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의 역발상 전략

꼭 본사가 한국에? 한국 시장서 먼저 검증? ‘視界 제로’ 시대, 고정관념을 깨야 산다

222호 (2017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경영의 역발상 전략 ‘From Global To Home’

1) 본사는 한국에, 사업은 해외 시장에서: 액세서리 제조 스타트업 쥬디앤폴(Judy and Paul).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전 세계 소비자들의 희망과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한 맞춤화 방식의 상품 개발 체계 구축
2) 본사는 한국에, 사업은 글로벌 전역으로: 소셜미디어 전용 콘텐츠 제작·유통 기업 봉봉(Vonvon). 국가별 소비자 간 니즈 차이가 크게 존재하지 않는 콘텐츠 개발에 집중, 온라인 채널을 통해 유통함으로써 단기간 글로벌 시장 확대
3) 본사는 해외에, 사업은 점진적으로 확장: 모바일 건강관리 앱 개발·운영업체 눔(Noom). ‘체중 감량’에 초점을 둔 업체인 만큼 만성 당뇨 질환자 규모가 많은 미국을 1차 타깃 시장으로 공략해 점진적으로 사업 확대
4) 본사는 해외에, 사업은 글로벌 전역으로 동시 확장: 일본 인스턴트 메시징 시장을 평정한 라인(Line). 한국에서 독보적 1위 사업자인 카카오톡과 전면전을 선택하기보다 글로벌 시장을 먼저 공략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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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새해를 맞이하는 대기업 총수들은 매년 입버릇처럼 신년 경영 기조로 ‘위기 극복’ ‘비상 경영’을 선포해왔다. 대다수 기업의 구성원들이 ‘위기’ 혹은 ‘비상’이라는 표현에 무감각해질 만도 하다. “경영진은 늘 지금이 가장 큰 위기라고 하는데 과연 정말로 위기 상황이기는 한 건가”라는 의구심이 팽배해져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위기’라 부를 만한 시기인 듯하다. 국내·외 정치, 경제 환경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이 연일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커다란 위험이라 할지라도 그 규모와 성격만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면 여하한 형태로든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가히 최고의 위험이라 부를 만하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극한 환경에서 그나마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제1의 원칙은 ‘확실한 발걸음만 조심해서 내딛는 것’이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인수합병(M&A), 글로벌 시장 진출 등 투자 규모도 크면서 성공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전략의 구사를 지양하는 것이 이 원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실패로 인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 저성장 구조에 진입해 성장 잠재력이 극도로 제한된 대한민국 시장 안에 안주하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과감히 밖으로 나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만도 없는 글로벌 경영의 딜레마 속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은 어떠한 방향을 선택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글로벌 경영의 역발상 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로벌 경영의 전통적 접근 방법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 전략 방식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 중 하나는 20세기 경영전략의 대가인 프라할라드(C.K. Prahalad) 교수와 도즈(Yves L. Doz) 교수가 창안한 ‘I-R Grid 모델(the Integration-Responsiveness framework)’이다. (그림 1) 이 모형에 따르면 산업별 경쟁환경에 따른 개별 기업 가치사슬(value chain) 활동의 글로벌 통합 압력 수준(pressure for global Integration) 및 개별 국가 시장별 특성에 따른 현지화 압력 수준(pressure for local Responsiveness)에 따라 1) 수출 중심 전략(International) 2) 국가별 현지화 전략(Multi-domestic) 3) 글로벌 시장 통합 접근 전략(Global) 4) 초국적 전략(Transnational) 등 크게 4가지 형태의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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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많은 기업들은 각자가 속한 산업 특성, 경쟁 구도 및 진출 대상 국가의 현지화 요구 수준에 따라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진출 방식을 선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방식을 글로벌 경영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4가지 글로벌 시장 진출 방식을 포함해 전통적 관점하의 글로벌 경영 이론에는 한 가지 암묵적 전제가 존재하고 있다. 바로 ‘선(先) 국내 시장 성공, 후(後) 해외 시장 진출’이다. 국내 시장에서 창출된 성공사례의 적용 범위를 해외로 확장하는 것이 이 룰(rule)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다수의 글로벌 경영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서도 샌다”는 속담을 예로 들며 내수 시장에서조차 성공하지 못한 불완전한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도모할 경우 백전백패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여러 필요 조건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실제로 한국의 주요 산업 분야에서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업체 가운데 성공적으로 해외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경영의 역발상: 반드시 한국 시장부터 공략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혁신의 단초는 ‘관습적 지혜에 대한 도전(challenges to the conventional wisdom)’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의 ‘암묵적 전제’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즉, ‘선(先) 국내 시장 성공, 후(後)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글로벌 경영전략의 암묵적 전제를 뒤집는 ‘역발상’을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역발상’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 혹은 한국 기업이니까 당연히 국내에 본사(Headquarters)를 두고 내수 시장부터 공략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 중심의 사업모델 및 전략을 수립, 실행한다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기회들이 창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초기 사업 거점으로 선정한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실현한 후 해당 사업모델을 한국에 도입한다면 반대 경우와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연쇄적 성공’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초연결 사회(hyper-connectivity)’ 환경하에서는 진출 대상 국가에 법인 혹은 지사 등 물리적 사업 거점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현지 소비자 대상의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나아가 한 번에 한 국가씩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상품 및 서비스를 출시, 판매하는 것도 현재와 같은 디지털 환경하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약해 보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역발상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축을 기준으로 4가지 형태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기준은 본사 소재지(본사의 한국 소재 여부), 두 번째 기준은 시장 확장 속도 및 방식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1) 본사를 한국에 두고, 초기 진출 대상 해외 국가를 중심으로 점진적 확장을 도모하는 전략 2) 본사를 한국에 두고, 해외 주요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 3) 본사를 초기 공략 대상 해외 국가에 두고, 동 국가 중심으로 점진적 확장을 추구하는 전략 4) 본사를 해외에 두되 글로벌 주요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 등 4가지 역발상 전략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업종 및 규모를 불문하고 ‘선(先) 국내 시장 성공, 후(後)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의 글로벌 경영 전략을 구사해 온 바 역발상 전략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주로 스타트업 중심으로 대표적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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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사는 한국에, 사업은 해외 시장에서 ― 쥬디앤폴(Judy and Paul)

