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금융 시대의 기업 전략

‘그린워싱’ 걸러내는 그물 촘촘해졌다

344호 (2022년 0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지속가능 투자가 글로벌 대세로 부상하면서 주장과는 달리 실제 그에 걸맞은 투자 전략을 실행하지 않는 ‘그린워싱’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에 글로벌 규제 당국은 ‘그린워싱’의 정의를 구체화하는 한편 이를 규제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불완전 판매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도 ESG펀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그린워싱에 따른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지속가능 금융 부문에 대한 별도의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투자자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지속가능 금융1 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겉으로는 지속가능 금융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그에 걸맞은 투자 전략을 실행하지 않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 금융 부문의 그린워싱은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또 파리협약 이후 지구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속가능 성장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될 것이 우려된다. 이에 국제기구와 각국 규제 당국자들은 그린워싱 규제에 나서고 있으며 특히 EU의 지속가능 금융 공시규제(SFDR)가 본격 시행된 시점(2021년 3월)을 전후로 글로벌 전역에서 공시 및 제재 등 그린워싱과 싸우기 위한 실질적인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이 글은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지속가능 금융의 현황과 그린워싱의 의의 및 사례, 최근 글로벌 그린워싱 규제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본다.

1. 지속가능 투자와 그린워싱

지속가능 투자가 글로벌 변방에서 주류의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다. GSIA2 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는 2012년 13조6000억 달러에서 2022년 41조 달러3 로 3배 넘게 증가했으며 글로벌 운용자산(AUM)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2%에서 36%를 상회해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요 성장 동력원임을 나타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추세가 계속돼 2025년 글로벌 ESG 자산이 50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4 하지만 GSIA의 집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중국, 아시아 등 국가의 ESG 시장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글로벌 ESG 관련 자산 규모는 이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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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투자란 통상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요소를 고려하는 투자 전략을 의미한다. 그리고 GSIA는 가장 포괄적 접근을 채택하는데 7가지 유형 중 하나 이상의 전략을 사용하는 투자를 지속가능 투자로 분류하고 있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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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미국을 비롯한 회원국의 지속가능 투자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2018년 14조 달러에서 2020년 12조 달러로 투자 규모가 감소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지속가능 금융 공시규제의 도입(2019년 11월)으로 지속가능 투자의 개념이 엄격하게 정의되면서 이전에는 지속가능 투자로 분류됐던 투자 중 일부가 새로운 규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데 따른 결과다. 유럽의 사례는 지속가능 투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미국 등의 경우에도 실제보다 부풀려질 가능성, 즉 그린워싱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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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Morningstar)가 집계하는 지속가능펀드(뮤추얼펀드+ETF)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지속가능펀드로의 순자금 유입 규모는 2021년 중 5962억 달러로 2020년(3669억 달러)보다 62.5%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21년 말 현재 지속가능펀드 자산 규모도 전년 말(1조7900억 달러) 대비 53% 증가한 2조7400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전체 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1% 수준에서 2021년 3%를 넘어섰다.

지속가능펀드의 가파른 성장세 속에 그린워싱의 위험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모닝스타는 2021년 3분기에 펀드 재평가(forensic analysis)를 통해 지속가능펀드 중 27%에 해당하는 1조2000달러 규모의 1600여 개 펀드를 제외시켰다고 밝혔다.5 이들 펀드는 ESG 요소를 통합한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전략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해 모닝스타의 지속가능펀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평가의 대상이 된 펀드는 통상 ‘연녹색(light green)’펀드라 불리는 EU 지속가능 공시규제(SFDR) 제8조에 해당하는 펀드였다.

