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동네 서점의 흥행이 서점 비즈니스의 본질을 바꿔놓고 있다. 종래 필요한 책을 거래하는 장소였던 서점이 독자들의 취향을 서로 연결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공간으로 진화했다. 책의 사용가치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취향의 공동체’를 위한 도구이자 ‘특정한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확대됐다. 동네 서점은 책을 매개로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안하는 형태로 지금도 변신 중이다.
동네 서점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참고서가 가득하고 베스트셀러 판매가 중심인 과거의 동네 서점이 아니다. 독특한 공간 연출과 다양한 큐레이션으로 무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서점이다. 일부에서는 일시적 유행으로 보고 ‘트렌드 서점’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나타나는 동네 서점은 판박이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책을 중심으로 자주적인 취향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립 서점’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 온라인 서점의 폭발적 성장과 대형 체인 서점의 공격적 지점 확대는 동네 서점의 존립을 지금도 위협하고 있다. 스마트폰 읽기가 일상화되면서 책으로 상징되는 긴 글 읽기의 욕구가 고갈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독립 서점의 반격이 거센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9월1일 전국에 70군데 정도였던 독립 서점은 2017년 7월 말 현재 257군데로 늘어났다. 나흘에 하나꼴로 독립 서점이 생겨나는 중이다. 독립 서점의 도전은 오래전 지도에 아주 작은 노란 점 하나가 찍히면서 시작됐다.
거대 자본과 베스트셀러로부터 독립2011년 서울 서교동, 카페와 술집이 즐비한 홍대 거리 한복판에 노란색 로고가 눈에 띄는 가게 ‘땡스북스’가 들어섰다. 무차별 할인을 내세운 인터넷 서점의 공세와 대형 체인 서점의 방어적 확장 때문에 동네 서점이 줄이어 폐업하던 때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임대료가 치솟는 홍대 앞에서 서점을?’ 호기심에 찾아가 보니 책이 빼곡하게 들어선 종래 서점과 공간 구성이 완전 달랐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끔씩 접하던 갤러리형 또는 카페형 서점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책을 구색으로 갖춰 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네 사람들 취향에 맞춤한 책만 골라서 가져다 놨다. 책을 파는 데 집중하기보다 책을 편하게 즐기도록 연출했다. 책과 직접 관련된 행사를 넘어서 음악회, 전시회, 강연회 등이 수시로 열렸다. 동네 사람들이 만든 책이나 잡지, 음반이나 소품 등도 진열했다. 이런 감성의 서점은 종래에 없었다. ‘가가린’이나 ‘이음아트’ 같은 독특한 서점이 있었지만 한쪽에서 독립 출판물을 취급하는 정도였다.
낯선 것은 호기심과 열광을 불러오는 동시에 냉소나 무시도 낳는다. 처음엔 얼마나 버틸지 우려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주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공급받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이들의 호응이 꾸준히 이어졌다. 혁신의 첫걸음이 늘 그러하듯 대중은 이미 즐길 준비가 돼 있었고 자신들의 봉기를 도와줄 촉매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로부터 7년 후 땡스북스의 씨앗을 받아 전국에 수많은 서점이 용기 있게 꽃을 피웠다. 척박한 대지를 이기고,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문화적 형식을 실험하는 이 서점들을 종래의 서점과 구분해 ‘독립 서점’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2014년 11월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서적의 할인을 15%로 제한함으로써 독립 서점의 백화제방에 든든한 파수꾼이 됐다.
