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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노동이며 프로세스…매일매일 매진하는 강박이다

한근태 | 185호 (2015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최초로 사물인터넷(IoT)이란 용어를 만든 케빈 애슈턴은 창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영감의 산물이 아닌노동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습관, 강박, 집착, 사명이란 키워드로 하루 종일, 매일 매진한 사람들이 창조의 대가가 됐다. 뛰어난 창조자들은 대개고통의 극한점을 통과하는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창조를 막는 장애물 중 으뜸은 관성이다. 창조란 남들이 그냥 관습적으로 지나쳐 보는 것, 믿는 것은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창조를 위해 예상치 못한 것을 보려면 아무 것도 예상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것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신기술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창조적인 사람이나 창조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다. 이 책은 그런 것에 관한 것이다.

 

창조하면 연상되는 신화 같은 얘기들이 존재한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고, 꿈속에 계시를 받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한순간에 뭔가 탄생한다는 식이다.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고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이기 위해선 경치 좋은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유유자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으로 말하면 출퇴근시간도 제한하면 안 되고 뭐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지원하면 언젠가 창조적인 그 무엇이 나온다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런 신화는 잘못이고 완전한 허구다. 이 책의 저자는 최초로 사물인터넷(IoT)이란 용어를 만들고 오랫동안 매우 창조적인 일을 한 사람이다. 그가 주장하는 창조란 무엇일까?

 

창조의 핵심은 노동

 

창조의 핵심은 노동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갖고 꾸준히 노력할 때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창조다. 창조 행위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루 종일, 매일매일 매진해야 한다. 창조는 내킬 때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습관이고, 강박이고, 집착이고, 사명이다. 모든 창조자들은 가진 시간 거의 전부를 창조를 위한 노동에 사용한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성공은 드물다. 창조는 프로세스다. 갑자기 점프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거쳐 창조에 이른다. 별다른 고민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번쩍하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20세기 음악에 대변혁을 일으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매일 아침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연주했다. 그 다음 10시간 일을 했다. 점심식사 전에 작곡을 했고 점심 후에는 오케스트라 편곡을 했다. 그는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감을 인식할 수 없지만 작업 그 자체가 영감을 준다. 창조를 위해서는 일정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창조를 이루는 주 성분은 시간이다. 최고 품질의 시간을 창조에 사용하라.

 

아르키메데스가 경험한 유레카 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오랫동안 이 왕관이 순금인지, 아닌지를 밝혀야만 하는 숙제에 시달렸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과제를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 물이 넘치는 걸 보면서 번쩍 스파크가 튄 것이다. 만약 아무런 고민도, 숙제도 없는 사람이 물 넘치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865년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가 벤젠링을 발견한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벤젠 구조를 밝힌 사람으로 유명하다. 꿈속에서 얻은 계시 덕분에 구조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교재를 쓰고 있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지요. 그러다 난로 쪽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또다시 원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지요. 이번에는 비교적 작은 원자단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광경은 익숙해 여러 형태를 지닌 더 큰 구조를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열이 때로는 엇물려 뱀같이 움직이고 휘감겨 얽혀 있었지요. 그때 원자 무리 중 하나가 자기 꼬리를 붙잡고 내 눈앞에서 비웃듯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번쩍 번갯불을 맞은 듯 잠에서 깼습니다. 그날 밤, 가설의 결론을 알기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꿈에서 벤젠링 구조를 갑자기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벤젠링 구조를 밝히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던 것이다. 유레카의 순간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 결과물로 오는 것이다. 창조란 노동의 결과물이다.

 

창조는 반짝하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을 하나의 결과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스파크가 바로 가시적인 성과물로 바뀔 수 있다면 세상에 창조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이 그렇다. 영국의 가전업체 다이슨을 설립한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먼지봉투가 꽉 차 흡입력을 잃은 진공청소기를 볼 때마다 분노를 느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를 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심분리원리로 작동하는 집진기를 보고 집진기를 이용한 청소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집진기는 필터가 없기 때문에 흡입력을 떨어뜨릴 요인이 없다.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근데 개발 과정은 간단치가 않았다. 그는 바로 시제품을 만들면서 실험에 들어갔다. 제약이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진기를 만들어야 하고, 100만 분의 1m 크기의 집먼지를 흡입할 수 있어야 하고, 가정용 및 대량 생산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과정은 험난했다. 개발에 무려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5000개 이상의 시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했겠지만 그는 끈기를 갖고 버텨 개발에 성공했고 그 제품은 50억 달러 이상의 부를 가져다줬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매일 포기하고 싶었다. 세상이 자신을 적대하는 듯 보일 때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지만 그때야말로 조금 더 밀고 나가야 한다. 계속 뛸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고통의 극한점을 통과하는 순간 끝이 보이면서 괜찮아진다. 대개 모퉁이를 돌고 난 후 해결책이 등장한다. 창조는 고통이고, 인내이고, 끈기다.

