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3. Interview : ‘카페 어니언’을 만든 ‘패브리커’

“폐공간을 소생시킨 비결?
로컬 특성 살리며 ‘善한 생태계’에 집중”

김성모 | 281호 (2019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변두리 상권을 일으킨 이들이 있다. 건축·디자인 듀오 ‘패브리커(Fabrikr)’다. 패브리커의 디자이너 김동규, 김성조 씨는 2016년부터 버려진 공장과 우체국의 안 쓰는 공간, 쓰임새가 여러 번 바뀌어 원래 모습을 감춘 한옥 등을 잇달아 카페 ‘어니언(ONION)’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폐공간들은 모두 주요 상권이 아닌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현재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 성지’로 거듭났다. 패브리커는 크게는 동네를, 작게는 거리를 살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다. 목표는 ‘지역의 자부심을 만드는 것’이다. 어니언 프로젝트는 이 일환이다. 사람들이 패브리커를 진정한 로컬 크리에이터로 꼽는 이유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송지은(숙명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와 있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기억의 선명도에 차이가 날 뿐이다. 좋은 사람과 보낸 기억은 추억이 되고, 때로는 당시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 추억의 중심에 있는 것이 공간이다. 과거만 그러할까. 내가 지금 딛고 서 있는 곳도, 앞으로 내디딜 곳도 공간이다. 그래서 공간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만큼 공간의 의미는 강렬하다.

건축·디자인 듀오 ‘패브리커(Fabrikr)’ 역시 공간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들이 관심을 가진 건 ‘잊혀가는 공간’이었다. 패브리커의 디자이너 김동규와 김성조 씨는 2015년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목욕탕을 선글라스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의 쇼룸으로 꾸몄다. 문 연 지 50년 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다. 두 디자이너는 빨간 벽돌로 이뤄진 벽과 목욕탕 특유의 파란색 타일 등을 살리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패브리커는 이 쇼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정점은 카페 ‘어니언(ONION)’이었다. 2016년부터 버려진 공장과 우체국의 안 쓰는 공간, 쓰임새가 여러 번 바뀌어 원래 모습을 감춘 한옥 등을 잇달아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이 카페 3곳은 젊은이들의 ‘카페 성지’로 손꼽힌다. 최근에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문을 연 어니언 안국은 하루 1000명 이상이 찾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페브리커는 현재 카페 어니언의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방식과 다르게 공간에 접근한다. 보통 상업 공간은 상권, 유동인구, 접근성 등을 따진 뒤 장소에 맞춰 디자인을 한다. 패브리커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디자인에 맞는 공간을 먼저 찾는다. 이미 잘 알려진 상권은 피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간에 주목한다. 결과적으로 카페 어니언이 생기면서 해당 지역은 상권이 살아났다. 사람이 모였고, 지역에 생동감이 넘쳐났다. 사람들이 “카페 어니언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고 말하는 이유다. 로컬 상권을 중심으로 카페를 만들고,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는 사업자들은 많다. 하지만 이 듀오를 많은 전문가가 망설임 없이 ‘로컬 크리에이터’라 꼽는 이유는 로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과 해당 지역이 새로운 상업시설과 함께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선한 생태계’를 설립 초기부터 고민했다는 점이다. 최근 어니언 안국에서 이들을 만나 ‘카페 어니언’과 로컬 비즈니스의 철학에 대해 물었다.


‘카페 어니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김성조 | 2016년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유주형 온라인 쇼핑몰 피피비스튜디오스 대표(현 어니언 대표)님한테 연락이 왔다. 성수동 회사 사무실 옆에 폐공장이 있는데 카페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직접 가 봤더니 철거될 건물이어서 그런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덩굴식물들이 창문 안팎을 덮고 있었고, 문틀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위치도 좋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성수동이 지금처럼 ‘핫’하지 않았고, 조금 알려진 곳은 대림창고 갤러리가 있는 큰길 건너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에 묘하게 매력을 느꼈다.



폐공장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당시 그 주변은 상권도 없었는데.

