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관점에서 본 국가 혁신

‘동방의 등불’ 한국에 찾아온 위기 ‘한마음’ 회복 통해 불씨 되살리자

213호 (2016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이번 혼란의 근본 원인은 국가의 뿌리인 국민들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우리나라를 이끌던 정신은 ‘선비정신’이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친 이유는 서구의 인간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사상의 핵심은 ‘욕심’이다. 서구 사상은 사람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고 사람의 마음을 ‘자기 것을 챙기기 위한 욕심’으로 본다. 그러나 맹자는 “온 나라 사람들이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데도 위험에 빠지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했다. 결국 해답은 우리만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사람들은 최순실을 고려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신돈 같은 인물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어렵게 만드는 인물은 최순실 외에도 또 있다. 이른바 ‘문고리 삼인방’이라는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방의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외부 사람들과의 소통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심상치 않다. 중국의 한나라가 망한 원인 중에는 환관들이 왕과 외부인들의 만남을 차단한 채 국정을 농단했던 것이 포함된다. 환관들이 문고리를 잠근 이유는 자기들의 사욕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환관들에게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욕을 채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문고리 삼인방이 문고리를 걸어 잠근 이유도 같을 것이다. 그들은 문고리를 걸어 잠근 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통과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간악한 사람들의 이익을 채우는 방향으로 간다. 백성들의 불만이 커지진 것도 그 때문이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 터진 일련의 사건들은 신돈과 환관의 합작품이다. 한 사건만 있어도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법인데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으니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심히 걱정스럽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들이 사람을 잘못 본 것에 책임이 있지만 과거의 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과거의 정치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친인척 비리가 있었다. 혹은 자녀들이 나서서, 혹은 형제들이 나서서, 때로는 처남이나 사촌들까지 나서서 국정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런 비리에 낙담한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게 열광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친인척 비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처족들이 비리를 많이 저질렀다. 임금의 장인이나 처남들이 정치를 흐리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대원군은 부모형제가 없는 민비를 며느리로 간택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민비의 먼 친척들이 들러붙어서 정치를 흐리게 하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이 당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대원군의 마음이 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랬더니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나타나 친인척의 비리보다 더한 비리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번 사태는 상당히 심각하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잘 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해 죄인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 대통령은 잔여임기 동안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고 국민의 마음과 하나가 돼 국민과 함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태는 의외로 쉽게 수습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물어가는 담장은 무너뜨리기는 쉽지만 그것이 잘 유지되도록 붙잡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는 허물어져가는 담장 꼴이다. 시민들이 의사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흥분한 나머지 대안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만 주력한다면 매우 심각한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의 사태를 오직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기회로만 삼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언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인들은 특종거리를 찾아내는 일에 주력하는 습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단기적 해결책보다 중요한 선비정신 회복

