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오바마는 왜 옥새를 돌려줬을까?

154호 (2014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수백 년 이상, 혹은 수천 년을 걸쳐 형성된 각 문화권의 언어가 현재 그 문화권 사람들의 문화 DNA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이게 바로 지난 번 연재까지 논의한 내용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진다. 언어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탈식민지 VS. 탈제국주의의 문화 DNA.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식민지 경험 국가들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국수주의’ ‘외부 비판에 대한 민감성’ ‘자기 증명욕구등을 강하게 지닌다. 해당 나라에 속한 국민들도 당연히 이 같은 특성이 내면화돼 있다. 반면 프랑스, 영국, 일본, 스페인 등 제국주의 국가 출신 국민들은 내면 깊은 곳의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스스로를문명화의 임무를 지닌보편적 정의의 수호자로 여긴다. 따라서 탈제국주의 국가에 진출할 때와 동남아나 중국 같은 탈식민 국가에 진출할 때 각각 기업들의 문화전략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1. 탈식민 VS. 탈제국주의 국가1

 

지난 425일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들고 온 조선시대 옥새가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2013 1122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옥새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한 미군 해병이 덕수궁 인근 밭두렁에 빠져 있는 것을 주운 것이다. 그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조선 옥새는 미국 워싱턴 D.C의 한 양심적인 골동품 감정사 덕분에 발견됐다. 워싱턴의 감정사에게 캘리포니아에서 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국의 옥새가 골동품 시장에서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이 감정사는 뭔가 수상하다고 여겨 이를 연방정부 해당 부서에 신고했다. 이 덕분에 미국 정부는 옥새뿐만 아니라 당시 불법으로 유출된 조선시대 유물 8점까지 찾게 됐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약탈 당한 문화재 반환 문제로 오랫동안 일본, 프랑스와 실랑이를 벌여온 우리나라에 이런 미국의 태도는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몇몇 인터넷 게시판에는우리 것 돌려주면서 생색내는 것은 뭐냐라는 비아냥 섞인 글도 보였지만 프랑스나 일본의 태도를 미국에 빗대어본받아야 한다” “일본이나 프랑스보다 미국이 낫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의 문화 DNA를 제대로 읽은, 미국 최고의 리더다운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는 근대까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탈식민(Post-Colonial) 국가 국민들의 문화적 특성과 정서를 제대로 읽어 한국인들의 호의를 살 수 있었다.

 

 

사실 제국주의 국가 출신들은 식민지 출신들의빼앗긴 문화재에 대한 애착을 잘 모른다. 프랑스의 기메 박물관(Muse Guimet)은 모모야마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병풍, 도자기, 판화 등 엄청난 양의 일본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거꾸로 일본의 교토의상연구소(Kyoto Customs Institute)에는 프랑스 의복 문화에 관련된 엄청난 양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하지만 두 나라 국민 누구도 자기네 문화재들을원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것은 두 나라 모두 외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는탈제국주의(Post-Imperial)’ 국가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제국주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재가 해외에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보통 강자의 입장에서 자국의 위상을 널리 전파하려고 값진 문화재를 의도적으로 해외에 반출했거나, 식민지 등 약소국에 외교적 선물로하사했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고가에 판매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식민지 경험이 있는 탈식민국가 국민들은 생각이 다르다. 강대국의 억압에 눌려 문화재들을 탈취당했거나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워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침략자들이 슬그머니 문화재를 훔쳐간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 차이로 프랑스, 영국, 일본 등 탈제국의 정치가들은 문화재 반환이 한국, 중국 등 탈식민 국가의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17∼20세기의 세계사는 군사력과 산업 발전, 경제력이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6개 국가에 쏠려 있었고 다른 나라들과 정치, 경제, 외교적 불균형이 엄청났다. 예를 들면, 19세기의 영국은 세계 영토의 23%를 지배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 60주년을 맞아다이아몬드 쥬빌리행사를 치렀는데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국가 공휴일 휴가를 갔다고 한다. 미국의 시사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의 저서 <포스트 아메리칸 워드>에 이 모습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이날 자기 나라의 희귀한 동물, 가장 진귀한 보물을 들고 온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의 왕들이 줄을 서서 빅토리아 여왕 발 밑에 공물을 놓고 갔다. 정부 관계자들은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통로의 이름이 새겨진 황금 열쇠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했다. ‘세계의 수로를 잠그는 열쇠라는 상징적 의미였다. 이처럼 엄청난 정치, 경제력의 불균형 구도는 겨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 종전시기였던 1950년대 이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극심했던 국가 간 정치, 경제 불균형 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정치, 경제, 산업의 불균형 역사는 피해자였던 식민지 출신과 가해자였던 제국 출신 모두에게 커다란 사고방식과 문화적 관점 차이를 만들어 냈다. 대학에탈식민지학(Post-Colonial Studies)’이라는 학문이 생길 정도로 이 차이는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행동 패턴들이 문학, 속담, 가정교육 등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파돼 후천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탈제국주의적/ 탈식민적 문화 DNA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나라 현대인들의 사고, 행동, 관점, 소비취향 등을 결정 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러 기업들이 왕성하게 진출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은 모두 최근에 각각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와의 독립 전쟁을 통해 주권을 찾은 나라들이다. 이 시장의 주 소비자들은 탈식민지 문화 DNA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탈제국주의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들여온 경영/ 마케팅 방식이 이런 국민 정서와 충돌해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2. 탈식민국가 사람들의 문화 DNA