김동규 | 그냥 보기에는 폐허였는데 건물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역사가 재밌었다. 197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슈퍼, 식당, 가정집, 정비소를 거쳤다. 마지막이 공장이었다. 변형되는 과정에서 필요 없는 부분은 없어졌고, 더해야 할 부분은 증축됐다. 바닥이나 벽에 묻은 페인트 자국이나 덧댄 벽돌들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었다. 우린 흔적을 살리면서 과거 공간을 재생시켜보자고 생각했다. 벽에 스티커나 얼룩도 그대로 뒀다. 사실 공사 기간 10개월 중에 절반 이상은 둘이 동네를 돌아보고 공장에 앉아 생각하는 데 할애했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할지를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니 과거의 성수동을 살리면서 미래의 성수동을 만드는 작업을 한 것 같다. 사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장사가 잘될까란 걱정을 우리도 하긴 했다.


원래 공장 밀집 지역이었던 성수동이란 공간의 지역 특성을 잘 살린 것 같다.

김동규 | 사람들이 성수동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가 멋진 새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장지대의 문화를 좋아하는 것. 즉, 원래 성수동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원래 것을 잘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부에서는 원래 모습을 지키려고 했고, 내부에서는 현대적인 것과 미래적인 느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유주형 어니언 대표는 미국 브루클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브루클린과 성수동은 지역성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브루클린에서 다리를 건너면 맨해튼인데 성수동도 다리를 건너면 압구정, 강남이고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간다. 브루클린 역시 낡은 공장지대였는데 지금은 수많은 IT 기업이 있고 커머스 기업도 생겨났다. 우리는 성수동에서 브루클린과 같은 성공 가능성을 봤다.


처음에는 어떻게 보면 공장 그대로의 모습을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부라도 폐허의 공간을 그대로 둔다는 것에 대해 우려는 없었나.

김성조 | 그런 걱정도 있긴 했지만 고객들이 어디까지 이 콘셉트를 허용해줄지 짐작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우리가 느낀 감정들 가운에 가장 좋았던 것을 담아내고자 했다. 많은 분이 결과적으로 그 감성을 이해해주셨고 공감해주셨다. 그래서 천장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천장 전체에 바리솔 조명을 1 썼다. 천장이 하나의 면이면서 조명인 셈이다. 낮에 갔을 때는 잘 못 느낄 텐데 해가 떨어질수록 조명이 힘을 발휘한다. 조명이 공간에 세련된 느낌을 부여한다. 조명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어니언 성수점은 거칠면서도 편안하다.

김동규 | 우리가 의도한 그대로다. 성수동이란 거친 공간을 담아내면서 휴식하는 공간으로도 만들려고 했다. 성수점은 외부와 차단된 느낌이 있다. 안에 들어오면 실내 공간을 보게 되는데 내부에 정원도 있다. 투명한 창으로 외부를 볼 수 있지만 불투명한 유리로 막힌 공간도 많다. 서로 떨어진 공간 속에서 영감을 얻고 편안하게 휴식하길 바랐다. 다른 지점보다 조밀한 느낌이 있다. 정원이 있어서 자연이 주는 느낌도 있다. 식물들도 원래 있던 것들을 그대로 둔 것이다.



2호점도 범상치 않다. 미아동에, 그것도 우체국 안에 문을 열었다.

김성조 | 성수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어니언을 어떻게 브랜드로 성장시킬지 내부에서 여러 번 회의를 거쳤다. 특히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우리만의 길을 가자’라는 뻔한 결론이 나왔는데 사실 이게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망원이나 합정, 홍대, 강남 이런 상권을 제외하고 커피 문화가 소외된 곳을 공략하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는 도발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반년 넘게 조사를 진행했는데 미아동이 생각보다 젊은 층이 많이 사는 곳이더라. 반면 좋은 커피나 빵을 파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지역을 탐색하다가 우체국을 발견했다. 서울강북우체국이 일부 공간을 임대한다는 것이었다. 우체국이 정보를 모으고 분산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문화적으로 이런 부분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미아에서는 커피를 제공하는 방식이 성수, 안국점과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김동규 | 성수, 안국점은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좋은 원두 한두 개를 지정해 제공한다. 반면 미아점에서는 선택지를 많이 줬다. 고객들이 케냐,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브라질 등 8∼9가지의 커피를 만날 수 있게 했다. 커피 가격도 다른 지점의 반값이다.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우체국에 있는 카페에서 세계 각국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나. 물론 공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우체국 건물이 상당히 큰 건물인데 철거하면서 보니까 그 구조물들이 엄청 힘이 있더라. 골조가 보이는 게 되게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 잘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조명을 살려서 공간에 빛을 가득 채웠다. 햇볕과는 다른 느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체국이라는 공간에 들어섰지만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벽 쪽에 좌석을 배치하고 가운데 공간은 넓게 뒀다. 카페 문화를 즐기면서도 ‘쉼’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미술관을 둘러보고 여운을 즐기는 휴게실 같다’고 이야기하신 고객도 있었다.



