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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창업한 회사, PT하고 투자하고…

김경호 | 73호 (2011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필자가 듀크 MBA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수업은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 교수가 강의하는 Entre-preneurial Finance다. 이 수업은 다양한 창업 실화 중 주목할 만한 성공 및 실패 사례를 다룬다. 창업 아이템, 경영진의 자질, 사업 전략, 시장 및 소비자 분석 등 정성적 부분과 사업 가치 평가, 투자 타당성 분석, 수익성 분석 등 정량적 부분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이 수업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교과서에 있는 케이스를 토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벤처투자자가 되는 현실을 경험하게 해줬다는 점이다. 심지어 수강생 중 일부는 실제 창업을 하기도 했다.
 
범상치 않은 교수의 등장과 첫 수업
로빈슨 교수는 첫 수업 전 1980년대 중반 영국의 한 발명가가 내놓았던 1인용 소형 전기자동차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하겠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통상 첫 수업의 절반을 수업 소개 및 진행 방안에 할애하는 다른 교수들과 달랐다.
 
수업 당일 강의실을 찾아 자리를 잡은 필자는 갑자기 수강생들의 웅성거림과 수강생들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놀랐다. 얼떨결에 밖으로 따라 나가던 필자는 로빈슨 교수와 유쾌한 조우를 했다. 로빈슨 교수는 사례에 등장한 1인용 자동차를 직접 몰고 교실에 나타났다. 얼떨떨해 하는 학생들 앞에서 교수는 몇몇 학생들에게 시운전을 제안했다. 이에 몇몇 학생들이 건물 복도를 왕복하기도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수는 교실 정중앙에 그 자동차를 올려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투자자라면 이 소형차 사업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투자하고 싶은 학생은 손 드십시오.” 대부분의 학생들이 손을 들지 않았다. 이 소형차가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면 현재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교수가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죠. 왜 투자를 꺼리나요? 왜 이 사업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봅니까?”
 
제품을 앞에 두고 시운전까지 경험한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학도 출신의 한 학생은 차체의 구조적 안정성 문제와 저성능 배터리를, 다른 학생은 아웃소싱 과정의 비효율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다른 학생은 수요 예측이 너무 공격적이고, 사업 가치도 부풀려져 있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차량 관련법규의 변화 가능성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제기했다. 예상대로 이 소형차를 만든 회사는 부진한 판매, 소비자의 불만, 비효율적 마케팅으로 큰 실패를 경험했다.
 
능숙하게 토론을 이끌던 로빈슨 교수는 수업이 끝날 때쯤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수업을 통해 네 가지를 얻어가길 바랍니다. 첫째, 창업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만심과 낙관론입니다. 자본시장 참여자의 임무는 이러한 인간 본성을 냉철히 경계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술의 발전과 규제의 변화가 사업에 주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은행 대출 등 전통적인 자본 조달 방식이 아닌 비전통적인 자본조달 방식의 핵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금액을 조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넷째, 가치 평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통찰력을 키워야 합니다. 가치 평가는 종종 매우 부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미래 사업 가치가 정확히 얼마인가에만 몰두하지 말고 다양한 측면에서 벤처 투자의 핵심 화두인 ‘당신이 벤처 사업가라면 투자를 제안 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이에 합당한 수익을 내기 위해 해당 회사로부터 얼마의 지분을 가져가는 게 합당한가?’의 문제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
 
벤처 투자자로서의 경험
이후 수업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신생 기업 사례가 등장했다. 어느 날 로빈슨 교수가 또 e메일을 보냈다. “내일 수업에서는 서부에 위치한 한 의료장비 업체의 CEO와 컨퍼런스 콜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해당 기업은 현재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CEO가 여러분들에게 직접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자본 조달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실시하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필자는 묘한 기대감에 휩싸였다. 연습만 하던 운동선수가 실제로 시합에 나가기 전날 느끼는 흥분이라고나 할까. 해당 회사의 CEO는 노약자, 지체부자유자, 산업 재해 피해자 등을 위한 보행지지 장치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그 장치가 현존하는 휠체어나 목발 및 기타 보행 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기라며 20분간의 PT를 진행했다.
 
