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2010년 8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네오세미테크가 상장폐지됐다. 2010년 3월 말 회계법인의 감사 결과 분식회계가 적발된 후 5개월 만에 증권시장에서 퇴출됐다. 퇴출 전 거래가 중지될 시점의 시가총액은 무려 4000억 원대로 코스닥기업 중 26위에 해당했다. 시가총액으로 볼 때 역사상 가장 큰 기업이 상장폐지된 셈이다.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는 매년 수차례 발생하지만 이런 기업은 대부분 상장폐지 이전부터 경영상태가 부실하고 시가총액이 수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에서 퇴출된다.
네오세미테크는 전혀 달랐다. 부실 징조가 전혀 없이 우량한 기업처럼 보이던 상태에서 갑자기 상장폐지됐다. 그 결과 무려 7000여 명이나 되는 소액주주들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됐다. 최대 피해자는 277억 원을 날렸다고 한다.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주주들은 ‘네오세미테크 주주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해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소액주주들이 집단으로 연대해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집단 소송’이라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2011년에는 대주주 횡령과 주가 조작 등으로 상장폐지된 씨모텍을 대상으로 수백 명의 주주들이 연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대상에는 유상증자를 주관했던 동부증권까지 포함됐다. 2011년 1월 한국증권시장에 상장됐다가 불과 두 달 만인 3월 분식회계가 적발돼 상장폐지된 중국 고섬 사태와 관련해서도 소액주주들이 한국거래소와 상장 주관사인 대우증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분식이나 횡령을 저지른 회사들의 경영진뿐 아니라 회계법인이나 증권사, 관련 공공기관까지 소송을 당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추세가 점점 더 확산될 것이다.
네오세미테크 사건과 관련해 독특한 점은 네오세미테크가 문제가 발발하기 직전인 2009년 10월 우회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는 점이다. 2009년 10월 상장해서 2010년 3월 거래정지됐으니 상장된 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네오세미테크의 성장 배경과 분식회계, 우회상장 제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다.
네오세미테크의 성장과 발전
네오세미테크의 창업주인 오명환 사장은 공학 박사 출신의 전문가다. 원래 LG전선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독립해서 회사를 설립했다. 초창기 근무하던 30여 명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오 사장을 믿고 LG에서 함께 옮겨 온 석박사급 인력들이다. 초창기 네오세미테크가 상당한 기술 역량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네오세미테크의 주 품목은 갈륨비소를 이용한 반도체 웨이퍼였다. 이 상품은 2001년 산업자원부에서 세계일류상품으로 인정받았고 회사는 최우수벤처기업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회사는 반도체 웨이퍼와 연관된 품목으로 태양전지 웨이퍼 사업에 진출했다. 태양전지 웨이퍼는 태양광발전 시 태양광을 흡수해서 전기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2006년 이 기술을 개발한 네오세미테크는 대만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기업과 수출 계약을 맺을 정도로 사업이 확대됐다. 그러자 네오세미테크는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원 고갈과 환경보호, 녹색 성장 등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자 네오세미테크는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국내 여러 대기업들에 웨이퍼를 납품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코스닥시장의 스타주로 부상하면서 장관이 회사를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2009년에는 지식경제부도 이 회사의 웨이퍼 제품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했다.
이러면서 네오세미테크의 자산 규모와 이익이 급증했다. 설립 초기인 2001년 130억 원에 불과하던 총자산은 2004년 267억 원 정도였으나 2005년 400억 원, 2006년 810억 원, 2007년 1000억 원, 2008년 22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불과 1년 동안 두 배 이상 규모가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당기순이익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13억 원에 불과하던 이익이 2007년 25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가 2008년에는 230억 원으로 무려 9배나 늘어났다. 매출액은 2007년 315억 원에서 2008년 1000억 원으로 3배 증가했다. 엄청난 성장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빠른 성장을 토대로 2009년 10월 네오세미테크는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했다. 우회상장이란 무엇이며 네오세미테크의 우회상장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보겠다.
