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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영

CEO의 또다른 이름은 CBO

강신장 | 86호 (2011년 8월 Issue 1)
 

 
나는 발레공연 관람을 즐기는 애호가다. 물론 몇 년 전만 해도 문외한(門外漢)이었던 내가 발레의 세계를 어깨너머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과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이라는 훌륭한 예술가 두 분과의 작은 인연 덕분이다. 일단 발레를 가까이에서 보고 나니 그 엄청난 매력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본 작품들을 꼽아보면 ‘지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롤랑프티의 밤’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죽음’ ‘왕자 호동’ ‘발레 심청’ 등이다. 바쁘게 사는 내 형편으로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셈이다.
 
나는 경영자다. 어릴 때부터 예술과 친하지 않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예술은 더더욱 멀게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비용 대비 효용이라는 그래프들이 가득했고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바쁜 일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은 내게 요즘 아이들 용어로 ‘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라카미 류식으로 표현한다면 달달한 예술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인생도 상상 이상으로 변했다.
 
경영의 영원한 숙제 ‘영감 찾기’ -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몇 년 전 ‘inspiration(영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 두산백과사전에 나온 영감에 대한 해석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백과사전에 실린 inspiration의 정의는 ‘주로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실’이었다. 물론 100%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주로’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말 그대로 영감은 대부분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은근히 내게 상처로 다가왔다. ‘뭐야,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영감도 갖지 말라는 건가?’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었나 보다. 최근 네이버 사전에서 영감을 검색해보니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착상이나 자극’이라고 정의돼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것이 예술과 만나는 단초였다. 그즈음에 나는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이 새로운 생각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열망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예술을 만나게 됐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나는 밤마다 최고경영자(CEO)들을 모시고 와인공부, 미술공부, 사진공부, 음악공부, 영화공부 등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연히 ‘inspiration(영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읽었을 때 “그 정의는 정말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영감과 예술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나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숙명에서 찾는다. 항상 최초(最初)이자 최고(最高)를 만들어내야 하는 예술가들의 고뇌는 범인(凡人)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만나서 새롭고 독특한 융합을 시도해나간다. 그러기에 모든 예술은 진보적이고 실험적이다. 끝없는 고뇌의 산물과 다른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에서 생겨나는 것이 ‘inspiration(영감)’이다. 즉 새로운 영감을 만나려면 먼저 고뇌를 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세계와 만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다르다. 우리의 일들은 무한 반복되는 루틴(routine)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고민할 시간도, 다른 세계를 만나러 갈 시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영감을 갈망하지만 쉽사리 만나기 어렵다.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참 멋진 말이다. 이종결합을 하려면 여러 장르의 친구들과 만나서 놀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배워야 한다. 물론 아무나 만나면 탈이 난다.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레퍼런스(reference)를 흡수해야 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영감. 이것은 결국 한 세계와 다른 세계의 ‘교차점’에서 나온다. 그러니 영감을 얻으려면 낯선 세계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강연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대가로 알려진 개리 하멜(Gary Hamel)은 세계의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 테두리 밖에서 온다.” 이것은 비단 경영학자의 견해만은 아니다. 함민복 시인도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경영과 미술과의 위대한 만남 - ‘샤또 무똥 로칠드 (Chateau Mouton-Rothschild)’
경영과 예술이 만나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사례는 너무나 많지만 와인과 미술이 만난 ‘무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술과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증표’다.
 
1855년 프랑스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개최됐을 때의 일이다. 보르도를 대표하는 메독 지방의 와인 61개가 박람회에 참가했다. 그 와인들은 나름대로의 품질등급 심사를 통해 1등급에서 5등급까지 5단계로 평가돼 박람회에 선보였다. 그 이후로 와인 생산자들은 이때 정해진 품질등급에서 보다 상위등급으로 격상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개의 등급변동도 허락되지 않았다. 보수적이라는 수준을 넘어 불합리하고 경직된 평가시스템의 결과였다.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는 1855년 당시 메독 2등급 와인으로 평가됐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사또 무똥 와이너리의 오너는 안타까움과 억울함, 그리고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고 한다.
 
‘First I can not be, second I do not choose to be, Mouton I am.’
(일등은 될 수 없고, 이등은 내가 갈 길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무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샤또 무똥 로칠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으로 프랑스 메독 와인 역사상 유일하게 등급분류를 변경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무려 50여 년간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1973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Jacgues Chirac)의 승인으로 무똥은 메독 1등급 와인으로 승격됐고 그들은 자신들의 도도한 자존심을 이런 문구로 표현했다.
 
‘First I am, Second I was, Mouton does not change’
(무똥은 현재 일등급이고, 과거엔 이등급이었지만, 무똥의 맛은 변하지 않았다.)
 
무똥이 프랑스 메독 와인의 유일한 예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품질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그것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매력적인 라벨’ 덕분이라고 많은 와인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똥은 매년 와인이 출시될 때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카소, 달리, 샤갈, 칸딘스키, 워홀 등 당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라벨로 활용했다. 이는 수많은 와인 마니아들에게 ‘올해는 어떤 화가가 등장할까?’라는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다양한 스토리로 이슈를 만들어가면서 소장가치를 극대화했다. 즉 ‘와인 테크’ 1순위 품목으로 혁신한 덕분에 유일하게 등급이 변경될 수 있었다.
 
샤또 무똥 로칠드 1945년 라벨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승리의 V’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샤또 무똥 로칠드의 ‘아트 라벨’의 시초가 됐다. 특히 1945년 빈티지는 영국의 유명 와인잡지 <디켄터(Decanter)>에서 세계 정상급 와인 전문가들이 뽑은 ‘죽기 전에 마셔야 할 100대 와인’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45년 빈티지는 현재 남아 있는 와인이 거의 없고 희귀해 2007년 2월 뉴욕의 소더비 옥션에서 31만700달러(약 4억5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또한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된 1973년 라벨은 피카소의 그림으로 특히 유명하다.
 
샤또 무똥 로칠드가 그들의 운명을 바꾸고 역전에 성공한 사례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그 길이 보이는 듯하다. 비운의 2등급 신세를 넘어서 영원한 1등급 와인으로 팔자를 바꾼 비장의 무기는 바로 와인과 미술을 결합시킨 레이블 전략 겸 마케팅 전략에 있었던 셈이다. 경영과 예술이 만나면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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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신장

    강신장ceo@monaissance.com

    -(현)모네상스 대표, 한양대 경영학부 특임 교수로 강의
    -삼성경제연구소 시절 대한민국 최대 CEO 커뮤니티 ‘SERI CEO’를 만듦
    -㈜세라젬 사장일 때, 몸을 스캐닝한 후 맞춤 마사지하는 헬스기기 ‘V3’를 개발
    -IGM세계경영연구원장 시절에는 경영자를 위한 ‘창조력 Switch-On’ 과정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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