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

85호 (2011년 7월 Issue 2)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서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굳이 내용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오랜 벗인 의상과 중국 유학 길에 나선 원효는 어느 날 날이 저물자 겨우 몸을 누일 곳을 찾아 잠이 들었다. 곤하게 잠을 자던 원효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잠결에 주변을 더듬거렸다. 그런데 손끝에 바가지 같은 것이 잡혔고 그 안에는 반갑게도 물이 담겨 있었다. 원효는 시원하게 그 물을 들이켜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잠을 깨어 주변을 둘러본 원효는 깜짝 놀랐다. 잠을 자던 바로 옆에 해골이 있었고 자신이 시원하게 들이켠 물은 다름 아닌 그 해골에 담겨 있던 물이었다. 구역질이 올라와 괴로워하던 원효는 문득 그 물이 어젯밤에도 똑같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는데도 자신이 시원하고 달콤한 물로 여기고 마셨음을 기억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원효는 유학 가던 길을 멈추고 신라로 돌아와 세상 어디에나 진리는 있으며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포교에 힘쓴다.”
 
이 이야기는 자칫 잘못 해석될 수 있다. 해골바가지의 물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콤한 물이 될 수 있으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을 잘 먹고 참고 견디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을 큰 사명으로 여기고 실천한 원효대사가 단순히 그런 의미의 설교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번 거꾸로 해석해보자. 원효가 마신 물은 분명 해골바가지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물을 원효가 마셨을 때 그는 시원하고 달콤한 물로 알았다. 이때 그가 안 것은 과연 실제로 아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해골바가지의 물조차도 시원하게 여기고 들이켜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잘못 안 것에 대해서는 수정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말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찾아서 마셔야 하고,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은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깨끗이 비워버려야 한다. 이처럼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회의하고 검증하고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의 두뇌가 확실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잠결과 같은 상태에서 단지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해답을 선호하는 사람들
기독교 성경의 고린도 전서 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조언이다. 이 구절의 배경은 이렇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 사이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한쪽 사람들은 우상이나 제물은 잘못된 것이고 부정한 것이므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고 믿음을 해칠 힘도 갖지 못하므로 먹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사도바울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위에 소개된 구절이다. 사도바울은 우상이나 제물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무런 권위나 힘이 없기 때문에 앎의 측면에서는 후자의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앎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의 끝이 아니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면 아직 믿음이 굳건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믿음의 끈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에 형제와도 같은 그들을 사랑한다면 먹지 않는 것이 덕을 세우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유익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한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 남들의 인정도 받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지식을 가진 자가 겸손하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교만해지기 쉽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배치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거기에 함정이 있다.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협한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안에 자신들을 가두고 더 넓게 보지 않으려 하며, 또 교만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무신론자이자 <Skeptics>라는 잡지의 편집인인 마이클 셔머는 <우리는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거나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여러 가지 이상한 것들의 배후를 밝혀냈다. 그는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아내면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가급적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설명한다. 사냥을 할 때 바람을 등지고 서면 사냥감이 냄새를 맡기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밭에 소의 배설물을 뿌리면 농작물의 수확이 늘어난다. 이렇게 의미 있는 패턴은 확실히 생존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의 뇌가 항상 의미 있는 패턴만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기우제를 지내면 가뭄이 물러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들 수 있다. 사실 비는 때가 되면 오는 것이고, 사람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을 것이다. 마이클 셔머는 이런 미신적 사고는 인과적 사고 메커니즘이 진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잠에서 깰 때 본 환각이 유령이나 외계인이 되고, 나무의 음영이 성모 마리아의 얼굴처럼, 화성 표면의 산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외계인이 만들어놓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비정상적이어서 기적이나 괴물, 신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멀쩡한 사람들도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고의 오류들이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여기거나 우연의 일치에서 억지로 관련성을 찾아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이나 일반 대중들의 삶이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은 변덕과 우연성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하고, 이런 마음이 사이비 과학이나 미신, 미혹에 속기 쉬운 상태를 낳는다. 한 번 속아서 어떤 것을 믿게 되면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의 사실로 자리잡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고치기 힘들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배치되지는 않는지 관찰해야 한다. 마이클 셔머는 훌륭한 목수나 골프 선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훈련과 경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복잡한 현실을 단숨에 꿰는 쉽고 단순한 해답을 얻으려는 성향이 항상 머리를 치켜드는데 단순한 해답은 그리 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마뱀의 뇌를 경계하라
경제학자인 테리 번햄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인과적 사고경향을 ‘도마뱀의 뇌’라고 부른다.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라는 뉴로이코노믹스, 즉 신경경제학을 다룬 책에서 그는 네 발 달린 먹잇감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열매는 언제 열리고, 어디에 분포하는지, 또 그곳까지 가는 길은 어떤 경로가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지 등의 랜덤해 보이는 현상에서 일종의 규칙을 찾아내는 사고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뇌를 도마뱀의 뇌라고 불렀다. 숲에서 열매를 찾고, 길목에 웅크리고 앉아 짐승들을 사냥하던 원시사회에서 도마뱀의 뇌는 아주 유용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그것이 억지로 적용시킨 규칙에 따라 행동하다가는 그 자체가 이미 비합리적이고 규칙들을 벗어나서 그야말로 ‘랜덤’하게 움직이기 일쑤인 시장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예측해서 출간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이 책에서도 테리 번햄은 결국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쓸 때도 비슷한 얘기가 적용될 수 있다. 좋은 작품은 줄거리나 구성도 훌륭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정확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디테일이 훌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방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는 자기가 글을 쓰는 수칙 몇 가지를 어디에선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디테일하게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듬성듬성하게 세상을 보면 듬성듬성한 드라마가 나오고, 섬세하게 세상을 보면 섬세한 드라마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고 확인하지 않고 글을 쓰면 바로 듬성듬성하고 어설픈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기업에서 고객을 상대하거나 관공서에서 주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펼칠 때도 마찬가지이며,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고객과 주민들의 니즈(Needs)를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쫓다 보면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 행정이 나온다. “이런 거겠지. 그런 것 아니겠어?”라는 식으로 듬성듬성하게 생각하면 형편없는 결과나 때로는 원성을 듣는 결과가 나온다. 소비자들은 싸고 튼튼한 자동차를 원하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가장 잘 안다고 자신했던 포드는 GM에 1위 자리를 뺏긴 후 다시는 탈환하지 못했으며, 연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야말로 연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원망을 들을 소지가 높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허술하거나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내가 정말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의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은 채 남에 의해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단지 기억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것, 무언가 다른 것을 더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 바로 우리 두뇌의 나태함 때문이다. 이것이 위험한 것이며,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는 마음을 버리고, 다시 한 번 살피고,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며 듣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남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관을 주목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스로 섬세하게 세상을 관찰해야 한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최근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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