1) 국수주의, 그리고 외부 비판에 대한 민감성

14억 명에 육박하는 소비자가 있는 중국 시장은 세계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탐내는 황금 시장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발 빠르게 중국의 개방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2012년 일본, 대만, 중국 3국 모두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댜오위다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고조되면서 이미 오래 전에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있던 일본 기업들이 국가를 대신해 타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중국인 시위대 중 일부가 중국에서 일본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장에 무단 침입해 집기와 상품들을 마구 부수고 사람을 상해하는 폭력을 저질렀다. 당시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중국 내 80개 도시에서 10만 명 규모로 시위대가 불어났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들은 오너가 중국인인 일본 음식점, 중국인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일제 자동차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그리고 점차 중국 내 모든 외국 기업들에 화살을 겨눴다. 한국 기업들까지 타깃이 되기도 했다. 2012 917 <헤럴드경제>는 중국의 시위대가 불태운 삼성전자 지사의 간판 사진을 게재하고 한국 기업의 애꿎은 피해를 우려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다. 2014 16일 영국지는 2008 25%에 이르렀던 중국 시장 내 일본 자동차 점유율이 2013년에는 15%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사에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2013년 선전해 전년 대비 9.3%의 성장세를 보였지만 같은 기간에 50%의 매출 신장을 보인 미국 포드, 21.2% 신장한 독일의 아우디에 비하면 예전의 시장점유율 회복은 힘들 것이란 전망도 함께 실렸다.

 

중국인들이 유독 일본과의 국제 분쟁에만 민감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누구건 외국인들이 자국 문제를 조금만 비판해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8 47, 그리스에서 채화된 베이징올림픽 봉화대가 프랑스 파리 시내를 통과할 때,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봉화대를 가로막으려는 사건이 발생해 중국에 반프랑스 감정이 고조됐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holas Sarkozy)는 중국이 껄끄러워 하는 티벳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 당국의 대화를 촉구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베이징올림픽에 참관할 의향이 없다는 강수까지 뒀다. 중국인들은 자국에 진출해 있던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인 카르푸 앞으로 몰려들어프랑스를 타도하자며 대대적인 불매 운동을 벌였다. SNS만약에 당신이 중국 애국자라면 카르푸에서 물건 사지 마라는 메시지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 매출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프랑스 기업들은 중국의 프랑스 상품 불매 운동 기미가 포착되자 일본 기업들에 비해 훨씬 현명하게 대처해 손해를 극소화했다. 일단 프랑스 기업들은 프랑스 정부와 눈에 띌 만큼 거리를 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중국인들에게 알렸다. 카르푸 CEO 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중국 정부에 티벳 지도자 달라이 라마 화해 요청 발언을 하자카르푸는 어떤 정치적, 종교적 노선이 없는 기업이다라는 성명을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루이뷔똥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향해 그보다 한발 더 나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중국인들에게 프랑스에 비해 일본과의 과거사에 얽힌 감정적 앙금과 현재의 영토분쟁이 더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프랑스 CEO들의 위기 대처 방법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중국인들의 민감한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효과를 거둔 것이 틀림없다. 중국에 진출한 프랑스의 위 두 기업은 2008년 중국 내 외국 업체 타도 시위 기간에도 거의 매출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발표됐다.

