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7. 평판 위기 사례 분석

여성 인권, 갑질… 도처에 위기, 이젠 셰이프홀더와 함께 문제를 풀라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유형별로 분석해본 2017년 기업 평판 위기 및 대응 방안

1) 여성 인권(한샘, 한림대, 깨끗한나라): 기업 문화 차원에서 성(性)평등 인식을 확산해야. 성폭행, 성추행 등 사고 발생 시 피해자가 믿고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물론 성평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필요.

2) 갑질(이랜드파크, MP그룹, 종근당): 예방하기 힘든 이슈일수록 대응 전략에 만전을 기해야. 유감 표명에 앞서 잘못을 인정하고 수용.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과감한 개선 조치 필요.

3) 두려움(맥도날드, 깨끗한나라): 위기 발생 시 객관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제3자로부터 검증을 받아 두려움의 원인을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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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9년부터 DBR에 30여 차례에 걸쳐 위기사례에 대해 분석한 글을 기고했다. 다른 기업의 사례, 더군다나 실패와 위기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읽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이들은 다른 기업의 위기사례를 놓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창문’ 너머로 바라본다. 이런 유형은 보통 “우린 다행이야” 혹은 “우린 이럴 일 없어”라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사례가 우리 기업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타사의 위기사례를 거울로 삼아 자사의 위기 대응 준비 상태를 성찰하곤 한다. 이른바 위기 사례를 ‘창문’으로 읽지 않고 ‘거울’로 읽어냄으로써 실용적 의미를 도출하는 경우다.

“이슈를 무시하는 것은 위기를 초대하는 것이다(An issue ignored is a crisis invited).” 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한 말이다. 이슈란 위기의 신호이자 잠재된 위기 상태를 뜻한다. 훌륭한 조직은 이미 터진 위기보다는 잠재된 이슈 상태에서 위기를 관리하는 데 치중한다. 엄밀히 말하면 위기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대응, 즉 후속 조치가 가능할 뿐이고, 진정한 의미의 관리가 가능한 것은 이슈 상태일 때다. 가끔 최고의 위기관리 사례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최고의 위기관리 사례란 위기가 발생하지 않거나 사건 초기에 빠르게 대응해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위기관리 사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잠재된 이슈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조직 안에 이슈 관리팀(IMT·Issue Management Team)을 만들어 놓고 타사의 위기를 우리 기업의 이슈이자 위험 신호로 바라보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타사의 위기사례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며 자사만의 ‘이슈 인덱스(issue index)’를 개발해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슈 인덱스란 우리 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실패 이슈의 리스트다. 우리 기업에서 과거 발생했던 위기사례와 다른 기업에서 발생한 위기사례 중 우리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이슈를 검토해가면서 하나의 체크리스트로 활용해야 한다.

2017년 국내에서 벌어진 기업의 평판 위기사례 중 분야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모든 기업이 주목해야 할 잠재 이슈들을 정리해봤다.1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올해의 이슈 인덱스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기업들의 이슈 및 위기관리에 있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슈 #1 여성 인권

한샘, 한림대, 릴리안.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답은 여성 인권이다. 2017년 10월29일 포털 사이트 네이트의 공개게시판(네이트판)에 “강간 제발 도와주세요. 입사 3일 만에 신입사원 강간, 성폭행, 화장실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으로 한 20대 여성이 올린 글로 세상에 알려진 한샘 사내 성폭행 논란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청와대 청원, 홈쇼핑 업체의 한샘 판매방송 연기 조치까지 불러왔다. 사내 성폭행 사건과 관련 가해자 및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인사 처분 등이 논란이 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남성 중심 조직 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림대 성심병원의 소유주인 일송학원 재단은 단합대회 장기자랑 무대에 간호사들을 동원해 섹시 댄스 등의 자극적인 무대를 선보이도록 병원 측이 강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재단 측은 강요에 의한 행사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성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여성의 분노를 자아냈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사태는 위의 두 사례와는 다른 방향에서 여성 인권 사태로 발전했다. 지난 3월 시민단체인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팀이 생리대 방출물질 실험결과를 발표했고 릴리안 생리대의 화학물질(TVOC) 검출량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 보도되면서 유해성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깨끗한나라는 공개 사과와 환불 조치를 실시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식약처에서는 1차 전수 조사 결과 안전성 측면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정의당에 의해 생리대 조사 청원 서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사태는 생리컵, 유기농 생리대 등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이슈로, 또한 생리대의 높은 가격 및 생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선 등 폭넓은 이슈로 확장됐다. 이 밖에도 올 한 해 여성 인권과 관련된 기업의 위기사례는 많았다. 현대카드, DGB 대구은행, 디자인 소호, 동부그룹 김준기 전 회장,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전 회장 등도 성폭행과 성추행 논란 혹은 사건이 있었다.