네오세미테크의 우회상장 과정
우회상장이란 비상장사가 상장사와 합병하는 형태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비상장사가 직접 주식시장에 상장되려면 증권거래소의 복잡한 상장심사 절차와 공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상장회사가 거의 시장가치가 없는 유명무실한 상장회사와 합병하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복잡한 과정을 피하고 뒷문을 통해 주식시장에 진입한다고 ‘백도어 리스팅(back door listing)’이라고 한다.
우회상장의 법률적 형태는 상장회사가 비상장회사를 합병하는 것이다. 합병한 후 회사 이름을 과거 비상장회사로 바꿔버리면 실질적으로는 비상장회사가 상장하는 셈이 된다. 비상장기업에서 현금을 이용해 상장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고 두 회사를 합병할 수도 있고, 현금을 동원하지 않고 주주 간 주식 교환을 통해 합병하기도 한다. 기존 상장회사가 껍데기만 남아 있던 유명무실한 회사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비상장회사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합병한 후 비상장회사가 주도권을 가진다.
우회상장은 빠른 상장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지닌다.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상장하려면 최소 2∼3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외부자금을 신속하게 조달할 필요가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게 기다릴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다. 이럴 때 우회상장을 하면 주식시장에서 바로 외부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점은 우회상장을 하면 복잡한 상장심사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상장심사 절차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지 않은 기업도 이 방법을 선택하면 감독당국의 감시를 교묘히 피해서 상장할 수 있다. 네오세미테크의 사례를 보면 이 두 가지 이점을 모두 노리고 상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오세미테크는 2009년 10월 ㈜모노솔라를 통해 우회상장했다. 이 회사는 2006년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로 네오세미테크에 부품 및 자재 등을 공급하는 특수관계회사였다. 2008년 9월부터 네오세미테크의 오 사장이 ㈜모노솔라 대표를 겸하고 있었다. 즉 우회상장 이전에 모노솔라의 경영권을 네오세미테크가 장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상당수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우회상장하는 네오세미테크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우회상장은 모노솔라가 네오세미테크를 흡수합병하면서 상호를 네오세미테크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상장시 주가는 1만5150원이었다. 이때 시가총액은 6000억 원대 초반으로 코스닥 상장사 중 시가총액 기준 13위에 해당했다. 이후 주가는 약간 떨어져서 1만2000원대를 횡보했다.
분식회계 적발
네오세미테크가 2009년 우회상장을 통해 주식시장에 입성한 이유는 회사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자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전술한 것처럼 2007년부터 회사의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기 때문이다.
상장 직후 첫 번째 발행된 감사보고서에서 회계감사인인 대주회계법인은 네오세미테크의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의견거절’을 선언한다. 회계법인은 재무제표를 감사한 후 감사의견을 제시한다.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적정의견’을, 일부 회계처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면 ‘한정의견’을, 회계처리 방법에 동의할 수 없다면 ‘부적정의견’을, 감사의견을 내릴 만큼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면 ‘의견거절’을 낸다. 적정의견 이외의 의견을 받은 기업은 곧바로 거래가 중지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다.
