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우는 생존 전략

단풍나무 씨앗의 ‘헬리콥터 비행’ 4억7000만 년을 그렇게 진화했다

229호 (2017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식물의 씨앗은 생존과 성장의 노하우가 쌓인 ‘비밀문서’이다. 식물은 씨앗을 다음 세대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시 말해 ‘유전적 전이’ 성공률을 100%에 가깝게 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짠다. 씨앗의 크기를 키우거나 단단히 만들고, 비행 기술을 연구하고, 땅을 파헤치는 기발한 도구를 개발하는 식이다. 식물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을 고민하고 있다. 조직 내 축적된 ‘성공 DNA의 전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조직 구성원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적 노하우를 공유 자산으로 만들고 후배 세대에 성공적으로 ‘전이’하는 것이다.



편집자주

숲속에 사는 식물들이 억겁의 시절을 견디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너무나 치열해서 숭고하게까지 느껴지는 생존 본능 때문입니다. 기업을 유기체라고 규정하고 후세에도 번성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한낱 약하게 보이는 식물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인재개발 교육 전문가인 유재우 대표가 ‘숲에서 배우는 생존 전략’ 연재를 통해 숲속 식물에서 배우는 지혜를 전해드립니다.



씨앗은 곧 생명이다. 씨앗을 퍼트린다는 것은 곧 생명을 퍼트리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 영역을 확장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그 권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도전은 식물의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돼 왔다. 하지만 그 도전은 수많은 실패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많은 식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면 놀라울 만큼 고도화된 전략으로 씨앗을 퍼트리는 데 성공한 종(種)에게는 세대를 거듭한 지속적 번영이 허락됐다. 자연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랜 세월 소리 없이 번영을 누리고 있는 식물의 확장 전략을 살펴보면서 조직 진화의 또 다른 비밀을 찾아보자.



‘초우량아’ 쌍둥이코코넛의 발아 비결은

현존하는 가장 큰 씨앗은 무엇일까? 그것은 ‘쌍둥이코코넛’으로 알려진 코코드메르(coco de mer, 바다의 코코넛이라는 뜻)이다. 쌍둥이코코넛은 농구공만 한 크기에 무게만 23㎏이다(7세 여자아이의 몸무게와 비슷하다). 가장 작은 씨앗이 10만 분의 1g으로 알려져 있으니 쌍둥이코코넛은 그보다 200억 배나 더 무겁다. 이렇게 큰 씨앗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한다. 꽃가루 수정 이후 씨앗이 완전히 성숙하려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또한 만들어낼 수 있는 씨앗의 수도 매우 제한된다. 쌍둥이코코넛의 경우 일생 동안 만드는 씨앗의 수는 100개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거대한 씨앗을 매달고 있어야 하니 엄마 나무, 즉 모수(母樹)는 씨앗의 무게 때문에 몸통이 기울어지고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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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둥이코코넛 나무가 거대한 씨앗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키가 큰 식물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싹을 틔우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초의 싹(떡잎)을 틔우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씨앗에 저장돼 있다. 거대한 씨앗 속에 저장된 충분한 영양분은 발아(發芽, 싹을 틔우는 것)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 하지만 그 육중한 무게 때문에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것은 어렵다. 물에 떠내려갈 수도 없고, 새가 물어 나를 수도 없고, 너무 커서 동물의 배설물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쌍둥이코코넛은 처음 땅에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삶의 터전을 잡아야 할까? 엄마 나무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면서? 기특하게도 쌍둥이코코넛은 처음 땅에 떨어진 바로 그 자리로부터 10m 떨어진 곳에서 발아한다. 씨앗이 10m를 굴러가서 싹을 틔운다는 것이 아니다. 쌍둥이코코넛 씨앗은 땅속 아래로 파이프(유관속)를 만들어 10m 떨어진 곳에서 최초의 싹을 틔운다는 것이다. 씨앗에서 뻗어 나온 ‘관’을 통해 영양분을 전달받아 떡잎을 틔운 것이다. 식물계에서는 어미의 품이 아늑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므로 씨앗을 최대한 멀리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끝없이 모색하며 오랜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쌍둥이코코넛은 육중한 무게 때문에 씨앗을 멀리 퍼트릴 수 없으니 10m를 전진해 삶의 터전을 개척한 것이다. 10m의 거리, 이것은 생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진화의 결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헬리콥터 비행하는 단풍나무