우리들은 이 시점에서 깊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이번의 사태를 잘 수습하면 앞으로는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모든 사건은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직접적인 원인과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과일나무에 벌레가 와서 과일농사를 망쳤다면 직접적인 원인은 벌레 때문이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농약을 개발해 그 벌레를 퇴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일 뿐이다. 농약을 개발해 벌레를 퇴치하고 나면 다른 벌레가 와서 또 과일농사를 망가뜨린다. 그때의 해결책은 또 그에 맞는 농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벌레가 찾아온다. 그때그때 벌레를 퇴치하는 방식만 되풀이한다면 농약 개발만 끝없이 하다가 결국 과일농사를 망가뜨리고 만다. 벌레가 찾아오는 근본 원인은 뿌리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우리나라를 하나의 과일나무에 비유한다면 지금 일어난 일은 벌레가 와서 해치는 사건에 해당한다. 벌레를 퇴치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완전한 해결을 해 놓지 않으면 벌레가 계속 오듯 사건은 계속 터질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도, 또 그 다음 정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어떤 것인가? <맹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마음에서 비롯돼 정책이 잘못되고 정책이 잘못돼 사건이 터진다.(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 <맹자> ‘공손추장구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발전의 원동력은 우리들의 희생정신이었다. 형이나 누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돈을 벌어 동생들의 학비를 댔다. 월남전에 참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국가가 발전했다. 사원들은 회사에 일거리가 많아지면 조건 없이 밤샘을 했다. 사장들은 또 사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왔다. 국민들은 국가의 일이라면 손해를 보면서까지 협력했다. 이런 희생정신이 우리의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 우리들은 많이 변했다. 지금 우리들은 예전의 우리들이 아니다. 순박한 마음이 있던 자리에 욕심이 들어와 대신 그 자리를 차고 앉았다. 우리들의 욕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 거의가 욕심의 노예, 돈의 노예로 바뀌고 있다. 지금은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형이나 누나를 찾아보기 어렵다. 할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는 손자들은 삼촌들을 적대시하기도 한다.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형제들이 다투는 것은 다반사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 손해가 될 때는 부모를 버리기도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사원도 드물고 사원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나서는 사장도 흔치 않다. 우리들의 마음은 예전의 마음과 같지 않다. 우리나라에 자꾸 문제가 터지는 근본 원인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기인한다.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의 정치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심각한 국면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위기적 상황을 해결하는 근본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예전의 마음처럼 되돌리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찾아봐야 한다.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원동력은 ‘선비정신’이었다. 우리들은 대대로 선비정신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폭력을 길러 지구상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유린했다. 서구인들은 남북 미주와 호주에 가서 원주민을 거의 다 죽이고 그들의 것을 빼앗았다.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들의 것을 마구 빼앗았다. 일본은 재빨리 서구에 합류해 아시아의 나라들을 침략했다. 우리의 선배 선비들은 그들을 짐승보다 못하게 여겼다. 우리들이 그들을 따르면 우리들도 짐승보다 못하게 된다고 깨우쳤지만 우리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이 강했기 때문이었고, 그들이 돈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패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구인들의 폭력성은 중세 기독교를 부정하면서 노골화됐다. 신을 믿고 살 때는 사람들이 모두 형제자매였지만 신을 부정하고 나면 각각 남남이 된다. 또 교회에서는 지구가 도는 것을 하늘이 돈다고 가르쳤고, 생명체가 진화해 온 것을 창조됐다고 가르쳤으므로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과학자들이 발견한 자연법칙에 따라 살고자 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자연법칙은 생존경쟁이고, 약육강식이었다. 따라서 서구인들은 강자가 돼 약자를 먹는 것이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르는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런 이론을 배경으로 세계 곳곳을 유린했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그들 내부에서도 적용됐다. 약자가 사는 길은 뭉쳐서 힘을 합치는 것뿐이다. 약자인 시민들이 힘을 합해 강자인 왕을 죽이고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 뒤이어 산업혁명이 성공을 거두자 새로운 약자인 노동자 계층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살 길 역시 뭉치는 것뿐이므로, 그들 역시 뭉쳐서 기득권 세력에 항거하는 진보세력을 형성했다. 지금 세상은 사람들이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져 혈투를 벌이는 투쟁장소로 바뀌고 있다.
투쟁을 계속하면 남들도 다치지만 나도 다친다. 다쳐서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다치지 않고 경쟁하는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다치지 않는 이론을 만드는 학문이 법학이고 이기는 방법을 만드는 학문이 경영학, 경제학, 정치학 등이다. 오늘날 세계의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전공 분야가 법학, 경영학, 정치학 등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이론들은 사람들이 모두 분리돼 있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가설과 삶의 내용이 약육강식이라는 가설 위에 성립한다. 그러나 그 가설은 맹자가 말한, 편벽된 가설일 뿐이다.

