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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될 때…

안도현 |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Psychology

Based on “Deliberation’s Blindsight: How Cognitive Load Can Improve Judgments” by Janina A. Hoffmann, Bettina von Helversen, and JÖrg Rieskamp (2013, Psychological Science, 24, 869-879).

 

왜 연구했나?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 다음 수를 던졌는데 그게 오히려 패착이 될 때가 있다. 이런 사례는 일상에서도 흔히 경험한다. 집과 옷 구입, 심지어 배우자 선택에서도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 그리 좋지 않을 때가 꽤나 많이 있다. 머리를 굴리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데로 선택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실행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것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순간도 많다. 눈앞에 이익이 명백하게 보인다고 해서 마음이 가는 대로 덥석 물었다가 후에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심사숙고는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심사숙고는 어떤 상황에서 독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 약이 되는 것일까?

 

무엇을 연구했나?

사람이 판단을 내릴 때 늘 같은 인지전략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원리를 따져 판단할 때도 있고 유사성이나 이전 사례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도 있다. 원리기반의 판단과 사례기반의 판단에 작용하는 인지작용은 전혀 다르다. 원리나 규칙을 따져 판단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여러 상황과 요인을 하나씩 따져 봐야 한다. 그만큼 두뇌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반면 사례기반 판단은 굳이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다. 유사한 사례를 참조해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는 오히려 깊은 생각이 판단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병원 응급실은 대단히 혼잡해서 인지부하가 심각하게 걸리는 곳이다. 수시로 환자가 실려 온다.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내기도 하고 환자 가족이 울기도 한다. 또 이해관계자들이 큰소리를 내며 다투기도 한다. 응급실은 의사가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인지부하가 심하게 걸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대부분 적절하게 처리한다. 이는 판단을 내릴 때 원리기반의 인지전략을 사용하기보다 사례기반의 인지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례기반의 판단을 잘 내리려면 숙련이 필요하다. 유사한 사례를 풍부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해당 사례에 대해 충분하게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유사한 사례가 자동적으로 머리에 떠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인출되는 작용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즉 원리기반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면 심사숙고가 필요하지만 사례기반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심사숙고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연구했나?

스위스 바젤대 공동연구진은 심사숙고가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기 위해 두 차례의 판단과제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인물(쏘닉)이 가상의 생명체(골비스)를 얼마나 많이 잡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도록 했다. 쏘닉의 외모에 나타난 다양한 특징이 판단의 기준이었다. 연구진은 머리와 코, 꼬리, , 몸 등의 모양을 조작해 다양한 형태를 지닌 쏘닉의 그림을 제시하고 쏘닉의 모양에 따라 잡을 수 있는 골비스의 숫자를 다르게 했다. 예를 들어, 쏘닉의 머리 모양이 삐죽하고 코는 빨간색이며, 꼬리는 둥글고, 귀는 꼿꼿하고, 몸에 녹색 날개를 달고 있을 때 골비스를 가장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연습을 통해 어떤 쏘닉이 골비스를 많이 잡을 수 있는지 감을 잡도록 했다. 모두 16개의 쏘닉 그림을 보여주고 각각의 쏘닉이 잡을 수 있는 골비스의 수를 알려줬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쏘닉 그림 16개를 보여주고 각각의 쏘닉이 잡을 수 있는 수를 가늠하도록 했다. 과제에 앞서 참가자들의 작업 기억용량도 조사했다. 이는 판단과제의 결과가 개인 차이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참가자들은 세 집단으로 나뉘어 과제를 수행했다. 세 집단은 인지부하가 많이 걸리는 집단과 적게 걸리는 집단, 인지부하가 걸리지 않은 집단이다. 인지부하가 많이 걸리는 집단은 과제를 수행할 때 글자를 4개 보여주고 외우도록 했고, 인지부하기 적게 걸리는 집단은 2개만 보여준 뒤 외우도록 했다. 인지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한 집단에는 글자를 기억하는 과제를 주지 않았다.

 

무엇을 발견했나?

참가자 대부분은 14회 정도 과제를 수행한 다음 어떤 모양의 쏘닉이 골비스를 잡을 수 있는지 가늠했다. 세 집단 중에 과제를 잘 수행한 집단은 인지부하가 걸린 집단이었다. 인지부하가 적거나 많이 걸렸을 때 모두 인지부하가 전혀 걸리지 않았을 때보다 쏘닉의 모양에 대해 정확히 판단했다. 연구진은 인지부하에 따라 참가자들이 판단에 사용하는 인지전략이 어떻게 바뀌는지 분석했다. 인지부하가 걸린 집단의 참가자들은 주로 사례기반 판단전략을 구사했고, 인지부하에 걸리지 않은 집단은 주로 원리기반 판단전략을 구사했다. 판단의 정확성은 인지부하가 많이 걸린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사례기반 판단전략을 구사하는 참가자들은 인지부하가 많이 걸린 상태에서 과제를 수행할 때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반면 원리기반 판단전략을 구사하는 참가자들은 인지부하가 적게 걸린 상태에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현대사회에서는 정보가 넘쳐난다. 그만큼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인지부하에 걸려 있다. 이는 시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다. 또 동시에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상황에서 한꺼번에 여러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대체로 다중 작업과 같은 정보의 홍수가 사람들의 판단에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팝콘 브레인(첨단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나머지 뇌가 현실에 무감각하거나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라고 운운하며 미디어의 사용이 인간의 뇌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과도한 미디어의 사용이 득보다는 해가 더 많다는 점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미디어의 다중 작업처럼 인지부하에 걸리는 상황이 의사결정에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규칙을 찾아내고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는 가급적 인지부하가 많이 걸리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일을 할 때는 오히려 인지부하가 많이 걸리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례기반의 판단을 내릴 때는 작업 기억을 이용하기보다 암묵적으로 형성된 절차적 기억에 더 많이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지부하에 걸려 있지 않아서 두뇌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있을 때는 절차적 기억을 실행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할 때는 절차기억을 인출하는 사례기반의 판단전략을 무의식적으로 적용한다. 그런데 운전할 때 운전대를 어떻게 움직이고, 기어는 어떻게 넣으며,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주시해야 한다는 절차를 의식하면 오히려 운전을 잘 못하게 된다. 의식이 절차기억의 인출을 간섭하기 때문이다. 정신 없이 바빠서 인지부하가 많이 걸리는 것이 익숙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는 오히려 일을 정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안도현 소셜브레인 대표 dohyun@SocialBrain.kr

필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Colorado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 석사, University of Alabama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설득에 미치는 영향이다. 심리과학의 연구성과를 기업경영 등 현실에 접목하는 과학커뮤니케이션(기고,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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