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경영

탄광촌의 기적을 만든 몰입의 힘

23호 (2008년 12월 Issue 2)

1969년 당시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된 이응로 화백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차가운 감옥에서 물감을 구할 수 없자 이 화백은 시멘트 날바닥에 수감 생활 중에 받아 든 콩밥 속의 밥풀 하나하나를 짓이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끈적끈적한 풀에 딸려 나온 간장으로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렸다. 머릿속의 그림이 날바닥에 물화된 이미지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응로는 시름도 한숨도 잠시 잊을 수 있었노라고 회상했다.
 
사실 이응로의 영혼을 구한 것은 과거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솔제니친을 구했고(그는 그곳에서도 마음속으로 글을 썼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클(그는 그곳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했다)을 구하기도 한 바로 그것, 몰입이다.
 
1980년대부터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연구한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어떤 일에 집중하여 내가 나임을 잊을 수 있는 심리적 상태’라고 정의했다. 몰입은 플로(flow)란 용어 그대로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특징이다. 재미있는 일을 했을 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1시간이 1분처럼 지나간 느낌.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이것은 바로 창조와 행복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이며, 동양에서는 이미 ‘물아일체’나 ‘무아경’으로 파악한 몰입 개념이다.
 
몰입의 힘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하는 것은 진작에 유명한 위인들도 다 알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라고 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그 많은 사람이 정해진 시간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사용하고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한다면 그들은 성공할 것”이라면서 “문제는 사람들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리는 단 한 가지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몰입으로 춤의 진실을 깨친 빌리 엘리어트
비단 위인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이 몰입을 너무도 간결하고 아름답게 설명한 사람이 있다. 스티븐 댈드리 감독의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춤추는 소년 빌리가 그 주인공이다.
 
1984년 총파업 시기에 영국 북부 광부의 아들인 빌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근근이 생활한다. 광부인 아버지는 평생 탄광을 지키는 우직한 사나이지만 생활고로 인해 부인 체취가 밴 피아노까지 땔감으로 사용한다. 모름지기 사내는 권투나 레슬링을 해야 신는다는 아버지의 강권에 아들은 사각의 링에 서지만, 정작 소년을 사로잡은 것은 여자애들이나 신는다는 하얀 발레 슈즈였다.
 
영국 북동부의 탄광촌에서 춤은 사치이고, 여자들의 취미이며, 런던이라는 귀족 세상의 전유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빌리에게 춤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리듬이며, 현실에서 꿈으로 비상하는 날개이며, 삶 그 자체다. 동네의 허름한 벽돌 담 위, 연기가 뿌옇게 들어찬 체육관, 술이 취해 잔뜩 화가 난 아버지 앞에서도 기꺼이 춤을 추는 빌리. 빌리 엘리어트의 춤은 체제와 관습에 항거하는, 모든 것을 걸고 자신 안의 싹을 꽃피우려는 콘크리트 대지를 뚫는 힘찬 맥박이다. 어쩌면 자본가 중심의 체제에 항거하는 아버지의 맨주먹과 완고한 성 역할의 관습에 항거하는 아들의 맨발은 같은 삶의 뿌리에서 나온 쌍생아 같은 육체의 활공이 아니었을까.
 
이윽고 왕립발레학교에 도전한 빌리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그들이 난생 처음 보는, ‘족보’에도 없는 춤을 춘다. 이 기상천외한 춤 앞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심사위원들은 입도 뻥긋 못해 보고 인터뷰를 마친 빌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빌리, 네가 춤을 출 때는 어떤 기분이 드니?”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던 소년은 이윽고 “그냥 좋아요. 하늘을 나는 것 같고.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아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그 순간 스크린 위에 펼쳐진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뭔가가 스쳐 지나간다. 한 소년으로부터 발견하는 춤의 진실. 춤을 기교나 공부가 아닌 몸으로, 삶 전체로 터득한 한 소년의 가능성을 그들은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몰입은 사람들은 감동시키고, 세상을 잊게 만든다. 몰입은 시간을 멈추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게 만든다. 이 몰아의 경험 뒤에는 쑥쑥 크는 자부심과 실력이 기다리고 있다.

 
몰입 경영의 열쇠는 집중과 분산
그렇다면 이러한 몰입을 경영에 응용할 수는 없을까. 똑같은 일을 하는데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신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 경영을 위해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반응이 즉각적인 직장을 만들라’, ‘회사의 목표를 직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자발적인 의사소통이 원활한 기업을 만들어라’, ‘조직을 작게 운영하고,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라’.

즉 몰입을 위해서는 그 일에 재능이 있는 사원을 뽑고, 그 사원에게 분명한 목적의식을 고취시키며, 일의 결과에 대한 반응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몰입 경영의 사례들
이렇게 할 때 기업 전체의 ‘몰입’이 이뤄지고, 사람들은 직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고 칙센트미하이는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몰입 경영의 사례를 구글이나 맥도널드 같은 곳에서 찾았다.
 
캘리포니아 소재 레저용품 제조회사 파타고니아에는 복도에 직원들의 서핑보드가 널려져 있고 창 밖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구글은 터치패드로 작동하는 화장실과, 네온사인으로 현란하게 치장하거나 온갖 기괴한 장난감으로 가득 채운 테마 사무실, 모터로 조류를 일정하게 흐르게 만든 욕조보다 조금 큰 미니 수영장을 회사 내에 설치했다. 구글의 공간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몰입을 가능케 했으면, 직원들 사이에서 ‘구글로 스트레스 풀러 간다’는 그 유명한 모토가 등장했겠는가.
 
물론 지나친 몰입은 부작용을 낳는다. 어떤 상황을 넘기면 일 중독이 된다. 몰입과 달리 중독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자괴감을 안긴다. 중독은 인생의 충만함 대신 인생 그 자체를 갉아 먹기 때문이다. 일 중독에 걸린 사람은 업무가 끝나면 오히려 허탈감을 느끼고, 일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따라서 몰입 경영의 핵심은 역설적으로 집중과 분산의 묘를 터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몰입의 에너지를 분산해라. 즉 일에 몰입하다가도 그걸 잠시 접고 반드시 여가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구글의 놀이터와 일터의 연합 개념도 바로 몰입의 에너지가 중독으로 넘어가지 않게끔 직원들을 배려한 한 방편이다.
 
진정 몰입이 어렵다면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한 세상 모든 아이들이 놀이하는 광경을 쳐다 보자. 자기 검열 없이, 기쁨을 나누며 뛰고 노는 아이들은 어쩌면 몰입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과 동료 직원들을 노는 아이, 기쁜 아이로 만들 수 있는 기업이야말로 장차 미래를 이끌 세계적인 기업, 창의적인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제품의 기능보다 꿈과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입니다. 유명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가 영화를 통해 본 경영 원리와 스토리 경영의 가능성에 대해 연재합니다. 새롭고 신선한 비즈니스의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으면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심리학과 영화를 접목해 새로운 영화평론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이자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