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겸의 Sports Review

비리방지 대책이 실패 거듭하는 까닭

272호 (2019년 5월 Issue 1)

문체부, 대한체육회, 대한빙상경기연맹 특정 감사 (2018)
문체부, 스포츠 적폐 청산 위한 체육정상화 TF 가동 (2017)
대한체육회,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 근절 대책 발표 (2016)
체육특기자 입시 비리 근절… 민관 협동 TF 구성 (2015)
문체부, 보조금 정산 검사 기능 보강해 체육 비리 재발 방지 (2015)
문체부, 겨울 스포츠 7개 종목 특별 감사 실시 (2014)
문체부,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체육 비리 근절 대책 마련 (2014)
문체부-경찰, 합동 스포츠 4대악 합동 수사반 발족 (2014)
문체부, 체육계 비리 근절 스포츠 혁신 특별 전담팀 발족 (2014)
문체부, 체육 개혁 위해 스포츠 공정위원회 출범 (2014)
대한체육회, 체육발전위원회 설치 (2013)
체육회,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 마련 (2013)
문체부,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 발표 (2012)
대한체육회, 체육계 비리 근절 ‘클린스포츠 TF팀’ 가동 (2011)
문체부, 프로 축구 승부 조작 뿌리 뽑는다 (2011)
교과부, 학교운동부 비리 방지 대책 발표 (2010)
정부, 학교 체육, 폭력, 입시 비리 뿌리 뽑는다 (2009)
대한체육회, 경기 단체 부정 행위 강력 대응 (2009)
정부, 체육회,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 발표 (2008)





승부 조작, 입시 비리, (성)폭력 등 스포츠 분야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각종 비리 및 부정행위를 막지 못하고 있으니 하는 일 없이 세금만 축내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 딱 좋지만 알고 보면 한국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대단히 열심히 일하는 조직이다.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동안 내놓은 대책과 노력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각종 비리 및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부지런히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굵직굵직한 중장기 계획들을 매년 하나 이상 마련하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실세 차관이 체육 정책을 좌우하던 2014년에는 체육계 ‘4대악(惡)’ 근절정책이 다수 쏟아져 나왔다.



최근 빙상연맹 (성)폭행, 컬링협회 선수 인권 침해와 조직 사유화 파문을 맞아서도 문체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별도로 대한체육회는 폭력·성폭력 근절 혁신위를 구성하는 등 신속하고 성실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니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조직이라는 비난이 있다면 타당한 것이 아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성실함과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비장하게 내놓은 ‘새로운 대책’에 긍정적인 기대를 하지 못하는 것은 필자뿐인가? 지난 10년간 때마다 주요 대책을 세우고 실행해 왔지만 스포츠 분야의 부정·비리는 보란 듯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그전에도 ‘이번엔’이라고 말했다.

‘왜 체육계에서 부정·비리가 반복해서 일어나는가?’와 ‘왜 정부와 스포츠 단체에서 내놓은 대책은 매번 실패하는가?’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질문이다. 최근까지도 스포츠 분야에서 부정·비리를 해결하기 위한 분석과 논의의 초점은 ‘부정·비리 현황과 원인의 이해’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계속해서 현황을 조사하고 원인을 파악해 이를 근거로 대책을 내놓는 데도 불구하고 부정·비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왜 부정·비리가 발생하는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원인도 제대로 모르고 상황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부정·비리가 반복된다고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무지와 의지 없음을 탓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축적한 연구, 조사 결과와 꾸준히 발표하는 정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고 치부해 버리긴 어렵다. 결국 이처럼 대책과 부정·비리가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 것은 대책이 하나같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고 대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상황과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대책이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비만의 근본 원인이 과식과 운동 부족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수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적당하게 먹고 열심히 운동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권하고 있다. 원인을 잘 알고 있으니 비만이 줄어들었는가? 마찬가지로 스포츠 분야에 (성)폭력, 입시 비리, 승부 조작, 조직 사유화 등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양의 정보와 지식이 축적돼 있다. 이번에 또 스포츠 분야 성폭력·폭력 실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더 잘 알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스포츠 분야 부정비리의 근본 원인이 국가주의, 승리지상주의, 위계 서열문화 등인 것 또한 역사적, 사회적, 학문적 논의를 통해 알 만큼은 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원인만 알아내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떻게’에 대한 답이 없는 한 문제의 원인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을 알고 대책을 세우고 애써 봐도 같은 사고가 또 터지는 스포츠 분야 부정·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도대체 ‘왜 기존 정책 또는 대책이 효과가 없었을까?’ 하는 더 직접적인 질문으로 초점을 옮길 필요가 있다.


