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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스템 개편론

카리스마 리더십의 시대는 갔다 이성과 합리로 시스템 혁신하자

김범수 | 213호 (2016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선출되지 않은 권력, 이른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모두가 참담하지만 단순히 국정에 마음대로 개입하고 자신의 이득을 챙긴 사람들을 비판하고 처벌하는 선에서 이 사태를 마무리하면 안 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빠져 있던 전 근대적 카리스마 리더십과 통치에 대한 갈망과 ‘주술’을 걷어내고, 막스베버가 말하는 ‘탈주술화’와 ‘합리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 ‘정운호 도박사건’으로 출발해 사상 초유의 게이트로 이어진 ‘나비 효과’는 어쩌면 헤겔이 말하는 ‘절대 이성’이 현화하는 ‘이성의 간지’일지 모른다. 아니,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그러한 기회로 바꿔야 한다.


1. 들어가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대통령 아들이나 친인척 등이 연루된 이전 정권의 권력형 게이트와 달리 대통령이 직접 연루 당사자라는 점에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현실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지난 10월21일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감사장에서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첨삭했냐’는 질문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며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런 일들이 실제 일어났다고 하니 허탈할 따름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사교에 빠져 ‘무당’에 놀아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대통령은 최순실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부통령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바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사실 ‘순실국’이었다”는 등 예전이라면 괴담으로 치부할 수준의 이야기들이 버젓이 언론에 회자된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의 치욕이고 수치다. 거기다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 씨가 지난 1975년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계시를 주셨다”고 이야기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고 그의 딸 최순실이 이러한 ‘영혼합일’ 능력을 물려받아 박근혜 대통령의 몸과 마음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참으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고 분노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 너무 급박하다. 북한 핵개발로 인한 안보 위기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고 경제는 해운업·조선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와 수출 경쟁력 하락, 13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또한 금수저·흙수저로 대변되는 양극화 문제,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 문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문제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로 인한 분노를 잠시 옆에 제쳐두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2. ‘카리스마적 대통령’ 신화에 빠진 대한민국과 막스베버의 ‘탈주술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98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최근까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소통한 경우가 거의 없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우리 헌정사에 등장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다섯 명의 대통령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국민들과 소통이 부족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적이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가 주목받은 경우는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도중 커터 칼 테러를 당하고 회복하며 처음 했다고 전해지는 “대전은요?” 또는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계속 추진하려 할 때 언급한 “참 나쁜 대통령”과 같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단답형으로 표현한 경우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처럼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말로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비전 제시 능력과 소통 능력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정치권 입문 이전의 개인적 성취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처럼 가난을 이겨낸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는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 투쟁을 이끈 정치 지도자의 경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1952년생으로 만 11세 때인 1963년 아버지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10대와 20대를 절대 권력자의 큰딸로 소위 ‘공주’와 같은 삶을 살았고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 청와대에서 나와 한국문화재단,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한 것이 정계 입문 이전 경력의 전부일 정도로 특별히 개인적 성취라 부를 만한 사안이 없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라는 측면에서건, 개인적 성취라는 측면에서건 박근혜 대통령이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가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가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공과가 무엇이냐가 아니다. ‘박정희’로 상징되는 ‘카리스마적 통치’의 신화다. 신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만들어졌고,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때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국민을 위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 대한 향수와 갈망으로 퍼져나갔다. 이 문제를 주류 언론들이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아픈 부분이다. 이처럼 ‘박정희’로 상징되는 카리스마적 통치를 미화하고 신격화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흐름은 지난 20여 년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주요 밑거름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지난 20여 년간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렸다. 이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더해 대중을 기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은 그를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실수를 하건, 정책을 뒤집건, 독단적이건, 불통이건 상관없이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1

이러한 점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에서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이야기하는 ‘카리스마’를 타고난 정치인이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카리스마는 원래 ‘신의 은총’ ‘타고난 재능’을 뜻하는 단어로 ‘어떤 개인을 보통 사람과 구별하는 특별한 자질’ ‘초자연적인, 초인적인 또는 특별히 예외적인 힘이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받아들여지는 개인의 자질’을 의미하며 지배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3가지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막스 베버는 권위 또는 지배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정당한 지배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전통의 권위에 근거한 지배로 이는 사람들이 오래된 전통을 정당한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배 유형이다. 둘째는 법적 권위에 근거한 지배로 이는 사람들이 법을 합리적인 것으로 믿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배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카리스마적 권위에 근거한 지배는 사람들이 어떤 개인이 가진 특별한 자질을 권위적인 것으로 믿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배 유형이다. 특히 이 세 가지 지배 유형 가운데 카리스마적 권위에 근거한 지배는 대중의 자발적이고 무조건적 복종을 특징으로 하는 지배로 대중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숭배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러한 카리스마에 근거한 지배는 법적 합리성에 근거한 지배와 달리 초자연적, 초인적 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에 근거한 지배로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베버는 이러한 카리스마적 지배의 사례로 ‘주술’에 근거한 고대 원시사회의 지배,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초자연적 능력을 바탕으로 유대인을 지배한 모세의 사례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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