쌍둥이코코넛과 달리 바람을 이용해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의 씨앗은 대부분 가볍다. 풍매화(바람을 이용해 수정하는 식물)의 씨앗은 날개가 붙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씨앗의 날개는 마치 곤충의 날개처럼 얇고 가볍지만 모양과 구조는 각기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긴 씨앗 날개를 가진 지브라나무(Centrolobium robustum)의 경우 씨앗 날개가 30㎝에 달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씨앗의 비행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도구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날개’를 가지고 어떻게 비행을 할 수 있을까? 단풍나무 씨앗의 비행 기술을 통해 식물의 고차원적인 영역 확장 전략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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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지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땅 위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헬리콥터 같다. 두 개의 씨앗에는 3∼4㎝ 정도의 날개가 달려 있고, 씨앗은 서로 맞붙어 있는데 그 모양이 부메랑처럼 생겼다. 두 개의 씨앗은 부메랑의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두 개의 날개는 두께가 약간 다르다. 이러한 V자 모양의 구조와 날개 두께의 차이 때문에 단풍나무 씨앗은 떨어지면서 회전력을 갖고, 공중에 떠 있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이러한 회전력과 공중 부력을 이용하면 2가지 이로운 점이 있는데, 첫째는 씨앗이 땅에 떨어질 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씨앗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인데, 이 원리가 신기하다. 단풍나무 씨앗은 비행 후 땅 위로 착륙하더라도 적당한 바람만 만나면 언제든 다시 상공으로 떠올라 비행을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와게닝덴대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공동 연구진은 단풍나무 씨앗의 독특한 비행 전략의 핵심은 ‘앞전 와류(leading edge vortex)’라는 소용돌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공동연구진은 실험 결과 회전하는 씨앗의 윗면에 소용돌이가 생기고, 이 소용돌이가 씨앗 아래쪽 공기를 빨아들여 씨앗 날개가 공중에 떠오르는 힘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마치 토네이도(회오리바람)가 회전하면서 땅 위의 자동차를 빨아들여 공중에 떠오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회전하지 않는 씨앗에 비해 회전하는 씨앗의 양력은 2배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단풍나무 씨앗 날개는 선풍기 프로펠러처럼 매끈하지 않고 표면에 일정한 결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덕분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이렇게 단풍나무 씨앗은 더 오래 공중에 떠서, 최대한 멀리 날아가고, 언제든 다시 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바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단풍나무 씨앗의 비행 전략이 우연한 진화적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지 않은가.



