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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프런티어: 개도국을 보자

아넌드 라만 | 38호 (2009년 8월 Issue 1)
미국 역사가 프레더릭 잭슨 터너는 1893년 “변경(邊境·frontier)은 반드시 특정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국경의 변화로 사람과 조직이 겪는 적응과 변화 과정 또한 변경에 포함된다”고 선언했다. 위스콘신대의 젊은 교수였던 터너는 이전 3세기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는 데 변경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터너의 설명은 현대 비즈니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개발도상국이 외국 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지난 30여 년 동안 비즈니스 세계를 둘러싼 국경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 결과 다국적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한층 높은 복잡성, 끝없는 변화에 대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간 개발도상국 경제에 관해 익혀왔던 내용은 서구 기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특히 오늘날의 심각한 불황이 세계화에 어떤 여파를 미치며, 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번 세계 경기 침체는 개발도상국보다는 선진국에 더욱 치명적이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세계 경제에서 맡아온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끝날 무렵에는 세계의 비즈니스 변경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직면한 엄청난 위기는 3가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첫째, 개발도상국 시장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성을 특별히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2009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개발도상국 경제가 1.6%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부적으로 중국은 6.5%, 인도는 4.5%, 중동은 2.5%로 예상했다. 물론 1.6%라는 수치는 지난해 6.1%보다는 상당히 낮다. 하지만 올 한 해 세계 선진국 경제가 -3.8% 성장할 거라는 예상에 비춰보면, 1.6% 성장도 놀라운 수준이다.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세계적인 이머징 마켓 투자 전문가 앙투안 반 아그마엘 이머징 마켓 매니지먼트(EMM) 회장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세계 경제 불황이 끝나면, 불황이 시작되던 무렵보다 개발도상국 시장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당연히 개발도상국 시장의 매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둘째, 세계 각국 정부는 각종 통화 및 재정 정책을 동원해 경제 성장에 힘을 쏟는 한편 경제 발전의 형태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2008년 11월 중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하는 10대 산업의 수요 및 공급 진작을 위해 586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까지 계획대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또 2009년 1월 배기량 1.6L 이하인 자동차의 판매세를 50% 내리는 방안 등 소형 자동차 및 연비가 높은 자동차의 수요를 늘리기 위한 자동차 판매 부양책도 내놓았다. 소형 자동차나 연비가 높은 자동차를 선보이지 않는 기업이나, 중대형 자동차만 생산하는 기업들은 결국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중국 책임자인 데이비드 마이클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 방안을 경기 부양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일이다. 즉 향후 중국의 GDP가 9% 성장하는 일은 과거의 9% 성장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띨 것이다. 불황이 끝난 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개발도상국 경제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표준’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부즈&컴퍼니의 중국 담당 수석 파트너 에드워드 체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중국은 과거 10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셋째,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그간 개발도상국 경제 성장 엔진을 담당해왔던 수출이 점차 줄어들면서 많은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자국 시장에서 판매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철, 시멘트, 알루미늄 등의 상품 시장, 고가 소비 시장, 중가 소비 시장 등에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향후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업만이 불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개발도상국 시장의 눈치 빠른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이미 대응하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들은 불황이 닥쳐올 것을 감지하고 불황 전에 재빨리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HBR TIP ‘불황 타개를 위한 개발도상국 기업의 전략’ 참조)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생산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때문에 굳이 저비용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없고, 이 점에서 이미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개발도상국 화폐 가치 상승으로 불황이 시작되기 전부터 개발도상국 기업의 이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많은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경제 불황을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회로 여기고 있다. 니르말야 쿠마루 런던 비즈니스 스쿨(LBS)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인도 기업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간 나쁜 운영 습관들도 유지해왔다. 인도 기업들은 바로 지금 그 나쁜 습관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년 이상 성장세를 지속해온 인도 기업이 숨을 고르며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은 미심쩍은 다각화 계획과 합병 방안을 중단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6시그마와 같은 품질 개선 방안도 도입하고 있다. 중국, 인도, 터키 기업들은 인건비를 지난해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인재 관리, 해고, 추가 채용 자제, 보너스 및 임금 인상 자제 등의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농촌 지역의 소비자들과 중하층 소비자들을 위해 비용 대비 가치가 큰 상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여유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서구 다국적 기업의 하청업체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 경기 침체를 자체적으로 우수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저지 경영대학원의 피터 윌리엄슨 교수는 “인건비와 같은 일부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에 지금은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혁신 역량 개발을 위해 투자하기에 매우 적절한 때”라고 말했다.
 
