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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아날로그의 반격』 저자 데이비드 색스 인터뷰

‘디지털에는 낭만과 야망이 없더라' 광고주들, 오프라인 매체 다시 집어들다

김현진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엔 아날로그가 오히려 ‘럭셔리’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즉 디지털 기술의 만연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의 귀환을 재촉한 것이다.

예컨대 종이는 디지털 시대의 적으로까지 여겨졌고 제약이 많은 오브제로 느껴졌지만 디지털 저장 장치의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종이가 더 생산적이라고 여긴다. 디지털 광고로 눈을 돌렸던 명품 업계 광고주들도 인쇄 광고로 컴백하고 있다. 인쇄 광고가 디지털 광고보다 더 높은 참여감을 갖게 하고, 제품 구매율도 높인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날로그적 정서가 확산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은 디지털 신물을 무작정 ‘쿨’ 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희소성이 높아진 턴테이블이나 필름카메라를 럭셔리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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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디지털은 시대적 화두를 넘어 일종의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다.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것은 ‘진리’이자 ‘인류의 미래’이고 아날로그는 ‘구습’이자 ‘돌아가지 못할 과거’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모두가 디지털을 외칠 때 ‘아날로그’의 부활에 주목하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신기한 신문물이었던 디지털이 오히려 일상이 된 시기, 아날로그로의 귀환을 주장하고 나선 캐나다의 비즈니스 및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색스(David Sax)다.

그가 올해 국내 출간한 책, 『아날로그의 반격(The Revenge of Analog―Real Things and Why They Matter)』은 한국을 비롯해 특히 디지털 문화가 앞선 국가들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대세가 된 디지털 시대, 그 이후 저 너머에 어떤 시대가 펼쳐질 것인지 호기심을 갖고 ‘포스트 디지털’을 고민하고 나선 이들에게 힌트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레코드판, 종이 수첩, 잡지, 작은 독립서점 등 ‘멸종’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던 아날로그적 오브제가 귀환하는 단서들로 아날로그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DBR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아날로그의 귀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그는 “성숙한 디지털 문화를 그 어느 나라보다 광범위하고 밀접하게 경험해선지 특히 아날로그 시대의 컴백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이니, 디지털 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발상이 신선하다.
이제는 디지털보다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으로 더 큰 비용을 써야 하는 아날로그가 유행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의 본성이기도 한 ‘즐거움’이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경험이 사라지는 시대에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감각적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내 생각을 종이 위에 펜으로 쓰며 느끼는 종이와 연필의 질감, 찍는 즉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마술적 매력, 또 매끈하게 인쇄된 토요판 신문을 손으로 넘기는 동작에서 느끼는 오감적 체험, 턴테이블의 바늘이 빛나는 레코드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의 경험은 이미 과거 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사람들은 디지털이 만연한 시대에도 은연중에 이런 인간적 경험을 그리워하고,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이윤을 꼽을 수 있다. 디지털 경제는 승자독식, 소득 격차 등의 새로운 불평등을 낳고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나 디지털이 결합된 포스트 디지털 경제 모델은 노동과 자본, 거대 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데 오히려 유리하다. 예컨대 거대한 IT 기업 하나가 실리콘밸리에 생기는 것보다 동네 레코드점이나 시계 공장이 들어서는 게 지역 경제 발전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운데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은 디지털이 만연한 시기, 우리에게 아날로그에 대한 동경심을 더욱 갖게 만드는 것 같다. 20, 30년 전에는 우리에게 아날로그밖에 없었지만 음악, SNS, 게임 등 적은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아날로그가 ‘럭셔리’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즉 디지털 기술의 만연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의 귀환을 재촉한 셈이다.

오늘날 양초나 자전거가 기술적으로는 ‘한물간’ 물건임에도 ‘쿨’ 한 요소로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이가 ‘쿨’ 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지적이 재미있었다.
특히 몰스킨이라는 노트 브랜드의 예를 들었는데.

밀라노에서 열리는 디자인위크에 가면 트렌드세터들 특유의 개성 있는 패션 코드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한 손에 검은색 몰스킨 노트를 들고 있다. 심지어 내가 이 책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났던 많은 사람들도 대개 어느 시점에 몰스킨 노트를 꺼내 들었다. 몰스킨 노트는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물건임에도 온통 디지털에 몰두하는 21세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고 있다. 사실 종이는 디지털 기술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은 최초의 아날로그 기술이다. 회사도, 학교도 ‘페이퍼 프리(paper free)’를 지향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존속한 종이는 우리가 문명이라 일컫는 경제적, 문화적, 과학적, 정신적 분야의 근간을 이룬다. 몰스킨은 종이의 강점은 무엇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한 끝에 나온 부산물이다. 몰스킨 노트는 팜파일럿사의 PDA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 종이 노트를 대체할 것으로 여겨졌던 디지털 기술과 나란히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몰스킨의 연 매출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유로에 달하며 100여 개국에 진출했다. ‘몰스킨의 어머니’로 불리는 마리아 세브레곤디 몰스킨 커뮤니케이션부문 부사장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움직이는 창의적 계층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느꼈고, 이런 현대의 유목민(comtemporary Nomad)을 위한 툴킷으로 방수 가죽 옷을 입은 몰스킨 노트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몰스킨 노트를 쓰는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부족적 동질감’도 형성됐다.

