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Scenario

스마트도로를 달려온 G20+2 회의장 마지막 보안검색, 나노로봇이 몸안에 들어왔다

128호 (2013년 5월 Issue 1)

 

 

편집자주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한 대통령 후보가 출마 선언문에서 낭독한 이 말은 미국의 공상과학(SF·Science Fiction) 소설가인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으로부터 빌렸습니다. SF 작가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기술과 소비/사회 현상을 과학자나 사회학자보다도 먼저 예측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일례로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1968년 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뉴스패드라는 이름으로 아이패드 형태의 터치스크린 전자신문을 정확히 묘사했습니다. 탱크(H.G. 웰즈가 1903년 쓴 소설에 묘사됨. 실제 발명은 1916), 큐비클 형태의 사무실(E.M. 포스터의 1909년 소설에서 처음 묘사. 실제로 기업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전파 레이더(휴고 건즈백이 1911년 쓴 소설에 등장. 실제 발명은 1933)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동아일보 장강명 기자가 SF 단편소설의 형태를 빌려 2020년 서울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장강명 기자는 장편소설 <표백>(2011년 한겨레문학상) <뤼미에르 피플>(2012)을 펴낸 소설가이자 SF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SF의 통찰력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2020 1010, 오전922, 송도인천타워 부근

“‘주요 20개 국+2단체(G20+2)’ 송도 시민들이 만듭니다.”

 

슬로건 참 지지리도 못 만들었네. 최은호 대통령은 리무진 안에서 회의장인 송도인천타워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연도가 2020년이고 참석하는 나라가 20개이며 국가는 아니지만 국가급으로 대접받는 초국적 단체 2, 그리고 한국에서 2번째로 열리는 주요 20개 국 정상회의이니까 ‘2’라는 숫자를 강조하면서 재밌는 슬로건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저 슬로건은 혹시 일부러사실 우린 관심 없소라는 뜻을 드러내려고 지은 것 아닐까?

 

시위대 때문에 차가 막히는 바람에 쓸데없는 잡념이 길어졌다. 하긴, 맥 빠지는 슬로건 문구 못지않게 시위대의 열기도 밋밋하다.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처음 열렸던 10년 전 2010(그때 최 대통령은 국회의원이었다)의 시위대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다. 오늘 시위대 숫자는 얼핏 보기에도 1000명이 안 돼 보인다. 인천타워가 있는 블록을 간신히 한 바퀴 두른 수준이다.

 

숫자도 예전에 비해서 확실히 줄었지만 시위 양식도 좋게 말해법 지키는 시위대가 됐고 비꼬아 얘기하자면 야성(野性)이 사라졌다.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외출을 꺼리는 풍토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최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대량 보급된 경찰용 드론(drone)이다. 과거 군용으로나 쓰던 무인항공기 드론은 잠자리 크기로 소형화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초소형 카메라가 하나 달려 있고 시속 40㎞의 속도로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보급형 모델이 고작 탕수육 두 그릇 가격이다. 카메라가 3개 달리고 속도가 조금 더 빠르며 360도로 회전이 가능한 경찰용 제품도 그리 비싸지 않다.

 