 

중국 근대사를 보면 중국은 지난 150년 동안의 역사가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842, 영국 함대가 중국 해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강압적으로 협정을 맺으면서 홍콩을 빼앗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중국 정부가 중국 영해에서 해적질을 일삼던 영국 해적선 애로(Arrow) 호 선원들을 억류한 것을 빌미로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다시 중국 영토로 쳐들어와 중국 연안을 불바다로 만들고 영국, 프랑스, 미국이 상하이를 공동으로 다스리며 중국 대륙의 젖줄인 양쯔강 통로를 봉쇄했다. 그 이후로 중국 내에서 내란이 발발하거나 정치적 갈등 조짐이 보이면 서양의 제국들이 연합군을 만들어 중국 정부에 급파하고 내정을 간섭하며 서서히 영토를 빼앗았다. 칭다오에는 독일군이 (오늘날까지 칭다오맥주가 유명한 이유는 이곳이 독일 점령지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광저우만은 프랑스군이 주둔했고, 이후에는 일본군에게 만주도 빼앗겼다. 2차 대전 중에는 일본군들이 난징에서 30만 명의 무고한 중국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까지 했다.

 

중국인들이 유독 일본과의 국제 분쟁에만 민감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누구건 외국인들이 자국 문제를 조금만 비판해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인들은 학창 시절 내내 역사 수업 시간에 이런 뼈 아픈 근대사를 철저히 교육받는다. 이를 통해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 정치에서 항상 피해자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조용히 눈감아주면 예전의 치욕적인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본다. , 이를 묵과할 경우 중국인들이 국제 사회에서 무시당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자주권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 셈이다. 게다가 영국과 치른 아편전쟁은 영국 정부가 아닌 당시 영국의 사기업인 동인도회사 주도로 일어난 것이어서 중국인들은 기업과 국가 문제를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중국뿐만 아니라 식민지 피해 역사를 철저히 교육받고 자라는 탈식민 국민들은 외국 회사, 외국 정부를 남의 땅을 빼앗아 식민지로 만들어 착취하려고 협력하는 거대한 하나의 조직으로 본다. 그래서 중동의 탈식민 국가들은 미국과 크고 작은 외교 마찰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미국의 사기업인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대리점을 공격하기도 한다. 기업과 정부의 잘잘못을 철저히 구분해 잘못을 저지른 곳을 대상으로 시위나 불매 운동을 벌이는 탈제국주의 국가의 사고 방식과 대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은 동남아 시장에 진출을 할 때 최고의 장점을 지닌다. 한국은 현재 부상 중인 여러 개발도상국과 탈식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는 일본, 영국, 프랑스 등 탈제국처럼 타국을 침략하고 수모를 준원죄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이런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탈제국주의 비즈니스 경영방식을 현지에서 적용하거나 그들이 저지른 원죄를 우리가 되풀이하는 모습이 종종 보여 안타깝다. 가까운 예로 올해 초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 생산공장이 현지 노동자들과 충돌하며 유혈사태까지 빚었다는 소식이 <연합뉴스> 2014 118일자에 보도된 바 있다. 이 보도는 캄보디아 현지 생산공장 노동자 50명을 해고한 데서 촉발됐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과거의 지배자였던 프랑스 기업들의 참혹한 노동자 탄압 경험이 여전히 생생한데다 최근까지 노동자가 주인이라고 내세우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나라다. 따라서 우리 기업 중 한 곳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주목을 받아도 현지인들이 한국을 다른 제국주의 세력들과 동일시할 확률이 높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상생하려면 기업 하나하나가 현지의 식민 역사를 면밀하게 연구해 그들을 민감하게 만드는 부분을 자극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2) 자기 증명 욕구

“당신들은 우리가 사막에서 산다고 생각하죠? 우린 고층 건물에 살아요. 우리는 낙타를 타고 다니는 줄 알죠? 우리나라에도 벤츠와 롤스로이스가 굴러다녀요. 우리는 물담배 피우면서 손가락으로 밥을 먹는 줄 알죠? 우리도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클럽 가서 춤추고 놀아요. 우리는 아랍 전통의상 입고 사는 줄 알죠? 우리나라에는 당신 나라보다 명품 입은 여자들이 더 많아요.”