사람에 매달리는 질경이

봄이 되면 길가나 보도블록 사이에서 앉은뱅이 풀인 질경이를 쉽게 볼 수 있다. 겉보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혹한의 겨울을 이겨낸 강인한 풀이다. 질경이는 이름 그대로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사람의 발에 밟히거나 차 바퀴가 지나가도 죽지 않는다. 질경이는 줄기가 없기 때문에 밟히면 부러지지 않고 납작해진다. 또한 잎은 찢어지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잎맥 속에 하얀 실처럼 보이는 유관속(영양분 또는 수분이 이동하는 기관) 다발이 있는데 이 기관이 매우 질기고 탄력이 있어서 잎이 손상돼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길가에 삶의 터전을 꾸리다 보니 억척스러운 생존 능력을 갖추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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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짓밟히는 상황’을 극복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역이용한다는 것이다. 질경이의 씨앗은 물기와 접촉하면 금세 부풀어 오르고 진득진득한 점액을 방출해 마치 젤리처럼 변한다(기저귀가 물을 빨아들이면 부피가 팽창하면서 말랑말랑한 푸딩처럼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밟히면 질경이 씨앗은 찰싹 달라붙어 먼 거리로 이동할 기회를 얻는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은 점성이 매우 강해서 물로 세척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발바닥이나 동물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가 물기가 마르면 어딘가 떨어져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한다.
이것이 질경이가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쉽게 보이는 이유다. 최근에는 등산로에서도 질경이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등산객을 따라 ‘산을 오르는’ 질경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에 매달려 영역 확장 전략을 구사하는 또 다른 식물이 있는데 바로 ‘도꼬마리’이다. 도꼬마리는 집 주변이나 마을의 빈터, 낮은 지대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국화과의 식물이다. 어릴 때 뚝방길에서 뛰어놀다 집에 돌아오면 바지나 소매 끝에 콩알 같은 것들이 잔뜩 붙어 있었는데 이것을 떼려다 뾰족한 가시에 찔려 깜짝 놀라던 기억이 있다. 또한 도꼬마리를 친구들과 서로 옷에 던지며 누가 더 많이 붙이는지 겨루는 게임을 하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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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꼬마리의 열매는 갈고리 모양의 가시와 짧은 털로 뒤덮여 있어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한 번 붙으면 잘 안 떨어진다. 1941년 어느 날 스위스의 전기기술자인 조르주 드 마에스트랄은 개를 데리고 들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도꼬마리 씨앗이 개의 털에 수없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고 현미경으로 도꼬마리를 자세히 관찰했다. 도꼬마리 씨앗에 수없이 많이 달린 갈고리 모양의 가시 때문에 바지나 털에 쉽게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이 모양을 본떠서 일명 ‘찍찍이’라고 불리는 접착 장치인 벨크로(Velcro)를 발명했다. 벨크로는 운동화, 가방, 장갑 등 여러 물건에서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왜 도꼬마리는 씨앗 주변을 갈고리 모양의 가시로 무장을 했느냐는 것이다. 동물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까? 그것보다는 동물의 몸에 매달려 멀리 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마치 말에 올라타 유라시아 초원을 누빈 몽골족처럼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멀리 확장하기 위해 ‘특수한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드릴을 손에 쥔 국화쥐손이

도꼬마리가 영역 확장의 도구로 갈고리를 사용한다면 국화쥐손이는 드릴을 손에 쥐었다. 국화쥐손이는 몽골, 중국, 중앙아시아 등에 주로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종만이 서식하는데 ‘갈래손잎풀’이라고도 불린다. 몸 전체가 털로 덮여 있고, 분홍색 꽃이 피는데 겉보기에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야생화이다. 하지만 꽃잎이 떨어진 후 씨앗이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풀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국화쥐손이의 씨앗은 보통의 씨앗과 다르게 생겼는데, 씨앗의 앞머리는 화살촉처럼 뾰족하고 뒷부분은 화살촉에 돼지 꼬리처럼 돌돌 말린 꼬리가 달려 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특별하게 생긴 모양의 씨앗을 만들었을까?
 
