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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죽음의 정글로 뛰어든 무모한 사무라이 정신

임용한 | 57호 (2010년 5월 Issue 2)

1942년 태평양 전선의 분위기는 절박함과 혼돈으로 가득했다. 일본군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남태평양까지 남하했다. 호주는 유사 이래 최초의 침공 위험(영국인이 원주민의 땅에 상륙한 것은 빼고)에 노출됐다. 호주군은 이미 영연방군의 일원으로 중동과 유럽에 전투 사단을 파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토에 군대가 하나도 없었다. 급하게 유럽 전선에서 병력을 귀환시키고 민병대를 징발했지만, 훈련이 턱없이 부족했다. 태평양 전선에 필수적인 함대와 전투기는 모두 미국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필사적으로 항공기가 운송되고, 공장에서 밤을 새워 조립하고 있었지만, 하늘에 띄울 수 있는 전투기는 몇 십대도 되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전선에 이어 태평양에까지 군대와 물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에 넋을 잃었다. 게다가 일본의 목표가 남태평양인지, 혹은 알류샨 열도를 거쳐 북아메리카로 상륙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한 곳에 병력을 집중해도 일본군을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보부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해답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정작 일본군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진주만을 초토화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점령했다. 원래 일본이 태평양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석유와 주석, 고무 같은 전략 물자와 식량인 쌀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유전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얻어버렸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지, 혹은 정전협정을 맺고 인도네시아 유전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인도 전선에 집중할지 확실치 않았다.
 
필사(必死)’의 항전 태도 망각한 호주 침공 작전
논란 끝에 일본은 확전을 결정하고 호주 침공을 시도한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군은 태평양 함대를 알류샨 열도, 미드웨이, 남태평양 셋으로 분할해서 동시에 작전을 진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만약 일본군이 함대를 모아 집중했더라면 미드웨이의 승자는 일본군이었을 것이다. 또, 나중에야 어떻게 됐든 일본 육군이 호주해안에 발을 디디면, 미군은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몰아낼 반격 거점이 없어서 태평양을 일본에 양도하고 본토 방위에나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호주 침공의 거점으로 일본군이 점찍은 곳이 뉴기니였다. 1942년 다카기 해군 중장이 지휘하는 해군 함대가 뉴기니의 포트 모르즈비를 향해 출발했다. 모르즈비를 우선 점령, 이곳을 기지로 호주 북부에 육상군을 침투시키고, 주변의 피지, 사모아, 뉴칼레도니아 제도를 점령해 호주를 봉쇄하자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보급선은 끊길 테고, 호주는 전투능력을 상실할 게 뻔했다.
 

 
다카기 함대는 코랄 해에서 미군과 조우했다. 일본군 항모 2척이 손상을 입었고, 미군 전함과 구축함 1척이 침몰했다. 일본군이 승리했지만, 다카기는 모르즈비 상륙을 포기하고 회군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다시 차근차근 최후의 승리를 향해 전진했다. 약간의 병력과 공병대를 솔로몬 제도의 여러 섬에 파견해 비행장을 건설했다. 항공모함대신 바다에서 미국 함정과 수송선을 파괴할 전투기의 발진 기지를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결정적인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코랄 해전에서의 철수로 일본군은 몇 개월 이상의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에 호주의 전투사단이 유럽에서 귀환했다. 일본군은 모르즈비의 반대편에 위치한 부나와 고나에 상륙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곳의 수비대는 호주의 민병대 1000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모르즈비에는 중동에서 귀환한 호주군 7사단 병사와 미군 등 1만5000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을 공격한 일본 해병대는 겨우 1200명이었다.
 
죽음의 정글 앞에서도 무모한 횡단 감행
모르즈비 상륙작전이 실패하자 일본군은 부나에 상륙한 호리이 소장에게 휘하의 1만4000명을 이끌고 뉴기니를 횡단해 모르즈비를 공략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호주 민병대원들은 정글로 들어오는 일본군 행렬이 단순한 정찰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뉴기니 횡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뉴기니의 정글은 전 세계의 어떤 정글과도 달랐다. 칼날 같은 나뭇잎은 군복도 베어버렸다. 땅은 뱀처럼 얽힌 나무줄기, 칡넝쿨, 뿌리와 잡초로 엉켜있고 놀랍게도 그 밑은 허리까지 빠지는 진창이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정글은 습기와 썩은 내, 독충과 거머리, 박테리아로 가득했다. 심한 경우 가스는 중독과 온갖 열대성 전염병 및 궤양을 일으켰다. 정글이 다 그렇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나 뉴기니의 정글은 그 어느 곳보다 독했다. 원주민마저도 정글에는 얼씬하지 않았고, 보수를 주고 짐을 날라달라고 하면 몸서리를 치고 도망쳤다.
 
