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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CJ CGV 대표 인터뷰

투자 제한… 쿠데타… 위기투성이 지구촌 ‘소탐대실’ 유혹에서 벗어나야

이방실 | 222호 (2017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5위 극장 업체 CJ CGV의 시행착오 : 사업 초기 과도한 해외 현지 공사 비용, 혹한(酷寒)과 폭우(暴雨) 등 한국과는 전혀 다른 기후 환경으로 인해 고전. 외국 기업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 외에 정치적 리스크, 테러 위험은 물론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돌발 변수가 상시로 벌어지는 극한 환경 속에서 위기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정비.

CJ CGV의 국제화 사례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교훈 : 글로벌 전략 추진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 적정 진입 시기를 놓쳐버리면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유·무형 비용 증가. 실기(失期)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작게 빨리’ 시작하는 전략 필요. 특히 신흥시장에 진출할 때에는 ‘소탐대실’의 유혹에서 벗어나 현지 국가의 비즈니스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사업 전략 수립.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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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CGV는 지난해 6월 터키 최대 영화사업자인 마르스 엔터테인먼트 그룹(MARS Entertainment Group)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총 6억500만 유로로 그해 터키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벌어진 M&A 거래 중 최대 규모였다.1 마르스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터키 1위 멀티플렉스 ‘시네맥시넘(Cinemaximum)’ 운영은 물론 영화 투자 및 배급 사업까지 겸하고 있다. 터키 전역에 85개 극장(2016년 6월 기준)을 보유한 시네맥시넘 확보를 계기로 CJ CGV는 중국 완다(Wanda), 미국 리갈시네마(Regal Cinemas), 시네마크(Cinemark), 멕시코 시네폴리스(Cinepolis)에 이어 지난해 전 세계 5위 극장 사업자로 등극했다.2 CJ CGV는 이미 지난 2015년 해외에 있는 CGV 상영관 수가 국내 상영관 수를 넘어섰을 정도로 글로벌화에 적극적인 기업이다. 지난 2006년 중국 진출을 필두로 미국(2010년), 베트남(2011년), 인도네시아(2013년), 미얀(2014년), 터키(2016년) 등 거의 해마다 해외 국가 진출에 나서고 있다. 국내 1위 영화관 사업자로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CJ CGV 서정 대표를 DBR이 인터뷰했다.



국내 극장 사업자 중에서뿐 아니라 유통·서비스업체로도 드물게 국제화에 적극적이다.

10년 넘게 국제화를 추진해온 덕택에 현재 전 세계 5위 극장 사업자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다. 아무리 국내에서 1등 사업자라고 해도 해외 인지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제화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제화를 꾸준히 추진해온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성장을 위해선 국제화 외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극장은 기본적으로 내수 산업이다. 특히나 한국은 이미 2013년에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4회를 넘어섰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곧 국내 극장 산업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더 이상 가파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업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保國)’의 CJ그룹 경영 철학을 생각해보더라도 ‘성장’만이 살길인데 국내 시장에만 집중해서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찾기 힘들다. 국제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지난해 약 8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M&A로 몸집을 키웠다.

CJ CGV가 해외에 진출할 때 고려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린필드 투자(greenfield investment, 직접 설립 투자)로 부지 확보, 극장 설립 등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현지 극장을 M&A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전략적 중요도가 크기 때문에 그린필드 방식으로 들어갔고 베트남과 터키 시장 진출은 M&A를 택했다. 물론 나라마다 극장업에 대한 규제 정도가 달라 그린필드나 M&A 방식 모두 여의치 않은 곳도 있다.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처음엔 현지 극장업체 위탁 경영 방식으로 진출한 이후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현지 업체 지분을 인수했고, 미얀마는 현지 사업자와 합작법인을 이뤄 극장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별 상황에 따라 진출 방식엔 차이가 있지만 어떤 경우든 ‘CJ CGV가 현지 극장 운영에 대한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J CGV의 경우 완다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AMC, 카마이크(Carmike) 등 초대형 극장 체인을 계속해서 삼켜버리는 형태의 M&A 추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보다는 향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인수해 CJ CGV만의 역량을 덧입혀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다. 이른바 ‘바이&빌드(Buy & Build)’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리더십 확보는 필수다.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야 현지 시장을 바꿀 수 있고, 그래야 거기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서 CJ CGV만의 경쟁우위는 무엇이라고 판단하나?