사람이 독립적인 개체라면 사람의 마음은 ‘자기 것을 챙기기 위한 욕심’일 수밖에 없다. 맹자는 똑똑한 사람을 싫어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치밀하고 빈틈없는 이론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익을 챙길 목적으로 만들어낸 이론은 아무리 치밀하게 만들었더라도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없다. 맹자가 똑똑한 사람을 싫어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맹자는 우임금처럼 똑똑한 경우는 예외로 뒀다. 우임금은 홍수를 다스릴 때 바다 방향에 언덕이 있어도 피하지 않고 그 언덕을 뚫어서 물을 바다로 보냈다. 그러나 다른 똑똑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바다의 반대 방향에 저지대가 있다면 그 저지대로 물을 흘려보낸다. 그것이 홍수를 다스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고 가장 이로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저지대에 물이 고이고 난 뒤에는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돼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처리가 거의 그렇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큰 문제가 돼 돌아온다. 국가의 부채는 해마다 불어나고, 국가 간의 이익 다툼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지구환경이 계속 파괴돼 우리의 지구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계층 간, 빈부 간의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이념 간의 대립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이익을 챙기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강도와 도박이다. 강도질 중의 가장 강력한 강도질이 전쟁이고, 도박 중 경제논리로 가장한 합법적 도박이 주식 투기이고 카지노사업이다. 오늘날 합법을 가장한 전쟁이 자꾸 일어나고 도박이 갈수록 성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을 하면 약한 자가 이길 수 없고, 도박판에서는 밑천 적은 자가 이길 수 없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극단적인 선택이 테러다. 오늘날 세계가 테러로 얼룩지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욕심을 채우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욕심은 채우는 순간 훨씬 더 커져버리기 때문에 더 큰 불행에 빠진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다. 유사 이래 자살률이 오늘날보다 더 높았던 적이 없다.