지금 저 건물 주변에 드론이 몇 대나 떠 있을까? 1000? 2000? 요즘 만들어지는 경찰용 드론은 곤충 떼처럼 군집지능이 있다. 500대 이상이 한자리에 있으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시위대의 움직임을 상당한 수준으로 예측하고 한발 앞서 좋은에 떠 있다가 증거 영상을 채집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조금이라도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바로 사진 수백 장이 찍힌다. 여러 각도에서 찍힌 사진 때문에 얼굴 윤곽선이 3차원으로 그려지고 한두 시간이면 신원이 파악된다. 마스크나 두건을 쓰고 있어도 소용없다. 이 드론들은 비가시광선 영역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원내대표 시절이었을 때 드론 금지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올라왔다가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채 폐기됐다. 너무 늦게 올라온 법안이었다. 경찰과 경찰 출신 의원들이드론이 없으면 도시 뒷골목은 다시 1990년대 수준으로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고,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상당수 동조했다. 게다가파파라치형 셀카를 찍으려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개인용 드론이 유행해 수십만 대가 시중에 팔린 상태였다. 그것을 일일이 회수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으며 또 허가를 받아야만 드론을 살 수 있게끔 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드론 금지법안은 처리되지 못했지만 스마트 콘택트렌즈 금지법안은 그 회기에 통과됐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달린 렌즈와 저장장치가 달린 본체가 분리돼 있고 눈에 보이는 영상을 그대로 5시간 동안 초고화질로 저장할 수 있는 그놈의 콘택트렌즈가 널리 유포됐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야말로 사생활의 종말이다. 이 렌즈는 한국에서 제일 처음 개발됐고, 한국에서 제일 먼저 금지됐다. 다른 나라에서도 바로 금지법이 생겼다. 가산디지털미디어단지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업체는 그 후 군수업체가 됐다.

 

최 대통령은 눈길을 다시 차 안으로 돌렸다. 앞좌석 등받이와 그의 눈 사이에는가상 화면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실체 없는 허상이지만 깜빡거리는 램프 표시에 손을 댈 때에는 그럴듯한 촉감도 느껴졌다. 정전기를 이용한 촉감 기술이다.

 

홍보수석실에서 보내 온 보고서가 펼쳐졌다. 인도 정부 대표단이 오늘 아침에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회의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각국이 서비스 부문 인력시장을 더 개방하고 관련 비자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인도의 요구는 간단하고 또 예상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이 발표할 공동 성명서(코뮈니케)에 포함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요구를 들어줬다간 미국에서 구직자들의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G20+2 회의장인 송도인천타워 1층에서 마지막 보안검색이 있었다. 엑스레이 검사대도, 폭발물 탐지견도, 보안검색 요원도 없었는데, 심지어 그는 대통령인데도, 괜히 가슴이 뛰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로봇이 옷과 가방을 뚫고 들어와 그 안을 이 잡듯 살핀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송도 자유경제지구에 있는 병원에서는 신체검사를 할 때 나노 로봇들을 환자의 몸속에 넣는 검진법을 택할 수 있게 한다고 들었다. 대장내시경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나노 로봇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게 더 불쾌한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오전1038, 송도인천타워 국제회의장

“뭐, 우리 사이에 이견은 없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최 대통령님?”

 

독일 총리가 친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 모양과 실제 말소리가 다른 것이 아주 조금 거슬린다. 어렸을 때 TV에서 하던 토요명화 같은 더빙 외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지 않아요, 최 대통령님?’이라는 말은 아마 영어의 ‘Isn’t it?’에 해당할 텐데 저렇게 번역하는 게 옳은 걸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도 머리를 스친다. 귀에 꽂은 실시간 통역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오전의 환영 리셉션 행사는 실제로는 정상들이 회의장 구석에서 삼삼오오 비공식 모임을 가지라고 멍석을 마련해주는 자리다. 정상들끼리진짜 대화를 할 수 있는 때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특히나 올해 G20+2 의장국인 한국의 대통령은 이 시간이 아니면 다른 정상들을 긴밀히 만날 기회가 없다. 최 대통령은 방금 독일 총리에게 한국의 지나친 무역흑자를 조정할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위스퍼링(whispering) 통역이라고도 하는 근접통역사가 최 대통령과 독일 총리에게서 두 걸음 정도 물러난 위치에서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구글이 개발한 실시간 통역기가 갑자기 고장 난다거나 혹은 기계로는 번역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 문제가 발생할 때 돕기 위해 배치된 요원들이다. 최 대통령은 취임한 후 수십 번의 정상회담에 참석했지만 근접통역사를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 저 근접통역사가 가장 최근에 대기 상태에서 벗어나 실제 일을 한 적이 언제일까.