하드웨어 측면에선 멀티플렉스를 넘어 ‘컬처플렉스(Cultureplex)’3 를 구현해내는 ‘공간 디자인’ 능력이다. CGV 극장은 ‘레트로 빈티지(Retro Vintage)’라는 디자인 콘셉트에 따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 감성을 트렌디하게 재해석해 극장 내·외부를 설계한다. 전 세계 어느 CGV 극장에 가더라도 동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체계적인 디자인 매뉴얼에 따라 공사하는 시스템까지 갖췄다. 신흥시장에서 어마어마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경쟁우위라고 자부한다.

스크린X나 4DX 등 CJ CGV가 직간접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특별관 사업 역시 CJ CGV만의 차별화 요소다. CJ CGV가 KAIST와 산학 협동을 통해 독자 개발한 스크린X는 관람석 정면에 있는 한 개 화면뿐 아니라 양쪽 벽면까지 총 3개의 스크린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상영 기술이다. 자회사인 CJ 4DPLEX를 통해 전개하고 있는 4DX의 경우 시각과 청각은 물론 후각과 촉각까지 자극하며 영화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관 시스템이다. 여태까지 전 세계 극장 사업자 중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이다. 물론 기술적 완성도를 더욱 높여야 하고, 극장 내 수용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필요하며, 특별관 전용 콘텐츠 보급도 확대해야 하는 등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성장 속도나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스크린X와 4DX가 향후 한국이 영화산업의 변방에서 주류로 올라서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CJ CGV의 강점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어느 곳에서나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극장 운영 능력이라고 본다. 특히 CJ CGV는 지난 2013년 영화관 현장 운영 인력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고객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 일산에 극장 운영 전문가 양성 기관인 CGV 유니버시티(CGV University)를 세웠다. 극장 매표소나 매점에서 일하는 현장 스태프들에게까지 ‘미소지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론 수업과 현장 실습을 병행해 가며 트레이닝에 힘쓰고 있다. 이렇게 체계화된 교육을 통해 전 세계 어느 CGV 극장에서나 수준 높은 서비스를 동일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3개 현지법인에도 CGV 유니버시티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처음엔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현지 스태프들을 교육하거나 현장 스태프들을 일산으로 불러들여 교육했지만, 보다 현지화된 트레이닝을 위해 해외 법인 중 핵심 거점지 위주로 CGV 유니버시티를 설립했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나라는 어디였나?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힘들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지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2013년 진출한 인도네시아는 까다로운 외국인 투자 제한 규정으로 힘들었다. 외국인 기업에 대한 지분율 제한으로 처음엔 당시 2위 극장 체인이었던 ‘블리츠 메가플렉스(Blitz Megaplex, 2017년 1월 CGV로 브랜드명 전환)’를 위탁 경영하는 형태로 진입했다. 이후 2014년 블리츠 운영사업자인 PT GLP가 인도네시아 증시에 기업공개를 할 때 일부 지분(14.75%)을 확보했고, 2016년 두 차례에 걸친 추가 매입을 통해 비로소 최대주주(51%)가 됐다. 까다로운 규제로 인해 경영권을 온전히 확보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만 현재 연간 CGV 인도네시아 관람객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고 자평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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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터키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가 없어 처음부터 100% 지분을 인수하는 M&A가 가능했다. 하지만 거의 8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투자금액이 큰 부담이었다. 일각에선 과도한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향후 성장성이 그만큼 크다고 봤기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터키 시장 자체의 매력도 높지만 향후 중동이나 유럽 등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교두보로서의 가치도 크다. 아직 인수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지만 올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터키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내는 게 목표다.

그린필드 방식으로 진출한 중국은 초기 사업을 확장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돼 고전했다. CJ CGV로서는 첫 해외 진출 국가였기에 시행착오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다행히 경쟁이 치열한 1선(線) 도시에 집중하려던 초기 전략을 바꿔 2∼3선 도시 위주의 출점 전략으로 선회하고 아이맥스, 스크린X, 4DX 등 특별관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사업 확대에 나선 결과 현재 중국 내 6위 사업자 반열에 올랐다. (DBR 174호, DBR Case Study ‘CJ CGV 중국진출 전략’ 참고.) 물론 1등 사업자인 완다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 내 극장 순위 2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현재 중국 내 극장 사업자가 300개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본다.



해외 사업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교훈이 있다면?