국화쥐손이 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5개의 ‘돼지 꼬리를 가진 화살촉’ 모양의 씨앗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햇살이 충분히 따뜻해지면 화살촉 씨앗은 사방으로 튕겨져 땅으로 떨어진다. 씨앗의 앞머리가 화살촉같이 뾰족하기 때문에 땅에 꽂히기 쉽다. 설혹 땅에 꽂히는 데 실패해도 상관없다. 비가 오면 돼지 꼬리처럼 꼬불꼬불 말린 꼬리부분이 펴지는데 이때 발생하는 회전력을 이용해 씨앗은 스스로 수직으로 일어선다. 그리고 드릴처럼 땅을 굴착해 땅속으로 스스로 머리를 박아 넣는다. 돼지 꼬리가 모두 풀리면 화살촉에 해당하는 씨앗 크기의 1.5배 깊이만큼 땅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굴착 각도를 수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돼지 꼬리 끝부분은 말리지 않고 펴진 상태인데 바로 이 부분이 회전할 때 각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땅에 박히기도 전에 돼지 꼬리가 다 풀려버린다 해도 괜찮다. 비가 그치고 건조해지면 또다시 스프링처럼 감겨서 다음 비가 올 때 또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땅속에 스스로 씨앗을 심는 풀, 도대체 식물의 전략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물봉선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유명한 히트곡 ‘봉선화 연정’의 노랫말이다. 봉선화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매우 친숙하고 다정한 야생화이다. 여름철 붉은색의 봉선화가 피면 누이들의 손톱은 이내 빨간 물이 들었다. 꽃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열매를 맺는데 작은 콩깍지 모양의 씨주머니가 달린다. 씨주머니 안에서 씨앗이 익어갈수록 주머니 내부의 압력은 점차 높아진다. 압력이 어느 정도 증가하면 씨주머니가 다섯 갈래로 터지면서 안에 있던 검은 씨앗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내외부의 압력 차이로 발생하는 폭발력을 이용하는 것인데 씨주머니가 다섯 갈래로 터질 때 안쪽으로 강하게 말리면서 씨앗을 밖으로 뱉어내는 것과 유사한 힘을 발생시킨다(수박씨 멀리 뱉기 게임을 해보았다면 그 힘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봉선 씨앗이 터질 때는 마치 수류탄처럼 큰소리를 내기도 한다. 씨앗이 튕겨 나가는 힘이 매우 강해서 작은 곤충이 맞으면 땅으로 떨어질 정도이다. 물봉선의 꽃말이 ‘신경질’ 혹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 me not)’인데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성질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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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은 물봉선과 비슷하게 내부 압력을 이용해 씨앗을 밖으로 뱉어내는데 그 힘이 더욱 돋보인다. 씨앗을 둘러싼 하얀색의 ‘뽁뽁이’ 같은 물질이 세포 분열하면서 빠른 속도로 커진다. 마치 ‘뽁뽁이’에 공기를 불어넣어 팽팽해지는 것과 유사한 원리인데 이때 발생하는 압력의 차이를 이용해 씨앗을 밖으로 뱉어낸다. 그 압력의 힘이 씨앗 크기의 1000배가량 멀리 던질 만큼 강하다.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씨앗을 멀리 퍼트릴 수 있기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했을까?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더욱 고도화되면 식물계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까? 어쩌면 식물은 앞으로 바람이나 곤충과 같은 매개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씨앗을 퍼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불 속에서 발아하는 자이언트 세콰이어

생명을 지키는 것이 물이라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불이다. 불은 풀과 나무에 있어서는 두려움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불을 역이용해 씨앗을 발아시키는 식물이 있다. 바로 ‘자이언트 세콰이어’다. 이 나무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몸집으로 유명한데 현재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국립공원에 서식하고 있으며 높이는 115m, 직경은 4.84m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아파트 20층 높이에,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약 7.5평짜리 원룸 주택을 지을 수 있다. 무게는 지구상 동물 가운데 가장 큰 흰긴수염고래 10마리를 합친 것 이상이고, 나이는 2700살이 넘는다. 동물에 비유하면 중생대의 거대한 공룡이 살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이토록 오랫동안 살면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을 이겨내고, 불을 역이용할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의 껍질(수피·樹皮) 두께는 1m 이상 자라는데 그 안에 충분한 수분을 저장해둔다. 따라서 산불에 휩싸여도 내피(內皮)는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불에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레드우드국립공원에는 불에 검게 그을린 상처를 곳곳에 가진 자이언트 세콰이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불을 역이용해 씨앗을 퍼트린다는 것이다.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열매 방울의 출입구를 열어 씨앗을 날린다. 불이 나면 상승기류가 생기기 때문에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기에 매우 유리하다. 그리고 다른 풀과 나무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된 토양 위에 떨어진 세콰이어 씨앗은 발아하는 데 필요한 양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햇빛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없다. 자칫하면 불에 타 재로 변할 수 있는데도 불을 이용해 영역 확장을 꾀한다는 것은 어쩌면 목숨을 건 도박과 같은 것이다. 무모한 전략 같지만 성공만 한다면 번영의 기회를 독차지할 수 있다. 불을 지배한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지금도 숲에서 독보적인 세력을 유지하면서 번영을 지속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불을 이용해 문명의 발전을 이룬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씨앗에 담긴 성장 DNA 전수 노하우

