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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혈의누』

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읽은 캐릭터, ‘옥련’의 힘

이경림 |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2016년 초 소설 『혈의누』 재판본이 한 경매현장에 나타났다. 1906년 처음 신문에 연재됐던 『혈의누』는 한국 근대 소설의 효시이자 ‘신소설(新小說)’1 이라는 장르 자체의 창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국내에 단 세 권만 남아 있다고 알려졌던 책인데 홀연히 한 권이 더 나타난 것이다.

이 책에 경매 주최 측이 매긴 평가액은 1억5000만 원. 참고로 2015년 말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이 한국 근현대 문학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3500만 원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시집이 제한된 독자층과 희소성 때문에 소설보다 경매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을 감안하면 『혈의누』의 평가액은 자못 이례적으로 보인다. 『혈의누』가 과연 최고가를 경신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됐지만 아쉽게도 『혈의누』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 친일소설 『혈의누』

110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 1억5000만 원의 가치를 평가받은 소설 『혈의누』는 문학적 가치가 높은 반면 치명적인 오점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의 저자 이인직은 ‘친일파’다. 한일강제병합 조약 당시 막후에서 실무를 교섭했다는 전적이 있으니 ‘친일파’ 중에서도 A급이다. 더군다나 ‘작가의 삶과 그의 작품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혈의누』는 그 내용만으로도 ‘친일소설’임이 확실하다. 『혈의누』는 주인공 ‘옥련’을 일본군이 구해줘서 문명의 길로 인도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혈의누』는 당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드문 소설이기도 했다. 『혈의누』는 초판 발행 1년 만에 재판을 찍었다고 한다. 이 시기 출판 자료가 드문 관계로 정확히 몇 부가 팔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독자 규모와 구매력을 고려했을 때 이 기록만으로도 베스트셀러였다고 평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적어도 후대 문인들이 입을 모아 『혈의누』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했을 정도로는 팔렸다. 한일강제병합 직후 발행불허처분을 받은 후에도 『혈의누』는 제목과 내용을 살짝 바꿔 ‘옥련의 말로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꾸준히 찾아갔다. 베스트셀러답게 1920년대에는 『혈의누』를 모방한 소설들, 일종의 아류들도 출간됐다. 그중에는 심지어 『혈의누』를 그대로 베껴놓고 후일담만 짧게 덧붙인 소설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판매금지까지 당했던 소설이 대중들에게 이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900년대, ‘생각의 시장’이 탄생

『혈의누』가 등장한 1900년대는 자랑할거리가 많았던 시대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대는 조선이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망국’의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망국의 위기를 자산으로 삼아 성장한 산업도 있었으니 바로 출판 산업이다. 내일 아침에라도 국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가운데 약육강식의 세계정세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족이 똘똘 뭉쳐 힘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정답’처럼 통용됐다. 지식계층이 볼 때 국력을 키우려면 먼저 국민 한 명 한 명의 힘을 키워야 했다. 문제는 그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무지몽매’하다는 암담한 현실이었다. 이에 처방된 만병통치약이 ‘교육’과 ‘계몽’이었고 그 미디어로 가장 각광받았던 매체가 ‘책’이다. 마침 서구식 인쇄술 도입과 한글 보급에 힘입어 출판 시장이 범계층적·범국가적으로 확장될 준비가 갖춰진 상태였다.

한편 이 시대에 커피와 전기가 들어왔다. 서구식 문화와 문명은 오랫동안 문을 닫고 있던 조선 사회에 스며들어 이전에는 없던 욕망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전차를 타고 극장에 다녔고, 잉크 냄새가 물씬한 신문과 잡지를 읽으며 사회적·정치적 사안을 두고 열렬히 토론했다. 남녀가 나란히 신식 학교에서 지리와 산수와 영어를 배웠고, 핫한 정치가의 공개 연설 소식이 들리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도 했다.

커피와 전기의 세례 속에서 대중은 낯선 것을 즐기고, 배우고, 참여하려는 욕망을 키웠다. 시대의 최첨단에 위치했던 출판 산업이 이 새로운 니즈를 놓칠 리 없었다. 1900년대에 배우기를 원하는 대중과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난 지식계층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계몽의 열기 속으로 진입했고, 출판은 불 일 듯 일어났다.