 

책에서 소개한 아날로그의 반격 사례 중 2018년에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트렌드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세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직접 대면하고 일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면 비디오 콘퍼런스나 슬랙(Slack)과 같은 가장 뛰어난 협업 소프트웨어도 제공하지 못하는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다. 또 한곳에 소속돼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업무 중에 사용하는 종이의 반격이다. 지금까지 종이는 디지털 시대의 적으로까지 여겨졌고 제약이 많은 오브제로 느껴졌지만 느린 부팅, 데이터 소실 등 디지털 저장 장치의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종이가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편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실제 오프라인 사물 및 경험을 활용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케아 같은 몇몇 기업이 한때 없앴던 종이 카탈로그를 다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기업들은 온라인 광고만 하기보다 종이 카탈로그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더 긴밀하고 다양하게 고객을 만족시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 시작했다.


인쇄물의 반격을 따로 챕터로 분류하고, 디지털 경험보다 앞선 종이 매체의 장점에 대해 소개한 점도 눈길을 끈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지만 인쇄된 종이의 페이지를 넘길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잡지 같은 정기간행물 하나가 문을 닫을 때마다 ‘인쇄의 종말’이라는 뉴스가 등장하지만 사실은 문을 닫는 잡지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잡지가 새로 창간되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달 평균 20종의 새로운 정기간행물이 창간되는데 개인의 소소한 취향을 담은 잡지들도 이에 해당된다. 다만 포스트 디지털 경제에선 창간호로만 수십만 부 발간해 여러 서점에 일순간 뿌리는 기존 출판사들의 창간 방식은 잘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개 몇백에서 몇천 부 정도씩 적게 발행하다 점차 독자를 늘려나가는 독립 잡지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이 답’이라며 디지털로 뛰어든 사람은 많지만 이를 통해 성공한 디지털 잡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순식간에 광범위한 사람들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은 배포에 특히 장점을 가지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수익 모델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책을 쓰면서 인터뷰한 런던의 미디어 플래닝 전문 광고기업으로 코카콜라, 아마존 등의 큰손 고객을 광고주로 거느리고 있는 ‘이니셔티브’ 임원들은 2005년에는 30%를 차지했던 인쇄 미디어 광고 비용이 2015년에는 7%까지 내려갔다고 전했다. 그런 광고비는 디지털로 이동했다. 이는 모든 뉴스가 ‘인쇄물의 종말’을 논했기 때문이고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는 광고 수단에 관심을 가지는 광고주 역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니셔티브 측은 사실 투자수익률(ROI)로 보면 인쇄 광고는 디지털 광고 대비 효과가 더 높은 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쇄 광고는 디지털 광고보다 더 높은 인게이지먼트(참여감)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광고는 종종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방해물로 느껴져 사람들이 얼른 차단해버리고 싶어 하는 콘텐츠지만 예컨대 패션잡지에 예쁘게 배치된 광고는 취재한 기사만큼이나 가치 있는 콘텐츠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문다.


인쇄 독자와 디지털 독자의 수준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주요 광고회사 관계자들은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인쇄 독자가 디지털 독자에 비해 훨씬 두터운 친밀감과 충성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영국의 출판 마케팅 대행사인 ‘매그네틱’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잡지 독자의 90%가 광고를 보고 그중 70%가 뭔가를 사거나 매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온라인의 경우 이 수치는 현저히 낮다. 온라인에서 누군가를 믿고,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쇄 잡지는 거의 무료로 제공되는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소비자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구입한다. ‘공짜’가 아니지만 이코노미스트처럼 성공한 사례가 많다. 2006년 일주일에 100만 부였던 이 잡지의 인쇄 발행 부수는 2015년 160만 부 이상으로 늘어났다. 구독료는 연평균 150달러 정도로 디지털 구독자에게도 인쇄 잡지 구독자와 같은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은 성장 비결로 ‘완독 가능성’을 꼽았다. 잡지는 시작, 중간, 끝이 있는데 독자는 끝에 도달하면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독자가 잡지를 읽고 나서 갖게 되는 더 ‘스마트해지는 느낌’을 판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나이 든 독자들은 디지털 구독을 늘리는 반면 젊은 독자들의 인쇄 매체 주문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이코노미스트라는 다소 ‘어려운 잡지’는 사회적 상징이다. 디지털판으로는 내가 이 잡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제호가 크게 박힌 오프라인 매체로는 이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

