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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소셜미디어로 본 트렌드

‘적당히 살기’ 화두… 대충 살기와 달라, 뭘 사느냐보다 ‘어디에 있느냐’에 무게

백경혜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진 마케터들은 이제 소셜미디어 분석을 할 때 ‘사람’을 이야기한다.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지 소비자란 핵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추출한 내년의 메가 트렌드 중 하나로 욜로(YOLO)가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선정됐다. ‘워라밸(work-life-balance)’이 화두가 되면서 ‘적당히 살기’가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살기’는 ‘대충 살기’와 다르다. 이를 잘 구별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은 ‘내가 사는 것(buying)’이 아닌 ‘내가 있는 곳(place)’이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이 보장된 일에 더 투자하려 하면서 ‘장소’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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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에 사람들이 직접 작성한 글들을 텍스트마이닝 기술로 분석해 그 통계를 바탕으로 리포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그 사이 소셜미디어 생태계는 커뮤니티,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을 거쳐 사진 한 장에 해시태그로 상황을 설명하는 인스타그램으로 변화해왔다. 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의뢰해오는 클라이언트들이 소셜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의 클라이언트들은 ‘OO폰이 새로 출시됐는데 아이폰보다 언급량이 많은가요?’ ‘긍정률이 몇 퍼센트인가요?’ ‘어떤 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고, 어떤 부분이 부정적 반응으로 언급되고 있나요?’라는 식으로 ‘제품’을 주인공으로 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소셜미디어 분석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감을 잡은 똑똑한 클라이언트들은 ‘사람’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가전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찍는다’라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을 위해 어떤 콘셉트의 가전을 만들면 될까요?’ 혹은 ‘시니어를 위한 음료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건강을 강조한 새로운 성분의 음료를 좋아할까요?’와 같은 질문으로 궁금한 대상이 ‘제품’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자유롭게 남기고 있다. 설문조사지처럼 ‘A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가장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①저렴한 가격 ②다양한 상품 종류 ③디자인 ④품질 중에서 고르세요’의 형식으로 설문지의 설계자가 미리 짜놓은 각본 중 하나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기분, 내 상황을 글로 남기다가 브랜드를 언급하기도 하고 제품의 활용 상황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는 순수하고도 살아 있는 데이터로서 소셜미디어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2017년 11월의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루 평균 1280만 건의 자발적인 글들이 생성되고 있다. 지금부터 이 글들 속에서 지금의 우리, 그리고 2018년의 우리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욜로 열풍, 새로운 트렌드가 아닌 우리의 자화상

2017년에 가장 핫 한 트렌드는 무엇이었을까? 굳이 소셜미디어상의 언급건수를 통계로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정답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다.

이다지도 뜨거운 욜로 열풍은 2018년에도 이어질 트렌드일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표현하는 단어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욜로의 기조는 2018년을 지나도 지속될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다. 실은 이미 우리 인간의 군상 속에 욜로족은 존재해 왔다. 갑자기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집단이 발생한 게 아니라 수십 년간 존재해 온 누군가의 모습이 확산된 것이라 보는 게 맞다. 개미와 베짱이가 주인공인 이솝우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안분지족과 유유자적의 삶을 살아가라는 사자성어도 존재해왔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work-life-balance)’을 맞춰가며 살아가라는 선조들의 조언을 따르는 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존재했다.

2011년 세계적인 래퍼, 드레이크(Drake)의 노래 가사에서 최초로 사용되고,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 홍보 영상에서 언급해 확산되기 시작한 ‘욜로’란 단어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뒤늦게 화제의 키워드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욜로가 의미하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표면적인 단어적 의미만 읽고 ‘요즘 젊은이들은 내일이 없이 막 질러대는구먼!’ 하고 생각한다면 이 단어 속 ‘숨은그림찾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조금 더 떨어져서 왜 사람들이 욜로를 외치고 있는지, 그 숨은 의도를 관찰하고 이해해야 한다.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 한 키워드는 ‘흙수저’였다. ‘수저계급론’의 아래쪽에서 금수저와 대비되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흙수저는 ‘쉽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우울한 정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욜로와 상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욜로는 현재를 즐겁게 살겠다는 긍정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2016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이자 시발점이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한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발언에 젊은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절반쯤은 농담으로 ‘나 흙수저잖아’라고 자조하던 젊은이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기 때문이다. 흙수저도 노력하면 ‘유리천장’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 위에 보이지도 않는 ‘콘크리트 천장’아래에서 아등바등 하고있는 처지임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콘크리트 천장 아래에서 주저앉아 절망에 빠져 인생을 포기하는 대신 눈앞을 막고 있는 콘크리트를 ‘예쁘게 꾸미는 것’을 선택했다. ‘욜로’ 정신이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욜로 정신의 핵심은 ‘대충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것과 가깝다.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적당히 타협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사고 싶은 것을 아껴서 저축하며 노력하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 없이는 집을 갖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충 살기’가 아닌 ‘적당히 살기’다. ‘적당히’와 ‘대충’은 다른 의미다. 현재의 나의 즐거움을 끌어다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투자하는 방법 대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는 삶을 선택한다.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는 대신 자유와 여유를 보상받는 선물 같은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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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관계 맺기’에서 ‘경험 찍기’로