2009년 3월 인도 타타 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싼 2000달러짜리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에 따라 저비용 혁신이 기업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이슈로 떠올랐다. 이 현상을 지칭하는 ‘나노 효과(Nano Effect)’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2008년 12월 중국 자동차회사 BYD 오토는 세계 최초로 F3DM이라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카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대당 가격이 2만2000달러인 이 자동차 때문에 나노 효과와 비슷한 ‘BYD 효과’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불황이 끝날 때면 세계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불황이 시작될 무렵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2009년 1월부터 4월까지 아르헨티나, 브라질, 불가리아, 중국, 이집트, 헝가리, 인도, 멕시코, 러시아, 터키 등에서 30명 남짓한 학자 및 컨설턴트들과 인터뷰를 한 다음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필자는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 및 현지 업체 등의 고위 경영진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고, 최근에 발표된 여러 연구 자료들도 살펴봤다.
 
현재 대다수 서구 기업들은 자국 시장에서 위기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세계 경제 성장의 다음 단계에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미래에 개발도상국 기업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5개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변화1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경제의 분리
지난해 불황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경영진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세계 교역 규모 증가와 세계화로 세계 각국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이미 경험했듯, 선진국 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 개발도상국에서도 그 여파가 나타났다. 세계 주식시장도 동시에 무너졌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 경제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개발도상국 시장이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번 불황이 끝나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경제가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OECD 국가의 수요와 투자가 전례 없이 급락하면서 브라질,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여러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자국 경제의 무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외환 보유고를 늘리면서 정부의 재정 상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국내 수요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특히 주요 대도시 밖에 위치한 소도시나 농촌 지역의 수요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하는 동시에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주로 구매하는 제품들이 특히 감세 대상이다.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내수 진작에 성공한다면 OECD 국가의 수요가 줄어들어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내수 진작에 성공하는 개발도상국은 향후 OECD 국가의 수요 감소와 상관없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개발도상국 간의 무역이 개발도상국의 전체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여 년 동안 2배로 늘었다. 2007년에는 이 수치가 40%에 이르렀다. 중국의 수출 중 절반은 또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향한다. 선진국의 불황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이에 따라 세계 천연자원 및 제조 부문 수요가 계속 줄어들면, 개발도상국 간의 무역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제어 시스템 업체인 중국의 에복 인텔리전트 테크놀로지는 현재 자사 제품 중 80%를 선진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신규 수요의 80%는 인도, 중동, 러시아, 중국 국내에서 생기고 있다. 이에 에복은 최근 중동, 러시아, 인도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지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기 때문에 에복은 개발도상국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IAE 비즈니스 스쿨의 길레르모 단드레아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불황은 중국에 중남미와의 관계를 강화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이미 중남미 기업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M. 아이한 코세, 크리스토퍼 오트록, 에스워 프라사드 등의 경제학자들이 최근 발표한 연구 자료를 보더라도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IMF에서 공개한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요 선진국 경제는 거의 같은 시기에 최고점이나 최저점에 도달하며, 개발도상국 경제도 거의 동시에 경제 성장이나 불황을 경험한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더 이상 동시에 경제가 성장하거나 하락하는 현상을 겪지 않고 있다.
 
물론 세계 금융시장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때문에 선진국의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개발도상국 주식시장에도 그 충격이 간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호라시스 연구소의 프랭크 위르겐 리히터 소장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실물경제는 분리되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아직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금융위기 이후 개발도상국과 미국은 근본적으로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들은 오랫동안 미국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비난받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미국 경제 시스템도 상당 부분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변화를 지켜본 개발도상국 정책 입안자들이 규제 완화의 속도를 늦추고 유럽식 복지국가 건설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교수에서 경제 논평가로 변신해 멕시코시티에서 활동 중인 카를로스 모타도 같은 생각이다. “멕시코 등 중남미 전역에서 미국 모델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미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지역적 특색을 살린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조만간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슷한 애기가 들려올 수 있다.
 