쥬디앤폴은 최근 합리적 가격대에 트렌디한 상품들을 제공함으로써 국내 소비자들에게 크게 각광받고 있는 주얼리 액세서리 제조 스타트업이다. 그러나 쥬디앤폴이 2012년 창업 후 본격적 성장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한국이 아닌 유럽, 미국 등 해외 선진 시장을 핵심 타깃으로 사업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쥬디앤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지원 대표는 한국인 특유의 미적 감각과 손재주를 살려 해외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새롭고 참신한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분명히 시장 공략 기회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하에 오로지 해외 시장 공략만을 목표로 초기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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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달리 초기 출시한 상품들은 그다지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자체 분석 결과, ‘자기만의 개성’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인 액세서리 상품의 특성상 국가별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한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초기 스타트업의 한계로 인해 원하는 만큼 현지 조사 활동을 활발하게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이때 김 대표는 인터넷 채널의 특성과 장점을 십분 활용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파악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됐다. 소비자들이 직접 본인이 원하는 상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확인된 소비자들의 희망 및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커스터마이제이(customization) 방식’의 상품 개발 체계를 갖춘 것이다. 김 대표는 해외 소비자들이 문의해 오는 질문 하나하나가 그들이 가진 니즈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과 달리 해외 소비자들의 문의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이들을 모아서 분석해보면, 어떤 색상의 상품을 우선적으로 추가해야 하는지, 크기나 두께 등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공통점들을 쉽게 발견해 낼 수 있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는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 세계 고객들의 문의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쥬디앤폴은 같은 상품을 놓고도 전 세계 여러 나라 소비자들이 각양각색의 의견과 문의를 남기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국가, 나이, 성별 등에 따라 분석해 새로운 상품의 출시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이후 내가 원하는 나만의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쥬디앤폴을 찾는 고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액세서리 상품의 특성상 발 빠른 구전효과를 통해 고객층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들의 상품을 취급하고자 하는 해외 여러 나라 유통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쥬디앤폴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초기 핵심 공략 대상이었던 주요 선진국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했고, 이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글로벌 주요 시장에의 진입이 일단락된 2014년이 돼서야 비로소 쥬디앤폴은 한국에서도 상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명멸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액세서리 시장에도 순조롭게 안착해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쥬디앤폴의 상품을 접한 한국 소비자들은 마치 외국 유명 브랜드와 같은 트렌디한 감성과 디자인을 갖춘 상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쥬디앤폴의 ‘From Global To Korea’ 성장 경로를 감안할 때,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2. 본사는 한국에, 사업은 글로벌 전역으로 ― 봉봉(Vonvon)

