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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 필요한 이유

문권모 | 10호 (2008년 6월 Issue 1)
일본 작가 온다 리쿠(恩田陸)의 소설 ‘민들레 공책’에는 신비한 힘을 가진 ‘도코노 일족’이 등장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초인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애와 정신을 자기 안에 통째로 보관하지요.

이들이 다른 사람의 생애를 삼키다 보면, 해마다 한 번씩 마음이 포화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맹렬하게 졸음이 밀려오고, 도코노 사람은 며칠간 가사 상태로 잠을 자야 합니다. 그 동안 마음속에 쌓인 수많은 기억이 정리정돈 됩니다.
 
소설 내용의 모티브가 된 것은 인간 두뇌의 기억 메커니즘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엄청난 자극에 노출됩니다. 이런 자극은 잠을 잘 때 앞으로 써야 할 정보와 쓰지 않아도 될 정보로 분류돼 뇌 속에 저장됩니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머릿속이 혼란해져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잠이, 그리고 더 나아가 휴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호랑이가 몇 년 동안 집 앞을 지킨다면?
과로’는 이미 직장생활과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는 말이 됐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거듭되는 야근과 주말근무 때문에 만성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립니다. 제 지인 중 한 명도 얼마 전 과로 때문에 휴직신청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가 계속돼 교감신경이 항진 상태이고, 따라서 몸에 무리가 생겼다”고 했답니다. 휴식 없이 격무에 시달린 탓이지요.
 
이번 HBR 기사 중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은 호랑이에 쫓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만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 만약 당신 집 앞을 몇 년 동안 호랑이가 지키고 있다면,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 주기와 모든 면역체계가 무너질 것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인체가 분비하는 호르몬은 중요한 기억을 담당하는 두뇌 세포간의 연결을 끊어놓는다.’(존 J.메디나 인터뷰·120 페이지 참조)

스트레스는 기억력은 물론 언어와 연산능력에도 큰 피해를 줍니다. 이런 능력은 우리가 업무를 처리할 때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쉬더라도 제대로 쉬어야
휴식과 여가 전문가인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님께서는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적 사고를 하려면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휴식을 하면서 일상의 반복적 업무에서 벗어나야 창의성의 ‘씨앗’인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고, 일과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나와 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거치지 않으면 사회변화의 맥락을 읽을 수 없다”며 “21세기는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필요한 것은 회사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일이 많더라도 자투리 시간은 조금씩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시 모든 것을 멈춰보세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과 휴식을 적절히 관리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서구에는 유대인 중에서 창의적인 천재가 많이 나온 이유를 안식일 등 휴식의 강제화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한편 휴식을 하더라도 제대로 쉬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언론 보도를 보니 TV 시청이나 쇼핑, 수다 등 보통 사람들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활동이 실제로는 별로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스트레스를 심화시키기도 한다더군요.
 
저는 일상을 완전히 떠나거나 잊을 수 있는 적극적인 취미활동을 권하고 싶습니다. 김정운 교수님께서도 ‘몰입의 경험’이 가장 좋은 휴식의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여러분이 가장 재미있게,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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