[DBR TIP]경제 위기 후 세계 경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 글로벌 경제 위기로 개발도상국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선진국보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황이 끝날 때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정책으로 개발도상국 경제의 모습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수출보다 내수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 시장에서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고, 혁신에 투자하고, 농촌 지역 저소득층 소비자를 공략할 기회로 이번 불황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층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로 거듭날 것이다.
 
- 지금껏 세계 시장에서 지켜온 우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서구 기업들은 계속 개발도상국에 투자해야 한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현지 경영진을 양성하고, 개발도상국의 대기업과도 꾸준히 협력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품을 개발하고, 아프리카의 잠재력도 활용해야 한다.
 

대응 방안: 계속 개발도상국에 관심을 가져라
자국 내 문제도 산적해 있지만, 선진국 기업이 개발도상국에 꾸준히 투자를 하면 불황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번 금융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커진다. 뿐만 아니라 침투하기 쉽지 않은 개발도상국 농촌 등의 새로운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도 있다. 개발도상국에 수출 기지를 두고 있으면, 개발도상국과의 무역에서 낮은 관세를 매기는 관행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보호무역주의가 재차 기승을 부리면 개발도상국에 수출 기지를 마련해두는 일이 더욱 유용하다.
 
변화2 가족 기업식 리더의 귀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재난이 닥치면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족 기업 및 국영 기업을 필두로 한 새로운 리더십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인도, 멕시코, 터키 등에서는 가족이 대기업을 운영할 때가 많다. 중국에서는 가족이 아닌 정부가 대기업을 운영하는 예가 많다. 이런 기업에서는 경영권 승계가 종종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은 전문 경영인 영입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회사를 설립한 가문에서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한 다음, 경영권을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고 감독의 역할을 하거나 형식적인 역할만을 맡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인도, 중남미 등지에서는 가족 간의 다툼이 회사의 문제로 이어질 때가 많다. 인도 정보기술(IT) 기업 사티암 컴퓨터의 분식회계 사례로 확인할 수 있듯, 가족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기업은 지배구조가 엉망일 때가 많다. 따라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 해결책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토론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그 결과 소유주의 가족과 전문 경영인이 함께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체제가 각광받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소유주 가족과 국영 기업을 운영하는 관료들이 함께 뭉쳐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국제경제분석기관 EIU가 최근 발표한 ‘바클레이즈 웰스 보고서(Barclays Wealth Report)’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끝나면 가족 기업 모델이 더욱 많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위기가 닥치면 소유권과 경영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리더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가 커지기 때문이다.
 
가족 기업 형태의 컨설팅 업체로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랜스버그, 거식&어소시에이츠의 수석 파트너 켈린 거식은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 많은 경영자들은 가족 기업의 안정성과 장기 전략에 결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최근 놀랄 만큼 달라지고 있다.”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가족 기업의 총수에게 엄청난 권력이 주어진다. 때문에 이들은 전문 경영인만큼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 영향력과 권한이 많기 때문에 가족 기업 총수들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정부 관계자들을 솜씨 좋게 요리한다. 정부의 까다로운 절차를 잘 견뎌내며, 인맥도 두루 활용한다. 국영 기업의 최고책임자 역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중국의 석유업체들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조건으로 아프리카 국가에 중국 정부의 원조를 약속하곤 한다.
 
가족 기업이나 국영 기업은 민간 기업에 비해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장기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 경영자의 개인적 자부심 혹은 국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변화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또 경제성장률이 급락할 때에도 흔들림 없이 장기 전략을 추구한다. 지배 지분을 갖고 있는 만큼 외부 업체에 인수될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도 직물업체 아디티야 비를라 그룹의 쿠마르 비를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석유업체 사솔의 팻 데이비스, 이집트 통신업체 오라스콤의 나깁 사위리스와 같은 경영자들은 세계 경제 불황이 시작된 이후에도 자신의 야심을 굽히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장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눈치 빠른 가족 기업들은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젊은 후계자들에게 리더의 역할을 훈련시켰다. 가족 기업의 후계자들은 본국으로 돌아와 회사를 맡기 전, 대부분 해외 유명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인도 자동차업체 마힌드라&마힌드라의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처럼 가족 기업의 후계자들은 밑바닥에서부터 업무를 익히거나, 따로 회사를 차려 경험을 쌓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회사 내 전문 경영인들과의 관계를 키워 나갔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전문 경영인들은 후계자들의 조언자(멘토) 역할을 담당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 소유주의 자제 중 일부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다른 일부는 기업 총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후보자로 성장했다. 와튼 스쿨을 졸업한 후 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담당자(CFO)가 된 아디티야 미탈을 보자. 그는 아버지 락시미 미탈 회장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기업 운영을 위한 전문성을 키우는 방법도 선진국과는 다르다.
 