새로운 지식과 사상, 즉 ‘생각’은 이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상품이었다. ‘생각의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해결돼야 했다. 첫째, ‘무엇을 팔 것인가’. 이 문제는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됐다. 망국의 위기감에는 ‘문명개화’ ‘자강독립’ ‘민족자존’을 처방한다는 ‘정답’ 세트가 준비돼 있었다. 까다로운 것은 바로 두 번째, ‘어떻게 팔 것인가’였다. 그것도 대중에게 말이다.

전통적 배경을 가진 지식계층은 대중성을 고려해 한문이 아닌 국문 위주 장르를, 딱딱한 논설류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서사류를 선택했다. 이 노선에서 태어난 성공적 ‘상품’이 실존 영웅과 역사를 내세운 ‘역사전기류’다. 외세에 맞서 나라를 수호한 잔다르크와 을지문덕 같은 역사적 영웅들이 대중의 히어로가 되고, 독일과 베트남처럼 약육강식의 판도를 증명하는 타국의 역사가 조선의 거울이 돼 줬다.

다만 근본적으로 ‘과거’의 이야기인 역사 전기류로는 닿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여기에는 대중에게 보여줄 현재의 모델이 없었다. 잔다르크가 돌아온들 갑옷과 칼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 그가 어떻게 조선 사회를 구할 것인가? 허구의 서사가 노릴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바로 지금, 조선 사회에 당장 ‘있었으면 하는’ 모델이 돼 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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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감수성을 건드린 ‘옥련’ 캐릭터의 힘

『혈의누』의 줄거리는 심플하다. 한 가족이 청일전쟁으로 불바다가 된 평양에서 피난하다 어린 딸을 잃고 만다. 졸지에 부모와 헤어진 옥련은 일본 오사카와 미국 워싱턴으로 떠돌며 유학 생활을 하게 된다. 우등 졸업장을 받아 든 옥련은 헤어진 아버지와 상봉하고, 함께 수학했던 청년과 약혼해 어머니가 기다리는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한다.

『혈의누』를 읽어보면 이인직이 ‘팔았던’ ‘문명개화’가 ‘일본이 후원하는 문명개화’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평양의 ‘게딱지 같은’ 집에 살던 옥련이 어떻게 신지식인이 돼 금의환향할 수 있을까? 부모 잃은 조선인 여자아이를 불쌍히 여긴 일본군 군의(軍醫)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구한 말 조선 사회에서 옥련을 기다릴 미래는 뻔했다. 비슷한 집안의 아들과 조혼(早婚)하여 평생 자기 어머니처럼 살다 자기 같은 딸을 낳는 미래, 그리고 그 딸이 자라 그 같은 딸을 낳는 미래. 그러나 일본군이 옥련을 이 낡은 순환에서 구해줬고, 그 덕분에 받게 된 교육은 그녀를 어머니와 다르게 만들어줬다.

저자 이인직은 당대 ‘생각의 시장’에 자신이 ‘무엇’을 내놓는지, 그걸 ‘어떻게’ 팔아야 가장 ‘잘 먹힐지’ 알고 있었다. 독자 대중과 마찬가지로 배운 것도, 힘도 없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너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는 전략은 정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혈의누』의 성공에서 가장 재밌는 아이러니는 ‘무엇을’을 ‘어떻게’가 먹어치우면서 빚어졌다. 애독자들이 이 소설을 ‘옥련전’이라 부르면서 하편 연재를 재촉했다는 언급이나 왜 ‘옥련의 소식’은 전하지 않고 다른 소설을 쓰냐고 항의까지 한 독자의 반응을 보면 이 소설의 셀링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혈의누』에서 독자가 가장 열광한 지점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문명개화’보다 ‘옥련’이 더 돋보인 이 순간, ‘친일소설’ 『혈의누』는 ‘베스트셀러’ 『혈의누』로 뒤집힌다.