도대체 씨앗에는 무엇이 담겨 있길래 이토록 고도의 전략을 발전시켜온 것일까?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생존과 성장의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인 ‘비밀문서’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 비밀문서에는 생존에 가장 적합한 온도와 습도가 적혀 있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적혀 있으며,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와 그 에너지로 최대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을 것이다. 또한 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혹독한 생존 환경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인내심도 담겨 있을 것이고, 경쟁에 지지 않는 노하우와 동료들과 협력해 위기를 이겨낸 교훈도 기록돼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존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핵심 노하우가 기록된 ‘비밀문서’는 어떻게든 다음 세대로 전달해야 한다. 이는 최대한 넓은 지역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중대한 사명이고, 모든 생명체가 가진 본능적 욕구이며, 절대로 그치지 않을 도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운에만 맡길 수 없다. 수많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비밀문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유전적 전이’의 성공률을 100%에 가깝게 할 수 있는 전략을 보완하고, 또 보완해야 한다. 그래서 식물은 씨앗의 크기를 키우거나 단단히 만들고, 비행 기술과 항공 역학을 연구하고, 동물의 몸에 매달리거나 땅을 파헤치는 기발한 도구를 개발하고,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스스로 씨앗을 터트리거나 심지어 자신을 태워 없앨 수도 있는 불까지 역이용하는 다양한 전략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생존 영역을 넓히고 지속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것은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전략의 출발점은 조직 내 축적된 ‘성공 DNA의 전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적 노하우를 조직의 공유 자산으로 만들고, 이것을 21세기를 이끌어갈 후배 세대에게 성공적으로 ‘전이(transfer)’하는 것이다. 21세기 기업경쟁력의 핵심은 정보와 지식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지식을 찾아내고,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기업만이 생존과 성장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식경영이란 지식을 창출, 저장, (학습)전이, 적용하려고 조직에서 개발한 일련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 지식경영이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식의 발굴과 저장, 공유와 복사에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지식 중의 최고는 ‘경험적 지식’이다. 경험적 지식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전제로 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축적되면 자신만의 노하우로 발전하고, 이것은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다. 한 구성원이 터득한 경험적 지식이 다른 구성원 혹은 후배 세대에게 ‘전이’되고, 이것이 새로운 상황에서 적절히 ‘적용’되는 조직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여 생존과 번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적 노하우를 가장 중요한 공유 자산으로 인식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함께 관리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교수도 지식을 공유자원으로 인식하고, 조직 구성원이 함께 공유자원으로서의 지식을 관리해야 공공의 이익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오는 ‘공유지의 비극(A Tragedy of the Commons)’이 줄어들거나 예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경험적 지식은 성격상 지식을 축적한 당사자가 없으면 함께 사라질 수 있는 자산이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 모두가 ‘자산의 손실’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노하우를 개인의 산출물이 아닌 조직의 유산(inheritance)으로 인식하고 모든 조직 구성원에게 효과적으로 전이되고,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조직문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가 교육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임원들은 ‘세대 차이’ 때문에 경험적 지식의 (학습)전이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요즘 젊은 사원들은 과거와 달리 선배 사원의 노하우에 관심이 없고, 선배 사원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하면 ‘구태의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 차이는 비단 조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러한 단절은 미래 생존력의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조직 내 성공 DNA의 전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모두 노력해야 하지만 그 전에 ‘전이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조직 내 가치 있는 경험적 지식을 발굴하고, 성공적으로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학습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선배 사원과 후배 사원이 함께 연구해야 한다. 앞서 예시를 든 것처럼 식물은 다양한 전략을 개발해 유전적 정보를 후세대(씨앗)에 전했으며 씨앗은 이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삶의 터전(영역)을 개척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식물계에서는 새로운 전이 전략이 시도되고 있을 것이며,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4억7000만 년이 지나면 단풍나무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씨앗을 퍼뜨릴지도 모른다. 생명 역사에서 생존이 최상의 가치라면 전이는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4억7000만 년 동안 자연에서 지켜지고 있는 이러한 기본적 원칙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재우 수피아에코라이프 대표 supia_eco@naver.com

필자는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충북대 생명과학대학원 산림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를, 인컴브로더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를 지냈다. 2006년 국내 최초로 숲에서 배우는 인재개발 교육전문기관인 ㈜수피아에코라이프를 설립하고 조직개발 및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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