대응 방안: 리더십의 척도를 바꿔라
다국적 기업들은 개발도상국 시장을 담당하는 현지 최고책임자를 임명할 때, 누구를 리더로 뽑느냐는 문제를 심각히 재고해야 한다. 주요 다국적 기업 중에는 중국과 인도에 진출한 지 20여 년 정도 되는 기업들이 많다.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조직을 키워내는 역량이 우수한 사람을 임명하고, 지역 본부를 설립하는 등 현지의 사업 체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려는 유혹을 느낀다. 실제 이런 사람이 현지 책임자로 뽑힐 때가 많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 낫다. 컨설팅 회사 액센추어가 발표한 미래의 글로벌 운영 모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변화3‘ 역(易) M&A’ 현상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은 세계적인 업계 선두업체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세계 유동성 경색만 완화되면 선진국 기업들을 삼키려 들 것이다. 과거 글로벌 인수합병(M&A)이 선진국 기업에 개발도상국 기업이 인수되는 형태였음을 감안하면, 완전한 ‘역 M&A’가 나타나는 셈이다.
선진국 기업의 주가가 거의 반 토막 난 현 시점이야말로 M&A의 최적기다.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이 특히 상품을 제조하는 업체, 사양 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업체,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업체 등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역 M&A’ 현상은 크게 3가지 특징을 지닐 것이다. 우선 2007년에는 인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섰지만 앞으로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기업들이 해외 업체 인수에 발벗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인도 기업들은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몇 건의 대형 M&A를 추진하느라 많은 부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중국, 브라질, 러시아 기업들은 인도 기업에 비해 현금이 풍부하고 부채도 적다. 과거 인도의 대형 M&A 사례로는 타타의 재규어 랜드로버 및 코러스 인수, 힌달코의 노벨리스 인수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중국과 중남미 기업들은 세계화가 아닌 국제화 전략의 일환으로 M&A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하나의 업체를 인수하기보다는 한 나라, 혹은 인접국의 여러 기업들을 사들이는 형태로 M&A를 추진할 것이다. 조사기관 제퍼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브라질 기업이 중남미 국가의 기업을 인수한 사례가 2005년 2건에서 2006년 11건, 2007년 25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08년 브라질 기업들은 남미 업체 23개를 인수해 여러 다국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멕시코의 멕시켐은 중남미의 여러 기업들을 인수해 중남미 최대의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업체로 등극했다.
 
인도 기업들은 다른 전략을 갖고 있다. 주변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인도 기업은 주변 지역을 벗어나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불황이 끝나면 인도 기업들은 유럽 기업 인수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해외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인수를 선호할 것이다. 이는 인도 기업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항이다. 금융위기가 나타나기 이전에 인수한 덩치 큰 기업들을 소화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해외 대기업을 인수한 TCL과 레노보는 아직 인수 후폭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TCL은 2004년 프랑스 가전업체 톰슨의 TV 사업 부문과 알카텔을 인수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적자를 낸 끝에 결국 유럽 시장에서 철수했다. 레노보는 IBM의 PC 사업 부문을 인수한 후 잠시 성공의 단맛을 봤다. 그러나 최근 애플, 델, HP 등의 공세로 마진이 줄었고, 그만큼 해외 대기업에 대한 인수 욕구도 낮아졌다.
 
