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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의 재고찰

이치억 | 185호 (2015년 9월 Issue 2)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개발한 사람이 있었다. 그 고품질의 핸드크림 제조 기술을 가진 집안은 대대로 솜 세탁을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어떤 과객이 그 정보를 듣고 제조 기술을 금 백 냥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주인은 가족을 모아놓고우리가 솜 빨래로 평생을 벌어봐야 금 몇 냥밖에 벌지 못하는데, 누가 하루아침에 백 금을 준다니 이 기술을 알려주자고 하고는 제안을 수락했다. 과객은 그 기술을 가지고 오나라 왕을 찾아가 월나라와 겨울에 수전(水戰)을 하겠다고 설득했다. 과연 손이 트지 않는 약을 바른 오나라 군사는 월나라를 크게 이겼다. 오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지를 내어 주었다. 같은 기술을 가지고 한 사람은 솜 세탁하는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영주가 된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보통 사회적으로 정해지거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고의 틀을 깨부수기 힘들어한다. 가령 공부를 잘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좋은 아이이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서열이 높은 대학을 나오고 스펙이 좋고 성실하면 우수한 인재이고, 그렇지 않으면 열등한 인재라는 식의 획일적 잣대를 들이댄다. 좋은 직장을 얻어 남부럽지 않게 살면 성공한 삶이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된 인생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고성능과 최신 디자인을 장착한 것을 좋은 제품으로,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좋은 서비스로 여긴다. 그러나 꼭 그럴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의 탈피와 발상의 전환의 당위성과 타당성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점,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 중 하나는 대상을용도쓸모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장자>의 다음 이야기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장자의 친구인 혜시(惠施)큰 줄기는 구부러지고 잔가지는 비비꼬여 있어서, 크기는 하지만 재목으로 쓸 수 없어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고민이라고 하자,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는 살쾡이를 모르는가? 몸을 바짝 엎드려 짐승들을 기다린 후, 사냥하기 위해 이리저리 높은 곳, 낮은 곳을 피하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기도 한다네. 털이 긴 소가 한 마리 있는데,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네. 이 소는 크기만 하고 쥐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지만 잘 산다네. 지금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 큰 나무를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는가? 아무 거리낄 것 없는 무하유(無何有)의 마을 넓은 들판에 심어놓고, 편안히 소요(逍遙)하며 그 아래에서 낮잠이라도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쓸모가 없으니 누가 베어갈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찌 쓸모가 없다고 곤혹스러워하는가?”

 

자본주의·물질중심주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모든 용도와 쓸모를 경제적인 관점과 결부시키곤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양면적이다. 말을 잘 듣는 아이, 시키는 대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시키는 것은 잘하겠지만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이 약할 수도 있다. 성실한 사람은 일을 잘할지는 몰라도 다른 즐거움을 누리는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사고뭉치, 문제아, 게으름뱅이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만 바꾸면 훌륭히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고성능과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만이 아니라 질박하고 고풍스런 제품, 정형화된 친절함보다 욕쟁이 할머니 같은 투박하고 정감 넘치는 서비스도 충분히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지 않을까? 말과 이론만이 아닌, 진짜 발상의 전환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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