 

 

 

수년 전 모로코 젊은이들끼리 SNS로 돌리던 내용 중 하나다. 10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던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로코는 44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강점에서 벗어나 1956년에 독립한 나라다. 우리처럼 자국이 선진국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탈식민 사고가 강한 나라다.

 

탈식민지 사회 국민들은 19∼20세기에 엄청난 군사, 산업, 경제력의 불균형으로 참혹한 피해를 아주 많이 입었다. 그래서 마치 그 당시의 아픔을 설욕이라도 하듯 산업과 경제 발전, 군사력 강화에 사활을 거는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의 탈식민 국가군인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자연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도 성장을 위한 공장과 아파트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무기 생산의 후유증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무기를 생산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014 43일자 <로이터통신> 2000∼2015년 사이에 중국의 무기 개발 투자가 계속 증가해 2015년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의 통합 국방 예산을 초과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중국과 중동 국가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경제 대국임을 보여주려고 더 높은 고층 빌딩을 건설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128층을 자랑하는 중국의 상하이타워가 채 완공도 되기 전에 202층 규모의 중국 챵사 스카이시티, 마침내 높이 1㎞를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돔타워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BTBUH 데이터 베이스에 의하면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개의 건물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UAE 등 탈식민 국가에 집중된다.

 

이런 탈식민 국민들의 태도는 탈제국 국민들의 태도와 많은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파리나 영국의 런던은 오히려 옛 건물을 부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법적 장치가 많으며 신축 건물 높이 제한도 매우 엄격하다. 당연히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1969∼1973년에 프랑스 파리 외곽에 세워진 59층 몽파르나스타워(Tour Montparnasse)는 오늘날까지 파리 시내의 유일한 초고층 건물(Gratte-ciel)로 남아 있다. 당시 최신 공법으로 지은 이 건물은 우리나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센트럴시티나 삼성동 COEX처럼 고속철 TGV(테제베)역을 포함한 교통 허브, 쇼핑몰, 고층 사무실을 겸비한 최첨단 부동산 프로젝트였다. 이 건물은 59층 꼭대기에서 파리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파리하늘(Ciel de Paris)’ 음식점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파리가 아름다운 역사 도시일 뿐 아니라 세계 선진 도시의 반열에 서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파리 시민들은 이 건물을흉물이라며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이후부터 파리 시내에서는 7층 높이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법을 통과시켜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웠다. 그 결과 파리 시내에는 더 이상의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

 

반면 2012년 말 <문화일보>의 한 기사는 우리나라 20∼30대 고소득 예비부부 중 여성 35%가 청담동을, 23%가 서초동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지역을 선호하는 한국인들 중 남성 29%, 여성 23%고급스럽고 세련된 동네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눈에는 그만큼 강남이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인다는 얘기다. 그에 비해 필자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수학하고 있는 외국인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해방촌, 연희동 등 동네 고유의 특성이 남아 있는 동네에서 사는 것을 선호한다.

 

문화DNA 차이로 인해 파생하는 서로 다른 미적 감각은 해외 진출 기업들이 현지 고객들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현지의 비즈니스 파트너 등을 대접할 때 적절히 활용돼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탈식민 국가 시장으로 진출할 상품은 세련미, 선진성, 첨단성, 유행 등을 강조하는 것이 유리하고, 현지 고객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내가 소비와 대중문화의 선두주자임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복장, 말투, 패션 등을 갖추는 것이 좋다. 그러나 탈제국 국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역사성, 스토리, 나만의 개성을 강조해야 유리해진다.탈식민 시장에서는 탈제국에서 개발된 스토리텔링, 원조성(Authenticity) 강조 등이 불필요한 노력이 될 수 있다.

 

3. 탈제국 사람들의 문화 DNA

1) “우리는 정의의 수호자

2008년 파리 시내에서 티벳 독립을 옹호하며 중국 올림픽 성화 봉송대의 행진을 가로 막은 시위대는 티벳 사람들이 아닌 프랑스 사람들로 이뤄져 있었다. 중국인들이 프랑스가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한다고 분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탈식민 국가 시장으로 진출할 상품은 세련미, 선진성, 첨단성, 유행 등을 강조하는 것이

유리하고, 현지 고객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대할 때도 대중문화의 선두주자임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복장, 말투, 패션 등을 갖추는 것이 좋다.