 
광고주들이 디지털에 더욱 관심을 갖는 시기, 오히려 오프라인 매체로 눈을 돌리는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인쇄물이 절제되고 신비하고, 퍼스널한 ‘럭셔리 상품’이라는 설명도 신선했다.
아날로그의 선두주자로서 인쇄간행물의 매력과 효용가치는 디지털 시대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영국 독립 잡지 업계에서 아주 큰 성공을 거둔 젠틀우먼이란 여성 패션 잡지가 있다. 10만 부 이상 발행되는 잡지는 금세 팔려나가고 과월호는 온라인에서 원래 가격보다 몇 배나 비싸게 거래된다. 이런 젠틀우먼 잡지에 광고를 싣는 샤넬 같은 대형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제 인쇄 광고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잘 디자인한 온라인 광고조차도 컴퓨터 스크린에서는 싸구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잡지의 편집장은 “인쇄는 럭셔리 아이템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종이가 터무니없는 낭비라고 떠든다면 그건 그만큼 종이가 럭셔리해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최신 잡지들은 럭셔리 접근법을 택한다. 즉 고급스럽게 잡지를 만들고 그에 걸맞은 가격을 매기고 있다. 단지 종이 위에 인쇄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물이 더 좋아 보일 수 있다. 특히 광고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시 성공한 잡지로 손꼽히는 모노클 역시 이런 종이 매체의 장점 덕에 비싼 가격이 독자와 광고주들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모노클의 편집장은 “추는 분명히 뒤로 돌아왔다. 디지털 세상에는 낭만이 없지만 인쇄된 종이에는 낭만이 있다. 종이 페이지에서는 ‘야망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웹페이지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모노클이 파는 것은 바로 아날로그 낭만과 아날로그 야망이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IT 기업 혁신가들일수록 아날로그를 시대정신으로 여긴다고 언급했다.
이런 젊고 혁신적인 세대가 편리하고 신속한 디지털 기술 대신 아날로그에 열광하는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실리콘밸리의 젊은이들은 낮에는 코딩을 하고, 밤엔 LP 레코드판을 모으면서 수제 맥주를 만든다. 또 보드게임을 즐기고, 낡은 오토바이도 직접 수리한다. 디지털의 중심에서 일하지만 아날로그적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것이다. 디지털 업계야말로 아날로그를 소중히 여긴다. 또 가족들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디지털 그루들도 적지 않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만든 아이패드를 자녀들이 갖고 놀지 못하게 했고,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인 크리스 앤더슨은 아이들의 IT 기기 이용 시간에 제한을 뒀다. 아날로그를 파괴한 디지털 테크놀로지 업계에서 아날로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는 사내에서 명상 및 숨쉬기 프로젝트를 실시해 직원들의 신체 및 정신 건강 증진은 물론 업무 효율성도 높였다. 앞서가는 IT 기업으로 꼽히는 옐프에선 디지털 스마트보드 대신 화이트보드가 애용된다. 이것이 소통 및 의사결정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기에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이러한 아날로그적 사무환경을 선호했다.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기술은 편하고 익숙하지만 항상 우수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과 잘 맞는 쪽을 선택해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긴다. IT 기업들은 컴퓨터의 한계를 잘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갈망하기에 자신과 잘 맞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한다.

 

디지털을 통한 상호작용보다 아날로그적 상호작용이 산성을 더 높인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토론토 도서관을 위한 모금 봉사 활동을 하느라 1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속해 있다. 위원회는 수개월에 한 번씩 모금활동 도입 방식을 놓고 여러 아이디어를 나누는데 미팅이 끝난 뒤 모두 구글닥스를 켜고 이 아이디어를 양식화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양식에 맞춰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차피 계속해서 e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래서 최근 내가 이렇게 제안했다. “다 같이 합시다. 한 공간에 모여 피자를 시켜 먹으며 하룻밤에 끝내 버리자고요.”

우리 집에 모여 진행한 문서 정리는 3시간 만에 끝났다. ‘디지털 인터랙션’은 신속해 보이긴 해도 실제 인간 간 소통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젊은 세대 사이에 아날로그적 정서가 확산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뒤늦게 디지털을 접하게 되고 지털을 이제 일상으로 여기게 된 부모 세대의 문화를 쿨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해석한 부분도 재밌다.

