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참치회사’의 이미지는 동원이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핵심 자산인 동시에 기업의 사업 확장과 시장 평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에 동원은 참치를 넘어서는 인식 전환, 즉 ‘비욘드 참치’를 위한 전략적 리브랜딩에 착수하고 2024년 브랜드위원회를 구성해 동원의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서사정체성(Narrative Identity)을 발굴, 새로운 아이덴티티(BI)인 ‘필요에 답하다’를 도출했다. 이 슬로건을 확산하기 위해 기존 광고 중심 전략을 넘어 ‘브랜드가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Brand-as-Publisher)’ 온드 미디어 전략을 본격화했다. 또한 브랜드 캠페이너를 두고 계열사 실무자들이 변화된 정체성을 실천하도록 하면서 이를 내부 문화로 내재화했다. 일련의 행보는 조직과 시장에 기업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고 이해관계자 평판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동원의 캠페인은 콘텐츠 노출을 통해 BI를 처음 알렸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리브랜딩 실험의 진정한 성패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이고 일관된 행보로 대중의 브랜드 인식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198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참치 캔을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시장 1위를 지켜온 동원에 ‘참치’는 양날의 검이다. 지금의 회사를 있게 하고 국민 브랜드로서 기틀을 다지게 해준 강력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기업의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쉼 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매출 10조 원 규모로 외형을 키워왔는데도 여전히 대중의 뇌리 속 동원은 참치 회사에 머물러 있다. 1969년 한 척의 원양어선으로 시작한 그룹인 만큼 ‘수산업’ ‘식품업’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 못한 것이다. 참치가 동원의 소중한 브랜드 헤리티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유산이었다.
이 같은 딜레마는 2023년 동원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기존 컨테이너 항만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해운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인수를 시도했지만 시장은 놀라움과 함께 의구심 섞인 반응을 보였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 하는 것 아니냐” “식품 기업이 국적 해운사를 운영할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 것이다. 나아가 기업가치 약 10조 원에 달하는 M&A(인수합병) 시장의 대어(大魚)를 인수할 만큼 동원이 현금 실탄과 자금 조달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당시 인수전에 참여했던 하림과의 경쟁 구도를 두고 ‘참치 vs. 닭’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한 것도 전통 산업군에 갇혀 있는 그룹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원그룹의 실제 사업 구조는 단순히 참치 회사와는 거리가 있다. 원양 수산에서 출발한 그룹은 이제 식품가공(동원F&B)을 넘어 포장재 및 배터리 첨단소재(동원시스템즈), 유통과 무인 스마트 항만(동원로엑스)에 이르기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수산-식품-소재-물류’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이해하면 HMM 인수 시도가 기존 본업을 기반으로 미래 사업을 확장하려는 그룹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이해가 없으면 전통 식품 기업의 공격적인 확장 행보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