 

 

창조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그중 으뜸은 관성이란 장애물이다.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해 있는 물건은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한다. 그게 관성의 법칙이다. 이는 물리학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일상을 꽉 잡고 있다. 사람들은 눈에 익은 것, 익숙한 것, 기존의 것을 지키려 한다.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우선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예상해야 한다. 산욕열이란 병이 그랬다. 1846년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에서 출산 중인 산모와 신생아가 산욕열로 계속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무언가에 감염된 것이었다. 이 병원에는 두 개의 병동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서만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 병원 의사들은 시체 해부 수업 후 분만실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헝가리 의사가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시체에서 산모로 무언가 전염된 것으로 의심했던 것이다. 물론 실험이나 임상 데이터는 없고 추측뿐이었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에게 분만 전 손을 씻으라고 설득했고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손을 씻기 전 한 달에 57명의 산모가 사망했는데 손을 씻은 후 6명만이 사망했다. 이후 2년 동안 단순히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500여 명의 산모와 신생아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제멜바이스의 의견에 반대했다. 신성한 의사의 손이 질병을 옮긴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의학계는 제멜바이스의 아이디어를 거부했고 그는 이 일로 일자리를 잃고 정신질환 증세까지 보이다 사망했다. 의사들이 손 씻기를 중단한 후 사망률은 600%까지 증가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것일까? 현상유지라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고자 한다면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창조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보호하고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나 거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거부는 당연한 것이다. 거부를 예상해야 한다. 거부는 포기를 위한 입장권이 아니다. 그 작업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나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거부는 정보가 된다. 거부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준다. 거부에서 독성을 빼고 남은 부분은 더욱 유용해진다. 실패도 일종의 거부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거부의 일종이다. 위대한 창조자는 자신을 가장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유심히 살피고 실험한다. 다른 사람들이 거부하기 전에 스스로 거부한다. 위대한 창조자는 면밀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잘못과 오류를 발견하고, 도전하고 변화하기 위해 일보 후퇴한다. 거부는 교육하고 실패는 가르친다.

 

창조는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남들도 모두 보는 것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호주의 로빈 워런은 병리학자이다. 그는 환자의 위()에서 박테리아를 관찰했다. 그동안 위 속에서는 어떤 박테리아도 성장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위는 산성이고 무균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는 크루아상처럼 꼬여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 박테리아가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그 조직은 수많은 박테리아를 함유하고 있다. 박테리아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는 듯한데 오염물질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없으나 좀 더 조사할 가치가 있다.” 그는 2년 동안 데이터를 수집한 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 배리 마셜을 만났다. 그들은 해당 박테리아를 가진 환자의 90%는 궤양이 있고 십이지장궤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는 그 박테리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이 신종 박테리아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학술지에 이렇게 썼다.

 

“신종으로 보이는 이 박테리아는 만성 위염, 십이지장궤양, 혹은 위궤양을 앓고 있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 존재하며 질병의 중요 원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이를 증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2004년 마셜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사실 이 박테리아를 이들이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이 박테리아를 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창조란 이런 것이다. 남들이 그냥 관습적으로 지나쳐 보는 것, 믿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창조를 위해서는 자신의 눈을 믿어서는 안 된다. 특히 무주의맹시와 선택적 주의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무주의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란 이렇다.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볼 수 없거나 보지 않도록 하는 대상이 있다. 뇌는 그 대상을 바로 삭제한다. 사각지대 같다. 그 대상을 똑바로 보고 있어도 그 대상이 무언지 알 때까지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운전 중 통화가 위험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통화를 하면 뇌로 들어가는 감각 정보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대상을 보지만 정보의 대부분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삭제한다.”

 

선택적 주의는 보고 싶은 것만을 뽑아서 보는 것을 말한다. 창조를 위해서는 초심을 가져야 한다. 초심은 전문 지식이 야기하는 선택과 맹시를 넘어 아무것도 추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보려는 마음이다. 초심은 신비롭거나 종교적이지 않고 실용적이다. 창조는 주목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보고 눈에 띄지 않는 대상을 인식하고 무주의맹시에 숨겨진 부분을 찾는 행위다. 예술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초심자가 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것을 보려면 아무 것도 예상하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의 마지막 단계는 초심으로 가는 첫 단계이다. 지각하는 것과 보는 것은 같지 않다. 보는 것을 실제라고 믿고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불완전하다. 초심은 전문지식의 정반대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확신을 조심해야 한다. 확신을 적으로 만들고 의심의 친구가 돼야 한다. 확신은 망상보다 만들기 쉽다.