사업 초기 중국과 미국에 진출했을 때 극장 공사 비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고생했다. 앞서 말했듯이 CJ CGV가 극장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바는 복합 문화공간인 ‘컬처플렉스’다. 그렇다 보니 일반 상영관을 짓는 것에 비해 기본적으로 공사비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여기에 해외에 나가면 한국에서처럼 규모의 경제를 살릴 수 없으니 당연히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자재 수급부터 인력 수급에 이르기까지, 공사 비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기껏 고생해 최고급 시설로 극장 문을 열었지만 정작 주변 쇼핑몰 개발이 늦어져 절대 유동인구 자체가 모여들지 않아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다행히 지금은 과거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적정선에서 투자비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기후 환경으로 인해 곤혹을 치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중국 하얼빈에서 극장 설립 공사를 할 때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가을인 9월 말부터 수도관 동파(凍破) 사고가 날 정도의 추운 날씨로 고생했다. 결국 공사 진행에 계속 차질이 빚어지면서 예정보다 무려 2년이나 늦게 극장을 열었다. 반면 베트남에선 거의 자연재해 수준의 폭우로 고전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사업할 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해외에선 수시로 발생해 골치를 앓았다. 국내에선 변수로 고려하지도 않던 요인들이 해외에선 변수 수준을 넘어 상수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경험들이 하나둘씩 쌓여 해외에서 공사할 때는 날씨 변수도 꼼꼼하게 고려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대비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은 발생한다. 지난해 터키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가 대표적 케이스다. 본사에서 터키로 파견된 직원들이 이스탄불에서 마르스 엔터테인먼트 그룹과의 인수후통합(PMI)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애초에 터키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다양한 정치적 리스크는 물론 테러 발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사업 계획을 세웠지만 쿠데타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다행히 6시간 만에 진압이 돼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신흥시장에서 사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성공적인 해외 사업을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가는 수밖에 없다. CJ CGV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계속 정비해 나가며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가고 있다.



글로벌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보나?

타이밍이다. 진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든가, 최소한 적정 타이밍에 진입할 수 있다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그 시기를 놓쳐버리면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유·무형의 비용이 커진다. CJ CGV도 몇 년간 공을 들였지만 타이밍을 놓쳐 실기(失期)한 나라가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 유수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2012년 우리 측에 먼저 합작법인 설립을 제안했다. 2014년 쿠알라룸푸르 인근 위성도시에 거대 복합 쇼핑몰을 열 예정인데 그곳에 소위 ‘CJ 타운(CJ Town)’ 수준의 초대형 컬처플렉스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약 20여 개 CGV 상영관을 포함해 ‘더 스테이크 하우스 바이 빕스(VIPS)’ ‘투썸플레이스’ ‘뚜레쥬르’ 등 CJ 계열 식품·외식 브랜드들까지 입점시키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지 부동산 개발업체의 사정으로 쇼핑몰 개발 계획 자체가 지연돼 2015년이 돼도 개관이 불투명한 상황이 됐고 결국 해당 부동산 개발업체와 협상을 접게 됐다. 이후 지난해 말레이시아 현지의 유력 극장사업자 인수를 검토했으나 향후 성장 가능성이나 투자 대비 효율을 봤을 때 부정적이라고 판단해 이 역시 백지화했다.



당초 말레이시아 진출 목표로 삼았던 2014년보다 2∼3년 늦어진 시점에서 말레이시아 시장을 분석해봤을 때 매력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극장업은 기본적으로 ‘플랫폼 사업’이다. 그만큼 선점자로서 시장에 진입해 고객 기반을 빠르게 구축하는 게 중요한데 이미 말레이시아엔 현지 영화사업자들이 급성장해 있는 상황이었다. 글로벌 전략에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

실기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작게 빨리’ 시작하는 전략이 아닌가 생각한다. CJ CGV의 미얀마 진출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2014년 미얀마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STD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STD에서 운영하는 ‘정션 시네플렉스(Junction Cineplex, 2015년 4월 JCGV로 브랜드명 전환)’ 운영을 시작했다. 미얀마에서의 사업 기회 검토부터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불과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재 CJ CGV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은 단
1명인데, 현지 극장 6개(상영관 16개)의 지난해 평균 객석 점유율이 약 40%였다. 한국을 포함해 CJ CGV가 진출한 나라들 중 최고 수준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력이나 재원 투자가 적었는데도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어 고무적이다.