독립 서점이라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한 것일까. 먼저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 서점, 예스24나 알라딘 같은 인터넷서점의 지점이나 프랜차이즈가 아니고, 더 나아가 다른 분야 기업의 계열인 경우도 드물다. 다음으로 베스트셀러로 상징되는 전국 균일의 서점 질서로부터 독립했다. 많은 독립 서점이 베스트셀러의 진열이나 판매에 신경 쓰기보다 자기 독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책을 고르는 데 집중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독립 서점을 지탱하는 두 다리이고, 이에 박자를 맞춰 호응하는 출판사(저자)와 독자가 독립 서점을 활기차게 만드는 양팔이 됐다. 여기에 서점 주인의 독특한 철학이라는 심장이 뜨거운 피를 공급했다. 루쉰은 말한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책 문화의 황무지에서 독립 서점이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서점 위기 속에서 동네 서점이 뜬 배경1995년 아마존이 등장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의 쇠퇴 기미는 뚜렷했다. 서점 왕국이라는 일본의 경우에도 1995년 2만2296곳에 달하던 서점이 2015년 1만2526곳으로 20년 만에 43.9%가 사라졌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2000년 1051곳이었던 서점 숫자가 2014년 756곳으로 28.1%가 줄었다. 미국의 경우 역시 체인 서점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미국 최대 서적 소매업체 반스앤드노블은 수익이 나쁜 지점을 폐점하는 등 사업을 축소하고 있고, 2011년 서점 보더스는 파산해 버렸다. 그 결과 2009년 3만1126곳이었던 체인 서점 숫자는 2016년 2만4611곳으로 20.1%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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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점도 온라인 경제의 폭풍우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2005년 3429곳에 달하던 서점이 2015년 2116곳으로 줄어들어 38.3%가 증발했다. 1995년에 서점 숫자가 5400곳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20년 동안 전국에서 71.3%의 서점이 사라진 셈이다. 지자체 중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서점멸종지역이 6곳이나 되고 서점이 하나만 있어서 위기에 처해 있는 서점멸종 예정지역도 43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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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위기다.
서점의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원인을 내외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외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① 정보화 혁명에 따른 콘텐츠 소비구조 변동으로 도서 수요 축소, ② 모바일 기기 보급으로 인한 독서 환경 악화, ③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④ 자유 학년제 실시 등 교육정책 변화에 따른 참고서 수요 축소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독서문화 위축이 가장 심각하다. 성인 독서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11.4%포인트 떨어져 성인 3명 중 1명이 한 해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비독자에 속한다. 성인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1999년 9분에서 2014년 6분으로 감소했고,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 역시 2007년 12.1권에서 2015년 9.1권으로 줄었다. 그 결과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가 2010년 2만1920원에서 2016년 1만5335원으로 6년 만에 30%(6585원)나 떨어졌다. 2016년 신간 서적의 평균 정가가 1만8018원임을 감안하면 1가구가 한 달에 책을 1권도 채 구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음으로 내적 요인을 살펴보자. ① 도서정가제 실시에도 도서소비의 온라인화가 여전히 강화되는 추세다. 주요 온라인서점 매출액은 2015년 7594억 원에서 2016년 8701억 원으로 14.5% 증가했다. ② 주요 체인 서점의 방어적 공세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아 도서정가제를 계기로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지점을 세우고 있다. 그 결과 주요 체인 서점의 매출액은 2015년 7722억 원에서 7759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③ 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에서 운영 중인 중고서점 역시 도서생태계의 순환을 교란함으로써 동네 서점의 존립을 위협 중이다. ④ 신간 도서의 발행종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반품처리로 인한 거래비용이 증가하는 와중에 송인서적 등 도매상이 부도나는 등 물류 부문의 불확실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몇 년째 세상을 떠도는 ‘서점 위기론’은 이러한 현실로부터 나왔다. 이대로 가면 서점이 소멸할 수밖에 없으며, ‘지역문화의 사랑방’인 서점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회의 전면적 관심과 각종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교보문고’ 격인 종래의 동네 서점 형태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역주민의 사랑을 돌려받거나 사업적 활로를 찾기 어려워졌다. “서점이 완결된 텍스트의 전달이 아니라 책의 향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난 것”(서점 ‘책이 있는 글터’의 이연호 사장)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동네 서점이 책과 사람이 만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인터넷서점이나 체인 서점의 다양성과 편리함을 이기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독자가 책의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갈망하는 욕구를 채워 줄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필요했다.
‘독립 서점’은 이런 위기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형태로 등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점 폐업이 줄을 잇는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점들이 일어섰다. 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밤에만 영업하는 심야책방 ‘밤의 서점’, 책과 함께 맥주도 파는 서점 ‘북바이북’, 고양이 전문 서점 ‘슈뢰딩거’,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여행책 전문 서점 ‘일단멈춤’, 그림책 전문 서점 ‘피노키오’ 같은 독립 서점들이 서울에 등장했고, 곧이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동네 서점은 죽지 않는다는 ‘서점 불사론’이 동네 서점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서점 소멸론’을 꺾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라지는 서점과 생겨나는 서점은 책을 판다는 점만 똑같지 서점 운영의 기본 원리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동네 서점을 관통하는 ‘업의 본질’이 바뀌었다. 필자는 올여름 ‘동네 서점×쏜살문고’라는 프로젝트를 동네 책방과 함께 진행하면서 이 사실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