과 튜터가 있다. 튜터는 개인지도교사, 과외선생 정도로 해석된다. 근데 왜 튜터라고 부를까?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수는 강의를 하지만 튜터는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 지식 전달이 아니라 어떤 주제나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해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튜터의 역할은 학생들로부터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튜터는 토론을 독점하는 학생을 견제한다. 안 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방향이 잘못되면 그 방향을 바로 잡기도 한다.

 

사람은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성장한다. 이 학교는 돈 래그(Don Rag)라는 평가 시스템을 갖고 있다. ‘(don)’은 교수를 뜻하고래그(rag)’꾸짖다’ ‘책망하다는 뜻이다. 교수가 학생을 꾸짖는다는 뜻이다. 교수가 학생을 공식적으로 꾸짖을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학생들을 뒤에 앉혀 놓고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담당했던 튜터들이 모여 학생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다. 학생들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그 자리가 상상이 가는가? 자신이 대해 튜터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그 학생은 맨날 아는 척만 해요. 그 학생은 늘 졸아요. 그 학생은 말에 조리가 없어요 등등….”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생각했던 자기 모습과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 사이의 갭 때문에 놀란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점을 듣기도 하고 새롭게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는 충격적인 순간이다. 돈 래그는 이 학교만의 평가 시스템이다. 튜터들의 뒷담화가 끝나면 학생들에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튜터들 얘기 중 자신을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도 한다. 돈 래그의 핵심은이 학생이 다음 학기 진급하는 것에 동의하는가?”에 대한 결정이다. 모든 사람이 동의를 해야 진급을 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논쟁을 하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총장 선까지 올라간다. 조건부로 진급을 결정하기도 한다.

 

3학년2학기 말에는 콘퍼런스를 한다. 이는 돈 래그의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학생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콘퍼런스의 핵심은 학생이얼마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콘퍼런스를 마지막으로 돈 래그는 끝이 난다.

 

이 학교 수업은 고전 그 자체만이 있을 뿐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학생들이 결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열심히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의견이 미리 정리돼 있어야 한다.

 

 

토론을 통해 배우는 학교

이 학교의 대표 단어는 자율이다. 보통 학교에서는 강의를 통해 배운다. 이 학교는 토론을 통해 배운다. 둘의 차이는 뭘까? 보통 강의는 교수가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된다. 토론은 그렇지 않다. 학생이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교수도 준비를 한다. 보통 강의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들은 후 공부를 한다. 토론은 학생이 준비를 해야만 한다. 토론주제에 대한 예습이 필수다. 준비하지 않으면 토론할 수 없다.이 학교 수업은 고전 그 자체만이 있을 뿐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학생들이 결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열심히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의견이 미리 정리돼 있어야 한다. 보통 수업은 강의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평가하지만 토론은 그 자체가 시험이다. 매번 토론을 할 때마다 시험을 보는 셈이다.

 

이 학교는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데 비용을 가장 많이 쓴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일까? 고전은누구나 들어봤지만 읽은 적은 없는 책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읽기 어렵고 읽은 사람도 별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고전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뭔가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독특하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란 것이다. 고전이 특히 그렇다. 고전은 생각하는 책,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처음 독서를 하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읽었으니 이해했다고 믿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 상태로 수업에 가니 토론을 할 수 없었다. 보긴 봤지만 깊이 생각한 게 아닌데 그걸 진짜 생각한 걸로 착각한 것이었다.고전은 이상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어려워서라기보다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생각해봐야 한다. 고전은 읽었다고 해도 함부로 읽었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대신 고전을 생각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고전은 무작정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보다 생각이 중요하다. 단순히 현상을 보고 인식하는 생각은 ‘thinking’이고 더 깊이 골똘하게 생각하기는 ‘contemplation’이다. 보통은 생각을 해보지 않고 생각한 것으로 착각한다.

 

배움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게으른 생각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게으른 말이다. 그 대상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고 여전히 별로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배우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단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헛똑똑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단순히 읽고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진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진짜 생각을 정리하면서 사물, 현상,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과 의견을 확립할 수 있다.이게 배움의 의미이고 진짜 똑똑한 것이다.

 

고전은 읽기가 쉽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튜터들은 딱 한 가지를 주문한다. “질문하라는 것이다. 어떤 수업은 학생들이 질문 한 가지씩을 써내고 이걸 모아놓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배우고 싶으면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는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괜찮다. 모르니까 알기 위해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근데 자신은 이해했고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배움은 거기서 멈춘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이런 착각은 배움의 예정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소크라테스는테아이테토스 (Theaetetus)’에서 자신의 역할을 산파에 비유했다. 아이를 낳는 사람은 산파가 아닌 산모란 것이다. 산파는 그저 출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은 학생들이 지혜를 얻는 데 도움을 주는 산파라고 생각한다. 그가 도움을 주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이다. 여기서 튜터들의 역할이 바로 그렇다. 모든 튜터들의 공통점이 있다. 어떤 학생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에 온다는 사실이다.

