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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통해 본 세상

‘적당히 하는 감사’가 만든 저축은행 사태

최종학 | 98호 (2012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2011년 여름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여러 저축은행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다른 곳으로 매각됐다. 이들 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차명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에 막대한 자금을 불법으로 대출했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은행의 대주주가 특수목적법인을 무려 120여 개나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부산저축은행은 이들 법인에 총 5조30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빌려줬다. 이렇게 받은 자금을 이용해 특수목적법인들은 전국 각지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산저축은행 전체 대출금의 60%에 달하는 금액이 부동산 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출됐을 정도다.
 
2000년대 초중반, 정부 주도로 전국적인 부동산 개발사업 붐이 일면서 국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던 부동산 가격은 2006년 정점을 찍었다. 저축은행을 포함한 많은 건설사들이 아파트 건설 및 부동산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다. 그러다 2008년 여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 특수목적법인들이 벌인 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당연히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했다. 저축은행 부실이 여기서 비롯됐다.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했다.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일반인들은 원금조차 돌려받을 수 없었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최대 5000만 원까지만 원리금을 보장한다.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돌려받기 어렵다.
 
금융감독원과 회계법인에 대한 비난
비리의 직접 당사자인 저축은행 대주주나 직원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이나 공인회계사에 대한 비난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경우 금감원 출신 전직 공무원들이 부실 저축은행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도 오히려 대주주의 불법 행위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현직 직원이 저축은행 부정을 적발하고도 뇌물을 받고 눈감아 준 사례도 드러났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인 BIS 비율이 최소 기준인 5%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이 예외기준을 만들어 적용한 점이 문제가 됐다. 부산저축은행은 2008년 부실 저축은행인 대전저축은행을 인수, 자회사로 편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회사가 떠안고 있는 부실을 BIS 비율 산정에서 제외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부산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질 당시 외부로 공표된 BIS 비율은 5.13%로 정상에 해당했지만 자회사 부실을 반영할 경우 부채가 자산을 216억 원이나 초과한 자본잠식 상태였다. 즉 BIS 비율이 0 미만이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합법적으로 분식회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부실덩어리 은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투자자들은 BIS 비율이 기준보다 높으니 안전하다고 믿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게 된 셈이다.
 
비난이 빗발치자 대통령이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감독원을 불시에 방문해 강하게 질책했다. 현행 금융감독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금융감독원에만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청와대 내부에서도 별도 태스크포스 조직을 꾸린 것으로 전해진다.
 
논의 대상을 공인회계사로 돌려보자. 공인회계사의 경우 저축은행을 감사하면서도 이러한 부실 상태를 적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공인회계사들이 감사를 부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심각한 분식회계를 잡아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공인회계사도 사건의 공범으로 봐야하며 법적 처벌은 물론 손해배상도 요구하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회계사들은 “감사 대상 회사가 작심하고 장부를 조작하면 짧은 감사시간 동안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회계사들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출 장부만 보고 특수목적법인의 차명 여부를 밝혀낼 수는 없다는 논리다. 또 저축은행을 감사한 것이지 대출처인 특수목적법인을 감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수목적법인이 어느 곳에 자금을 집행했는지까지 살펴보는 것은 감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범인을 못 잡았다고 경찰을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회계사들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규모의 부정 대출을 단행한 저축은행을 감사하면서 거의 모든 회계법인이 공통으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으로 볼 수 없다. 결국 회계사들이 고의적으로 부정을 눈감아주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감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추론 정도는 불가피하다.
 
회계부정이 되풀이되는 이유
‘회계부정’을 이야기할 때 전 세계적으로 파문이 컸던 2001년 미국 엔론(Enron) 사건을 빼놓기는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차례씩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우, 현대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이 있었다. 2010년 들어서는 상장 폐지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컸던 네오세미테크의 분식회계 사건이 있었다. 2011년에는 한국 증시에 상장된 외국 회사로 유명한 중국고섬이 상장 두 달 만에 거래정지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회계사들은 입을 모아 “감사시간이 너무 짧아 문제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변명과 완전히 같다.
 
회계부정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관련 회계사들이 처벌을 받거나 회계사 손해배상 책임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사후 처리가 있곤 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유형의 회계분식 사건들이 20년 동안이나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회계사를 처벌하거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처벌이나 손해배상 책임을 무겁게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공부 못하는 자녀를 공부하도록 하겠다고 몽둥이를 들거나 벌을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처음 얼마쯤은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자녀가 조금 더 공부를 할 수 있겠지만 공부를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닦달해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기 힘들다. 회계사를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시험 점수를 올리겠다고 자녀를 몽둥이로 겁주는 것과 같다.
 
부실 감사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짧은 감사시간을 늘려 회계사들이 감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회계사들을 아무리 압박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1
 
현재 감사 시장은 자유경쟁 시장이다. 기업들은 감사수임료를 낮게 제시한 회계법인을 골라 감사를 맡긴다. 회계법인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감사수임료가 높아질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회계법인들은 보유한 인력을 놀리는 것보다는 수임료를 싸게 받더라도 일감을 따내는 편이 유리하므로 감사수임료를 높게 제시하지 못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주주들이 감사의 질적 가치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싼 값에 감사를 하겠다는 회계법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즉 감사 품질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국 수임료를 싸게 제시한 회계법인이 경쟁에서 이긴다. 소비자가 품질을 따지지 않고 가격만으로 제품을 선택하면 최저가에 제품을 공급하는 공급자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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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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