이렇게 적당히 행복한 삶을 꿈꾸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최근 5년간 소셜미디어에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텍스트를 들여다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누군가와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 무엇인가를 만들고 소유하는 뿌듯함에서 오는 행복은 줄어들고 무엇인가를 먹는 것, 어딘가에 가는 것, 잠을 자고 쉬는 것, 무엇인가를 소소하게 사는 행위, 사진을 찍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즉, 사람들은 행복함을 타인과의 관계나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한 경험에서 찾고 있다. ‘욜로’라는 키워드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대중 속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들은 이미 그곳을 향해 더 강하게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매년 OECD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 가계부채율, 자살률, 노동시간 등의 수치 변화만 보더라도 우리는 더 바빠지고, 더 가난해지고, 더 외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주머니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소비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가성비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그 가성비의 모습은 ‘시발비용’ ‘탕진잼’ 등 다양한 키워드를 달고 더 강한 감성을 담아 탄생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반면교사로 삼을 성공담, 실패담을 간접 경험으로 체득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더욱 영악해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새롭게 출시되는 과자는 사지 않는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적은 용돈을 받아 자신을 즐겁게 해줄 단 하나의 과자를 맛보기 위해 실패를 줄이려고 한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만 사고 새로운 과자를 위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롭게 출시되는 과자들의 성공 확률은 과거보다 더 낮다. 2014년의 허니버터칩 대란 이후 새롭고 핫 한 과자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과자와 아이스크림들이 여전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실패할 여력’이 없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가성비 좋은 삶’을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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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 가성비가 검증된 그곳, 그곳의 한 컷이 나를 말해준다

욜로의 근간에는 가성비가 존재한다. 투자수익률(ROI)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험에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아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이 보장된 일에 더 투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는 확실히 중요해졌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됐다. 내가 ‘사는 것(buying)’이 나를 말해주는 시대에서 내가 ‘있는 곳(place)’이 나를 말해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컨대 100만 원으로 명품 가방을 샀다고 하자. 가방을 주제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몇 장이나 올릴 수 있을까?

장소라는 배경을 바꾸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가방을 주인공으로 해서 올릴 수 있는 사진은 딱 한 장이다. 같은 100만 원으로 전국 맛집 투어를 했다고 하자. 서울, 부산, 통영, 제주 찍고, 여수, 전주, 강릉, 속초, 양평을 거쳐 다시 서울을 들어오면 최소 10장이고 출발, 도착, 기다림, 드디어 한 입, 디저트,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사진까지 포함하면 한 지역당 10장을 찍어 올려도 된다. 돈을 쓰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100만 원으로 무엇을 할지가 정해진다. 여기서 돈을 쓰는 가치는 ‘찍어 올릴 만한 사진을 몇 장 생성시켰는가’로 환원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를 필요로 하고, 새로운 장소가 생겨났다고 하면 끊임없이 가고, 보고, 먹어본다.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 매년 1.2배씩 증가한다. 맛집에 대한 열망은 유지되는 수준이지만 핫플레이스를 향한 열망은 가속도를 붙이며 증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도, 찍은 사진을 공유할 만한 사람이 없어도, 연남동이 핫 하다는 소식을 접하면 연남동을 기웃거리게 된다. 꼭 유행에 민감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지역에 살든, 어떤 취향을 가지든 상관없이 누구나 들썩이게 만드는 어떤 ‘움직임’이다.

사진, 혹은 사진과 해시태그의 조합으로만 완성되는 인스타그램은 SNS 중에서 가장 만들어내기 쉬운 콘텐츠다. 블로그처럼 빡빡한 텍스트와 사진이 필요하지도, 커뮤니티처럼 타인의 의견에 눈치 볼 이유도, 유튜브처럼 동영상을 가공할 기술이 없어도 되는,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 어플만으로 30초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초간단 콘텐츠다. 스마트폰 화면 사이즈만큼 허락된 한 컷에 표현되는 인스타그램 사진은 나 자신을 가성비 좋게 디스플레이해줄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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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경혜100kh@vaiv.kr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필자는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이자 『2022 트렌드 노트』 『2021 트렌드 노트』 『2018 트렌드 노트』 『2017 트렌드 노트』의 저자다. 촘촘한 데이터의 프레임과 실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사이에서 의미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저 흘러가는 일상이 아닌 의미로 남는 일상이 되기를 바라며 데이터를 통한 이야기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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