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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지혜

김정수 | 24호 (2009년 1월 Issue 1)
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캥거루와 코알라, 오페라 하우스, 서퍼들의 천국, 풍부한 천연 자원, 아름다운 자연, 남태평양 섬나라로의 휴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크리켓과 럭비 등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낭만적으로만 보이는 호주의 역사는 영국이 호주 동부의 뉴사우스웨일스 지방에 자국의 죄수들을 정착시키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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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월 동안 배 밑에 갇힌 죄수들
호주ABC 방송의 데이비드 힐 전 회장이 쓴 ‘1788’은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인 1788년에 영국이 호주로 죄수들을 보내야만 했던 배경과 그 과정, 힘겨웠던 정착기를 놀랍도록 정교한 사료에 기초해 상세히 그린 책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유래가 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각종 범죄가 폭증했다. 늘어나는 죄수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영국 정부는 급기야 지구의 반대편 호주로 800여 명의 죄수를 보내게 된다.
 
죄수들은 배의 맨 밑바닥에서 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로 8개월을 버텨야 했다. 그 비참함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적도를 지날 때는 찌는 듯한 더위에 돌아누울 자리도 없이 비좁은 곳에서 서로 엉겨 있어야 했다. 식량 조달을 위해 배에서 키우던 동물들의 배설물은 자연히 배의 가장 아래쪽에 고였으며, 뱃멀미를 한 사람들의 구토와 뒤섞였다. 각종 전염병과 괴혈병(과일이나 야채에 있는 비타민 C를 섭취하지 못해 생김)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그 고생 끝에 도착한 호주는 과연 살기 좋고 풍요로운 땅이었을까. 현재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토양은 척박해 곡물이 잘 자라지 않았으며, 날씨는 태풍이 많고 바람이 심했다. 영국 정부는 형기가 끝난 죄수들에게 땅을 주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심지어 그들조차도 다시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지경이었다.
 
불과 220년 전에 이렇게 시작된 호주가 지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국가 브랜드 지수 9위, 삶의 질 지수 6위는 물론 모든 사람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선망의 나라‘로 변신했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 만든 영국
책을 읽으며 필자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1788년 당시 이런 미래를 내다보고, 또는 최소한 그런 계획과 의지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호주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인이 과연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적어도 책 속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영국이 호주에 죄수들을 보내기로 한 의사 결정은 오히려 ‘궁여지책’에 가까웠다. 영국에는 적극적으로 호주를 개발해 보겠다는 의지는 고사하고, 심지어는 죄수 정착 사업의 성공 여부를 확신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영국이 호주를 성공적인 식민지로 만든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영국은 근대에 접어든 이후 눈을 밖으로 돌려 전 세계 곳곳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세밀한 목표가 없더라도 ‘어느 구름에 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여력이 있을 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 18세기 영국은 오세아니아뿐 아니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 대한 활발한 탐사와 탐험을 통해 거의 모든 대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고 있었다. 이런 태도 덕분에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으며, 궁극적으로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호주와 관련해서도 이미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다녀와 작성한 상세한 자료가 죄수 송출이란 어려운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줬다.
 
인텔의 성공에도 우연이 작용
책을 읽다 보니 현존하는 기업 가운데 최고의 경영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인텔의 사례가 떠올랐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면서도 ‘인텔 인사이드’라는 대중 마케팅을 통해 일반적인 컴퓨터 브랜드보다도 더 잘 알려져 있는 기업이 바로 인텔이다.
 
많은 사람은 1984년 인텔이 DRAM(메모리 반도체) 회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비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환골탈태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당시 개인용 컴퓨터(PC) 붐을 주도한 IBM에 납품을 시작한 것이 치밀한 계산과 분석을 통한 극도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텔 역사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연구한 로버트 버겔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인텔의 성공 이면에는 의외로 많은 우연한 의사 결정이 있었다.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을 시작한 것은 일본의 한 계산기 회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또 인텔은 286칩을 개발한 이후에 컴퓨터에 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IBM에 납품을 시작하게 됐다. 실제로 인텔이 개발 당시 열거한 286칩의 50가지 용도에 컴퓨터는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텔의 성공은 단순하게 운이 좋았다기보다 영국의 호주 식민지 개척과 같이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필연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인텔의 경영철학과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현명함이었다. 인텔은 점차 시장 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자사의 기반인 탄탄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경쟁을 통해 미래 핵심 사업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의 싹을 키웠고, 과감하게 비메모리 반도체라는 불확실하지만 거대한 가능성을 선택했다. 이런 실행력에 더하여 세계 최고 수준인 인텔의 첨단 기술은 성공을 가능하게 해 준 기초 체력이 됐다.
 
미래의 유망 사업이나 히트 상품을 족집게처럼 찾아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10개의 중요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가운데 4개 정도가 개발 단계로 진전이 되고, 2개가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이 가운데 하나만 히트를 하더라도 큰 성공으로 인정받는다.
 
혁신의 성공요인, 나아가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비결은 항상 눈과 귀를 열고 단 1개의 새로운 상품과 사업을 위해 100개 또는 1000개의 아이디어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때의 아이디어는 기업 내부는 물론 외부에 있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외부 아이디어는 기업이 미처 보지 못했거나 간과한 사항들을 깨우쳐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근래 비즈니스에서 회자되는 통섭(consilience) 또는 개방형 혁신(OMI)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최종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인텔의 예와 같은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김정수 |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jungsu.kim@gscalt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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