성수, 미아점도 사랑을 받았지만 안국점이 대박이 났다.

김성조 | 3호점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었다. 가만히 어니언을 돌이켜 봤는데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주요 상권이 아닌데 어떻게 알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한국을 대변하는 카페가 있나’라는 물음이 나왔고, 도전해보자는 결론을 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대변할 공간을 찾았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 동대문, 인사동 등의 지역들을 살폈다. 그렇게 반년을 돌아다니다가 북촌에서 임대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봤다. 예전부터 지나다니다가 한번씩 본 곳이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건물이 너무 멋졌다. 이렇게 크고 멋진 한옥이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빌딩들 사이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김동규 | 우리가 보는 ‘땅의 가치’가 있다. 부동산이 보는 것과는 좀 다르다. 처음 기획한 것처럼 이미 상권이 조성된 곳이 아니지만 가능성을 지닌 곳. 우리가 표현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여기가 그랬다. 여긴 북촌에서 외국인들이 찾는 메인 거리는 아니었지만 메인 거리와 가까운 편이었다. 주로 현대건설 직원들이 출퇴근길이나 밥 먹으러 오가는 길이었다. 주말이 되면 상가들도 문을 닫았으니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멋진 한옥이 있고, 변두리 상권이라는 점이 끌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카페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안국점 터가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 들었다.

김동규 | 100년이 넘은 고택이다. 한의원, 요정, 한정식집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곳이다. 마지막으로 쓰인 이 공간의 용도는 한정식 식당이었는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중정(건물 안이나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을 막아서 실내 공간으로 썼다. 한옥 처마선, 기둥 모두 벽지나 시설물로 가려져 있었고 멋스러운 천장도 벽으로 막혀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면 한옥인지 모를 정도였다. 철거를 하면서 손을 많이 댔다. 그래서 건물주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다행히 건물주도 이 공간을 가치 있게 쓰이는 것에 공감해주셨다.



변두리 상권임에도 북촌의 자태를 잘 살렸다. 원래 한옥에 대해 잘 알았나.

김성조 | 공사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렸다. 건물이 한옥인데 한옥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과 같은 것 아니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옥의 원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옥에서 사람들이 본래 느끼는 감정과 행동들을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장소가 결정된 다음, 둘이서 전통 한옥이 잘 보존돼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문화재들도 보러 다녔고. 특히 안동 한옥 마을이나 병산서원, 영주 부석사는 정말 인상 깊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도 읽었다. 한국의 멋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외국인이 많이 찾아올 게 뻔한데 ‘한국의 미’를 잘못 보여주면 안 되니까. 한옥을 통해 자연을 바라봤다. 조상들이 자연을 어떤 식으로 한옥에 안착시켰는지 등도 배우게 됐다.



이를 어떻게 카페 어니언으로 구현해냈나.

김동규 | 좌식문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보면 알겠지만 카페 어니언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멋쟁이다. 신발을 패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하이힐을 신고 오는 분도 많다. 이들에게서 신발을 벗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다.(웃음) 그래도 좌식 공간을 포기할 순 없었다. 100년 전 지어진 이 한옥은 좌식으로 설계된 공간이다. 바닥에 앉아야 건축가가 의도했던 시선의 높이가 완성된다. 앉았을 때 비로소 시선과 천장, 서까래와의 거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전체를 좌식 공간으로 하면 상업 공간으로 매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 공간의 낮췄다. 테이블 석은 바닥을 60∼70㎝가량 바닥을 낮춰서 의자에 앉았을 때 시선의 높이가 맞게 만들었다. 빵들이 놓인 곳이나 커피 주문하는 선반 등의 높이도 다 의도된 것이다. 성수점이 ‘빛의 묘미’가 있다면 안국점은 ‘시선의 묘미’가 있는 곳이다.