EU SFDR는 금융 상품을 지속가능성 특성의 정도에 따라 ①환경•사회 관련 특성을 가진 것으로 광고(promotion)하는 금융 상품(제8조 상품, light green)과 ②지속가능성을 목적(objective)으로 하는 금융 상품(제9조 상품, dark green)으로 구분해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8조 펀드의 기준’이 모호하게 정의돼 자산운용사가 임의로 구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ESG 전략이 모두 제8조 펀드에 포함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린워싱의 위험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6

2021년 말 현재 전체 EU펀드 자산의 42.4%에 해당하는 6659개 펀드가 제8조(37.7%) 또는 제9조(4.7%) 펀드로 분류되고 있는데 제8조 펀드의 약 90%가 잠재적인 그린워싱의 위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7

이에 비해 모닝스타는 지속가능 투자 목적을 가진 펀드 또는 구속력 있는 ESG 기준을 적용하는 펀드만을 지속가능 투자에 포함하고 있어 제8조 요건보다는 엄격하고, 제9조 요건보다는 다소 완화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모닝스타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만을 채택하거나 모호한 ESG 통합 전략을 사용하는 펀드는 지속가능펀드에 포함하지 않는다. MMF, 모자펀드(feeder fund), 재간접펀드도 모닝스타의 지속가능펀드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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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린워싱의 의의와 사례

(1) 그린워싱의 의의

위장 환경 행동으로 번역되는 그린워싱은 환경운동가인 제이 웨스트벨드(Jay Westerveld)가 1986년 쓴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환경보호를 위한 사업 전략이라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에게 타월의 재사용을 권유하는 호텔의 영업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그린워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8

이후 지속가능 성장과 환경보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린시장(green market)이 다양한 산업에서 번창했으며 그에 따라 그린워싱도 크게 증가했다. 그린워싱의 개념은 다양한 발생 원인과 유형 등 다면적 특성으로 인해 문헌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규제 당국이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엄밀한 개념 정의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이 됐다. 오늘날 그린워싱은 좁은 의미로는 친환경(E)만을 대상으로 하며 넓은 의미로는 사회(S)와 지배구조(G)를 포괄하는 ESG 워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그린워싱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가 유럽의 금융당국에서 이뤄졌다.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2022년 2월 ‘지속가능 금융 로드맵’ 보고서에서 그린워싱에 대한 ‘직관적(intuitive)’ 기준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그린워싱을 ‘기업의 공시자료 또는 금융상품의 특성/목적이 지속가능성 위험(risk)과 영향(impact)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시장 행위’로 정의했다.9 또 그러한 행위가 그린워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고의성 여부를 따지지 않으며 광고물에 정보를 표기(action)하는 행위뿐 아니라 누락(omission)하는 행위에 의해서도 그린워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나아가 그린워싱이 자금을 지속가능 투자로 배분하고자 하는 투자자의 의도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ESMA가 ‘직관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금융시장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그린워싱의 정의를 통일하고자 한 의도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논의와 비교해 다음과 같은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린워싱의 판단 기준으로 고의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문헌에서는 고의성을 전형적인 그린워싱의 요건으로 간주해 왔다. 예컨대 1999년에 그린워싱 용어를 편입한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그린워싱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소비자를 오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환경적으로 책임성 있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기업의 행위’로 정의했다. ESMA와 동일한 맥락에서 IOSCO도 최근 그린워싱 보고서10 에서 고의성은 없지만 운용 능력 부족 등으로 광고물에서 약속한 투자 전략의 실행에 실패하는 경우를 그린워싱의 유형에 포함했다.

둘째, 기존 문헌은 기업 환경 성과에 대한 긍정적 정보는 공개하고, 부정적 정보는 비공개하는 선택적 공시(selective disclosure)를 그린워싱의 주요 유형으로 분석했다. ESMA가 정보를 표기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누락하는 행위도 그린워싱에 포함한 것은 기존 문헌에서 언급한 선택적 공시에 의한 그린워싱을 반영한 것이다.