대주회계법인의 ‘의견거절’ 소식이 발표된 날은 2010년 3월24일이었다. 대주회계법인은 회사의 재무자료를 신뢰할 수 없으며 회사가 개발비를 부풀리고 유형자산과 이익을 과대계상하고 있으며 매출을 중복 계상하는 등 회계기록이 극히 방만하게 이뤄지고 있어 회계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의견거절’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회사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내부통제제도’에 대한 검토의견도 별도로 발표했다. 상장 직전까지 회계감사를 해온 인덕회계법인에서는 아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적정의견’을 계속 발표해왔는데 새로 감사를 맡은 대주회계법인에서는 재무제표가 심각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의견거절이 발표되자 네오세미테크의 주식은 증권시장 규정에 따라 즉시 거래정지됐다. 이때 주가는 8500원이었다. 소액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금감원과 청와대, 여야 정치인들에게 피해를 보상해 달라거나 회사를 살려달라는 투서를 보내기도 하고 감사가 잘못됐다며 감사인을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정을 저지른 회사가 아니라 부정을 발견한 감사인을 협박해서 감사의견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이다. 네오세미테크에서는 분식을 인정하지 않고 회계자료에 대한 해석 차이라고 변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주회계법인과 네오세미테크는 재감사 약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3개월 동안 상장폐지가 유예됐다. 그러나 3개월 후 발표된 재감사 의견 역시 ‘의견거절’이었다. 회사의 회계기록 자체를 전혀 신뢰할 수 없으므로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2010년 2월 회사가 최초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2009년 매출액이 1453억 원, 영업이익이 313억 원, 순이익이 274억 원이었는데 3월에 대주회계법인의 감사 이후 수정된 재무제표에는 매출액 979억 원, 영업이익 19억 원, 순손실 224억 원으로 나타났다. 재감사를 통해 공표된 재무제표는 매출액 187억 원, 영업손실 150억 원, 당기순손실 838억 원이었다. 매출액이 8배 정도나 부풀려졌던 것이다. 재감사 결과 네오세미테크는 결국 정리매매를 거쳐 증시에서 퇴출됐다. 퇴출 시점인 2010년 8월23일 정리매매가격은 295원이었다. 1만5151원에 상장한 기업이 불과 1년도 안 돼 휴지조각처럼 급락한 셈이다.
상장폐지 이후 밝혀진 추악한 진실
상장폐지 후 대주주의 여러 추악한 모습이 속속 알려졌다. 대주주인 오 사장 및 몇몇 경영진은 회사 사정을 미리 알고 의견거절 소식이 알려지기 직전 보유하던 주식을 대규모로 내다팔았다. 내부자 거래를 한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네오세미테크의 오 사장은 2007년 친인척 명의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83회에 걸쳐 이 페이퍼컴퍼니에 웨이퍼를 수출하는 것으로 장부를 조작했다. 가짜 웨이퍼를 홍콩으로 배에 실어 보내고 수출했다고 매출로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장부만 가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식 선적서류를 갖춰 가짜 상품을 홍콩으로 보내는 식으로 치밀한 사기를 준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00억 원대의 가공 매출이 발생했다.
또한 이 페이퍼컴퍼니에서 92회에 걸쳐 물품을 가짜로 수입하면서 거래대금 519억 원을 해외 비밀계좌로 빼돌렸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인 2010년 8월 오 사장은 동생 여권을 이용해 마카오로 출국, 잠적해버렸다. 상장폐지와 거의 동시에 도망친 것이다. 마카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 사장의 소재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횡령한 519억 원을 가지고 숨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길이 없어졌다. 이런 내용을 보면 대주주가 처음부터 사기를 치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면서 상장을 준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주주의 도덕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2007년부터 급증한 다른 회사들에 대한 해외 수출도 대부분 재구매한다는 조건이 붙은 수출이었다. 판 물품을 네오세미테크가 다시 구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재구매한 내용은 회계장부에 기록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분식을 했다. 즉 2006년 이후 네오세미테크의 화려한 성장은 실체 없는 거짓이었다. 2006년 매출이 270억 원이었는데 재감사 후 수정된 2009년 매출액이 187억 원일 정도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늘어난 매출은 모두 가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증권거래소는 공시 관련 규정을 강화했고 금융감독원은 우회상장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네오세미테크뿐 아니라 당시 우회상장한 여러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우회상장 심사과정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우회상장을 하더라도 직상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금감원에서 지정한 감사인에게 감사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 그 결과 기업이 우회상장할 때 누릴 수 있는 이점 두 가지가 모두 사라져서 2011년 이후 우회상장 기업 숫자가 급감했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