정글보다 무서운 적이 또 하나 있었다. 뉴기니의 남북을 둘로 나누는 오웬 스탠리 산맥이었다. 유명한 여류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뉴기니의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고도를 낮추자 구름이 걷히면서 뉴기니의 산들이 그리스의 신들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이 그리스 신들의 정체는 고도 4000m에 깎아지른 경사를 지닌 진흙 덩어리 산이다. 엄청난 낭떠러지에 수시로 미끄러지고 붕괴되는 길. 지금도 뉴기니의 고원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육로대신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이 정글과 산맥을 일본군은 야포까지 끌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30년 전에 제작된 엉성한 지도에는 산맥을 넘는 한줄기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코코다 고갯길로 불리는 이 길은 사실 길이 아니었다. 그곳을 통하면 산맥 저편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도 가능성에 불과했다. 원주민도 다니지 않는 그 길은 폭이 1m도 되지 않았고 끊겨 있기 일쑤였다. 그 옆으로 미끄러지면 진흙 위로 미끄러지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이 엄청난 난관을 극복하고, 한 달 만에 일본군은 정상 부근으로 진출했다. 겨우 중대 규모의 호주군 수비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용감하게 싸워 이들도 물리쳤다. 그러나 식량이 떨어졌다. 일본군 참모본부는 부족한 식량을 정글에서 구하거나 원주민 부락을 털어 현지 조달한다는 안이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뉴기니의 정글에는 정말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원래 이 땅은 인구밀도가 희박한 땅이라 정글에서 살고 싶어 하는 원주민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사령부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래도 일본군은 코코다 고개를 넘어 호주군의 진지를 3개나 돌파하며 포트 모르즈비 30마일 앞까지 진군했다. 식량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 그들의 유일한 활로는 모르즈비를 점령해서 연합군의 식량을 탈취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호리이 소장이 최후의 공격작전을 구상하고 있는 중에 사령부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뉴기니 전선의 무용함을 깨닫고 병력을 온전히 빼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돌격명령보다 더 잔혹한 명령이었다.
 
식량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일본군은 이 흉포한 길을 다시 넘어 돌아갔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철수하는 일본군의 머리 위로 뉴기니의 마지막 복병인 우기가 찾아왔다. 원주민들의 기준에 따르면 우기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끔찍한 빗속에서 중장비를 버리고, 중상자는 사살하고, 경상자는 둘러 맨 채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다. 밤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전우를 사살하는 총성이 울렸다. 마침내 11월 두 달 만에 출발점으로 되돌아 왔다. 병사들은 식량이 가득 쌓여 있는 기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 연합군이 상륙해서 일본군 기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호리이 소장은 급류에 휘말려 사망했고 병과 굶주림, 체력고갈로 일본군은 거의 전멸상태였다. 뉴기니에서 살아 돌아간 병사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사무라이 정신 과신해 화를 자초
일본군의 패인은 그들의 한 가지 장점을 잊어버리고, 다른 한 가지 장점을 오용한 덕분이었다. 태평양 전쟁의 1단계에서 일본군은 치밀한 준비, 대담하고 정밀한 작전계획, 신속하고 과감한 기습으로 단숨에 태평양을 석권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렇게 넓은 지역을 점령한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1단계의 승리로 교만해진 그들은 순식간에 이 모든 장점을 잊어버렸다. 치밀한 준비 없이 광범위하고 복잡한 작전을 수행했다. 호주 공략전에서 일본은 해군과 항공 전력에서 모두 미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일도필살의 전격전을 포기했다. 대신 호주를 포위하고 주변 섬들에 비행장을 건설해 공군의 완벽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느긋한 작전을 펴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약자가 강자를 공격한다는 필사의 태도를 잊어버리고 강자가 약자를 요리하는 전술로 바꾼 것이다.
 
일본군이 초심을 잊지 않고 과감하게 호주로 상륙했다면 연합군은 일본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호주는 사람이 사는 지역이 전 국토의 3%도 되지 않는다. 호주군이 방어선을 펴면 일본군은 무인지대로 얼마든지 우회해 버릴 수 있었다. 호주의 광야와 정글도 꽤 악명 높지만, 일본군에게는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호주군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도시 방어전 밖에 없고, 전투경험이 풍부한 일본군은 시가전에서 호주군을 쉽게 압도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일본군은 호주의 사막대신 뉴기니의 정글로 자국 군대를 밀어 넣었다.
 
뉴기니의 정글에 발을 디딘 후, 일본군은 자신들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일본군은 자신들의 또 다른 장기, 즉 놀라운 감투 정신과 극한의 인내력으로 뉴기니 정글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들이 태평양에서 예전에 거둔 승리는 무모한 용기 덕분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과거 승리에 도취해 있던 일본군은 사무라이 정신의 위력을 과신한 채 면밀한 사전 검토나 치밀한 준비 없이 무조건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전술과 경영에서 장점과 단점은 결코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가치중립적 요소에 가깝다. 장점이 된 이유는 그 자체로 좋고 우월해서가 아니다. 다른 여러 요인 및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특정한 요소가 장점으로 부상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장점이란 자신들 속에 내재된 절대 불변의 요소라 간주하고, 장점이 장점이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성찰을 소홀히 한다.
 
1942년의 뉴기니 횡단을 감행한 일본군이 꼭 그랬다. 그들은 국가에 대한 절대 복종,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대변되는 사무라이 정신이 뉴기니 전투에서도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무사도 정신은 장점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기는커녕, 일본군에 참담한 패배를 안겨 준 패인으로 작용했다. 환경 변화(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정글, 산맥, 우기 등)에 맞게 일본군의 다른 장점(치밀한 준비, 정밀한 계획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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