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혁신은 더 똑똑한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많은 조직은 직면하는 문제를 매출 하락, 고객 이탈, 품질 문제 등 기존의 언어로 이름 붙여 그 안에서 해법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는 기존 프레임의 연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싱킹의 핵심은 공감을 바탕으로 문제 자체를 다시 쓰는 데 있다. 못난이 과일 비즈니스는 과일의 외형이 아닌 ‘유통 기준’을 문제로 재정의하며 버려지던 농산물을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경쟁이 아닌 ‘콘텐츠 접근 경험의 불편’을 문제로 재정의해 스트리밍 시장을 열었고, LG전자는 ‘의류 관리의 공백’을 포착해 스타일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혁신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를 의심하고 사람의 맥락 속에서 다시 정의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독자의 사고를 잠시 멈추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너무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인다. 카인은 악, 아벨은 선. 누구도 의심치 않던 견고한 질서다. 그런데 데미안은 이 익숙한 도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사람들은 카인을 두려워하며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에게 ‘악’이라는 이름을 덧씌웠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카인이 본질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악으로 정의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문학적 반전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문제와 비문제의 기준이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해석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날 기업과 조직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도 정확히 연결된다. 많은 조직은 이미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하다. 매출이 하락하면 마케팅 문제라고, 고객 이탈이 늘면 가격이나 품질이 문제라고, 직원 저항이 커지면 변화 수용성의 문제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이미 이름 붙여져 있고, 남은 일은 그 문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해결하는지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지금 해결하고 있다고 믿는 그 문제가 진짜 문제일까. 아니면 카인에게 ‘악’이라는 이름을 붙였듯 우리가 너무 빨리 현상을 해석하고 익숙한 문제명을 씌워버린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싱킹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싱킹은 흔히 공감(Empathize), 문제 정의(Define), 아이디어 도출(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대중적으로는 공감이나 아이데이션(Ideation)이 더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디자인싱킹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기법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디자인싱킹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두 번째 단계인 문제 정의(Define)다. 공감은 출발점이지만 혁신은 공감 그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공감을 통해 사람의 삶과 맥락을 충분히 들여다본 뒤 우리가 풀고 있다고 믿어온 문제를 새롭게 다시 쓰는 순간, 비로소 혁신의 방향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