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편집자주
모두가 ‘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지난 3년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젊은 학자들과 함께 ‘21세기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조만간 책으로 출간될 이 연구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중요성은 인정하나 그 원천은 오리무중인 창조성이 어디서 오느냐’를 찾아내고자 가장 창조적 집단인 세계적 예술가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왜 경영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창조성을 연구했을까? 사실 필자는 이미 1990년대 말부터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나 글에서 창조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필자가 DBR 창간 초기에 가장 먼저 기고한 글도 창조성에 관한 것이었다. 수익성 극대화나 효율성 증대, 경쟁전략 등을 강조해야 할 경영학자가 왜 뜬금없이 당시 심리학자들도 잘 다루지 않았던 창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열변을 토했을까?
2013년 현 시점에서 보면 분야와 국가를 막론하고 창조성이 21세기 초의 핵심 화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이 미래 경영모델로 창조경영을 2006년에 선언했고 올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창조성이라는 표현은 일반인들은 물론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왜 지금 창조성이 전 세계적 관심사일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창조경제나 창조경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최근 넘쳐나는 창조경제와 창조경영에 대한 자료들에서는 대부분 창조를 혁신 창출의 방법이나 유형으로 보거나 ICT와 같은 구체적인 기술 분야, 디자인/엔터테인먼트산업과 같은 특정 산업들의 특성, 또는 경제성장 정책 등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기존 접근법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볼 때 창조성의 의미를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폭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창조경제나 창조경영과 같은 현재 정·재계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유행어들의 피상적 이해를 넘어서서 창조성이 가지는 시대적 의의와 시사점을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화두와 담론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역사의식에 기반한 깊고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21세기 초인 현재, 창조성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설명하려면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대 산업사회의 탄생 과정을 알아야 한다.
현대 산업사회 탄생의 전야
1848년 칼 마르크스는 현대 기업의 조상 격인 대규모 공장들이 막 출현했으나 아직 경영의 기본적 노하우도 갖춰지지 않아 노동착취와 같은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던 초기 자본주의를 목도한 뒤 확신을 가졌다. 조만간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공산당 선언’을 다음과 같은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지금 한 혼령이 유럽 대륙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혼령이.”
혼령이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스멀스멀 스며들듯이 공산주의로의 전환이 모든 유럽인의 마음에 스며들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신만만한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는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기는 했으나 무너지지 않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오히려 사회주의에서 강조했던 노동자들의 인간적 삶은 사회보장과 복지국가 등 좌파진영의 주장을 유연하게 차용한 자본주의체제에서 더 효과적으로 달성됐다. 반면 계급타파를 외치던 마르크스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계급인 공산당의 독재적 권력구조에 발목 잡힌 사회주의 국가들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사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 전환점은 20세기 초 헨리 포드와 프레드릭 테일러 등이 주도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혁명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됐으나 여전히 생산력의 발전은 답보 상태였다. 특히 19세기에 접어들며 지리상의 발견과 제국주의적 시장개척, 공중보건의 향상,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전, 시장경제 확산 등으로 인구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전례 없는 대규모 시장수요가 발생했으나 생산방식의 극심한 비효율성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됐다. 예를 들면, 1880년대 중반 칼 벤츠와 고틀리브 다임러에 의해 자동차가 발명됐으나 20년이 지난 1905년 통계를 보면 연간 전 세계 자동차 총 생산 대수가 5만 대 내외에 머무르고 있어서 시장수요의 10분의 1도 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된 이유는 기계와 도구는 발전했으나 생산방식이 여전히 전문 기술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상품을 만드는 장인생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3년에 작은 자동차 제조업체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장인이나 전문 기술자 같은 특정인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아야 효율적인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닭고기를 부위별로 분리하는 공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체 생산공정을 비숙련 노동자들이 한두 가지 나사만 조이는 단순 반복작업으로 세분화하고 이를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연결시키는 포드주의 대량생산 방식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생산성이 단숨에 수십 배가 오른 것이다. 예를 들면, 1908년에 생산을 시작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1927년에 단일 차종이 1500만 대 생산을 돌파했으며 대당 가격 또한 기존 자동차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장인이나 전문 기술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대량생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만들어내는 양적 효율성이 핵심인 포드주의 대량생산의 발명으로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양적 생산력의 한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20세기 현대 산업사회의 도래 - 효율성 지상주의의 시대
20세기초 현대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생산성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시스템의 핵심 논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양적 효율성 극대화’다. 이 같은 ‘양적 효율성 극대화’는 그 후 산업과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 교육 등 사회 모든 부문들로 확산되면서 현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이끈 시대정신이 됐다. 즉 20세기 백 년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양적 효율성의 시대였다. 이런 양적 효율성 지상주의의 바탕이 된 철학적 사조는 20세기로의 전환기를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도구주의적(Instrumentalism) 합리주의였다. 과학혁명, 시장경제의 확산, 전통적 봉건제의 붕괴와 시민사회의 도래 등과 함께 등장한 합리주의의 물결은 현대 사회로의 대전환의 철학적 기반이 됐다. 즉 냉정하고 치밀한 계산과 계획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도구주의적 합리성이란 최선의 수단을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으로, 20세기 사회 모든 부문의 작동 기저에 깔린 강력한 철학적 사조였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라는 말과 동일시됐고 목적의 효율적 달성과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다른 모든 요소들은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자체가 어떤 어떤 의미나 중요성을 가지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됐다.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고전 사회과학이론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되는 막스 베버는 20세기 초에 바로 이런 도구주의적 합리성에 기반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들에 의해 사회가 조직화되는 것이 현대성(modernity)의 핵심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효율성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도구적 합리주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전 세계적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설적 거장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의 마지막 장에서 도구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현대 조직들은 전대미문의 효율성을 달성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합리화의 추세는 결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며 영원히 인류와 함께 지속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예언을 했다.
20세기 100년은 전반적으로 베버의 예언이 적중한 시기였다. 기계처럼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돼 설계된 조직이나 행동이 아니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으로 폄하됐다. 또 양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최고의 수단인 현대적인 기계적 관료제 조직이 기업이나 정부뿐 아니라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됐다. 효율성 지상주의라는 20세기적 시대정신은 인류 역사상 본 적이 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며 현대 산업사회의 발전을 주도했다. 또한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특권층이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 권력을 독점하며 임의적 호불호에 따라 전횡하던 과거 전통 사회와 달리 최소한 객관적인 법과 규칙, 제도에 의한 지배가 사회 전체를 주도해야 한다는 합리화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인류의 5000년 역사시대를 둘로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 간 구분의 기준에서 볼 때 합리성이 지배하는 효율적인 현대 사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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