셋째, ESMA는 기업 단위의 그린워싱과 금융 상품 단위의 그린워싱을 구분했다. 일찍이 그린워싱에 대한 초기 논문에서는 기업 단위에서 이뤄지는 환경 정책과 관련한 그린워싱과 제품 단위의 환경 효과를 과대 포장하는 그린워싱으로 구분해 설명했다.11 이후로 이런 구분법은 여러 문헌에서 차용됐으며 IOSCO도 최근 그린워싱 보고서에서 회사 단위와 펀드상품 단위로 구분해 그린워싱 유형과 규제 동향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이때까지 기존 문헌은 기업의 환경 성과에 초점을 맞춰 이를 과장•허위로 광고하는 행위를 그린워싱으로 간주해 왔다. 이에 비해 ESMA의 그린워싱 정의는 과장•허위 광고의 대상으로 금융 상품이 초래하는 지속가능성 영향뿐만 아니라 회사에 미치는 위험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정의는 EU가 2019년 도입한 ‘이중의 중요성(double materialty)’12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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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펀드 상품은 투자 대상이 되는 기업의 그린워싱과 펀드 상품 자체의 그린워싱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노출되는 특징을 갖는다. 전자는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실사 또는 모니터링 과정에서 데이터 부족 등으로 인한 잘못된 ESG 평가로 발생한다면 후자는 주로 펀드 상품 자체의 ESG 등급을 실제보다 부풀려 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ISOCO는 2021년 11월 발표한 그린워싱 보고서에서 자산운용업 그린워싱의 유형을 금융회사 단위(2개)와 금융 상품 단위(5개)로 구분해 상세하게 분석했다. 이 내용은 일찍이 캐나다 친환경 컨설팅 기업인 테라초이스(TerraChoicr)가 제시해 널리 인용되고 있는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Seven Sins of Greenwashing)’의 기준과 맥락이 연결된다.13

(2) 지속가능펀드 그린워싱의 사례

이하에서는 IOSCO를 비롯해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토대로 자산운용업의 그린워싱 사례를 살펴본다. 우선 금융회사 그린워싱이란 자산운용사가 자사의 지속가능성 관련 정책을 홈페이지 등에 과장•허위로 광고하거나 겉으로는 지속가능 금융을 표방하면서 실제 자산 투자에 있어서는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속가능 금융에 관한 국제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고도 그에 걸맞은 실효성 있는 행동을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세계 최대의 ESG 이니셔티브가 바로 UN 책임투자원칙(PRI)이다.14 2021년 3월 현재 PRI 서명 기관과 총 운용 자산 규모는 각각 전년 대비 17% 증가한 3826개 기관15 , 121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PRI에 따르면 자산운용사(2795개)의 96%, 자산소유자(609개)의 98%가 책임 투자 원칙을 실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16

주주행동(ShareAction)이 글로벌 75개 대형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모든 자산운용사가 UN 책임투자원칙(PRI)에 서명했지만 이 중 과반이 넘는 38개사(51%)는 책임 투자를 자산 전략에 적절히 통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7 특히 ESG 투자의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책임 투자 등급이 D등급(47위)으로 평가돼 금융회사 단위 그린워싱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블랙록의 전(前) 지속가능 투자 책임자인 타리크 팬시는 “지속가능 투자가 과대 광고 마케팅(marketing hype)과 부정직한 약속에 불과하다”고 실토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18