물론 전략적으로 오랜 고민 끝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CJ CGV 역사상 가장 큰 투자를 한 터키 진출은 사업을 처음 검토할 때부터 최종 진출할 때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 핵심은 인내심을 갖고 밀어붙여야 할 사업과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사업 간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출 국가를 선별하는 선구안도 글로벌 전략에서 중요할 것 같다.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CJ CGV의 경우 1) 최소한 대한민국보다 인구수가 많고, 2) 인구 연령 중간값(median value)이 30세 이하이며, 3) 연간 영화 평균 관람횟수는 1회 미만인 나라들을 잠재적인 1차 타깃으로 잡고 시장 조사에 나선다. 영화를 자주 보는 젊은 연령층이 많을수록, 아직까지 영화 관람이 일상적인 문화 생활로 자리잡지 않은 곳일수록 향후 성장 여지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연간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0.5회 미만이고 중위 연령층이 20대 초반인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해볼 가능성이 큰 곳이다. CJ CGV가 진출한 신흥시장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위 연령이 약 41세인 대한민국에 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진출 당시 중위 연령이 21∼24세로 매우 젊고, 1인당 연간 평균 영화 관람 횟수도 0.3회 안팎으로 매우 낮았다. 이는 앞으로도 10년, 20년 계속해서 열심히 영화를 봐 줄 잠재 고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들 국가에서 영화 관람을 현지인들의 새로운 문화 습관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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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출 국가 선정을 제대로 해 국제화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별로 다양한 고객 니즈에 맞춰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나 영화는 공산품이 아닌 문화 콘텐츠여서 같은 영화를 놓고도 국가별 선호도 편차가 극심하다. 이를 테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핵심 라인업(line-up, 개봉 예정 프로그램)이라 해도 대부분의 국가에선 성공하지만 매년 예외적인 작품들이 나타난다. 특히 제작비 규모가 중급 이하로 내려가면 국가별 흥행이 극심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킹스맨’은 이 영화의 핵심 시장이었던 영국에서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지만 한국에서는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했다. 이 영화가 영국보다 한국에서 2배의 수익을 거두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터스텔라’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한국과 중국에서처럼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곳은 없다. ‘비긴어게인’은 한국에서 3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북미 시장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한국에서의 수익이 전체 해외 수익의 과반수를 차지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국가별로 흥행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는 부지기수다. 도대체 어떤 영화가, 어떤 나라에서 성공할지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만큼 해당 국가 영화 소비자들의 태도, 취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마케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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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화를 유통할 수 있는 채널이 한정돼 있던 시절엔 극장 사업자가 소위 막강한 ‘갑’이었기 때문에 그저 오는 손님 그대로 받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고객을 제대로 이해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기술적으로 마케팅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시대다. CJ CGV가 2014년 고객 리서치센터를 만든 이유다. 이전엔 마케팅팀에서 몇몇 인력들이 모여 리서치를 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3년 전부터 아예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소비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약 20여 명의 인력들이 고객 니즈 및 영화 시장 트렌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진 마케팅 채널을 국가별, 콘텐츠별 특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다. 본사 직원들은 물론 현지 법인 마케팅 담당자들이 현지 고객의 니즈를 면밀히 분석해 특화된 마케팅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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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제는 진출 국가가 한국을 포함해 총 7개가 되다 보니 국가별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들을 서로 공유하며 현지 상황에 맞게 변형, 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서 중요한 기념일인 ‘여성의 날’에는 한국의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프로모션 사례를 활용해 다양한 이벤트를 현지에서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서울 촬영 당시 다양한 영상물을 통해 SNS 사전 홍보에 나섰던 한국의 노하우를 베트남 시장과도 공유, 최근 개봉한 ‘콩: 스컬 아일랜드’ 홍보에 적용했다. 즉, 영화 도입부에 베트남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이 정보를 활용해 사전 마케팅을 적극 펼친 결과 베트남 현지 고객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


국제화를 추진하는 기업들에 조언을 해달라.

적어도 신흥시장에 진출할 때에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는 ‘소탐대실’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신흥시장은 제반 인프라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다. 이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책임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 현지 비즈니스 생태계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CJ CGV는 신흥시장 현지 영화감독 및 배우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로컬 영화가 출시되면 적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는 등 열악한 현지 영화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터키에선 현지 영화 제작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아닌 한국 제작사들도 대개 중급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최소 50억 원 정도는 투자하지만, 터키에선 이 금액의 10분의 1 정도 수준이면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비용으로 현지 영화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좋은 로컬 영화를 발굴해 상영하면 자국 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관람 횟수도 효과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어느 나라든 건강한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소위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현지 ‘로컬’ 영화 콘텐츠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게 좋다. 더욱이 영화는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여서 해외 기업이 들어왔을 때 자칫 자국의 영화 산업을 잠식해 ‘문화 식민지화’하려 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CJ CGV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아트하우스(현지 제작된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운영이나 ‘토토의 작업실(청소년 대상 무료 영화창작 교육 프로그램)’ 같은 사회공헌 사업에 힘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당장 돈 되는 사업만 생각한다면 쓸모없는 활동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는 활동이다. 특히나 영화 관람은 그 나라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다. 단숨에 변화를 꾀하기 힘든 만큼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생각해볼 문제

1 해외 시장 진출 국가를 선별하기 위해 우리 기업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 어떠한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시장의 매력도와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가?

2 신흥 시장 진출 시 미처 고려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있나?

3 우리 기업은 국제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과거의 실패를 미래의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나?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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