호라시스 연구소의 리히터 소장은 “중국 기업들은 이제 해외 기업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배웠다. 인수 대상의 질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이 해외 대기업 대신 쉽게 자사 문화에 동화시킬 수 있는 중소기업을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원자재를 확보할 목적으로 해외 업체와의 제휴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 은행들은 해외 업체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해외 업체에 대출을 해주고 있다. 중국개발은행(CDB)은 최근 장기적으로 석유를 공급받는 조건으로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에 100억 달러를 빌려줬다. 또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OAO 로즈네프트 오일에 150억 달러, 국영 파이프라인 독점기업 트랜스네프트에도 100억 달러를 빌려줬다. 러시아는 돈을 빌리는 조건으로 앞으로 20년 동안 중국에 매년 1500만t의 석유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대응 방안: 개발도상국 대기업과 손을 잡아라
개발도상국의 대기업들이 해외 업체를 사들이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 선진국 대기업은 이들과 손잡아야 한다. 많은 서구 기업들은 중국의 내륙 지방이나 인도의 농촌 지역에 진출하고자 할 때 현지 업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개발도상국 대기업과 손을 잡는 대가로 자사의 노하우와 자산을 제공하는 ‘삼각화(triangulation)’ 전략을 활용하면 개발도상국에 진출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2008년 일본의 가와사키 모터스는 인도의 바자이 오토와 특이한 계약을 맺었다. 바자이 오토는 가와사키의 고가 오토바이를 인도에서 판매하고, 가와사키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에서 바자이 오토바이를 판매한다. 이를 통해 두 업체 모두 이득을 보고 있지만, 어느 쪽도 상대 업체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세계 유수 통신업체인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도 자사가 활동하고 있는 중남미 시장에 중국의 통신 솔루션 공급업체 화웨이 테크놀로지가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DBR TIP]불황 타개를 위한 개발도상국 기업의 전략
개발도상국 시장의 눈치 빠른 기업들은 재빨리 불황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했다. 1994년의 중남미 사태나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는 달리, 이번 위기의 발원지는 개발도상국이 아닌 미국이었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여파가 개발도상국 시장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후였다.
 
2007년 말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차이나 반케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 가격을 내렸다. 2008년에는 부지 매입도 줄였으며, 현금을 선불로 지급하거나 계획보다 앞서 대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08년 말 차이나 반케의 현금 보유고는 200억 위안에 달했다.
 
러시아의 소프트웨어 업체 스피릿도 2007년 말 미국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재빨리 한국과 중국으로 진출한 덕분에, 현재 양국에서 얻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 스피릿은 자국 시장에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30억 달러의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초대형 프로젝트에 꾸준히 투자를 하는 러시아 정부의 IT 투자 정책도 스피릿이 내수 시장에 주력하는 데 한몫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정부의 인프라 투자 정책에 편승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철도, 지하철, 고속도로 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투자 덕에 에복 인텔리전트 테크놀로지에서 생산하는 제어 시스템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에복은 지난해 총 12억 위안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101%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2007년 매출 증가율 116%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개발도상국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성장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재정 상태가 건전한 기업들이 꽤 많다. 일부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가격이 낮을 때 자산을 매입하거나 다른 회사를 사들이는 등 인수합병(M&A)을 추구하기도 한다. 2008년 11월 브라질 방코 이타우와 우니방코는 합병을 통해 브라질 최대 은행으로 거듭났다. 두 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대형 은행은 한층 더 불황을 잘 견뎌내고, 중남미의 경쟁 업체들과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구리 가격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구리 광산과 구리를 사들이곤 하는 칠레의 광업회사 안토파가스타 미네랄은 최근 파키스탄과 멕시코 구리 광산에 투자를 했다. 뿐만 아니라 불황이 끝나면 시장에 더 많은 구리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주력하는 기업들도 있다. 중국 대기업 복성그룹은 비상장 업체에만 주로 투자해왔다. 하지만 최근 주가 하락에 힘입어 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2008년 4월 복성그룹은 중국 최대의 전통 약재 제조업체인 동제당의 지분 12%를 매입했다. 철사 및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러시아의 세버스탈-메리츠는 최근 상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로 바꾸고 있다. 2008년 7월에는 특수 강철 와이어 비즈니스에 진출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철강업체 레다엘리 테크나를 매입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시장에서는 브라질의 최대 소매업체 중 하나인 로자스 콜롬보가 고가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업체는 신규 매장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지출 규모가 큰 우수 고객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등 대도시에 위치한 플래그십 매장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브라질의 수많은 저소득층을 공략하고 나선 기업도 있다. 가전 소매업체 카사스 바이아는 상파울루 최대의 빈민촌인 파라이소폴리스에 매장을 열었다. 경쟁 업체인 마가지니 루이자도 빈민촌 거주 저소득층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소득층 소비자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른다. 마가지니 루이자는 이 점을 노려 영업 사원들로 하여금 저소득층 고객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가상 전시관을 돌아보고, 상품을 주문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게 했다.
 