자산운용사들이 ESG 등급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뒷받침하지 않은 채 자사 펀드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광고 수단으로 PRI 서명을 활용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연구에서도 실증적으로 분석됐다.19 연구에 따르면 미국 뮤추얼펀드는 PRI 가입 직후 자금 유입이 크게 증가했으나 투자 기업의 변경, 투자 기업에 대한 관여 확대 등 펀드의 ESG 등급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50대 자산운용사의 주주의결권 행사에 관한 연구20 도 유사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PRI 서명 자산운용사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안건에 대해 찬성표보다는 반대표를 훨씬 더 많이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ESG 안건에 찬성표를 행사함으로써 PRI 원칙을 실천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상충하는 것이다. PRI의 원칙2는 ‘우리는 적극적인 소유자가 돼 ESG 이슈를 소유권 정책과 투자 실무에 통합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금융 상품 단위 그린워싱에 대한 연구로는 기후 싱크탱크인 인플루언스맵(InfluenceMap)이 2021년 8월 발표한 보고서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탄소’ ‘에너지 전환’ ‘청정 에너지’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130개 기후 테마펀드(운용 자산 670억 달러) 중 과반이 넘는 72개 펀드(55%)가 파리기후협약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21 이러한 분석 결과는 광고물에서 약속한 투자 목적과 전략의 실행에 실패하는 그린워싱 유형의 사례이다. 석유산업 투자를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채택한 펀드가 석유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펀드의 투자 목적•전략에 대한 과장•허위 광고의 사례이다. 보고서는 블랙록의 ‘화석연료 제외(fossil fuel screened)’ 펀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화석연료 로비 활동을 하는 두 개의 석유기업(Marathon Petroleum 및 Phillips 66)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다른 예로 글로벌 3대 ESG ETF는 구성 주식이 S&P 500 등 벤치마크 지수와 상당히 유사해 사실상 시장지수에 ESG라는 ‘영광스런 명칭(glorified market trackers)’만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22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일찍이 넷제로를 선언하는 등 ESG 경영을 추진하고 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이들을 ESG 기업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펀드의 명칭과 목적•전략이 불일치하는 전형적 사례에 해당한다.

3. 그린워싱 규제 동향

지속가능 금융 부문의 그린워싱 문제에 더디게 대응해 온 글로벌 금융 규제 당국은 작년부터 규제 움직임으로 선회하고 있다. 글로벌 규제 당국의 대응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마련과 그린워싱에 대한 제재 강화라는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1)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의 도입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속가능 펀드 상품은 이중의 그린워싱 위험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그린워싱의 방지를 위해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속가능성 일반 공시 기준과 함께 지속가능 금융 부문에 적용되는 별도의 공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두 가지 공시 기준 제정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먼저 지속가능성 일반 공시 기준과 관련해 2021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설립된 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2022년 3월 말 지속가능성23 및 기후 관련24 재무정보 공시 기준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용 공개 초안을 발표했다. ISSB는 올해 7월 말까지 의견 수렴을 실시하고 연말까지 공시 기준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정보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준 제정 기구별 보고 기준이 상이해 기업의 정보 생산 부담은 가중되는 반면 정보의 비교 가능성 및 신뢰성이 낮아 그린워싱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ISSB 기준은 ESG 공시에 관한 