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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새우’를 ‘돌고래’로 바꾼 자발적 참여

신성미 | 29호 (2009년 3월 Issue 2)
기업의 영원한 과제인 ‘혁신’과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입니다. 기업의 경계를 넘어 외부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훨씬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개방형 혁신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엄청난 자원이 기업 내부에도 있습니다. 바로 직원들의 아이디어입니다. 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은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 내보내면 안 된다”고 선언한 후, LG그룹이 위기 극복의 핵심 솔루션으로 제시한 것도 바로 직원들의 아이디어 제안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제안 제도 혁신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혁신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제안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성과를 내는 기업은 많지 않다. 경영진은 각종 포상과 인센티브를 주며 제안을 독려하지만 직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당장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인데 언제 아이디어를 내느냐” “좋은 개선안을 내봐야 상사들이 왜 진작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느냐고 질책할 뿐”이란 불만도 터져 나온다.
 
그러나 지식 기반 경제 시대에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직원들의 지식과 지혜, 아이디어다. 선도 기업들은 직원들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제도, 시스템,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산업화 시대에 도입했던 케케묵은 사내 제안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 LG전자, 한국IBM, 웅진코웨이, 일진다이아몬드, 유한킴벌리 등 제안 제도를 통해 혁신을 이룬 기업들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1. 재미있어야 제안도 나온다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4월 직원들의 제안 제도 시스템인 ‘상상오션’을 만들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구축한 상상오션에서 직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등록하고,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댓글을 달 수 있다. 채택된 아이디어가 현재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웅진코웨이는 사실 1995년부터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사내 제안 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지극히 형식적이었기에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다. 웅진코웨이 혁신팀은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게임을 하는 듯한 재미있는 제안 제도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이 취지 하에 지난해 초 상상오션을 개발했다. 게임이나 인터넷에서는 참여도가 높은 사용자들에게 ‘내공’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자발적 참여의 원동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직원이 상상오션에 아이디어를 내거나, 댓글을 달거나, 제출한 아이디어가 우수 등급 판정을 받으면 웅진코웨이는 보상 명목으로 일종의 포인트를 지급한다. 혁신팀은 특히 상상오션이라는 제도명의 바다 이미지와 연관 지어, 평범한 명칭인 ‘포인트’ 대신 ‘새우’를 준다는 독특한 발상을 했다. 이는 싸이월드의 사이버머니인 ‘도토리’와 유사한 개념이다. 새우 1마리는 현금 100원에 해당하며, 새우 100마리부터는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새우 1만 마리가 모이면 돌고래 1마리(100만 원 상당)와 교환할 수 있다.
 
실력이 늘수록 게임 운영 능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제안 제도에도 10단계의 등급제를 도입했다. 아이디어를 적게 낸 직원은 ‘초보 선원’이 되고,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낸 직원은 ‘선장’ 직위에 오를 수 있다. 돌고래가 3마리 이상이면 ‘항해사’ 자격으로 미주 및 유럽 연수 기회를 갖고, ‘선장’ 단계에 올라가면 특진 기회까지 주어진다.
 
웅진코웨이 이상빈 경영혁신본부장은 “상상오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등급을 높이고 보상도 받는 재미가 쏠쏠해 직원들이 자연스레 아이디어 제안을 일상적 업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제안 제도를 만들자, 직원들의 반응도 확 달라졌다. 2007년에는 직원당 월평균 제안 아이디어 수가 1.36건에 불과했지만, 상상오션 도입 후인 지난해 7월에는 이 수치가 8.61건으로 껑충 뛰었다. 참여율도 높아졌다. 현재 웅진코웨이 전체 직원의 96.5%가 상상오션을 이용하고 있다. PC를 사용하는 사무 직원뿐 아니라 방문 서비스 직원(코디)들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쉽도록 PDA를 활용해 제안을 한다.
 