 
인사이트 #1 기업문화 차원에서 페미니즘을 고려해볼 때가 왔다.

위 사례들이 기업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 여성 인권 침해 사례가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여성 직원들과 소비자들이 기업의 남성 중심주의 문화에 대해 앞으로 더욱 주목할 것이며 과거와 같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 내부 성추행, 성폭력 사건은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재생산되고 폭발할 가능성이 점차 더 높아질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이슈는 아직도 대다수 남성에게 낯설다. 페미니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고민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작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책을 리뷰하던 중 ‘여류 작가’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집에서 방송을 들은 아내가 내게 여류 작가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표현이 왜 적절치 않은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왜 그런지 물었을 때 아내는 내가 남자 작가를 소개할 때 굳이 작가가 남자라는 것을 밝히는지 물었다. 그 말은 내겐 큰 충격이었다.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 역시 남성 중심적인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올 한 해 매달 한 차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와 세미나를 가지면서 더더욱 남성 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됐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소극적인 자세로, 규정을 채우기 위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형식적으로 해왔다. 향후 기업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철학에 좀 더 다가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페미니즘이란 성(性)평등적 사고를 말한다. 기업이 문화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다가서는 첫걸음은 사내 성평등 인식 현황에 대한 조사를 하거나, 성폭행, 성추행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믿고 신고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성평등에 대해 진보된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 등이 있다. 또한 ‘전체 직원 중 여성이 몇 명’이 아니라 ‘임원과 매니저 층에서 여성이 몇 퍼센트’인지를 신경 써야 할 때가 왔다. 한샘 사건을 단순한 성폭행 논란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성평등 관점에서 기업 문화를 돌아보는 것이 2018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이러한 이슈를 관리하는 바람직한 자세다.



이슈 #2 갑질

더불어민주당이 ‘갑’의 횡포로 피해를 받은 ‘을’을 구제하기 위해 을지로위원회를 설치한 것이 2013년 5월이다. ‘갑질’이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불법적, 비윤리적 행위를 나타내는 대표 단어로 자리 잡았다. 갑질은 비정규직, 운전기사, 프랜차이즈 업체 등 다양한 대상을 향해 저질러졌다.

올해 초인 1월6일 이랜드는 그룹사 홈페이지와 외식업체 애슐리 홈페이지에 경영진 명의로 사과문을 냈다. 이는 작년 12월 국정감사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업체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두 4만4360명의 근로자에게 약 83억 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으로 큰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건과 관련된 사과문이었다. 이랜드파크는 미지급분과 지연 이자를 돌려주고 피해자였던 아르바이트 1000명을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그룹도 2016년 당시 정우현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태에 이어 올해에는 가맹점들을 상대로 불필요하게 동생 회사를 끼워 넣어 비싼 값에 치즈를 공급받도록 한 ‘치즈 통행세’나, 가맹을 탈퇴한 점포 근거리에 직영점을 ‘보복 출점’해 피해를 입히는 등의 갑질 논란으로 위기를 겪었다. 결국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졌고, 정우현 MP그룹 회장과 아들 정순민 부회장 등 오너일가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경영에서 물러났다.

종근당 이장한 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 일부가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경찰은 이 회장을 공개 소환한 뒤, 수행기사에게 불법 운전을 지시한 강요죄와 전문의약품을 지인들에게 양도한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밖에 총각네야채가게 이영석 대표 역시 욕설과 갑질, 열정페이 등으로 논란에 싸였다.

 
인사이트 #2 예방하기 힘들다면 대응 전략에 만전을 기하라.

갑질 중에서도 오너가 주도하는 갑질, 예를 들어 종근당 이장한 회장 혹은 MP그룹 정우현 전 회장의 사례 등은 위기관리 분석에서 따로 떼어놓고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종근당이나 MP그룹에서 오너의 갑질을 평상시에 알고 있는 직원들은 상당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 입장에서 오너 리스크를 감지한다 하더라도 예방책이 있을까? 직언을 한다 해도 위기가 예방되기보다는 직언을 한 직원이 오히려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방이 되기보다는 피해자의 언론 제보,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이 처음 알려진 블라인드 앱이나 한샘 피해자가 이용한 네이트판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부로 알려지게 되고, 커다란 평판 위기로 확산되고 나서야 갑질이 중지되곤 한다. 즉, 조직 내 정치적 힘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이슈들은 잠재된 상태에서 관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오히려 위기로 터져야 일정 수준에서 위기가 수습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위기관리 이론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이슈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더라도 현실 속에서는 위기로 발전하기까지는 예방이나 관리가 되지 않는 경우다.