글로벌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그린워싱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음으로 후자와 관련해 저탄소 및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국제사회 주도권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EU는 지속가능 금융 공시 규제 마련에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EU는 ‘지속가능 금융 행동 계획(Sustainable Finance Action Plan)’의 일환으로 2019년 11월 ‘지속가능 금융 공시규제(SFDR,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를 도입했다. SFDR는 금융회사, 특히 자산운용사의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투자를 촉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기업의 녹색경제 활동을 판별하는 기준인 EU ‘택소노미 규제(TR, Taxonomy Regulation)’도 금융회사의 그린워싱 방지와 관련이 있다. TR는 SFDR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거나 금융상품 공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SFDR의 자매 규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SFDR는 지속가능성 위험이 금융회사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과 함께 금융회사의 투자가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주요 부정적 영향(PAI, Principal Adverse Impacts, 제4조)을 웹사이트에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금융상품 단위로는 지속가능성 특성에 따라 금융상품을 3개 유형으로 구분하는 라벨링(labelling) 제도를 도입하고 유형에 따라 공시 내용을 달리 규정했다. 제8조(환경•사회 관련 특성을 가진 금융상품) 또는 제9조(지속가능성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상품) 상품의 경우 지속가능성 위험의 통합 방식 및 금융상품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해 상품의 상세한 특성을 계약 이전 단계 서류(투자설명서)에 공시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특성을 갖지 않는 제6조 상품의 경우에는 지속가능성 특성을 갖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clear and concise) 설명해야 한다. 또 금융 상품이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주요 부정적 영향(PAI)을 계약 이전 단계 서류에 공시(제7조)해야 한다. PAI 공시는 SFDR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자산운용사의 공시 부담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FDR는 2021년 3월 1단계(level 1) 시행에 이어 PAI의 구체적 내용을 규정한 세부 이행 규칙(RTS, Regulatory Technical Standard)을 담은 2단계(level 2)가 2022년 7월에 시행(당초 2022년 1월에서 연기)될 예정이다. 2단계가 시행되면 SFDR 공시 기준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모호함이 완화되면서 지속가능펀드의 그린워싱 문제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속가능 금융 공시 기준의 도입은 EU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IOSCO는 2021년 11월 그린워싱 보고서에서 각국 규제 당국자들에 자산운용사에 적용될 공시 기준 도입을 권고했다. 권고안은 투자자들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리스크를 알 수 있도록 금융회사(지배구조•투자전략•리스크 관리•지표와 목표) 및 금융 상품(인가 절차•라벨•투자 목적과 전략 등 10개 항목) 단위로 상세한 정보를 공시 기준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EU에서 탈퇴한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은 2021년 11월 자산운용사와 자산 소유자를 주된 대상으로 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 자료25 를 발표하고 의견 수렴을 실시했다. 토론 자료는 지속가능성 특성에 따라 금융 상품의 라벨링 제도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EU SFDR와 유사성을 갖지만 금융 상품을 5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공시 기준(투자상품의 레벨, 목적, 전략 등)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심화된 내용의 공시 기준(지표 산출 방법, 데이터 갭, 벤치마크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FCA는 의견 수렴을 토대로 2022년 2분기 중 공시 기준의 공개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아직까지 기존의 금융투자 상품 공시 규제로 충분하다며 별도의 지속가능 금융 공시규제 도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26