독자들은 옥련 이야기의 어느 구석을 그리 사랑했던 걸까? 근대 이전 소설 독자의 취향을 요약하자면 ‘반복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독창성이나 예술성이 셀링 포인트인 요즘 소설과 달리 고전소설의 셀링 포인트는 ‘비슷한 이야기를 조금씩 비틀어 반복하는’ 데 있다. 반역자와 외적에 맞서는 영웅, 가정 내의 음습한 모함·모략,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아니면 끝내 이뤄지는 사랑…. 겉은 달라도 속은 비슷한 이 이야기들 속에서 독자는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벌을 받는다’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 같은 ‘생각’들을 재확인하고 안심한다. 이처럼 사회구조의 어떤 불변성이 만들어낸 보편성에 힘입어 오늘날의 독자들도 고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는 ‘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데였지’에서 ‘어,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닌데?’로 매우 가파르게 넘어가는 시대였다. 그 격변의 한복판에 있는 대중이 오래된 이야기의 반복과 변주가 제공하는 안심에 안주할 리가 없다. 이 시대는 사람들의 미래가 갑자기 오리무중이 돼버린 최초의 시대였다. 조선 시대에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미래엔 백정이 될 터였고,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미래엔 양반이 될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양반의 아들은 몰락해 서당 훈장으로나 명맥을 잇고, ‘금융업’이라나 뭐라나 도깨비 같은 산업이 들어오고, 있는지도 몰랐던 외국에 가서 일하면 돈을 주니 ‘노동자’라는 게 되라고 권하는 시대다. 노동으로 돈을 모으면 ‘실업가’라는 게 될 수 있다는데, ‘실업가’는 사회와 국가의 기둥이 된단다. 심지어 유학을 하고 돌아오면 조선 사회의 ‘지도자’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옥련의 이야기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대중의 불안과 기대 같은 근대 고유의 감수성을 직격한 것이다. 누군가의 딸·아내·어머니라는 전통적 여성의 미래를 단번에 깨뜨린 옥련은 ‘미지의 미래’라는 개념 그 자체를 소설로 옮긴 듯한 인물이다. 옥련은 옛날이야기의 여성들처럼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무고한 모함에 희생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진다거나 누명을 벗는다거나 하는 익숙한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다. 옥련은 계속해서 독자는 물론 저 자신도 모르는 낯선 세계로 자꾸 이동할 뿐이다. 집 밖에도 못 나가는 여자가 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바다를 건너 문명의 심장이라는 미국에까지 닿았다. 대체 옥련의 앞엔 무엇이 더 기다리고 있을까? 독자들에게 옥련은 기대와 긴장을 동시에 안겨주는 존재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옥련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독자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미래로 나아가는 옥련의 뒤를 쫓아간다. ‘반복’에 익숙한 독자가 앞질러 갈 수 없는 이야기, ‘새로운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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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읽다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불안은 예정된 미래보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기대와 붙어 다닌다. 불안과 기대의 공존은 모든 것이 예정돼 있던 세계에서 뜯겨 나와 갑자기 근대 사회에 던져진 대중을 특징짓는 새로운 감수성이었다. 여기에 뿌리를 박은 옥련의 이야기는 저자가 심어놓은 주제와 때때로 부합하고 때로는 불화하면서, 또는 주제를 저 멀리 밀어내면서 팔렸다. 미지의 미래로 나아가는 옥련에게 보낸 독자의 사랑은 기실 옥련과 마찬가지로 ‘근대사회’라는 데서 제자리를 찾으려 방황하는 독자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이나 다름없었다. 『혈의누』가 연재된 후 독자 투고란에 ‘자기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한 여성의 말이 실렸다. 이 여성의 말은 ‘친일파’의 동조 발언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을 긍정적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사측의 공작이었을까? 혹시 이 말은 옥련에게서 자신과 같은 불안과 희망을 읽어 낸 독자의 솜씨 없는 말은 아니었을까?

낯선 것을 즐기고 배우고 참여하려는 근대적 욕망은 미지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라는 심층의 감수성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다. 『혈의누』의 흥행은 우리에게 표변하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밀어내는 심층의 근원을 찾아보라고 알려준다. 

편집자주

신진 국문학자인 이경림 연구원이 한국 근현대 베스트셀러에서 발견한 당대의 문화와 트렌드에 관한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당대 문학에 반영된 시대적 감수성을 읽으면서 오늘날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혜안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경림 서울대 한국어문학연구소 연구원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현재는 충북대, 한남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상반기 특별전시 기획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 이경림 | 서울대 한국어문학연구소 연구원
    충북대, 한남대 출강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상반기 특별전시 기획자문위원
    plum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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