결국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이 터졌을 때의 대응이다. 이는 보통 어떻게 사과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첫째, 잘못의 인정과 수용(acknowledge and accept)이다. 초기 사과에서 잘못된 태도를 보이면 여론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돼 그 이후의 위기 대응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과의 기조는 “아이 엠 소리(I am sorry)”가 아닌 “아이 워즈 롱(I was wrong)”이 돼야 한다. 즉, 미안하다는 유감 표명이 아니라 갑질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적극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둘째,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apology)해야 한다. 갑질 사건이 공개되고, 여론이 나빠지는 경우 공개적 사과에만 신경 쓰고 정작 피해자들은 뉴스를 통해 기업의 대응을 접하게 된다. 이는 피해자는 물론 기업에도 좋은 전략이 아니다. 공개 사과를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상황은 더욱 장기화되고 악화된다. 셋째, 피해자와 대중의 시선에서 예상을 넘어서는 과감한 수준의 개선 조치(actions)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약한 조치를 내놓고 ‘간’을 보면서 점차 코너에 몰려 조금씩 큰 조치를 내놓는 것보다는 여론의 심각도에 따라 적절한 대응책(예: 경영진 사퇴, 적극적 보상 등)을 초반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갑질은 대중의 분노를 극대화하는 위험 요소이므로 과감한 개선 조치 없이 대중 앞에 머리 숙이는 사과로 지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실무자들은 이와 같은 과감한 사과를 오너에게 과연 어떻게 권할지, 법무팀의 반대는 어떻게 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과거 유사 사례를 들어 초반에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개선 조치를 제시하지 않았을 경우 기업이나 경영자가 감수해야 할 손실이 무엇일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경영자가 귀 기울일 만한 외부의 권위 있는 전문가 등을 통해 의견을 전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슈 #3 두려움

지난 7월 A양 가족은 작년 9월 맥도날드 해피밀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은 뒤 햄버거 속 덜 익은 고기 패티 때문에 신장 장애를 갖게 됐다며 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A양은 신장 기능의 90%를 상실해 매일 8∼10시간 투석이 필요한 상황이며, 건강보험공단에서 신장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 9월1일에는 전주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들이 집단 장염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맥도날드는 다음날인 2일부터 전국 모든 매장에서 불고기버거 판매 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는 보건당국 조사 이후 9월15일부터 판매 재개됐다.

앞서 언급한 릴리안 생리대의 화학물질 검출 논란과 맥도날드의 ‘햄버거병’ 논란의 근저에는 모두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 경우 마치 원전이 안전한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것처럼 논란이 발생했을 때 시비를 바로 가리기가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내놓는 통상적인 메시지는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이 (아직) 없다” “우리 제품은 안전한 시설에서 규정에 따라 만들어졌다” 등이다.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제품의 문제가 즉시 발견되는 것이 위기관리 측면에서 더 낫다. 바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고, 제품을 수거하거나 폐기하고, 적절한 보상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관리 현장에서는 종종 문제를 인정하고 싶어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외국계 기업의 경우 본사에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는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나 대중의 시선에서는 문제가 되는 동안은 물론 릴리안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부처에서 문제가 없다고 발표해도 안심할 수 없다. 햄버거병, 화학물질 배출 등의 이슈와 제품이 결합하는 순간부터 소비자들은 찜찜함과 두려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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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3 자기 시험지 채점을 스스로 하지 말라.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첫째, 맥도날드나 릴리안처럼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점이 외부에서 제기된 상태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 기업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제품에서 문제점의 원인이 될 만한 요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셋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언론과 정치권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어떤 위기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위기는 미국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disclosure program)’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의료사고는 맥도날드나 릴리안 사태처럼 피해자가 있고, 문제점의 인과관계가 바로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은 즉각 피해자 가족에게 유감 표명을 하는 동시에 즉각적인 조사를 약속한다. 이때 피해자 가족이 지정하는 의사나 변호사가 공동 조사를 하도록 병원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한다. 그래야 결과에 대해 피해자 측이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 조사 결과 병원 측이 실수한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병원 측은 바로 책임 인정을 하는 사과와 함께 보상책을 논의한다. 물론 병원 측이 실수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에는 피해자의 궁금증에 대해 최대한 성의를 갖고 소통한다.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의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미국의 주요 대학 병원 중 하나인 미시간대병원(University of Michigan Health System)이다. 이 병원은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매년 환자 측과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3분의 1로 줄었으며, 도입 6년 만에 환자 측 소송 건수 역시 3분의 1로 감소했다.