 

창조는 영감이 아니다. 영감과는 관련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영감을 받았을 때만 창조할 수 있다면 영감을 받지 않았을 때는 창조할 수 없다. 우디 앨런은 1965년에서 2014년 사이 감독, 각본, 배우로서 영화 66편 이상에 이름을 올렸다. 세 가지 역할을 맡은 경우도 흔하다. 엄청난 생산성이다. 그는 작가의 장벽에 관해 두 가지 진실을 말한다. 첫째는 시간의 중요성이다. “나는 한시라도 허투루 보내는 것이 질색입니다. 아침에 어느 곳을 걷고 있을 때도 무엇에 관해 생각할지, 어떤 문제와 씨름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목을 생각할 예정입니다. 샤워를 할 때도 그 시간을 활용하려고 애씁니다. 시간의 상당 부분을 생각하는 데 씁니다. 그것이 이런 글쓰기 문제를 공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작가가 장벽에 부딪치는 가장 큰 이유는 훌륭한 글만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치료책은 명확하다.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작가의 장벽은 지속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최상은 지속될 수 없다. 최상은 태생적으로 예외적이다. 잘 풀리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가장 나쁜 일은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창조자는 내키든 내키지 않든, 기분이 좋든 그렇지 않든, 영감을 받았건 그렇지 않건 일을 하는 것이다.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전에 임하는 것이다. 성공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조금씩 쌓인다. “글쓰기는 쉽지 않아요. 정말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죠. 한참 후 나는 톨스토이가 말했다는 펜을 피에 담가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나는 아침 일찍 글을 쓰기 시작해 몰두하고 계속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생각하고, 쓴 글을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합니다. 이렇게 강경한 접근법을 찾아냈습니다. 나는 결코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틀어박혀서 글을 씁니다. 억지로 해야 합니다.”

 

 

장벽에 관한 두 번째 진실은 창조의 가장 큰 동기는 내적 동기라는 사실이다.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위는 오래갈 수 없다. 그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해서 일을 할 때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창작력은 철저하게 내부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디 앨런은 세 차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17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없다. 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피하는 것일까? 오스카상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상 자체가 어리석어요. 난 타인의 평가에 따를 수 없어요. 사람들이 상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때도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상이 창조에 대한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창조를 억제하고 손상시킨다. 앨런이 시상식에 불참하는 이유는 외부 영향력에 흔들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T.S. 엘리엇도 그랬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원하지 않았다. 지인이 축하를 하자너무 이릅니다. 노벨상은 장례식으로 가는 입장권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뒤 뭔가를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원해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창조에서는 시작이 중요하다. 창조를 위해서는 우선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 이유를 대며 시작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매일 결심하지만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바닷물에 몸을 담가야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에 흠뻑 적셔야 한다. 시작은 창조를 위한 가장 훌륭한 원천이다. 시작을 미루는 것은 몸도 담그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같다. 훌륭한 모든 작품은 시작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은 나중에 고치거나, 지우거나 재구성할 수 있다.

 

창조를 위해서는 행동력이 중요하다. 마시멜로 도전이란 게임이 있다. 각 팀에 스파게티 스무 가닥을 담은 갈색 봉투, 90㎝짜리 줄, 마스킹테이프 90,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탑을 쌓게 하는 게임이다. 목표는 제한시간 18분 내에 마시멜로 무게를 견디면서 최대한 높은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놀랍게도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은 유치원 아이들이다. 최저 점수는 경영대학원 학생들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유 중 하나는 행동력이다. 어린이들은 회의하지 않는다.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 바로 탑을 쌓기 시작하고 행동하면서 얘기하고 답을 찾는다. 어른들은 권력다툼과 계획수립에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어른들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아이들은 행동하면서 생각한다. 숨겨진 비밀 중 하나는 마시멜로의 무게다. 이게 생각보다 무겁다. 근데 이 사실을 알아냈을 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창조를 위해서는 빠른 행동이 중요하다. 행동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유용하지만 행동에 관한 얘기는 유용하지 않다. 창조란 말하기가 아니라 행동이다. 창조적인 조직은 행동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비창조적인 조직은 회의, 말하기가 우선이다. 회의를 통해 창조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창조는 대화가 아니라 행동이다. 조직이 창조적일수록 내부 회의는 적게 한다. 참석자는 적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제 일선에서 일을 한다. 내부 회의는 상당 부분은 계획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창조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창조는 번뜩임이 아니다. 갑자기 어느 날 찾아오는 유레카가 아니다. 창조는 한 가지 주제를 갖고 오랫동안 노력하는 것이다. 거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작해야 한다.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창조는 그런 것의 결과물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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