다만 SEC 내 자산관리자문위원회(AMAC)는 ESG 금융투자상품 공시의 비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모범 규준(best practices)의 도입을 권고했다. 모범 규준은 투자 상품의 분류 체계와 함께 투자 전략과 목적(예: 수익/위험 목적이 ESG 목적에 우선하는지 여부 등), 소유권 정책 등을 포함하고, EU SFDR와 용어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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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속가능펀드 불완전 판매와 법적 리스크

지속가능펀드의 급속한 성장과 만연한 그린워싱 관행은 불완전 판매에 대한 커다란 우려를 낳고 있다. IOSCO가 그린워싱 유형으로 제시한 과장•허위 광고, 전략•목적의 불일치, 공시 미흡 등은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의 전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문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곳곳에서 소송 등 법적 리스크가 현실화27 되고 있지만 금융 부문에서는 불완전 판매로 인한 법적 다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8월 독일계 자산운용사인 DWS에 대한 그린워싱 조사 사건28 이 앞으로 유사 사례가 등장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컬럼에서 지급보증보험(PPI)의 불완전 판매(영국), 디젤게이트(독일 폴크스바겐) 사례와 같은 대형 스캔들이 지속가능 금융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29

지속가능펀드의 불완전 판매는 투자자 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사회 등 펀드가 표방하는 가치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통상의 펀드 상품과 차이가 있다. 예컨대 기후 테마로 광고하는 펀드의 경우 파리기후협약 위반 여부가 불완전 판매를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파리협약은 국가를 규율하는 국제협약이지만 국제 판례는 이미 파리협약이 개별 사기업을 규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5월 네덜란드 법원이 석유회사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에 온실가스 감축을 명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사기업에 파리협약 준수 책임을 물어 사업 방침 변경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기후 소송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판결이 지속가능펀드에도 적용되면서 투자자들이 펀드 투자에서 이득을 보더라도 법적 분쟁에 직면하는 사례가 머지않아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문제는 불완전 판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가 당해 상품에 대한 투자자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에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2021년 말 글로벌 기후 비영리기구(NGO) 5곳은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가 녹색채권 자금 5억8000만 달러를 석탄발전소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명시했음에도 일부를 방글라데시 소재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입했다면서 미국 SEC에 제소했다. 투자자가 아닌 시민단체가 불완전 판매 문제를 제기하는 이러한 사례는 지속가능펀드 상품에도 발생할 수 있다. 지속가능펀드의 불완전 판매 분쟁이 예상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대형 스캔들로 비화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가진 미국의 증권 규제 당국인 SEC는 2021년 3월 제재국(Division of Enforcement) 내에 ESG 위반 건을 조사하기 위한 ‘기후 및 ESG 태스크포스(Climate and ESG Task Force)’를 설치했으며 같은 해 4월에 ‘ESG투자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이어서 2022년 3월에는 2022년 5대 중점 검사 분야의 하나로 투자 자문 업자의 ESG 위반 행위를 포함할 계획을 밝혔다. 금융 규제의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미국 당국의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속가능 금융 부문의 그린워싱과 불완전 판매에 대한 글로벌 규제 당국의 대응이 강화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4. 국내에 주는 시사점

지난 몇 년간 지속가능 금융이 자본시장의 주류의 흐름으로 성장하고 그린워싱 위험도 높아지면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도입, 불완전 판매 대응 등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동향은 국내 ESG펀드 시장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

먼저 국내 ESG펀드 시장은 최근 급속한 성장세30 를 보이고 있으나 글로벌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국내 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ESG 공시의 단계적 확대, K-택소노미 및 녹색채권 기준 등 지속가능 금융을 위한 정책을 빠르게 마련 중에 있지만 자산운용사의 지속가능펀드 등 지속가능 금융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공시 기준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속가능성 일반 공시 기준 제정 작업과 별도로 지속가능 금융 부문에 적용되는 별도의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EU가 가장 앞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영국, 미국은 이를 참고해 자국의 공시 기준 또는 모범 규준을 만들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금융 상품 라벨링 제도 등을 포함해 지속가능 금융 부문에 적용될 공시 기준 마련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에서 아직 지속가능 금융 부문의 그린워싱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투자자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그린워싱으로 인한 불완전 판매 이슈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지속가능펀드의 불완전 판매는 투자자 손실만이 아니라 상품이 표방하는 ESG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리스크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해 선제적인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 따라서 IOSCO의 권고사항이나 EU SFDR의 공시사항을 참고해 금융회사 단위와 금융 상품 단위의 상세한 정보를 공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환경 또는 기후를 테마로 하는 펀드 상품은 탄소배출량, 파리협약 부합도 등 엄밀한 평가지표를 산출•제공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글로벌 그린워싱 사례는 자산운용업에 있어 금융회사 또는 금융 상품 단위의 그린워싱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임을 시사한다. 심지어는 블랙록처럼 ESG 활동에 가장 선구적이라 자처하는 자산운용사에 있어서도 그린워싱이 더 이상 숨겨진 비밀이 아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ESG 홍보 활동 또는 펀드상품의 광고물만으로 지속가능 투자를 모범적으로 실천한다고 믿어서는 안 되며 자산운용사와 펀드상품의 정책과 전략을 세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IOSCO 보고서에서 권고하고 있듯 금융 규제 당국도 지속가능 금융에 대한 투자자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을 적극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신동 KB저축은행 상근감사위원 jeungshi@naver.com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은행 이론으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에서 27년을 재직하며 보험감독국•기획조정국•금융상황분석실에서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워싱턴사무소장, 거시건전성감독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바젤3와 글로벌 금융 규제의 개혁(2011년)』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과 그 이후(2018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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