이 사례가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병원 측이 피해자가 지정하는 의사와 변호사를 조사에 참여시키는 부분이다. 만약 자신들의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맥도날드나 릴리안 사태와 같은 위기가 발생했다면 기업이 기억해야 하는 위기 대응 원칙은 자기 시험지를 스스로 채점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 기업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수록 사태는 점점 더 꼬여가고 언론 보도 등 논란만 증폭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찜찜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그 주장을 웬만해서는 믿기 힘들게 된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즈 마케팅 에이전시인 에델만이 전 세계 28개국에서 3만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신뢰도 지표 조사에 따르면 28개국 중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떨어지는 국가는 한국이었다. 이슈에 휘말린 상황에서 기업은 더더욱 스스로를 최악의 대변인 상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때는 소비자들이 보기에도 과감하다 싶을 정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험지 채점을 믿을 만한 제3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제3자는 정부부처가 아닐 수도 있다.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28개국 중 22위에 불과했다. 이런 경우에는 가능하다면 독립된 대학병원이나 전문가, 연구소 등에서 문제 여부를 조사하도록 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최선의 위기 대응이 될 것이다.
 

2018년을 위한 제언: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서 이슈 영향력자(shapeholder)로

인권, 페미니즘, 갑질 등 올해 관찰된 위기들은 사회 정치적 이슈와 급속히 결합하면서 위기의 강도가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특징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2018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 위기 예상 시나리오에서는 미국 하원의원 출신으로 현재 노스다코타대 총장을 맡고 있는 마크 케네디(Mark Kennedy)가 지난 5월 자신의 저서 『셰이프홀더(shapeholder)』를 통해 주장한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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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총장은 기존의 스테이크홀더(stake holder), 즉 이해관계자라는 개념이 무분별하고 혼란스럽게 사용됐다고 비판하면서 개념을 명확히 했다. 그에 따르면 이해관계자란 직원, 협력업체, 소비자, 기업 시설이 있는 지역 커뮤니티 등 기업에 일정 지분(stake)이 있어서 기업이 위기에 처할 경우 자신들도 손해를 보는 집단이다. 반면 셰이프홀더는 언론, 사회운동가, 정당/정치인, 정부부처 등 기업에 지분은 없지만 기회 혹은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기업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그룹이다. 이해관계보다는 이슈를 중심으로 기업과 연결되고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이슈 영향력자’라고 번역해 볼 수 있다. 셰이프홀더(이슈 영향력자)는 기업의 비시장전략(non-market strategies)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들이다. 케네디는 셰이프홀더(이슈 영향력자)가 정치적이고 공격적으로 기업을 공격하는 시대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기업의 경영층이 아직도 주주와 이해관계자로만 경영 시야가 제한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케네디는 이 책에서 이익과 관련된 두 가지 패러독스(Paradox of Profit)를 제시한다. 첫째, 돈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익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둘째, 이익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사회에 이득이 되도록 몰두하는 것이다. 어떤 독자는 또 하나의 윤리적 문구라고 웃어넘길지 모르겠다. 문구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케네디의 패러독스를 올해 벌어진 국내 위기사례가 이해관계자뿐 아닌 이슈 영향력자로, 또한 사회·정치적 이슈로 확산되는 양상을 감안하고 읽으면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작년 촛불시위는 정치권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영학 교수인 틴슬리(Tinsley), 딜론(Dillon), 매드센(Madsen)은 201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재앙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catastrophe)’이라는 글에서 기업 경영자들이 이전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속하는 현상을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고 지칭하면서 경고했다. 작년 말 촛불시위와 올해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을 모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현상, 새로 들어선 정부의 강화된 약자 보호 정책 등은 기업들로 하여금 과거의 관행을 새로운 시각에서 돌아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올해의 위기사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정치적 맥락과 시선에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기업들은 이미 2018년 경영전략을 상당 부분 수립했을 것이다. 만약 이 논의에 비시장(non-market), 이슈 영향력자(shapeholder), 사회여론 등이 빠졌다면 지금이 보완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이 사회와 새롭게 대화하고 자신의 체질을 바꿀 환경은 이미 성숙해 있다. 이제 기업 스스로가 변화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익을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확실한 길이 과연 어디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hoh.kim@thelabh.com

필자는 리더십 및 조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0년째 일해오고 있다. 한국외대(불어와 철학)와 미국 마켓대(PR)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공개사과에 대한 인지적 연구)를 받았다. 전 세계에 20명만 있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이며 글로벌 PR 컨설팅사 에델만의 한국 법인 대표를 지냈다.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로도 활동했다. 저서로 『쿨하게 사과하라(2011, 공저)』 『쿨하게 생존하라 (2014)』 『평판사회(2015, 공저)』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2016)』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