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의 첨단 산업도시에 낯선 순례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투자자와 창업자, 글로벌 기업 임원들이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항저우의 로봇·AI·전기차 공장을 찾아가는, 이른바 ‘테크 필그리미지(tech pilgrimage·기술 순례)’입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상하이의 기술 시찰 업체 글로펜은 올해 문의가 전년 대비 50% 늘어 매달 100회 넘게 기업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이후 샤오미 베이징 전기차 공장을 다녀간 방문객도 25만 명이 넘습니다. 값싼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여겨지던 중국이 이제 세계 기업들이 배우러 찾아가는 기술 학습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 첨단 제조업과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이끌지 모른다는 서구의 ‘차이나 쇼크 2.0’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DBR 역시 올 8월 베이징 세계로봇대회(WRC) 인사이트 투어를 통해 보고서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중국 기술의 현주소와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예컨대 WRC의 브레인코(BrainCo) 부스에서는 뇌파 측정 캡을 쓴 사람이 ‘로봇이 사과를 가져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휴머노이드가 사과를 집어 건네는 등 중국 기술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한편 WRC 폐막 무렵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세계휴머노이드로봇운동회에서는 로봇의 가능성과 한계가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톈궁 울트라’는 100m를 9초39에 주파해 우사인 볼트가 세운 인간 최고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반면 소매 현장을 재현한 시나리오 경기에서는 로봇들이 과자 봉지를 집어 옮기는 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정해진 동작에서는 인간보다 빨랐지만 복잡한 상황을 판단하고 안정적으로 일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했습니다. 올해 WRC에서 기업들이 춤과 격투보다 택배 분류와 부품 조립, 품질 검사를 앞세운 것도 이제 기술적 성취를 실제 쓸모와 수익으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무서운 경쟁력은 역설적으로 이 불완전함 속에 있습니다. 중국은 완성도 높은 로봇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가격을 낮춘 로봇을 서둘러 현장에 내보내고 그곳에서 쌓인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를 다음 제품에 반영합니다. 중국의 강점은 ‘실패하지 않는 기술’보다 ‘실패의 단가가 낮은 시스템’에 있습니다. 실패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적으니 더 많이 실험할 수 있고, 그만큼 학습도 빨라집니다.
그 배후에는 ‘엔지니어의 나라’가 된 중국이 있습니다. 기술·산업 분석가 댄 왕은 저서 『브레이크넥』에서 중국을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거대한 공학 프로젝트로 다루는 ‘엔지니어링 국가’라고 규정합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부상 앞에서 패배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중국의 강점뿐 아니라 그늘도 읽어야 합니다. 중국 업체들은 올 상반기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의 97%를 차지했지만 생산 능력이 수요를 앞서면서 과잉 투자와 출혈 경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물량과 가격으로 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승산이 크지 않습니다. 대신 안전성과 정밀도, 반복 성능이 중요한 고난도 시장에 집중해야 합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우리가 강한 제조 현장을 로봇의 테스트베드이자 학습 기지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편 AI 에이전트 시장에서는 ‘위임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QR 결제와 슈퍼앱을 통해 ‘편리한 위임’을 정착시킨 중국과 달리 한국은 AI의 판단 근거와 데이터 활용 방식, 책임 소재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믿을 수 있는 위임’으로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한때 세계는 중국을 ‘값싸게 만드는 곳’으로 찾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이토록 빨리 배우는가’를 확인하러 갑니다. 중국과 뒤늦게 속도 경쟁을 벌이기보다 기술 활용에 따르는 위험을 낮춰 신뢰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중국을 따라잡는 방법을 넘어 중국과 다르게 앞서갈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