웅진코웨이 유구공장 기술연구팀의 이인탁(33) 선임연구원은 상상오션에 활발하게 참여한 덕에 지난해 12월 사내 ‘상상 왕’으로 뽑혔다. 200만 원의 현금과 승진을 위한 포인트도 얻었다. 그는 “상상오션에 재미를 붙이니, 일을 할 때도 그 일과 관련해 상상오션에 등록할 만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평소에 일을 하면서 생각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정리해놓고, 매달 20건 이상의 제안을 상상오션에 올린다.
2. 과거를 묻지 마라
공업용 합성 다이아몬드 제조 회사인 일진다이아몬드는 경제위기로 상당수 기업들이 휘청거렸던 1990년대 후반 급성장했다. 원래 절삭 공구 재료로는 초경합금이 쓰이지만, 일진다이아몬드는 초경합금보다 더욱 단단한 합성 다이아몬드 생산 기술을 보유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다이아몬드 결정은 흑연에 고온·고압을 가해 석출한다. 이 변환 기술을 가진 회사가 전 세계에 서구 기업 2곳과 일진다이아몬드뿐이었다. 당시 합성 다이아몬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 이에 일진다이아몬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영업 이익이 매출의 60∼70%에 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다. 서구의 합성 다이아몬드 회사 기술자들이 중국 업체에 이 기술을 건네주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소수 기업만이 갖고 있던 고유 기술이 순식간에 중국으로 퍼지면서 합성 다이아몬드 가격은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세계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의 80%를 중국 업체들이 차지할 정도였다. 경영 악화로 일진다이아몬드 역시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진그룹은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두산중공업 변화관리책임자 출신인 이윤영 사장을 2007년 1월 영입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변화시키는 게 급선무였던 이 사장은 두산중공업 시절 활용하던 경영 혁신 프로그램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를 써보기로 했다. TOP는 단기간에 기업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현장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다. TOP를 이용하면 3개월간 공장의 문제점 및 개선 방법을 찾아 즉각 실행하고, 1년 안에 원가 절감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사장은 판단했다.
 
이윤영 사장은 취임 두 달 후인 2007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사내 제안 제도를 시행했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제안 제도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과거불문’ 원칙이다.
 
“몇 년간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저하돼 있었습니다. 왜 제안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이제까지 안 하고 뭐 하다 지금 얘기하는 건가’라며 책임 소재를 추궁할 것 같아 망설인다는 직원들이 많았어요. 기존 낭비 요소에 대한 잘잘못을 직원들에게 추궁하지 말아야, 직원들 역시 자신이 그간 잘못했던 점을 개선 아이디어로 적극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과거불문 원칙을 통해 발굴한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다이아몬드 가루 재활용이다. 흑연에 고온·고압을 가해 합성 다이아몬드 결정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흑연 가루와 다이아몬드 가루가 찌꺼기로 남는다. 이때 경사진 슬로프에 찌꺼기를 놓고 물을 흘리면 가벼운 흑연 가루는 흘러내려가고, 무거운 다이아몬드 가루만 남아 이를 재사용한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고 가벼운 다이아몬드 가루는 흑연 가루와 함께 물에 흘러가 버려지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 20여 년간 이런 공정을 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다이아몬드 가루를 재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한 생산팀 직원이 버려지는 다이아몬드 가루를 회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해답도 너무나 간단했다. 찌꺼기를 폐수로 흘려보내기 전, 체에 한 번 더 걸러 버려질 뻔한 다이아몬드 가루를 얻어내는 것이다.
 
“체에 한 번 더 거르기만 하면 될 것을 안 해 그간 낭비한 돈이 얼마냐고 야단치면 누가 아이디어를 내놓겠습니까. 이 방법을 통해 한 해 3억 원어치의 다이아몬드 가루를 회수했으니 대만족입니다.” 이윤영 사장의 말이다.
 
유한킴벌리 역시 부서원들의 제안 의지를 꺾지 않도록 직원들이 제시한 제안에 대해 해당 직원의 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평가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홍보팀 조규식 차장은 “부서원들이 제안 주체가 되고, 해당 팀장이나 부서장이 이 제안의 등급을 평가하는 방식은 제안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과거불문 원칙에 착안한 제안 제도를 도입한 후 7개월 동안 직원 300여 명이 총 1800여 건의 아이디어를 냈고, 이 가운데 430여 건이 채택됐다. 제안 제도를 시작한 지 불과 4개월이 지난 2007년 7월부터 회사는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다. 이윤영 사장은 채택된 아이디어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 절약한 비용이 지난해 12월까지 총 225억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를 통해 얻은 이익의 3%는 해당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준다는 원칙에 따라, 지금까지 포상 대상자 291명이 총 2억 원 정도의 포상금을 받았다. 최고 420만 원의 포상금을 받은 직원도 있다.
 