조직 내 부정·비리 방지 대책은 왜 실패를 거듭하는가?

어릴 적 장난감을 조립하다가 부품이 잘 맞지 않았던 일이 종종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끼워보려고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다가 부품을 부러뜨리고 나서야 넣는 방향이 틀렸음을 알게 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는가? 조직은 어떤가? 계속해서 부정·비리 문제가 터지고 그때마다 근본적으로 똑같은 대책을 점점 더 강하게 내놓느라 힘만 뺀 적은 없었는가? 스포츠 분야에서 반복된 정책 실패는 조직 내 부정·비리 대책이 왜 효과가 없는지 잘 보여준다.


방법론상 한계
1. 전부 모가지

“야, 싹 밀면 뭐하냐?”
“어차피 그 자리를 다른 XX들이 치고 들어올 텐데.”
“아유, 그럼 우리는 처음부터 니들 관리 들어간다고… 피곤해.”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 박성웅 등의 강렬한 연기로 인기를 모은 갱스터 느와르 영화 ‘신세계’에서 수사기획과장 강형철(최민식)이 국내 최대 폭력조직 2인자 정청(황정민)을 만나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의 제목이자 경찰청 비밀작전 ‘신세계’의 결정적 동기가 이 몇 마디 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뽑아도, 뽑아도 곧 다시 무성해지는 잡초 같은 조직폭력 조직을 한 번 더 뽑으려고 또 힘을 빼기보다는 잡초를 뽑은 자리에 잔디처럼 관리가 가능한 경찰 쪽 사람을 심어 새 판(신세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부정·비리가 터지면 관련 조직에서 제일 큰 힘을 쏟는 일은 주동자를 색출하고 이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다. 2019년 초 심석희, 신유용 등 스포츠 ‘미투’ 폭로가 있을 때도 문체부와 체육부는 무엇보다도 전수조사를 통해 성폭행 가해자를 빠짐없이 찾아내 처벌할 것을 선언했다.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해자 조사 및 처벌이 대책으로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을 예방하는 면에서 얼마나 효과적일까? 성폭행 같은 범죄는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일이고 가해자와 처벌 수위 등에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이다. 그만큼 가해자를 발본색원해 엄중히 처벌하면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해소함과 동시에 전시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노나 불안을 풀어주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시효과를 줄 수도 있다. 또한 카타르시스를 통한 만족은 근본적 문제 해결 의지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효과적인 대책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개선하거나 제거해 재발을 방지한다. 미성년자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반복한 자는 보기 드물게 본성이 악한 자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보통사람이 그런 몹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이런 악인들의 존재가 (성)폭행 문제의 주원인이라면 이런 못된 자들을 모두 찾아내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스포츠 분야에서 (성)폭행을 뿌리 뽑을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일 것이다. 부정·비리의 주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니까. 악인을 샅샅이 찾아내어 엄중히 처벌하면 같은 사람이 똑같은 범죄를 막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원인들, 즉 악인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원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결과일 수도 있다.

리 로스(Lee Ross) 등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고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타인의 못된 성격이나 의도 같은 개인의 내적 요인을 원인으로 강조하고 환경이나 상황 같은 외적 요인은 무시하는 근본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야구 코치가 선수가 훈련에 늦은 이유를 선수가 게을러서 또는 군기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수업이 늦게 끝났을 수도 있고, 어깨가 아파서 간 병원 진료가 예상보다 오래 걸렸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처럼 외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내적 원인에 대해 증명되지 않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선수가 군기가 빠져서 지각했다고 단체 기합을 아무리 세게 줘봐야 선수들의 의욕만 떨어뜨릴 뿐이다.