봉봉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상에서 이용자들이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 유통하는 스타트업이다. 2014년 말 창업해 이제 겨우 2년이 조금 넘은 신생 스타트업이지만 월 방문자 수가 2억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봉봉이 제작한 “신이 나를 만들 때 무엇을 넣어서 만들었을까” 등의 콘텐츠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소셜미디어 업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15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도 했다. “나의 소울메이트는?”과 같은 콘텐츠는 브라질에서만 약 6000만 명이 이용할 정도로 글로벌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봉봉은 페이스북상에서 약 150만 명의 국내 팬과 3500만 명의 글로벌 팬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작년 11월에 론칭된 페이스북 게임 플랫폼에 참여해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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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본사를 둔 봉봉이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 수억 명의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나에 대한 호기심’ ‘작은 재미’ 등 봉봉이 지향하는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국적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라는 데 있다. 즉, 처음부터 국가별 소비자 간 니즈 차이가 유의미하게 존재하지 않는 콘텐츠(상품)를 집중 개발하고, 이를 1원의 배송비 부담도 발생하지 않는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전개한 결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글로벌 시장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 등 이미 잘 갖춰져 있는 글로벌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종전과 같이 개별 국가에 별도의 지사나 법인을 설립할 필요 없이 서울에서 전 세계 주요 국가를 커버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



3. 본사는 해외에, 사업은 점진적으로 확장 ― 눔(Noom)

눔은 현 CEO인 정세주 대표가 구글 출신의 엔지니어인 아르템 페타코프(Artem Petakov)와 함께 지난 2008년 미국에서 창업한 모바일 건강관리 앱(app) 개발·운영 업체다. 이 업체의 대표 상품인 ‘눔 코치(Noom Coach)’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4000만 명이 넘는 누적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과거 수년간 전 세계 수많은 헬스케어 관련 앱 가운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던 서비스다. 이용자들이 직접 기록한 음식 섭취 행태 및 운동량 등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후 이용자별 특성에 부합하는 ‘코칭’을 제공해 체중 감량 등 목표 달성을 돕는 것이 이 서비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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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헬스케어 분야에 접목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창업자 정세주 대표의 비전이자 사업 전략인데, 정 대표는 비전 실현을 도모할 첫 번째 타깃 시장으로 모국인 한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했다. 본인이 추구하는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전문 인력 확보 및 배후 잠재시장 규모 측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매력적인 사업 환경을 제공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에 초점을 맞춘 눔의 입장에서 만성 당뇨 질환자 규모가 점증하고 있는 미국은 1차 공략 시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초기 서비스의 순조로운 출시를 바탕으로 눔은 미국질병본부(U.S. Center for Disease Control), 뉴욕 장로병원(New York Presbyterian Hospital) 등 미국 내 유수 헬스케어 기관들과 협력할 기회를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사 서비스의 효용성을 공인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실증 연구 실적 확보에 성공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 헬스케어 기관들로부터 건강관리 서비스 파트너로 선정돼 협업의 경험을 축적한 것은 이후 눔의 급속한 성장의 초석이 됐다. 독일, 일본 등 미국 외 선진국 시장으로의 진출에 교두보가 됐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헬스케어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축인 건강보험사, 대형 병원, 제약사 대상의 신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눔은 현재 미국의 대표적 건강보험사인 애트나(Aetna), 글로벌 선도 보험업체 알리안츠(Allianz), 미국 대형 의료기관인 오로라헬스케어(Aurora Healthcare)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이들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독일, 일본 등 여타 선진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줬으며, 연이은 성공을 통해 눔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글로벌 선도 업체’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한국 시장 진출 기회 또한 순조롭게 찾아왔다. 눔은 미국에서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방식과 유사하게 한국의 주요 대형 병원, 건강보험공단, 보험사들을 주요 협력기관 및 고객사로 확보하며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데, 창업자인 정 대표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한국 외 시장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후 지속적 해외 시장 확장은 물론 한국으로도 성공적으로 역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4. 본사는 해외에, 사업은 글로벌 전역으로 동시 확장 ― 라인(Line)

일본 인스턴트 메시징 시장을 평정한 라인은 국내 시장 선발 주자이자 공고한 고객 기반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카카오톡과의 전면전을 선택하기보다는 시장의 승자가 명확히 정립돼 있지 않았던 일본 및 동남아 시장을 핵심 공략 대상으로 선택, 집중한 끝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 카카오톡에 정면 승부를 걸었던 많은 업체 가운데 현재 한국에서 유의미한 지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업체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제 와서 보면, 카카오톡이 국내 인스턴트 메시징 시장을 조기 선점한 것이 오늘날 라인이 보다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공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셈이 된 것이다. 앞서 봉봉의 사례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은 적은 비용으로도 전 세계 주요 시장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별 업체 입장에서는 규모와 성장성에 한계에 도달한 한국 시장 공략에 굳이 집착할 필요 없이 진입 기회가 존재하는 여러 해외 시장들을 동시에 도모해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성 높은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발상 글로벌 경영전략 추진 시 핵심 고려 요소