인간의 본마음인 ‘한마음’ 정신 되새겨야

서구인들은 오래전부터 욕심을 키워온 동시에 절제하는 교육도 해왔으므로 나름대로 욕심을 절제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의 욕심 키우는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절제하는 교육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욕심을 키우는 노력에 주력한 결과 우리들은 거의 노예처럼 변해간다. 권력의 노예로 변해가고 있고, 돈의 노예로 변해가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보하던 예전의 모습들이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투사의 모습들로 바뀌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각종 종교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북한의 위협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고난이 언제 그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의 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많은 사람들이 흥분한 나머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자꾸 혼란에 빠져들어가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고난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나라는 드물다. 오히려 남의 나라에 끊임없이 침략을 받았고 그때마다 목숨을 바쳐서 지켜왔다.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친 사람은 이순신 장군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병사들과 의병들이 목숨을 바쳤고, 산중에서 수도하던 승려들까지도 합세해 목숨을 바쳤다. 구한말에도 그랬고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다. 그렇게 지켜온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우리는 복수를 하지 않았다. 일본이 패전국이 됐을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나라에 와 있던 일본인들을 마구 찔러 죽였지만 우리들은 한국에 와있던 일본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뿐이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귀국선에 타게 하고서 그 배를 침몰시켰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들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면서 남북으로 갈라졌다. 그 때문에 전 국토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겪기도 했다. 전쟁 후에도 행복하게 지냈던 때가 거의 없다. 정치가 혼란을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일개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하는 초유의 혼란에 직면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해결책은 있게 마련이다. 기회는 언제나 가장 어려울 때 찾아온다. 서구인들이 계속 앞서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고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잘못된 이론을 가지고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서구인들이 세운 가설은 옳은 것이 아니다. 서구인들이 찾아낸 자연법칙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이다.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만물이 어울려 자라면서 서로 해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일견 약육강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슴들은 초원의 풀이 부족하면 영양실조가 돼 다 죽을 운명에 처한다. 그럴 때 적당한 수의 사슴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사자가 잡아먹는다. 부분적으로만 보면 약육강식의 원리가 옳은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사슴 전체의 삶에서 보면 사자는 고마운 존재이다. 사자는 사슴의 생존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사자는 결코 사슴을 다 잡아먹는 법이 없다. 강한 사자가 약한 사자를 잡아먹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데 사람은 약육강식이 일어나는 단면만 보고 그것을 사람의 삶에 적용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죽이는 원리로 삼았다. 그것은 잘못된 가설이다. 잘못된 가설로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그 한계는 사람의 삶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사람들은 외로워졌다. 친구를 사귀어도 외롭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사귀는 친구는 손해가 되는 순간 돌아선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사귀는 애인은 손해가 되는 순간 버린다. 온 세계 사람들이 외로움에 떨고 있지만 한국인은 아직도 조금 다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욕심에 눈먼 사람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다투다가 수가 틀리면 “네가 인간이냐? 제발 인간 좀 되라, 이놈아!” 하고 꾸짖기도 한다. 우리들은 예로부터 마음을 중시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욕심은 사람이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은 욕심에 눈먼 사람을 짐승으로 여겼다. 사람이 짐승처럼 살 수는 없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동굴을 만들어놓고 마늘과 쑥을 먹으며 사람의 마음을 회복해서 나오는 숙제를 해왔다. 그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다. 이 마음이 지금 얼어붙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늘날 한류문화가 붐을 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류문화가 붐을 일으킨다는 것은 한국이 나설 때가 됐다는 신호다. 신호가 켜졌는 데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꿈쩍 않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할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딴짓만 하면 부모는 회초리를 때린다. 회초리는 아이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자극제인 셈이다. 맹자는 <맹자> ‘고자장구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길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몸을 힘들게 하며, 굶주리게 하고 가난하고 어렵게 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그러뜨린다. 그 까닭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참을성을 길러 모자라는 것을 채우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늘 잘못된 일이 있은 연후에야 고친다. 마음에 고달프고 생각에 어그러지는 것이 있어 얼굴에 나타나고 목소리에 나타난 뒤에라야 깨닫는다. 나라 안에 법도 있는 집과 나라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라 밖에 적국이나 외환이 없으면 나라는 항상 망한다. 이를 본 뒤에라야 우환이 있으면 살고 안락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人恒過然後 能改 困於心 衡於慮然後 作徵於色 發於聲而後 喩 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 然後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 온 세계 사람들이 외로움에 떨고 있지만 한국인은 아직도 조금 다르다. "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제발 일어서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시련은 혹독하다.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크게 좌초하고 말 것이다. 이번의 시련은 위기다. 이 위기를 각자의 욕심을 채우는 기회로 삼는 것, 그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을 호기로 삼아서도 안 되고, 좌파나 우파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리하여 위기를 넘긴 다음에는 우리들에게 위기가 닥친 근본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위기가 닥친 근본 원인은 욕심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온갖 사이비종교들이 들끓고 있고,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다. 맹자는 온 나라 사람들이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데도 위험에 빠지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총체적이다. 이를 해결하는 근본방법은 이미 단군 때 마련해놓았다. 그것은 동굴에 들어가 사람의 본래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사람의 본래마음은 다름 아닌 한마음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한마음이란 말을 쓰고 있다. 우리는 한마음을 회복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것은 한마음을 회복하는 동굴을 만드는 일이다. 동굴의 역할은 학교가 대신할 수도 있고, 기업의 연수원이 대신할 수도 있다. 다만 사람의 본래마음을 회복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시행하기만 하면 된다. 한국이 동굴효과를 극대화하면 세상을 비추는 밝은 횃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동굴의 역할을 극대화했던 단군시대 때 우리들은 세상을 밝히는 횃불의 역할을 했다. 인도의 시인 타골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절에 찬란히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라고 노래했다.

우리에게는 다시 시련이 닥치고 있다. 이번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은 꼴이 되지만 극복을 하면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동굴의 효과를 다시 극대화해 참된 사람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지상천국으로 바뀐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골이 예측한 것처럼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거듭 날 것이다. 그런 날이 된 훗날에 오늘날의 일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당혹스러웠던 일들이 축복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갈림길에 서 있다. 욕심만 추구하는 악마가 돼 이전투구의 늪에 빠져들면 이번에 일어난 위기적 사건은 우리에게 저주가 될 것이지만 우리가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축복으로 바뀔 것이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kdyi0208@naver.com

이기동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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