사실 어니언의 흥행에는 빵도 한몫했다.‘카페가 아니라 빵집’이란 평가도 있다.

김성조 | 처음 어니언을 준비할 때 커피 이외의 즐길거리를 많이 고민했다. 맥주도 생각했었다. 셰프부터 시작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그러다가 ‘브레드05’의 대표인 강원재 셰프를 만나게 됐는데 ‘아, 이제 누굴 더 만나볼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강 셰프는 한국에 앙버터를 소개하고 팡도르를 유행시켰다. 30년 넘게 빵만 생각해온 분이다. 어니언에서 이분의 빵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다. 보통 10년 넘게 무언가를 해오고 ‘달인’처럼 여겨지는 분은 자신만의 철학이나 규칙 이런 게 엄격하지 않나. 빵에 대해 모르는 우리와 맞춰나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우리가 바랐던 부분들을 대부분 맞춰주셨다. 덕분에 어니언만의 빵도 탄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팡도르가 그냥 놓여 있으니 디자인 측면에서 좀 심심했다. 그래서 슈가파우더를 눈처럼 소복소복 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다른 빵들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탄생했다. 안국점에서는 감태와 매생이가 들어간 빵이 시그니처가 돼서 인기다. 모든 빵은 각 지점에서 직접 굽는다. 또 그날 빵은 그날 다 팔거나 폐기한다. 이건 강 셰프의 철학이고 우리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어니언은 과거의 흔적, 동네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했는데 비결은?

김동규 | 우린 디자이너지만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생각한다. 아무리 멋져도 사랑받지 못하면 그만 아닌가. 생각날 때 찾는 기분 좋은 곳이 되려고 한다. 먼저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 주로 머무는 사람들의 성향을 많이 본다. 또 이들의 동선도 본다. 출퇴근이 될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의 정취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선 안 된다. 그들과, 그 지역과 묻어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점마다 디자인이 전부 다르지만 ‘어니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변두리 상권을 공략하는 만큼 메인 거리의 흐름을 이쪽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여러 번 상상한다. 그런 시뮬레이션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성수동에서 어니언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주로 큰길 건너편 대림창고 쪽을 찾았다. 그 길을 건너게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1호 성수점이 생긴 지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김성조 | 어니언이 생기기 전후 성수, 미아, 그리고 안국점에서 공통된 현상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유동인구가 없는 곳에 사람이 몰리니 지역 주민들이 되게 좋아했다. 지역을 선정할 때 동네나 거리를 살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이렇게 호응이 좋으면 힘이 솟는다. 최근 안국점 근처에 사시는 분이 SNS에서 연락을 해왔다. 어머니가 근처에서 음식점을 한다고 하더라. ‘어니언이 들어온 이후 거리에 활기가 생겼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마웠다.

김동규 | 실제로 우리가 만든 공간을 기점으로 동네가 변화하는 모습을 경험했다. 안국점이 있는 거리에 3, 4평 규모의 가게들이 10개 정도 있다. 거리에 있는 상가들은 일요일에 원래 문을 대부분 닫았다. 바로 앞에 있는 현대건설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하니까. 그런데 어니언이 오픈한 뒤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이 많아졌다. 우리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어니언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어니언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할 계획인가.

김동규 | 어니언은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를 꿈꾼다. 젊은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커피 문화를 다루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미국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성을 지닌 커피 브랜드가 있을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 커피 시장이 세계 6위이고, 카페 시장으로는 3위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블루보틀이 일본에 이어 한국을 3번째로 지정한 것도 이런 시장 규모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작은 땅에서 엄청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데 딱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가 없는 건 아쉽다.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김성조 |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게 되게 조심스럽다. 많은 상권이 곳곳에 생기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상권이 변질되기도 한다. 고유의 색을 잃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항상 어느 지역에서 무언가를 할 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다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더 단단해지고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다. 어니언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고 싶다. 왜 ‘우리 동네에는 이런 게 있어’ 하는 장소가 다들 있지 않나. 지역의 자부심이 되는 곳들을 만들고 싶다.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