위기가 닥치면 가치 사슬의 위쪽과 아래쪽을 모두 공략하는 기업들도 많다. 브라질 최대 도제 타일 제조업체 중 한 곳인 포르토벨로는 최근 상류층 고객이 선호하는 커다란 타일을 만들기 위해 800만 달러를 들여 이탈리아산 절단기 2대를 구입했다. 동시에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대다수 저렴한 상품들의 가격을 절반으로 낮췄다. 수출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만큼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판매량이 성장의 중요한 척도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경쟁 업체들보다 앞설 가능성이 크다.
 
* 이 내용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러시아 담당 수석 편집자 엘레나 에브그라포바, 브라질 담당 수석 편집자 레아 드 루카, 중남미 담당 수석 편집자 리카르도 지시스, 중국 담당 편집자 잭 얀, 중국 담당 선임 편집자 켄트 케, 셜리 다이, 네오 시의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변화4
지속 가능성 추구
과거에는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많았지만, 이제 개발도상국에서도 친환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불황이 끝날 때까지 친환경 상품, 포장, 제조 방법을 개발해내지 못하면 고가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에 밀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과 인도 농촌 지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행보도 ‘물, 전기, 깨끗한 공기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지속 가능한 해결 방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농촌 지역 소비자를 위해 적은 양의 물이나 전기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 상품, 혹은 태양열과 같은 대체 에너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개발도상국 내의 비정부기구, 노동기구, 각국 정부 또한 기업들이 더욱 지속 가능한 상품을 개발하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환경 기준이 수출 시장의 비즈니스 규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C.K.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번 경제 위기는 10년 전 IT 버블이 터졌을 때와 한 가지 측면에서 비슷하다. IT 버블이 터진 후 아마존, 이베이, 구글 등 소수의 기업만이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이후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마찬가지로 지속 가능성이 제공하는 기회를 이해하는 기업은 이번 불황이 끝나면 미래의 저탄소 경제, 클린 에너지 경제를 활용할 준비를 마치고 도약할 것이다.”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은 친환경 상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선진국에서도 자신들이 얼마든지 선진국 경쟁 업체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BYD는 2010년 하이브리드 자동차 볼트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는 GM보다 2년 앞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보였다. 또 2009년 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선보일 예정인 도요타보다도 1년이나 먼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내놓았다.
 
서구의 비판에 직면한 일부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자국 기업들이 친환경 전략을 채택하도록 압박도 가하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전체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을 보자. 중국 정부는 최근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강화했으며, 이산화탄소를 기준으로 하는 조세 정책을 도입했다. 2010년까지 10개 도시에 총 1만 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 자동차, 연료전지 자동차를 보급하는 게 중국의 목표다. 중국 국가전망공사는 우선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에 자동차 충전소를 세우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2012년까지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 자동차, 연료전지 자동차에 대한 연간 수요가 10만 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 예상을 바탕으로 중국 치루이(영어명 Chery) 자동차도 BYD 선례에 따라 올해 2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보였다. 경쟁 업체 질리도 2009년 말 플러그인 자동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대형 자동차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도 인도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인도의 타타 자동차는 나노의 전기 자동차 버전을 개발하고 있다. 바자이 오토는 값싼 소형 자동차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기업들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저렴하고, 크기가 작고, 친환경 요소를 갖춘 자동차를 개발하면 선진국 시장 진출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응 방안: 친환경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라
지금껏 다국적 기업들은 먼저 자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을 개발도상국에 소개한 후에야 개발도상국 시장만을 위한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해왔다. 환경 문제에 대한 개발도상국 정부와 소비자의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 전략은 먹혀들 가능성이 낮다. 현지 업체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지금 당장 개발도상국 시장을 위한 지속 가능한 상품을 개발하고, 친환경 상품을 전 세계에 동시에 선보여야 한다.
 