3. 포스트잇 1장이면 충분하다
많은 직원들이 제안 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제안 양식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간단한데 이를 제안하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장황하게 적어내야 한다. 제안자들은 평범한 사람이므로 제안 방법이 까다롭거나 복잡하면 매우 싫어한다. 말보다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직원은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어렵게 짜낸 아이디어가 의사결정권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본인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는지를 확인할 때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활발한 제안이 이뤄질 수 없다. 현장에서 많은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하기 귀찮아 제안하지 않는다는 직원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LG
전자 창원공장의 에어컨 사업부에서는 이 같은 제안 제도의 복잡성을 없애기 위해 2007년부터 작업 현장에 ‘낭비 제거 제안 현황판’을 비치하고 포스트잇을 활용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기술하도록 했다. 제안 채택 과정도 지극히 간단하다. 해당 작업 감독자가 포스트잇 아이디어를 보면 그 즉시 채택 여부를 판단, 채택된 아이디어에는 도장을 찍는다.
 
제안 제도 전문가인 CNP경영연구소 어용일 소장은 “제안 사항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제안 제도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직원들이 ‘내가 힘들게 아이디어를 냈는데 왜 회사는 반응이 없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제안 제도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소 ‘24/72 원칙’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제안을 하면 24시간 이내에 잘 받았다는 접수 통보를 제안자에게 해주고, 3일 이내에 채택 여부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화한 제안 제도로 탄생한 아이디어가 바로 부품 박스를 실어 나르는 로봇 자동차 AGV(Auto Guided Vehicle)다. AGV는 제품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일정 속도로 안전하게 각 생산 라인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직선 주행뿐 아니라 곡선 노선에서도 자유자재로 주행이 가능하다. LG전자는 700∼800kg에 달하는 큰 부품을 운송하는 AGV, 제자리에서 180도 회전하는 AGV, 부품 선적과 하역이 가능한 AGV까지 다양한 용도에 따라 100여 대의 AGV를 자체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AGV 활용 전에는 운송 전담 직원이 직접 부품을 제조 라인으로 운반했다. 생산 라인 작업자들은 제품을 조립하다 말고 박스로 공급되는 부품의 포장을 일일이 뜯고, 조립하고, 빈 박스를 치우는 일까지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생산 라인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질 뿐 아니라, 심지어 라인 가동이 중단되는 일마저 벌어졌다.
 
이때 제안 현황판에 등장한 아이디어가 바로 AGV였다.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인력이 단순 왕복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 큰 손실이니, 과거의 AGV를 다시 살려보자’는 아이디어가 생산 현장에서 나왔다. 사실, LG전자는 이미 1997년 AGV 적용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외주업체가 제작한 수천만 원짜리 로봇 1대를 시험 운행해봤지만, 로봇의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고 고장 수리비도 매우 비쌌던 터라 금방 용도 폐기됐다. 이후 10년 넘게 생산 라인 하나에 2명의 운송 직원이 붙어 일일이 부품 박스를 운반하는 구석기식 제조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AGV 개선 아이디어는 즉각 상사에게 보고됐고, 외주 제작이 아닌 자체 제작 형태로 추진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아이디어를 낸 생산 현장 직원들은 대학과 산학 협동팀을 꾸리고, 전국의 기계 전시회와 로봇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10개월이 지난 2007년 10월, 자체 제작한 1세대 AGV가 탄생했다.
 
하지만 1세대 AGV는 부품 공급의 완전 무인화를 가능케 한 현재의 5세대 AGV와 많이 달랐다. 보냈던 AGV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보면 공장 한 모퉁이를 들이받고 그대로 정지해 있거나, 견인한 부품의 무게가 무거워 AGV의 기판이 타버리는 등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AGV 오작동으로 발생하는 문제점 또한 생산 직원들에 의해 바로바로 제안 현황판에 등장했고, 이를 곧바로 시정함에 따라 불과 2년 만에 5세대 AGV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4. 혁신 피로감을 없애라
2006년 초 국내 기업들에게 ‘혁신’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IBM도 추상적 개념인 혁신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정석진 한국IBM 마케팅 차장은 “당시 직원들은 ‘이노베이션’을 ‘혁명’ 내지 ‘변혁’이라고 인식해 아주 대단한 무언가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이를 없애기 위해 작은 변화부터 이끌어내자는 의미로 ‘소프트 이노베이션(soft innovation)’을 사내 모토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임원들이 나서서 2006년 5월부터 ‘이노베이션 브레인스토밍 세션(innovation brainstorming session)’이라는 회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회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반부터 45분간 열리며, 이휘성 사장을 비롯한 26명의 임원들이 참석한다. 주제는 ‘부서 간 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원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고객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와 같은,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내용들이다.
 