 

탈식민 국민들이 남의 비판에 민감한 것만큼 탈제국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정부나 기업의 윤리 문제에 민감하다. 그들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인권 문제가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믿는다. 그래서 윤리에 어긋난 정부나 기업이 발견되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나 불매 운동을 벌여 해당되는 사람들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돕는다. 미국에는 유명 로브스터(Lobster) 요리 체인 레스토랑인 Red Lobster가 있다. 이 체인점은 남미의 작은 섬나라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제주도의 해녀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건져 올린 로브스터를 싸게 사와 미국인들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로브스터 요리를 제공해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 체인이 제3국 젊은이들이 안전장치 없이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장시간의 작업으로 잠수병에 걸려도 제때 의료조치를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소비자들의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곧 경영난에 빠졌다.이 사건은 필자가 뉴욕대 경영대에 재학 중이던 2002, 케이스 스터디 자료로 쓰일 정도로 미국 비즈니스계에 잘 알려진 사건이었다. 미국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 역시 아동 노동과 관련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매출 급감으로 엄청난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1998, 나이키 CEO 필 나이트가이제 나이키 하면 사람들은 노예 노동 수준의 낮은 임금, 강제 야근 등을 떠올린다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후 경영 투명성과 노동 환경 개선을 경영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노력을 퍼부은 끝에 2013 59일에서 모범 케이스로 소개할 만큼 회복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왜 탈제국주의 국민들은 티벳, 수단 같은 먼 나라 내정에 개입하고 해외 노동자들에게 상해를 입힌 자국 기업에 냉정한 응징을 가할까? 이는 탈제국 사회 시민들이 내면에 뿌리 깊게 갖고 있는백인의 짐’ ‘문명화 임무라는 인식과 연결된다.

 

2) ‘백인의 짐문명화 임무’ (White man’s burden/ La mission civilisatrice)

탈제국 국민들은 전 인류의 행복과 안전을 자기들이 나서서 지켜야 한다는 독특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나는 돈으로 투표한다라며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친환경, 공정거래, 노동환경, 지역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이행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고 기준에 맞는 기업의 상품을 골라 구매한다. 이와 같은 탈제국 국민들의 윤리관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려고 만든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 또는문명화 임무(La mission civilisatrice)’로 불리던 개념에 뿌리를 둔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보다 먼저 정신적·물질적 발전을 이뤘으니 솔선수범해서 아직 야만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 사람들을 인간답게 살도록 이끌어 줄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의 지도층들이 만들어 자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퍼뜨렸다.

 

세계 최강대국이던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은 세계 5대륙에 걸친 어마어마한 영토를 식민지로 확보했다. 대영제국은 오늘날의 인도, 중국의 일부,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리아, 캐나다, 미국 동부, 아프리카의 절반,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을 지배했고 프랑스 제국은 캐나다 일부,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인도 남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광저우만, 상하이 일부를 지배했다. 풍습, 사고방식, 민족성, 언어가 각기 다른 수백 개의 민족들을 하나의 통치권으로 묶어 다스리면서 자신들이 만든 법이나 윤리관을 인류가 보편적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1956년에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돼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영화왕과 나의 줄거리를 보면 동남아시아의 사이암 왕국(지금의 태국과 인근 국가 일부)의 왕이 자녀들에게 선진 교육을 시키려고 영국인 여자 가정교사를 채용한다. 그녀는 이곳으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 아들이 엄마를 따라 오며엄마, 왜 사이암의 왕이 영국 사람을 가정교사로 써요?”라고 묻는다. 엄마는아들아, 영국의 법도가 세계의 법도이기 때문이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 영화 내용은 곳곳에 아시아의 왕은 가족들을 함부로 대하고 신하들을 학대하는 잔인한 독재자인데 일개 가정 교사인 영국 여성의 노력과 굳건한 도덕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인격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메시지가 진하게 깔려 있다.

