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Philosophy
Article at a Glance 남성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 공감하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 프리다 칼로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고독하고 소외된 인격체, 즉 ‘여성’이기 때문이다. 뒤샹이 여성의 가면을 썼을 때 느끼는 해방감 또한 남성이라는 권력의 가면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하지 않은 결여된 주체, 즉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여성이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권력이라는 허구가 주는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결여된 존재인 것이다. |
편집자주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공유점을 포착해 철학사상을 감각적인 예술적 형상으로 풀어내온 박영욱 교수가 DBR에 ‘Art & Philosophy’ 코너를 연재합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칼로는 여성주의의 전사?
멕시코 출신의 프리다 칼로(Magdalena Camen Frida Kahloy Clderon, 1907∼1954)는 유난히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다. 그녀의 자화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호불호를 떠나서 틀림없이 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짙은 일자 눈썹과 상 남자에게나 어울릴 듯한 콧수염, 섬뜩한 배경, 강렬한 색채 등 그림의 모든 요소들이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다. 1944년의 자화상 ‘부러진 척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이다. 일자 눈썹과 콧수염 달린 얼굴은 물론이고 가슴이 드러난 알몸에 부서진 척추, 그리고 상반신을 꼿꼿하게 지탱시키는 코르셋과 군데군데 박힌 못, 강렬한 듯하면서 공허한 눈빛, 몽환적인 색상과 형태의 배경, 이 모든 것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칼로는 자신의 삶을 내리친 두 번의 ‘대형 사고’를 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던 칼로는 의학도의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던 학창 시절 18세의 나이에 통학버스가 전차와 부딪쳐서 철제 봉이 그녀의 몸을 파고드는 사고를 당한다.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오른 다리가 완전히 짓이겨진 것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만신창이가 돼 십 수차례의 수술을 감내해야만 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의학적으로 기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목숨을 건진 대가는 엄청났다. 그녀는 평생 사고와 수술의 통증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져버렸다고 표현했다. 이 부서진 몸을 간신히 지탱시킨 의학과 보조 장치는 그녀의 몸을 지탱시키는 보조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과 억압의 철장이기도 했다.
두 번째 대형 사고는 당대 최고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난 것이다. 여성 편력이 너무나도 심했던 그는 칼로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했지만 칼로에게 리베라는 마치 자신의 물리적 몸을 지탱해주는 의학적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지주이자 고통의 원인이기도 했다. 마초 기질을 지닌 리베라는 상처받고 피폐해진 한 여성에게 의지할 수 있는 거인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그의 걷잡을 수 없는 바람기는 그녀에게 불안과 고통을 통해 고독의 심연을 안기는 존재이기도 했다. 심지어 리베라는 칼로의 동생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그림에 담긴 그녀의 부서진 몸은 교통사고만이 아닌 상 남자 리베라에 의해서도 산산조각난 자신의 영혼을 나타낸다.
그림의 녹색 배경 또한 그녀의 불안과 고독함을 증폭한다. 녹색의 배경은 원초적인 수풀을 상징한다. 숲은 인위적인 도시와는 달리 지구의 가장 원초적인 장소이며, 태초의 장소이다. 어쩌면 인류에게는 자궁과도 같은 편안한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에 묘사된 원초적인 장소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준다. 앙리 루소의 그림에 나오는 원시림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감돈다. 다른 자화상들에서는 원시림의 나뭇가지가 마치 그녀 몸의 일부인 것처럼 몸을 감싸고 있기도 하다. 그녀를 감싸는 나뭇가지는 리베라처럼 자신을 지탱해주는 지지이면서 동시에 몸을 옥죄는 감옥의 창살과도 같다. 그녀의 몸은 뜻하지 않는 사고뿐만 아니라 맹수 같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원시림 속에서 처절하게 망가지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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