 

국제회의장 안에는 같은 처지의 근접통역사가 국가 정상과 단체 수장들의 2배수만큼, 그러니까 모두 44명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저들이야말로 지금 한국 고용 문제의 상징이다라고 최 대통령은 생각했다.

 

제조업으로 커 온 한국에는 그런잉여 고용이 많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중 최소 15%가 잉여 고용이라는 보고서도 읽어봤다. 이미 모든 공정이 자동화됐고 심지어 최근의 기계들은 고장이 나도 스스로 알아서 고장을 수리할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다. 노조와 일부 경영학자들은 생산 라인에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고, 또 만의 하나 비상사태를 대비해 인간 근로자가 라인에 배치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대통령 자신과 그가 속한 정당도 그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를 얻기 위해서일 뿐 실제로는 사람이 없어도 공장이 돌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최 대통령은 안다. 군인의 수도 절반 이상 줄였는데 국방에는 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최 대통령님도 점심 때 창덕궁에 가시나요?”

 

독일 총리의 질문에 최 대통령은 정신을 차렸다.

 

“그럼요, 진짜 권력자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우리 같은 정상들이 가서 눈도장 찍어야죠.”

 

‘진짜 권력자들이라는 최 대통령의 대답에 독일 총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G20+2 기간에 열리는 비즈니스서밋(B20)을 위해 참석한 세계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오늘 창덕궁에서 오찬을 갖는다. 최 대통령은 CEO들이 진짜 권력자이고 국가 정상들은 그냥 임시직일 뿐 아니냐는 농담을 던진 셈이었다. 그러나 그 농담에는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기도 했다.

 

스마트 도로를 통해 간다고 해도 송도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창덕궁까지는 30분 가까이 걸릴 것이었다. 출발시간에 쫓겨 최 대통령은 끝내 중국 국가주석이나 미국 대통령과는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G2 수반 두 명이 대화를 너무 오래 했다. 몇 년 전에 휴대용 핵폭탄 공격을 받은 미국은 중국에 테러조직에 대한 공동 대응을 요청했을 것이고, ‘중국붕괴론으로 고민하고 있는 중국은 기업관련법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대가로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기업들이 투자 대상 국가에 법제도 개혁 압력을 넣고, 점점 각국의 기업 관련법들이 미국의 상거래제도를 닮아가는 현상에 대해 정작 미국 정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런 물음에 대해 생각해볼 때마다 최 대통령은진짜 권력자는 국가 정상이 아니라 기업 총수들이라는 농담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느꼈다.

 

 

 

 

 

 

 

오전1149, 서울인천 스마트 고속도로

최 대통령을 태운 1호 차량은 시속 260㎞라는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가 한산한 것은 아니다. 10년 전쯤의 운전자라면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의 도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와 자동차회사가 함께 만든 신교통시스템 덕분에 도로 이용효율은 최근 5년 새 500% 가까이 증가했다. 무인운전차량이 14% 증가할 때마다 도로 이용효율은 평균적으로 배가 된다고 한다.

 

방탄 리무진에 길을 내주는 차량이나, 차량과 차량 사이가 넓어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는 리무진이나,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곡예운전도 이런 곡예운전이 없다. 차와 차 사이의 틈은 3㎝ 정도에 불과하다. 3㎝조차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 비워놓은 것이지 이론상으로는 차 간 간격을 0.3㎝로 설정해도 괜찮다고 한다. 인간 운전자는 꿈도 꿀 수 없는 운전을 컴퓨터들이 해낸다. 길에는 아예 사이드미러를 달지 않은 완전무인운전차량도 제법 보였다.

 

고속운전 모드를 선택하면 차량을 추월할 때마다 길을 비켜준 차에 몇 백 원가량을 송금해준다. 서울까지 대통령 리무진이 추월한 차량이 한 200대쯤 될까? ‘대통령도 추월할 때에는 돈을 내겠습니다.’ 최 대통령의 전임자는 신교통시스템을 도입할 때 이런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반만 옳고 반은 그른 문구다. 대통령이 추월할 때 돈을 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은 결국 세금에서 나온다.