사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한 접근법을 실전에 적용하고자 할 때, 기업들이 사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1. 해외 시장 기반 초기 사업 전개의 효익을 극대화하라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하고자 하는 모든 한국 기업들은 일종의 ‘홈그라운드 어드밴티지(home ground advantage, 한국 회사가 외국 회사 대비 한국에서 갖게 되는 이점)’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반대로 해당 사업모델의 특성에 따라 ‘홈그라운드 디스어드밴티지(home ground disadvantage, 외국에서는 문제되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사업수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종 장애 요인들)’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홈그라운드 디스어드밴티지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항목들로는 △규제 △생태계 미(未)조성 △고객 인식 및 학습 수준 미흡 △요구 역량 및 전문성 보유 인력 부족 등이 있다. 이 경우, 해당 디스어드밴티지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해외 시장을 거점으로 초기 사업 추진을 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사례 기업 중 하나인 눔에 모바일 앱 기반 건강관리 서비스 사업 타당성을 검증함과 동시에 필요한 경험 및 역량을 확보, 축적하기에 미국은 최적의 시장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쥬디앤폴은 선진 시장 공략 과정을 통해 경험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세계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선진 국가 고객의 니즈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이를 상품화할 수 있는 체계 및 역량을 갖추게 됐다. 이와 같이 해외 시장을 기반으로 초기 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때에는 해외 시장 기반 사업 전개를 통해 극복 가능한 홈그라운드 디스어드밴티지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획득 가능한 ‘어웨이 어드밴티지(away advantage)’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결돼야 한다.



2. 작게 시작하며 린(lean)하게 운영하라

‘한국에서의 성공’에 기반해 해외 시장 공략을 도모하는 대다수 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한국에서 타당성이 검증된’ 사업 시스템을 고스란히 옮겨 가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조직 구조, 프로세스, 업무 방식 등이 대표적 항목들이다. 대개 해외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둔한 조직이 구성되며 조직 내 구성원들은 ‘한국 본사에서 하던 방식대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조직 구조와 업무 체계를 갖고 현지 시장 공략에 최적화된 방안을 수립, 실행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작게 시작하고 린(lean)하게 운영하며 빨리, 그리고 많이 시행착오를 겪음으로써 현지 시장 공략에 필요한 경험승수를 높여 가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주지해야 한다. 해외 시장 중심의 글로벌 확장 성공 사례들이 대부분 스타트업인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3. 핵심 사업모델을 디지털 기반으로 설계하라

해외 시장 중심의 글로벌 사업전략 검토 시 일반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두려움은 대한민국도 아닌 해외 국가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가진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우려다. 만일 특정 사업의 추진을 위해 오프라인에 구축된 강력한 물리적 인프라가 필요하다면 이는 실체 있는 두려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주력 상품군, 혹은 유통채널 등 핵심 사업모델을 디지털 기반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기(旣) 구축된 물리적 인프라 혹은 이의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는 불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에서 확립된 디지털 사업 인프라는 타 국가로의 확장 진출 시에도 공통 플랫폼 기능 및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요컨대, 해외 사업 중심 전략의 원활한 실행 및 확장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디지털화된 사업모델 설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맺으며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의 시기다. 지속적 성장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안정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시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래와 같이 ‘선(先) 한국 시장 성공, 후(後)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을 고수해 글로벌 시장 확대를 도모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한국 시장에 존재하는 디스어드밴티지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도 큰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신규 사업모델을 테스트하고 검증된 모델을 확립해 의미 있는 성공을 일궈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을 포함한 타 국가로의 확장 기회를 추가 확보하는 것이 ‘해외 시장 중심 글로벌 역발상 전략’의 핵심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인한 리스크에 완벽하게 대비(hedging)할 수는 없지만 해외 시장 중심의 역발상 전략은 종래 많은 기업들이 범해왔던 해외 사업 추진상의 시행착오들을 완화할 수 있는 접근 중 하나다. 한국에서의 성공 사례를 해외에 기계적으로 이식해 한국적 방식으로 다시 실현해보고자 하는 과거의 잘못된 시도를 지양하고 처음부터 해외 시장의 성공에 초점을 맞춘 현지화된 사업 설계, 역량 확보, 실행 체계 구축을 추진한다면 해외 진출 성공 및 글로벌 시장 확대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신우석 베인&컴퍼니 서울사무소 상무 Wooseok.Shin@Bain.com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메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외 주요 유통, 소비재, 금융 회사들을 대상으로 중장기 경영전략, 신사업 진출 전략, 글로벌 사업 전략 등에 걸쳐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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