종이 책 출판을 밀어내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측됐던 e북 분야를 보라. 하지만 지금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등 젊은 고객 사이에서 오히려 e북의 수요는 줄고 종이 책 수요가 늘고 있다. e북 독자의 연령층은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인쇄물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에 종이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킨들이나 Kobo와 같은 e-reader가 새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과 같은 오감만족을 주지도 못한다. 그들에게 이젠 희소성이 높아진 턴테이블이나 필름카메라가 ‘쿨’ 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책도 ‘쿨’ 하다.


아날로그의 반격이 빚어내는 새로운 경제를 ‘포스트 디지털 이코노미’라고 표현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실제 아날로그의 귀환이 디지털 시대 이후에 대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이제 디지털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디지털 네트워크 밖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력적이지 않은 일이다. 완전히 디지털적으로만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삶은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디지털이 일상이 되면서 아날로그가 특별히 높은 가치를 갖게 되고, 이것이 감지되기 시작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닌 것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사실도 아니다.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치우친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를 보라. 우리는 차를 발명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밝은 전구도 있지만 매년 많은 양의 초가 판매된다.


아날로그 서점의 귀환은 한국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네 책방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서점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과 구매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즐기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또 일본에선 라이프스타일 서점을 표방하는 츠타야서점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책은 대표적인 디지털 쇼핑 아이템인데 서점이 아날로그 형태로 귀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온라인 서점은 책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가격적 메리트 때문에 소비자들이 즐겨 찾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잘되는 오프라인 서점들은 이러한 가치와는 정반대의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인간적인 문화와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으로 자동 추출되는 추천 도서가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는 공간, 사람을 만나고 실제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다. 뉴욕 여기저기에 최근 문을 연 서점들은 리테일의 반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입증한다. 2009년 브루클린의 포트그린 인근에 문을 연 ‘그린라이트’란 작은 서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운영자들은 오프라인 서점이 전자상거래의 판매 행태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표적 판매 기술이 ‘핸드셀링’이었다. 즉 서점 직원이 손님의 보디랭귀지를 읽고 시선을 맞추고, 취향을 묻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책을 권하는 방식이다. 아마존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은 독자가 전에 읽었던 책들과 그 책을 읽은 다른 독자가 구입한 책들에 근거해 해당 독자가 읽고 싶어 할 가능성에 가중치를 두고 계산해 책을 추천한다. 핸드셀링은 대형 서점도 못하는 독립서점만의 장점이 될 수 있다. 꼭 손님에게 딱 맞는 책을 권해서 좋다기보다는 직접 추천한 책을 손에 쥐어주며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아요. 당신 마음에도 들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인간적 교감을 느끼고, 그것이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택지가 무한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제한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 있는 아마존에서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 오프라인 매장은 어디인가? 거기서 얻는 오프라인 경험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섹시하지 않게 들리진 않겠지만 오프라인 식료품 쇼핑을 즐긴다. 솔직히 바나나와 우유 같은 신선식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할 필요가 있나. 레코드숍과 서점을 가는 것도 즐긴다. 최근 처음 찾은 한국 여행길에서도 대형 서점에 들러 책과 문구류를 잔뜩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레코드숍과 서점을 방문하면 그 도시에 대해 금세 이해하게 되고 문화적 발전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그런 면에서 ‘포스트 디지털시대’를 오히려 북미 지역보다 더 빨리 경험하고, 체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AR, VR의 사례에서 보듯 디지털 기술의 개발 목표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잘 재현해내는 데 있기도 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상호보완적 ‘균형’이 잘 이뤄진 사례를 꼽자면.

영화관을 한번 생각해보자. 여전히 관객들은 한 장소에 앉아 팝콘을 먹고, 함께 영상물을 본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세팅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영화를 보다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각적, 때로는 후각적 감각을 제공한다. 화면에 따라 의자가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CGI(컴퓨터 생성 화상) 기법이 아닌 실제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이 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 ‘괴물(The Host)’에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그래픽으로 만든 괴물만 가득 나온다고 상상해보라. 끔찍하지 않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비즈니스 리더들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일까.
아직 대부분이 디지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대에 아날로그 마인드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디지털 시대에도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계는 ‘아날로그’다. 기술 분야 종사자들은 컴퓨터 밖의 세상을 ‘IRL(In the Real Life. 현실 세계)’이라고 부른다. 디지털이 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현실이 아니고, 또 미래에도 현실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거나 놀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결국에는 실제 오프라인 상황에 가장 현저하게 반응한다. ‘실제’ 현실 공간이 핵심이다. 사람들이 이를 간파해 의식적으로 아날로그를 찾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다양한 트렌드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기업은 반드시, 그리고 빠르게 실패할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일부는 인터뷰이의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을 참고했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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