PT가 끝나자 수강생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시장 전망에 대한 유효성, 사업 가치에 대한 여러 가정,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여부, 관련 법규의 변화 위험 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일부 학생들은 전쟁 상이 용사 협회와의 연계 마케팅 및 의료보험 업체를 통한 추가 시장 발굴을, 다른 학생은 디자인 측면에서의 개선 요인을 제안했다. CEO는 일부 질문과 제안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였다. 컨퍼런스 콜이 끝난 후에는 로빈슨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해당 사업의 타당성을 토론했다.
 
벤처 사업가의 탄생
3주 후 로빈슨 교수로부터 또 e메일이 왔다. “다음 수업에는 현재 수강생 중 몇 명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 대한 PT를 실시합니다. 이들은 현재 합작 파트너나 엔젤 투자자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회사의 투자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벤처 기업 CEO가 진행하는 PT를 보지 못했던 필자로선 옆에 앉아있는 학생이 창업을 했고, 그들이 수업 시간에 다른 동급생으로부터 투자를 호소한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호기심을 안고 들어선 강의실에는 조셉과 제이크가 PT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계공학 박사인 조셉은 푸쿠아 스쿨에 오기 전 의료장비 업체에서, 제이크는 대형 컨설팅사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들이 들고 나온 사업 아이템은 성인용 요실금 치료 기기였다. 조셉은 듀크에 진학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구상하던 제품을 학업과 병행하며 개선해왔다. 그 와중에 로빈슨 교수의 수업을 들었고 지난 의료기기 업체 CEO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는 룸메이트인 제이크와 의기투합했다. 조셉은 기기의 기술적 부문을, 제이크는 자금 조달 및 FDA 승인 관련 업무를 맡기로 했다. 그들은 듀크대 의대와의 공조를 통해 의료진으로부터 제품에 관한 자문을 얻었고, 시제품을 완성해 일부 외부 투자자들에게 시연까지 마쳤다.
 
학생들은 동급생의 PT라고 봐주지 않고 지난 컨퍼런스 콜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체내에 삽입되는 기기니만큼 기계의 안전성, 소비자들의 잠재적 거부 반응에 대한 질문은 물론 포커스 그룹 인터뷰 결과, 시제품에 관한 투자자들의 반응, 기존 치료 기기들과의 차이점, 의료보험 혜택 등을 궁금해 했다. 다른 학생은 미국 내 유아용 기저귀보다 성인용 기저귀 시장이 더 크다는 시장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커진 상황에서 새로운 기기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마케팅 포인트를 조목조목 짚기도 했다.
 
열띤 토론이 끝난 후 과거 엔젤 투자그룹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마크는 조셉과 제이크에게 과거 회사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나섰다. 몇몇 학생들은 더 자세한 투자 제안서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기업가와 투자자의 역량을 체화하다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던 로빈슨 교수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학기 초 제가 사업 계획, 자금 조달법, 회사 운영 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죠? 진정한 기업가는 이 3요소를 동시에 고려한 청사진을 수립한 후에야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조셉과 제이크를 보니 이를 잘 받아들인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다른 학생들 또한 투자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향후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활약할 만한 자질을 잘 보여줬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이번 수업은 교과서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방면에 걸쳐 실제 자본시장 및 산업의 생생한 경험을 안겨줬다. 학생들로 하여금 창업가와 벤처 투자자로서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이 수업은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김경호 듀크대 푸쿠아 경영대학원 Class of 2011 kk137@duke.edu
필자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블랙록 자산운용에서 투자상품 업무를 담당했다.
 
 
 
1968년 설립된 듀크대 경영대학원은 1980년 사업가 존 브룩스 푸쿠아(J.B Fuqua)의 기부를 기념해 푸쿠아 스쿨(Fuqua School of Business)로 명명됐다. ‘남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듀크대의 명성, 뛰어난 교수진, 독창적인 커리큘럼 등으로 많은 언론으로부터 미국 내 Top 10 MBA로 꼽히고 있다. ‘Team Fuqua’라는 슬로건으로 뭉친 특유의 끈끈한 동문 네트워크가 장점이다. 매년 460명 정도의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으며 이 중 20명 정도가 한국인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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