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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자르댕 다클리마타시옹은 나폴레옹 3세의 손에서 시작했다. 런던 하이드파크를 모델 삼아 조성한 시민을 위한 공공 공원이자 이국적인 동물을 선보이던 ‘제국의 쇼윈도’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소유권을 넘겨받은 섬유 재벌들의 거듭된 파산 속에 황제의 원대한 꿈을 담은 정원은 몰락했다. 1984년 디올을 인수한 베르나르 아르노의 손에서 상황은 반전됐다. 디올 인수 과정에서 우연히 이곳의 운영권을 넘겨받은 아르노는 뜻밖의 자산을 방치하지 않았다. 역사적인 조경을 복원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삼고 그 안에 문화 랜드마크 ‘퐁다시옹 루이뷔통(FLV)’을 건립했다. 이는 루이뷔통을 ‘파리의 문화 지형에 기여하는 위대한 문화 기관’으로 격상하는 치밀한 브랜드 전략이었다.
하이드파크를 넘고자 했던 나폴레옹 3세의 꿈 프랑스 수도 파리에는 두 개의 허파가 있다고들 한다. 파리 서쪽의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과 동쪽의 뱅센 숲(Bois de Vincennes)이다. 파리의 면적은 약 105㎢. 서울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가운데 불로뉴 숲과 뱅센 숲이 각각 약 8㎢, 10㎢를 차지한다. 두 숲을 제외하면 파리의 실제 도심 면적은 87㎢ 남짓이다. 파리를 여행할 때 ‘참 아담하구나’ 하고 느끼는 이유는 그만큼 도시가 작기 때문이다.
불로뉴 숲 안에는 자르댕 다클리마타시옹(Jardin d’Acclimatation)이라는 정원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순화(馴化)의 정원’쯤 된다. 이름이 특이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1855년, 나폴레옹 3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초청으로 런던을 방문했다. 황제 부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하이드파크였다. 시민 누구나 마음껏 거니는 넓은 공원. 파리에도 이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국 후 황제는 불로뉴 숲 전체를 영국식 정원으로 바꾸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프랑스 정원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베르사유 정원일 것이다. 직선 축, 기하학적 대칭, 토피어리, 반듯하게 깎은 잔디, 분수. 자연을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프랑스식 정원은 절대왕정 시대 루이 14세의 미학이었고 18세기까지 유럽 전역이 이를 흉내 내려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