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학술지에 실린 연구성과 가운데 경영자에게 도움을 주는 새로운 지식을 소개합니다
Sociology
스테레오 타입도 활용하기 나름 마일드 담배처럼 기회될 수도…
“Category Taken-for-Grantedness as a Strategic Opportunity: The Case of Light Cigarettes, 1964 to 1993”, by Greta Hsu and Stine Grodal i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2015, 80(1), pp. 28∼62.
무엇을 왜 연구했나?
우리는 보통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주위 사람들이 멋진 신사라고 말해주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옷이며, 표정이며, 걸음걸이까지 신경 쓰게 된다. 기대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쌓아왔던 평판과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시선은 늘 부담이며 행동을 제약하는 짐이 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제도주의 조직이론가들은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적 강제에 순응하는 것이 조직의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이 특정한 범주(category)에 포함된다면 그 범주에 적합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생존가능성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최근 불거진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친환경이라는 범주에 속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여겨졌던 터라 파장이 더욱 크다.
그런데 이 논문은 조금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특정 범주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때로는 전략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 범주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라면 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특정 범주에 속하는지 여부가 사람들의 강력한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범주에 속해 있는 한 약간의 일탈은 커다란 주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멋진 신사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굳어지면 멋진 신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억지춘향식의 노력을 할 필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무엇을 발견했나?
이 논문에서는 미국의 ‘라이트’ 담배를 사례로 들어 이런 주장을 검토했다. 1950년대부터 흡연이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담배산업 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위 라이트라는 새로운 범주가 탄생한 것이다. 일단의 담배회사들은 혁신적인 필터제조기법과 새로운 혼합물 첨가기술을 개발해 니코틴과 타르 양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주장하면서 라이트라고 하는 새로운 범주를 시장에 내놓았다.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라이트 범주의 담배 판매량은 급격히 증가했고, 이 범주는 소위 ‘공인된’ 범주로 자리 잡게 됐다. 사람들은 니코틴과 타르 양이 많은 일반 담배와 그 양이 적은 라이트 담배, 이 두 가지로 담배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라이트라면 몸에 덜 해로운 담배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 뒤 수십 년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일반 담배는 니코틴과 타르 양을 지속적으로 줄인 반면 라이트 담배는 오히려 타르 양을 평균 7%, 니코틴 양을 평균 74% 늘렸다. 이런 전략적 선택은 니코틴과 타르 저감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담배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르와 니코틴 비용이 늘었음에도 라이트 담배가 덜 해롭다는 대중의 인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라이트라는 범주가 당연시되면서 조직의 전략적 자율성이 오히려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연구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일반적으로 스테레오 타입은 조직의 활동을 제약한다. 반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조직의 활동 반경을 넓히거나 전략적 선택 기회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의지해서 타르 양을 늘린다든지, 배출가스 양을 조작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나 조직 정체성은 전략적 변화를 위한 유용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고급 브랜드 와인 제조업체가 대중 와인 시장에 진출할 때 고급 브랜드라는 범주가 오히려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의 깊은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착한 기업이라는 범주를 등에 업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려는 유인에 항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최근까지 어느 누구도 폴크스바겐이 배출가스를 조작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폴스크바겐이 친환경이라는 범주를 악용하는 동안 소비자나 정책당국은 그 범주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만약 소비자와 정책당국이 이러한 범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감시의 시선을 보냈더라면 결과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정동일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dijung@sookmyung.ac.kr
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코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사회학과를 거쳐 숙명여대 경영학부에 재직하고 있다. 기업 간 네트워크, 제도주의 조직이론, 조직학습, 경제사회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플랫폼 기반 조직생태계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