스포츠 분야 (성)폭행 사건들의 원인은 가해자들 개개인 품성의 악함이나 윤리의식 결여 같은 내적 요인 중심으로 몰아가기엔 다양한 외적 요인의 영향이 매우 커 보인다. 맞으면서 운동을 배웠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훈련방식(박종환 감독이 청소년 축구 대표 선수들에게 멕시코 고지대에서 방독면을 씌우고 연습을 시킨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도 미화하는 환경 속에 있는 코치가 선수를 때린 원인을 어떻게 폭력적인 코치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빙상계 부정·비리의 원흉으로 지목된 빙상계 대부 전명규 코치는 저서 『자식, 가르치지 말고 코치하라』에서 성적을 위해 선수를 때려도 된다는 생각을 떳떳하게 밝히고, 심지어는 어떻게 때려야 되는지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나도 선수촌에 있을 때 경우에 따라서 체벌을 했다. (중략) 체벌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체벌을 당해도 믿음이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만 있으면, 죽이든 살리든 난 저 사람만 따라가면 된다는 믿음만 있다면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마무리 역시 중요하다. 잘 다독거리고 뒤처리를 잘하면 몇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조직문화가 만연하고 부정행위를 권장하는 환경 속에서 코치 개개인의 내적 요인이 원인인지, 결과인지조차 결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인이라고 해도 영향의 정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원흉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내적 요인이 실제 원인이 아닐 가능성도 크다 보니 주동자 색출 및 처벌 전략은 언제나 기대보다 못한 성과를 거두기 마련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반복되는 (성)폭행 사건은 주동자 색출 및 처벌이 그다지 유효한 전략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사건이 날 때마다 악인들을 쥐 잡듯 뒤지고 몰아냈는데 아직 숨을 곳이 더 남아 있었던 것일까? 사건이 터지면 스포츠 관련 단체들은 악인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다시는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한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영화 ‘신세계’에 나오는 강 과장의 통찰을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직폭력배도, 스포츠 분야 부정·비리도 마찬가지다. 조직문화와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싹 밀어봐야 그 자리를 채운 사람만 달라진다. 건진 것도 없이 헛심만 빼게 될 뿐이다.

2. 강력한 처벌
2019년 초 정부는 잇따른 쇼트트랙, 유도 선수 성폭행 파문 직후, 스포츠 분야 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3개 부처가 내놓은 수습 대책을 보면 제일 강조한 내용이 ‘폭력·성폭행 가해자 영구 제명’과 ‘성폭력 사건 은폐·축소 시 최대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처벌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잘못해도 좀 살살하고 넘어갔지만 이제부터는 안 봐줄 거니까 앞으로 조심하란 말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큰 부정·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와 스포츠 관련 단체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전보다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고쳤다. 처벌 강도가 높을수록 부정·비리가 줄어들 거라는 논리는 매우 이해하기 쉽고 명쾌하다. 게다가 이러한 강력한 처벌은 대중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처벌 강도와 부정·비리의 관계가 그리 단순명료하지 않다는 것이다.