미리 회의 주제를 공지하면, 각 임원들은 부서 직원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액션플랜까지 짠 뒤 회의실에 들어온다. 그리고 각자 생각해온 아이디어들을 커다란 포스트잇에 적고, 45분 동안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실행할지 결론까지 낸다.
여기서 나온 결론의 60% 이상이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다. 대표적 아이디어는 ‘블레이드 버스(Blade bus)’. IBM이 만드는 서버 중 B2B로 판매하는 블레이드라는 제품이 있다. 그런데 제품을 알리는 세미나를 열어도 지방 중소기업 직원들은 서울까지 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IBM을 홍보하는 래핑버스를 만들어 그 안에 블레이드를 직접 싣고 지방 중소기업을 수십 군데 돌아다니며 제품을 시연했다. 대개 B2C 마케팅에 쓰이는 래핑버스를 색다르게 B2B 마케팅에 도입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후 중국과 대만 등 해외 IBM 지사에서도 이를 따라 했다.
 
이노베이션 브레인스토밍 세션이 처음부터 원활히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정석진 차장은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초기 제안 제도를 그대로 고수하지 않고, 운영 과정에서 직원들의 피드백을 충분히 반영해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해나간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임원들은 세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자꾸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려고 했다. 매주 쏟아져 나오는 아이디어를 실무에 반영하려면 일상적인 업무 외에도 가욋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휘성 사장은 TF팀을 만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업무 부담이 커질수록 ‘혁신 피로감’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사장에게 별도의 보고를 하지 말고 각 담당 임원들이 알아서 업무를 해결하도록 했다. 임원들도 “직원들이 세션에서 나온 의사결정에 대해 일일이 상부의 승인을 받으면 소요 시간이 길어지고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중대 사항이 아니면 굳이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 차장은 “처음엔 일이 많아졌다며 귀찮아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각 팀에서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권한 위임 등을 통해 직원들이 위에서 시켜 억지로 일한다는 생각 대신 스스로 혁신을 이끌어간다는 적극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5. 제안 제도 성패는 교육에 달려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교육이야말로 직원들의 제안 동기를 강화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평가한다. 일단 제안을 할 만한 시간적 여건을 만들어주고, 스스로를 계발할 기회를 줘야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유한킴벌리는 근무 체제를 바꿔 직원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자, 이를 학습 및 제안 제도와 연결해 좋은 성과를 낸 대표적 기업이다. 

유한킴벌리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 중 거의 최초로 4조 2교대 근무제를 채택, ‘감원 없는 고용 유지’를 선택했다. 외환위기 전에는 하루 8시간씩 3개조가 일하는 체제였지만, 이를 12시간씩 일하는 4개조로 만들어 2개조는 일하고 2개조는 쉬는 식으로 바꿨다. 이는 한국식 일자리 나누기 제도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고, 10년 넘게 4조 2교대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직원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착안, ‘평생학습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제안 및 학습 제도 연계 체제를 도입했다. 생산ㆍ기능직 사원들을 위한 4조 2교대 근무는 주간 4일 근무(12시간)→휴무 4일→야간 4일 근무(12시간)→휴무 3일 및 교육 1일의 순서로 이뤄진다. 즉 16일에 1번 돌아오는 교육 시간 때 직원들이 학습 기회를 활용해 당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스스로 발굴하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생산ㆍ기능직 사원들의 호응이 높았다. 자신의 생산 과정을 면밀히 이해하고,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 조규식 차장은 “충분한 휴식과 학습 시간을 주니 제안 제도가 활성화되고, 이것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제안 건수의 증가, 생산성 향상, 재해율 하락 등이 이를 입증한다.
 
유한킴벌리 군포공장의 경우 1998년에는 직원 1인당 제안 건수가 4.3건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11.2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아용 기저귀의 생산성도 시간당 1998년 25.4개에서 2008년 46.8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1998년 0.49%에 달했던 유한킴벌리의 재해율은 2008년 0.06%로 하락했다. 이는 국내 제조업 평균 0.9%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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