변화5 아프리카의 매력
개발도상국 대기업들이 금융위기 이후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 특히 아프리카에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IMF는 올해 아프리카 경제가 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5.2%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우수한 수준이다. 아프리카 경제는 선진국 경제와 밀접하게 얽혀 있지 않지만, 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는 상당한 교역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서면 아프리카 경제도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 경제가 아시아 경제를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았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 규모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4개 브릭스(BRICs) 국가 중 어떤 나라보다도 작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205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1인당 GDP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1인당 GDP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아프리카의 소비자는 약 10억 명으로 인도의 11억 명에 약간 못 미친다. 혹자는 아프리카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고 우려할지 모르겠다. 물론 아프리카는 한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 그러나 국토가 넓은 중국과 인도의 각 지방들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때 발생하는 지리적 차이가 중국과 인도에 진출하는 해외 기업들에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으며 무역 항로도 공유한다. 따라서 아프리카 국가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업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거대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코카콜라, 유니레버, 노바티스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이미 아프리카에 진출해 있다. 중국과 인도의 여러 기업들도 아프리카에서 사업하는 게 어렵지 않음을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영업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며, 자국에서 사용하는 모델을 얼마든지 수정해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이주해간 사람들은 아프리카와 인도의 교역을 촉진하고 있다. 2006년 인도와 아프리카의 교역은 200억 달러에 이르렀다. 2000년 100억 달러에 그쳤던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역도 2006년 320억 달러로 급증했다. 2008년까지 인도가 아프리카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20억 달러, 중국이 아프리카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80억 달러가 넘는다.
 
해리 브로드만은 최신작 <아프리카의 실크로드(Africa’s Silk Road)>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 아프리카와의 교역 및 대(對)아프리카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두 나라의 관심은 아프리카에 중요한 성장의 기회와 함께,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 경제와 통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비제이 마하잔 교수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급 소비자 계층을 ‘아프리카 원(Africa One)’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저서 <아프리카의 부상(Africa Rising)>을 출간한 그는 ‘아프리카 원’ 시장이 5000만 명에서 1억5000만 명 정도의 소비자로 이뤄져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최하위 소비자 층을 지칭하는 ‘아프리카 쓰리(Africa Three)’ 시장에는 5억 명에서 6억 명의 소비자가 있다.
 
마하잔 교수는 이 두 시장 모두 해외 기업이 파고들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 기업들이 중산층으로 이뤄진 ‘아프리카 투(Africa Two)’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프리카 투’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는 3억5000명에서 5억 명 정도다. 이는 인도 중산층보다 많다. 마하잔 교수는 “중산층을 겨냥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아프리카에서 성장할 수 있다. ‘아프리카 투’ 시장의 중산층 소비자들은 자신의 수입을 능가하는 수준의 소비를 열망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최고급 소비 계층인 ‘아프리카 원’ 시장을 겨냥한 상품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대응 방안: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활용하라
유니레버의 경영진은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을 ‘새로운 소비자를 발굴하기 위한 원정’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처럼 이제 다국적 기업들이 새로운 소비자를 찾기 위한 탐험을 시작할 때가 왔다. 디아지오의 맥주 브랜드 기네스를 보자. 몇 년 전부터 기네스의 전 세계 판매는 하락했다. 그러나 기네스가 수년간 맥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등 일부 아프리카 시장에서는 여전히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2007년 7월 폴 월시 디아지오 CEO는 기네스 맥주 시장을 넓히기 위해 아프리카 진출을 적극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하잔 교수는 이를 두고 “아일랜드의 주점이 아니라 아프리카 주점에 기네스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세계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 경제가 어떤 형태의 회복세를 보일지 궁금해하고 있다. 급격한 회복세를 보이는 V자형일까?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는 U자형일까?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가 한 차례 하락한 후 다시 회복하는 W자형일까? 어떤 형태로 회복하건, 이번 경제 위기는 커다란 위협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7, 8월 호에 실린 아넌드 라만 HBR 수석 편집자의 글 ‘The New Frontier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아넌드 라만(araman@harvard business.org)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수석 편집자다. 개발도상국의 시장 트렌드 및 기업 현황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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