 

창덕궁에는 행사 시작 5분 전에 도착했다. 대통령과 정상, 왕자들이 있던 G20+2 회의장에서 기업 CEO들이 모인 B20 오찬장에 오니 경로당에 있다가 대학생 캠프로 자리를 옮긴 기분이다. 정상들은 잘 봐줘야 인상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인 데 반해 CEO와 그 배우자들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예뻤다.

 

‘대부분의 CEO 내외는 상당히 젊은 사람들이었다라고 표현해도 될까? 대통령·총리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기업 CEO들 상당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피부재생시술을 받아서 주름 하나 없다. 저 피부의 생물학적 나이만큼은 20대 중후반이다. 그네들의 주요 장기 상당수도 생물학적 나이는 20대 수준일 것이다. 요즘은 부자들 사이에 가슴 근육 이식수술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겉은 젊은이, 속은 노인인 부자들이 자기 나이보다 30년 이상 어린 자식뻘들과 연애를 하는 것이 선진국의 한 트렌드가 돼 가고 있었고, 이를 코믹하게 또는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가 각국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실 최 대통령 본인과 영부인도 퇴임 뒤에 그런 안티 에이징 시술을 몇 가지 받아보면 어떨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몇몇 CEO들에게는 그런 미용 시술이 그들의 기업이 판매하는 가장 중요한 제품을 홍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자리에 모인 CEO 80여 명 중 절반은 생명공학과 연계된 상품을 파는 기업을 이끌고 있었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는 듯했던 정보기술(IT) 기업은 이제 포천 500대 기업 리스트 상위에서 내려간 지 오래다. 삼성전자에서조차 각종 유기화합물 판매량이 구식 반도체 판매량을 앞섰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도착한 독일 총리가 이미 카길의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선수를 뺏겼군. 이 권력자들 사이에서도 최고 실세를 꼽으라면 바로 저 아이비리그의 대학 대표 조정선수처럼 보이는 카길 대표다. 누가 뭐래도 앞으로 10년간 최고 산업은 농업이 될 것이다. 상용 농작물 유전자를 실질적으로 소유하다시피한 카길의 영향력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사람이 운영체제(OS) 없이는 살아도 밥이나 빵 없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유럽, 아시아, 북미 할 것 없이 모두 카길의 작물을 키우고 있지만 카길에 가장 의존하는 대륙은 아프리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농업 혁명은 전적으로 카길 덕분이다. 유전자 조작 작물이 없으면 아프리카 경제는 붕괴할 것이다.

 

오찬행사의 기념품으로는 태그호이어가 만든 단백질시계를 받았다. 최 대통령은 강철보다 수십 배 단단하고 질긴 단백질 재질이라는 설명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으나 이 시계를 만든 공장 시설도 대부분이 단백질로 이뤄졌다는 설명을 읽고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시계 제품설명서에는단백질 공장은 친환경 촉매반응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거 화학공장들과 달리 강산·강염기 폐수를 부산물로 만들어내지 않는 친환경 설비라는 태그호이어 측의 자랑이 적혀 있었다.

 

오후22, 창덕궁

오찬 공연이 끝나갈 때쯤 몇몇 사람들이 특이한 자세로 고개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림프액 파동으로 은밀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는 삽입형 이동통신 모듈을 내이(속귀)에 이식한 사람들일 것이다. 뭐 저쯤 되면 초능력자들의 텔레파시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대통령의 구식 휴대전화기에도 잠시 뒤 신호음이 울렸다.

 

‘세이브 아워셀브즈와 국제무슬림연합, 긴급 기자회견. 230분 송도인천타워.’

 

이자들이 결국 사고를 치는군. 최 대통령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올해 G20은 처음으로 국민국가가 아닌 비정부기구 대표가 국가에 준하는 자격으로 참여하는 정상회의다. 20개 국가와 2개 단체 대표가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모임 이름도 ‘G20+2’였다.