쇼트트랙 코치 성폭행 사건과 같은 국민의 분노를 살 만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사용해 온 처벌 강화 대책은 법적, 윤리적, 종교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게다가 범죄 억제력(deference)도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대 범죄학과 형사정책의 토대를 마련한 고전 『범죄와 형벌』에서 계몽주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범죄 예방 효과는 형벌의 가혹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확실함에서 온다”고 말했다. 즉, 잠재적 범죄자들이 더 잔혹해진 형벌을 두려워해서 범죄를 덜 저지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 잡혀서 처벌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느낄 때 범법행위를 더 자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잠재 범죄자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더해지면 처벌의 강화는 더욱 무의미한 것이 된다. 크루거(Kruger)와 더닝(Dunning)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과대평가할 뿐만 아니라 때론 없는 능력도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착각(illusion)이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 예로, 맥아더 휠러(McArther Wheeler)라는 은행 강도가 복면도 안 쓰고 피츠버그에서 2개의 은행을 턴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감시카메라에 기록된 영상에 휠러의 얼굴을 보고 쉽게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휠러는 경찰이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을 무척 의아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루거와 데닝은 휠러의 경우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이런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적 오류를 고려해 보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완전범죄를 만들 수 있다고 믿겠는가? 아니면 쉽게 잡힐 거라고 믿겠는가? 잡혀서 처벌받을 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걸리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처벌의 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먼저다. 즉,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심리적 착각을 줄이고, 범죄를 저지르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믿게 만드는 문화적·제도적 장치 및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3. 기업 경영의 사례
부정·비리에 대응하는 형벌 만능 사상은 비단 스포츠 분야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기업과 임직원의 부정·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대책이 바로 처벌 강화다. 강원랜드, 금융감독원, 한국석유공사 등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공공기관 채용 비리에도 정부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종합 대책의 핵심은 특별대책본부 구성을 통한 철저한 수사와 감시 체제 구축,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등 엄중한 제재다. 이보다 앞서 정부는 우선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전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특별 감사를 했다. 끊임없이 터지는 금융회사 직원 주도·연루 비리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재발 방지를 위해선 금융당국이 비리를 저지른 임직원과 해당 금융기관에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주동자 색출 및 일벌백계 대책은 사회적 공분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방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스포츠 분야와 다를 이유가 없다. 부정·부패에 취약한 조직문화, 제도,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부정부패를 저지른 악인을 하나도 빠짐없이 솎아내 봤자 다음엔 평범한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 악행을 이어갈 뿐이다. 아무리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도 ‘나는 잡히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효과가 나기 어렵다. 또 잠재적 범죄자들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완전 범죄 능력에 대한 근거 없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죄를 지어도 피해 가는 사례가 우리 사회에 적지 않기도 하다. 처벌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성공하면 사업가, 실패하면 사기꾼’ ‘성공한 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 등과 말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채용 비리, 탈세, 횡령, 정보 유출, 사기 등 기업과 임직원 불법 행위가 만연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흔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처벌의 확실성 보장을 흔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일 당시 남겨 유명해졌다. 당시 지강헌은 “어떻게 전경환 형량이 나보다 낮을 수 있나”라며 억울해했다. 그는 556만 원을 훔친 혐의로 17년 형을 받았다. 반면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600억 원을 횡령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고 그마저도
2년 만에 풀려난 사실에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문제는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회사 엠브레인과 함께한 설문 조사 결과, 거의 모든 응답자인 91%가 한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라고 응답했다. 더욱이 71.4%가 ‘매우 그렇다’고 강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1년 법률소비자연대 설문 조사에서 약 80%가 동의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나빠졌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뒷받침하듯 ‘물컵 갑질’로 전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특수 및 단순 폭행, 업무 방해 혐의 등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또 그의 어머니 이명희 씨도 특수 상해, 상해, 특수 폭행,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운전자 폭행, 상습 폭행, 업무 방해, 모욕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특별한 존재다. 어떤 형태로든 예외가 있다는 눈에 띄는 증거다.

내용 없는 엄포만이 가득한 부정·비리 방지 대책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정부와 기업은 경험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막론하고 채용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마다 굵직한 채용 비리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없을 지경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보다 강한 처벌을 부르짖지 않은 정부를 기억하는가? 그래서 더욱 강력해진 처벌 덕분에 채용 비리가 줄어들었는가? 지난번엔 강원랜드, 그전에 석탄공사, 이번엔 석유공사. 다음엔 어느 기관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강력한 처벌을 되풀이해 공언했지만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터지는 임직원 공금 횡령 및 유용, 부당 거래, 금품 수수 같은 부정행위에 대해 초강력 조치를 공허하게 외쳐대진 않았는가? 이제는 처벌의 가혹성보다는 확실성을 확립하고 강조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가혹한 처벌과 확실한 처벌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처벌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처벌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같은 방법을 계속 썼는데 문제가 좋아지지 않고 반복된다면 다른 방식을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필자소개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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