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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에 대한 새로운 생각, 그리고 성공

최정욱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경영 환경이 예측하지 못하게 변화하고 기술의 발전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지자 R&D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던 P&G R&D 투자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대책으로 R&D 기능을 외부로 확장한 ‘C&D(Connect & Develop)’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모든 새로운 기술과 혁신 역량을 자체적으로 다 보유할 능력도 없고, 또 필요도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외부의 유능한 공급자와 연계(Connect)해 그들의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Develop)하고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이룩하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공급자를 통한 혁신과 성장(Growth and innovation through supplier)이 화두다. 공급자는 더 이상 기업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 기업이 혁신적이고 강한 기업이 되려면 공급자를 통해 이룩해야 한다. 공급자가 바로 성장의 동력이자 성공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공급자는 기업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채워주고 경쟁력을 만들어 주고 기업과 함께 발전해 간다. 공급자가 가장 거래하고 싶은 기업이 되는 것이 기업이 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다양하고 기발한 앱(애플리케이션)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애플이 짧은 시간에 다양하고 획기적인 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공급자와 혁신생태계 형성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앱 수입의 70%를 개발자에게 주는 방식으로 세계의 우수한 사람들을 공급자로 끌어모았다. 결국 이러한 뛰어난 공급자를 통해 아이폰의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공급자로부터 다양한 경쟁력을 흡수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된 A사의 경영진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기업 경영에서 변해야 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는 새롭고 다양한 경영 혁신 방법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은 전체 자동차의 70%를 외부 공급자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급자가 핵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공급자의 역량 강화, 협력과 신뢰와 공동 번영 등에 기업의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100년 후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철학과 가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공급자에게 가장 혹독한(toughest), 그러나 공급자가 가장 좋아하는(best) 기업이 되자입니다.”

 

필자는 사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가장 혹독한,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이라는 표현이 가능한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A사의 공급자를 만나고 나서 풀렸다. A사 공급자 사장의 말이다.

 

A사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는 정말 힘듭니다. 십수 년간을 A사와 거래했지만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혹독한 날의 연속이었지요. 그렇게 10년을 지내 보니 우리 회사가 만드는 부품이 세계 초일류 수준이 됐습니다. 사실 A사가 하자는 대로 한 것뿐인데요. 돌아보니 10년이 매우 힘들었지만 그렇게 싫지 않았어요. A사가 우리에게 그렇게 한 것이 결국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잘되라고 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A사는 그동안 우리와 함께 성과를 나누고, 서로 협력하고, 같이 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A사는 우리에게 매우 지독하게 하겠지만 우리는 A사를 믿고 있고, 우리는 A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기업이 공급자로부터 구매하는 것은 자재나 서비스가 아니고 공급자의 경쟁력이다. 공급자가 1류면 기업도 1류가 되는 것이고, 공급자가 3류면 1류가 더해지더라도 2류가 되는 법이다. 공급자의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다. 기업은 기업의 앞에 있는 고객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뒤에 있는 공급자에게도 더 많은 관심과 노력,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최정욱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한국구매조달학회 고문 jwchoi@kookmin.ac.kr

최정욱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보링그린대,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등을 거쳐 1995년부터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 CPO포럼을 만들고 한국구매조달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요 관심사는 구매관리, 생산관리, 공급사슬관리, 기업 성장전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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