 

탈식민국 국민들이 탈제국주의 국민들이 강요하는 윤리관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외세의 강요로 이질적인 가치관과 문화와 관념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의 정신적 갈등을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 인도로 파견된 한 영국인 판사의 예를 보자. 그때까지도 인도에는 죽은 남편의 시신을 화장할 때 살아 있는 아내도 같이 태우는사티라는 풍습이 있었다. 영국 법으로는 산 사람을 불태우는 것은 살인 행위로 불법이었다. 영국인 판사는 장례식에서사티를 감행한 상주들을 잡아들여 영국 법을 적용해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자 현지인들이 판사에게 달려와 오래된 인도의 전통에 간섭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영국인 판사는 그들에게당신들은 계속 당신네 풍습대로 장례를 치러라. 그런데 우리 영국에도 오래된 풍습이 있는데 멀쩡한 여자를 불태워 죽인 사람들을 사형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죽은 남자와 산 여자 화장시킬 땔감을 준비하고 우리는 산 여자를 태울 당신들을 처벌할 교수대를 준비할 테니 각자 자기 풍습대로 하자라고 외쳤다. 이 밖에도 전통적인 풍습과 의례가 갖는 양국의 의미 차이로 정복자인 영국인들과 정복 당한 인도인들 사이에 수많은 갈등이 발생했다. 드디어 1857년 인도 전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동이 발발해 수많은 영국과 인도 양측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제국주의자들은 풍습과 관습, 문화가 전혀 다른 여러 민족들을 통합된 하나의 법으로 다스리면서 여러 돌발 상황들을 경험하고 진압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엄청난 비용과 지식을 퍼부었고 그 결과 거의 모든 민족들이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공통 가치관을 만들어 냈다고 자부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자신들이 만든 윤리관과 법이 만인에게 공통으로 적용시켜야 할 가치라고 믿는다.그래서 프랑스인들도 자유와 억압에 저항할 권리를 빼앗긴 티벳 사람들이 중국 정부에 저항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내정 간섭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라고 여겼고 파리를 통과하는 베이징올림픽 성화대가 지나가는 것을 가로막으며 시위를 벌이고 중국 정부의 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그에 비해 중국인들은 이런 행동을 자기들의 고유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사고 방식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업에서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벌인 자선사업이나 여성,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 등이 오히려 제국주의적 태도로 오해 받아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도 현지에서 탈제국과 탈식민지의 서로 다른 가치관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공장 등의 주재원 경험이 있는 한국 대기업 임원이나 중소기업 사장들은 입을 모아 현지 직원들이너무 게으르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오래된 소승 불교 문화권이다. 미국 미시간대 불교학 교수 로페스는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의 소승 불교는 수십억 년간 환생을 거듭하면서 수련을 쌓아야 열반에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시간의 스케일이 우리와 달리 엄청나게 커서 이들에게는 한 시간은 물론, 80년 인생 정도의 시간도 사사롭게 생각하는 문화 DNA가 뿌리 깊다. 이들은 자신들의 느린 행동을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유 있다고 믿는다.지금은 한국이 그들보다 경제 우위에 있는 만큼 한국인들이 강요하는 근면, 성실, 빠른 스피드에 맞춰 일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들과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함이 가득할 수 있다. ‘현지 노동자들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우리 기업 임원들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좋은 소통과 교육 방법도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문화 DNA를 단번에 고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을 시켜야만 상생할 수 있다. 따라서 진짜로 근면 성실, 빠른 스피드가 필요한 분야는 한국인을 현지에 파견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4.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전략

1) 새롭게 열린동양 문화시장

필자의 학부 은사 중 한 명인 뉴욕대(NYU) 티모시 미첼 교수는 <이집트의 식민지화>라는 저서를 통해 외국 문화를 대하는 제국주의 사람들의 우월감을 따끔하게 꼬집었다. 다음은 그중 한 구절이다.

 

“베를린의 한 학회에서는 동양 사람들을 마치 책 속의 화보처럼 실제로 보여주는역겨운행위가 자행됐다. 옥스퍼드대의 산스크리트어 교수는 진짜 인도인 학자를 데려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관중 앞에서 브라만 의례와 기도를 시범 보이도록 했다. 그러자 옥스퍼드대의 막스 뮐러 교수는 마치 그와 경쟁이라도 벌이듯 일본 승려 두 명을 무대에 올려 그들의 의례를 장기자랑처럼 보이도록 했다. 마치 두 명의 서커스 단장이 자기가 기르는 원숭이를 데리고 나와 재주를 더 잘 부린다고 경쟁하는 꼴이었다. 스톡홀름의 고대사 연구 학회에 고대의 기원지인 이집트 학자들이 참여했지만 유럽 학자들은 이집트 학자들이 유럽 언어가 아닌 자국 언어로 학문적 견해를 발표하자 이들을 학자가 아닌 연구 대상 내지 구경거리로 생각했다.”

