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학습질환, 어떻게 치료하나

87호 (2011년 8월 Issue 2)

 
 
현대인이면 누구나 한두 가지 정도의 학습질환은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11가지 학습질환을 명명하고 이를 예방, 진단,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① 아 그거! 병
이 병은 학습된 무능력(Learned Helpless)을 말한다. 즉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하나를 모르는 병이다. 이런 학습질환은 특정 주제에 대한 강의나 설명을 듣고 “별 것 아니네” “다 아는 내용이군” “이제 잘 알 것 같다”라고 독백하면서 해당 주제에 대해서 더 이상 학습활동을 전개하지 않는 질환이다. 이런 학습질환은 특정 분야나 주제에 대한 심화학습을 가로 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대로 알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아 그거 병’은 ‘아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치유될 수 있다. 대강 듣고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다는 속단(速斷)을 내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연 나의 판단이 옳았는지를 반추해보고 내 생각과 판단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② 그거 필요없어! 병
이러한 부류의 학습질환은 ‘경험맹신증’ 또는 ‘타인무시증’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경험적 판단기준을 모든 의사결정의 유일한 잣대로 생각해서 자기 의견 이외의 다른 의견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경험은 새로운 발상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이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경험의 축적을 통한 새로운 깨달음의 추구도 필요하지만 기존 경험의 병폐와 역기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③ 그거 누가 말한 것인데? 병
어떤 말을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응답할 때 누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유명 학자로부터 끌어오는 데 급급한 병이다. 이런 병이 만연되면 인용의 마술에 걸려 결국 자기 주장은 요리조리 숨어 있고 남의 주장을 교묘하게 편집하는 짜깁기 중독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좌정관천형 지식인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가일수록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전문성에 대해서는 함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누가 말한 것이기 때문에 믿는 전문가 기반 신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안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확신이 중요하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의 의견보다 확실한 나의 주장이 때로는 위기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해법이 된다.
 
④ 그런 관행이 없었는데…병
일명 ‘향수병’ 또는 ‘관행 신봉병’이라고 지칭될 수 있는 학습질환이다. 학습을 통한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경험이나 사례가 없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과감한 추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의사결정의 판단기준을 사례나 관행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두고 창조적 도전이나 새로운 추진방안을 반대하면 학습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의사결정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색다른 도전과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갈 수 있다.
 
⑤ 정보 많이 찾았다. 그런데 쓸 만한 거는 없네…병
이러한 학습질환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특히 많이 발병되는 질환으로 ‘마우스 수전증’ 또는 ‘정보감식불감증’으로 명명될 수 있다. 온 종일 컴퓨터 검색엔진을 통해서 엄청난 자료를 찾았지만 어떤 자료가 믿을 만한 것이고 유용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감식안이 실종된 병이다. 이러한 학습질환은 엄청난 정보를 수집해서 갖고 있지만 정작 그 활용방안을 몰라서 잔뜩 쌓아놓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산더미 같은 정보에 스스로 눌려서 ‘정보수집과다증’ 또는 ‘정보피로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검색해서 찾았느냐보다는 얼마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 정확한 정보를 취득했느냐에 초점을 둬야 한다. 100가지 정보보다 한 가지 정보가 의미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 주어진 문제해결에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거나 간접적인 힌트를 제공해주는 사람(right person), 정보원(right information)을 알아내는 게 급선무다.
 
⑥ 우아! 쥐긴다 병(감탄사연발증)
이러한 학습질환에 걸려 있는 학습자는 책을 읽고 감탄사만 연발하고 실천에 옮기기 않거나 “내가 할 것을 벌써 누군가가 다 했네” “나는 항상 한발 늦는단 말야”라고 하면서 그걸 뛰어넘는 또 다른 학습활동을 전개하지 않는다. 감탄사의 효과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이런 학습질환은 머릿속으로 깨닫고 가슴으로 느끼지만 실천을 통해서 지식으로 체화시켜 행동변화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학습이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책을 읽고 감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동한 내용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이라도 직접 행동에 옮기면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동을 능가할 수 있다. 감탄사 연발증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으면서 실천할 만한 내용을 메모해놓았다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상황이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일환으로 직접 실천해보는 것이다. 실천한 것만이 내 지식으로 체화된다.
 
⑦ 으흠! 어떻게 되는지 한번 두고 보자 병(방어적관행증)
이 학습질환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모난 돌이 정 맞기 때문에 잔잔한 물결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극단의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혼자 조용히 문제사태에 대응하면서 현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나 아이디어를 표면화시키지 않고 아예 묵인한다. 방어적 관행이 만연되면 문제의 심각성이 누적되다 한순간에 폭발하는 위험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리더가 솔선수범해서 건설적인 비판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마련하고 색다른 도전과 실패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⑧ 그거 좋은 아이디어다! 자네가 한번 해보지 병(결자해지식 업무지시증)
이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니 말한 사람이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결자해지식 업무지시가 만연된 조직풍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학습질환이다.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도 버거운데 아이디어를 내면 곧바로 자신의 일로 바뀐다면 누가 아이디어를 내겠는가. 이런 학습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려면 아이디어 주식시장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되기까지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해 일정 부분 책임지고 실행한 뒤 기여한 만큼 성과를 나눠 갖는 방식이다.
 
⑨ 남들은 어떻게 하나? 병
‘벤치마킹 중독증’은 어떤 문제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때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를 조사 분석한 다음 대안을 모색하는 병으로 항상 아류작만을 조합해서 제출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이종적 동질화란 종류는 다르지만 질적 속성이 동일해지는 현상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강점이나 재능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더욱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해야 경쟁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해야 발전이 가능하다.
 
⑩ 계획수립 장기자랑전 출전병
실천보다는 계획수립에 지나친 관심과 노력을 많이 보여줌으로써 탄생하는 학습질환을 일명 ‘계획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한 계획수립에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수립된 계획안을 실행하는 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대강 실행함으로써 실제로 학습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예측불허의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되는 환경에서는 완벽한 계획보다 어느 정도의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면서 계획을 수정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실행하면서 초기에 수립된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일을 마무리하는 방법이 보다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성과 창출에도 더 낫다.
 
⑪ 검토능력 경진대회출전증(NATO: No Action Talking Only 파견증후군)
이는 조목조목 따지면 ‘검토해보겠다’고 하거나 더욱 심각한 어조로 다시 파고들어서 질문하면 ‘적극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만 남발하는 병이다. 검토를 거듭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경우 검토 끝에 얻은 결론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검토가 전혀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검토를 하되 실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검토해야 급변하는 외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는 말이 있다. 오랜 숙고(熟考) 끝에 얻은 결론이 오히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다. 지식은 검토하는 과정에서보다는 실천을 통한 고통체험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세상은 위대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작은 실천이지만 진지하게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http://kecologist.blog.me
 
필자는 한양대 교육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곡선이 이긴다> <다르게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등 64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자기계발, 상상, 소통, 지식생태학 등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글을 블로그(kecologist.blog.me)에 게재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