토론은 대화의 질을 높이고, 책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격려하고, 다른 시야를 갖게 한다. 세미나는 주의 깊은 읽기 습관을 키워주고, 명확한 생각을 끌어낼 뿐 아니라 다른 의견을 관용할 수 있도록 사고방식을 성숙시킨다.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능력은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다. 자기 성격대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게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 세인트존스의 토론에는 사회자가 없다. 발언권을 얻을 필요 없이 발언하고 싶을 때 끼어들어 말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깊고 넓고, 더 풍부하게 가다듬는다.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토론이란 어떤 것일까? 서로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그걸 나누고 궁금한 것을 더 캐묻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의견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계속 소통을 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의 매너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 “말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 의견을 좀 들어라” “말이 너무 적다” “네 의견을 적극 표현하라”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마라같은 것들이다. 하나같이 다른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어쓰기를 강조한다. 모두 경어를 쓴다. ‘미스터’ ‘미스라는 호칭을 쓴다.

 

 

토론을 할 때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선 충돌해야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들어야 자신의 제한된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의견을 듣는 건 신나는 일이다. 내 한계를 벗어나야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말도 안 되게 느껴지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을 듣는 경우도 많다.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옳다고 밝혀진 많은 진리들이 예전에는 그랬다. 자신이 평생을 믿어온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의견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때 소통을 단절하면 지구가 네모라고 믿는 내 세상 속에만 머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통해야 한다.

 

에세이를 통해 생각을 정리

뭐니뭐니 해도 배움의 꽃은 에세이 쓰기다. 에세이를 쓸 때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진행시켜 나간다. 자기 스스로 하나의 질문을 정하고, 그에 대한 답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이게 진정한 공부다. 읽고 토론하는 것도 결국 에세이를 쓰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는 곧 생각하기이다. 그리고 쓰기는 배움의 꽃이자 최고의 배움이다. 고전을 읽고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정보습득의 과정이다. 그리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정보공유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쓰기는 정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의견, 다른 사람의 의견을 총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 수 있다.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읽고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기는 자신밖에 할 수 없다. 물론 책 읽는 과정에서도 할 수는 있다. 깊이 있는 생각은 책을 읽고 눈을 감는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을 써야 가능하다. 글쓰기는 곧 생각하기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하나의 정리된 생각이 탄생한다. 글쓰기와 출산은 힘들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내 고유의 생각을 탄생시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저자가 이 학교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자신에 대한 한계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생활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근데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고 배움이 시작됐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삶이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성격의 한계, 언어의 한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경제적 한계, 육체의 한계, 인간관계 등등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학교는 학생으로 하여금 한계를 마주보게 한다. 그리고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그 후 한계에 도전하게 한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한다. 결국 자기만의 배움을 찾도록 한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 대신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그러다 보면 입학 전에 비해 자신에 대해 매우 객관적인 지식을 갖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들이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세미나를 뒷받침하는 언어, 음악, 수학, 과학 수업이 있고 각 수업에서는 해당 과목의 고전을 읽는다. 수학 수업에서는 수학자들이 쓴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또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나 뉴턴과 오일러의 증명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 증명들을 자신이 이해하고 친구들에게 설명하며 납득하는 방식으로 추론 능력과 창의력, 비판 능력을 키운다. 과학 수업에 대한 학교의 자부심은 꽤 높다. 과학 수업 중 일주일에 하루는 실험으로 이뤄진다. 직접 동물을 해부하며 생물에 대해 배우고 예전에 이뤄졌던 주요 실험들을 그대로 재현하며 물리, 화학 등 과학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과학과 수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우주 속의 인간과 사물,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의 생각을 접한다. 또 언어 수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배운다. 특이한 점은 회화를 위한 수업이라기보다 원전을 읽기 위한 수업, 그리고 언어의 구조를 알기 위한 수업이라는 점이다. 원문을 번역하고 친구들과 번역문을 비교하는 수업도 있다. 또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기 위한 글쓰기의 기초를 닦는다. 음악 수업도 한다. 세인트존스는 음악이 사람의 감정과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음악 수업에서는 합창을 연습하고 음악의 기초 이론부터 작곡까지 공부하며 학생의 정서를 함양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토론이 빠질 수 없어서 여가활동의 의미와 목적 혹은 음악이 어떻게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지 등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기존 학습법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아무 준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어도 지장이 없다. 의문도, 질문도 없는데 어떻게 학습이 일어나는가? 학습의 전제조건은 뭔가 의문을 품고, 거기에 대해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기 생각을 조정하면서 일어난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인데, 이 책이 문제해결에 단초를 제시해준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9호 New Wave of Logistics 2021년 0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