 

‘현지 노동자들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우리 기업 임원들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좋은 소통과 교육 방법도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문화 DNA를 단번에 고칠 수는 없다.

 

이렇게 식민지의 전통과 문화가 제국주의자들인 서양인들의 호기심과 눈요기를 위한 구경거리로 취급 당하던 것을 두고 작고한 컬럼비아대 교수 에드워드 사이드는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붙였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 탈식민 사회 국민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건축물, 삶의 방식들을 비근대적이라며 내다 버리고세계 속에서 나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며 가장 현대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아시아의 시장 경쟁력이 높아져오리엔탈리즘이 국제 비즈니스에 상당히 복잡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면서 동양은 자신의 문화에 기초한 상품을 내놓으려고 분주한 상황이 됐다.

 

우리는 최근 일본이 김치 생산에 나선 것을 보고문화 약탈’, 또는문화 탈취라며 분개했지만 한국 문화를 상품화해서 수지 효과를 누리려면 앞으로 더 많은 경계 대상을 만날 각오를 해야 한다. 얼마 전 한식 세계화 관련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김치를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해 요리책을 쓰고 있는 한 독일 여성에 대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또 한국의 된장, 간장 등 소스 맛의 조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도표화해서 판매하는 스페인 식품회사도 TV에 소개됐다. 이것은 앞으로 10∼15년 안에 우리 전통 음식인 된장, 김치 같은 음식 상품들이 스페인의 된장 회사나 독일의 김치회사와 경쟁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문화는 한국 기업의 전유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R&D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 한국 문화에 대한 권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남의 문화도 활용할 줄 알아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사실 한국은 다른 탈식민 국가들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 탈식민지 국민들 눈에 한국은 탈식민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고현대적인 건물들을 많이 세운 매력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김수현, 전지현 씨가 출연한 드라마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자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치킨 요리와 맥주 체인의 매출이 급상승해 우리나라 기업들도 한국 문화 세계화에 대한 경제적 효과에 큰 기대를 걸게 됐다. 필자가 참여했던 한 표적집단면접법(FGI)에서 외국인 중 특히 탈식민국가 출신 시민들은 한국 드라마에 비쳐진 고층 건물과 승용차가 즐비한 한국의 모습에 반해서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을 탈식민지 국가의 롤모델로 삼는 여러 후발 주자들도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탈제국의 국민들이 선호하는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낼 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미 중국은공자’ ‘적벽대전’ ‘홍시’ ‘진링의 13소녀같은 영화들을 제작해 동서양 모든 영화팬들에게 중국의 전통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성공했다. ‘난징 학살등의 아픈 역사도 훌륭한 영화로 제작해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태국은양꿍’이라는 태국 전통 음식을 제목으로 한 무에타이 무협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해 많은 서구 영화 팬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인도네시아도 전통 무예인페칸실락을 주축으로 하는 ‘Raid’라는 액션 영화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세계곳곳으로 수출해 인도네시아 국가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2) 탈제국 국가들의 문화전략이 주는 시사점

‘국가 브랜드라는 용어를 만들어 유행시킨 사이먼 안홀트(Simon Anhalt)는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모인 EuroPCOM 2011년 기조 연설에서지금은 모든 나라들이 전 세계의 관광객, 투자자, 기업유치를 위해 경쟁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세계 시장에서 자국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무섭게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연설에서 후발 주자들의 무서운 추격을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국제 시장 진입 문턱에서 곧 미끄러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탈식민 국가의 기업가들도 탈제국주의 국가 시장을 개척하고 전 세계로 자국 문화를 퍼트려 국가 브랜드와 상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촘촘한문화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문화 차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정교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탈식민 국가의 국민들이나 기업들이 탈제국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탈식민 국가들은 자국의 문화를 타국이나 타 지역에 퍼뜨리면서 경제효과를 가져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탈제국주의 국가들은 남의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더 큰 경제효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파에 집중하느냐, ‘수용과 재창조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다. 예를 들어보자.