 

뒤의 ‘2’에 해당하는 두 단체가 바로 2018년에 각국의 환경단체들이 결성한 범세계적 환경단체인세이브 아워셀브즈와 중동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유럽 이민자 사회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국제무슬림연합이었다.

 

세이브 아워셀브즈와 국제무슬림연합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인구는 세계적으로 최소한 15억 명 이상일 것이다. 그나마 일부 이슬람 국가들이 국제무슬림연합과 거리를 두고 있는 덕이다. 전날 밤 최 대통령이 만난 정상 중 한 명은 세이브 아워셀브즈와 국제무슬림연합에 대해두 단체 모두 어지간한 국가보다 힘이 세고 두 단체 모두 종교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농담을 했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환경운동이 종교운동으로 변질돼 간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으나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환경주의자들의 압력으로환경사랑이라는 과목이 초등학교의 정식 수업으로 의무화되기도 했다. G20+2에 참석한 정상 중에도 열렬한 환경주의자 출신이 있다. 집권한 다음에는 환경주의와 경제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지만.

 

“대통령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응, 짧게. 기자회견 내용이 뭐래?”

 

“내용은 별 거 아니랍니다. ‘주권국가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비정부기구들이 각종 정상회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말만 하고 마칠 거랍니다. 무슬림연합 사무총장이 의장국에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이번에 G20+2 회의에서 자신들이 발언권이 없다는 점을 중동 회원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로서도 이 정도 이야기는 해놔야 면이 설 거라고요. 세이브 아워셀브즈는 기자들이랑 미리 짜고반드시 비정부기구가 참여해야 하는 정상회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핵안보정상회의라고 답하기로 했답니다.”

 

“어떻게 하지? 내가 그리 가야 하나? 그래도 의장인데….”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창덕궁에만 계시면 너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 같고, 그렇다고 자칫 이리로 오셨다가는 오히려 이 기자회견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연출되거나, 아니면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우려도 있어 보입니다.”

 

“여론 시뮬레이션 돌려봤나?”

 

“결과가 나오려면 2분 정도 더 걸립니다. 송도로 오시는 게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이동하실 수 있도록 일단 차는 대기시켜 놨습니다.”

 

2015년 이후 뇌과학에서의 발견과 대규모 병렬처리 프로세스에서 획기적인 진보가 이뤄지면서 이를 응용한 복잡계 시뮬레이션이 각광을 얻고 있었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이 시뮬레이션의 최대 고객그룹 중 하나였다.

 

‘복잡계 시뮬레이션은 참 편해. 보좌진에게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거든.’

 

2분이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최 대통령은 속으로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선거 기간 동안 예측에 대한 예측, 분석에 대한 분석이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결단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고 인간의 지능보다 몇 배 뛰어나다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도 그런 결단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결단은 원시적인 업무였다. 그럼에도 복잡계 시뮬레이션이 없으면 이제 아무런 의사결정도 내릴 수가 없다.

 

“거기 계시는 게 나을 것 같답니다. 비서관들에게 유감 성명을 준비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홍보수석이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 대통령도 다시 시속 300㎞로 송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기분이 좀 풀렸다. 그래도 언론사들이 취재를 위해 띄워놓은 드론에 웃는 모습이 잡혀서는 곤란하겠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자.

 

창덕궁 한쪽에 원격몰입 무대가 생겼다. 행사 운영진이 센스를 발휘해 기자회견장 현장을 창덕궁 한가운데서 생중계한 것이다. 어느 지점을 경계로 잔디밭이 송도인천타워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바뀌었다. 광신호를 이용한 이 기술은 데이터 전송 실패가 거의 없다. 국제무슬림연합 사무총장이 수십㎞ 건너편에서 최 대통령을 알아보고 목례를 했다. 그의 표정은 근엄했다. 최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기자회견문 낭독을 기다렸다.

 

 

 

장강명 소설가/동아일보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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