 

입생로랑이 연 매출 12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데에는 1967년 아프리카 컬렉션과 1976년의 러시아 컬렉션이 지렛대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 컬렉션에서는 아프리카 전통 의상과 패턴, 강렬한 색상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러시아 컬렉션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과장된 털모자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의상들은 세상의 패셔니스타들에게 프랑스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이국적인 멋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범세계적 브랜드로 입생로랑을 위치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국 문화 상품화에 안주하지 않고 타국 문화를 무차별적으로 상품화해 수출로 흑자를 올리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전통이다. 루이 14세 때 이미 프랑스 디자이너들은 터키풍(Turquerie)과 중국풍(Chinoiserie) 패션을 영국에 수출해 큰 수익을 올렸다. 19세기 초반에는 이집트 패션을 전 유럽에 유행시켰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영국풍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딴앙글로마니아붐을 일으켜서 영국에 역수출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샤넬의 경쟁자였던 디자이너 폴 포아레(Paul Poir)는 일본 기모노 디자인을 재해석한 패션을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부르며 전 유럽에 유행시키고 일본에도 역수출 해 큰 성공을 거뒀다. 영국의 유명한 관광지 로열 파빌리온(Royal Pavillion)은 인도풍 건물이며, 영국의 인도인 거리인 브릭스레인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카레를 먹으러 오는 유명 관광지로 엄청난 경제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애리조나(Arizona)라는 브랜드가 벚꽃이 그려진 청자색의 포장을 한 냉녹차를 판매해 큰 이익을 내고 있다.

 

다른 국가, 특히 탈식민 국가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도 타국 문화를 현명하게 경영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면 우리 것을 무조건 가르치려 들기보다 현지의 전통, 문화, 언어적 특성, 생활 태도, 철학, 문학적 전통 등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을 대하고 소통해야 한다.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 동인도회사 등 제국주의 기업들만 해도 인류학자와 비교언어학자들을 양성하고 연구 기금도 아낌없이 투자해 그만큼의 성공을 이뤘다. 이 당시의 막대한 투자는 제국주의 어드밴티지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현재도 영국 기업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바탕이 됐다.

 

결론

실제 역사, 그리고 역사교육 현황을 파악하라

프랑스 철학자 알랑 바듀가 저서 <금세기>에서 20세기를괴물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로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는 보기 드물게 끔찍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외국 문명의 조기 도입 등으로 일찌감치 불균형한 산업 기술과 군사력의 수혜자가 된 몇 나라가 전 세계의 사상, 문화, 학문, 정치 등을 300여 년 동안 독점 지배해 온 악영향이 폭발적으로 퍼진 것이 바로 20세기였다. 세계화가 진행된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예전의 제국주의 국가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과 그 지배를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저항했던 유산을 가진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정신과 사고 체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사고 체계의 차이는 심지어 같은 탈식민지 국가에서도 존재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똑같이 스페인이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고 세운 나라지만 아르헨티나 어린이들은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영웅적으로 원주민과 싸워 승리하고 스페인 왕실의 가호 아래 아르헨티나가 세워졌다고 배운다. 즉 아르헨티나 어린이들은 실제 자기가 인디오 출신일지라도 자기들은 스페인 제국의 후예라고 믿는다. 그에 비해 멕시코 어린이들은 선조들이 이룬 위대한 아즈텍 제국을 스페인이 자기들 마음대로 침략하고 멕시코인들을 노예로 부렸다고 배운다. 그리고 멕시코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해방을 이룬 나라에 자신들이 살고 있다고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인과 멕시코인은 지향점과 세계관이 매우 다르다고 한다. 그만큼 실제 역사와 언어만큼이나 역사교육도 문화 DNA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해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현지 시장 진입에 성공하려면 현지인들의 문화 DNA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현지인들의 문화 DNA 파악에 그 나라 사람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국사 책이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번 호에 다룬 탈제국주의-탈식민지 유산만큼이나 각 국가 혹은 지역의 문화 DNA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있다. 호주, 미국, 캐나다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식민지도, 제국도 아니었고 집단 이민으로 이뤄진 신대륙 사람들과 역사적 전통이 강한 구대륙 사람들 간에도 상당한 문화 DNA 차이가 존재한다. 다음 호에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화 DNA 차이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 Hyper-personalization 2020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