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위기상황에서는 평소 성과와 위기 극복 확률이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자주 발생하지 않는 극단적 위기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전쟁,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성과가 생존 여부를 예측하지 못한다. 따라서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일상적 상황이 아닌 극단적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서의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대한민국은 경제,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퍼펙트스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핵심 전략으로는 ▶ 신속한 초기 대응 ▶ 개방적이고 유연한 상시 학습과 통찰력 ▶ 특공대형 조직 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한자어에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말이 있다. 수십m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지경이라서 한 발자국도 발 디딜 곳이 없는 극단적 위기상황을 뜻한다. 국가는 물론 조직이나 개인들에게도 간혹 이런 백천간두의 극단적 위기가 발생한다. 발생 빈도는 그리 높지 않고 지속 기간도 짧지만 이런 극단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개인, 조직, 국가를 막론하고 생사존망을 결정하게 된다. 극단적 위기상황의 유형은 거시적으로만 봐도 전쟁, 자연재해, 재난,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 등으로 그 종류가 매우 많다. 또 조직이나 개인 수준에서의 극단적 위기상황 역시 이 못지 않게 다양하다.
특히 VUCA(Volatile, Uncertain, Complex, Ambiguous) 환경으로 불리는 21세기에는 이런 극단적 위기상황의 발생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환경이 쉴새 없이 급변/격변하고(Volatile), 어느 방향으로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확실하며(Uncertain), 환경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Complex), 환경의 본질과 핵심 규칙이 무엇인지 극도로 모호하기(Ambiguous) 때문이다. 따라서 고성과를 자랑하던 초우량 기업들도 한순간에 몰락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장루이민 하이얼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21세기에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등산과 같아서 도달한 위치가 높을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 여기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내 마음은 날마다 전전긍긍하며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그에게는 내리막 길이 시작된다.”
한발만 잘못 내디뎌도 그대로 바닥까지 추락하는 이런 백척간두의 극단적 위기상황에서 리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순히 일시적 침체나 성과 하락 정도가 아니라 개인이나 조직, 국가를 생사의 기로에 빠뜨리는 극단적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효과적 방법은 무엇일까?
위기 대응에 대한 기존 제언들위기에 대한 대응전략에는 다양한 제언들이 존재하지만 크게 나누면 평소에 미리 잘 준비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평소 준비론’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고 적절히 대응하면 살 수 있다는 ‘위기상황 관리론’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의 생존위기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예를 들면 평소에 착실하게 준비를 해온 모범적 기업이 치명적 생존위기 상황을 잘 극복한다면 높은 성과를 자랑하는 우량기업들은 잘 죽지 않아야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성과와 생존율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지만 그 정도는 예상외로 느슨하다. 국가별 혹은 기업별 경기의 부침으로 인한 위기는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일상적 위기에서는 실제로 평소 성과와 위기극복 확률이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자주 발생하지 않은 극단적 위기상황은 전혀 다르다. 전쟁, 대참사,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성과가 생존 여부를 거의 예측하지 못한다. 만일 평소 성과와 준비가 극단적 위기상황에서의 생존을 보장해준다면 세계 1위 기업이 몰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코닥, 모토로라, 노키아 등 세계 1위 기업이 단숨에 파산지경에 이른 최근 예에서 볼 수 있듯 평소 성과가 극단적 위기상황에서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직이론가 필립 셀즈닉(P. Selznick) 교수는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 상황이 아니라 극단적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s)’에서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즉 평소에 어떻게 하느냐보다 짧은 결정적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위기상황에서의 생사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그때 순발력을 발휘해 즉흥적으로 그 위기의 순간만 적절히 관리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예상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순발력 있게 적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즉흥역량(improvisation)은 엄청난 훈련과 역량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고도의 능력이다. 조직이론가 칼 에드워드 와익(K.E. Weick) 교수는 재즈 즉흥연주에 대한 연구에서 모든 멜로디와 리듬에 해박하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진정한 거장이 아니면 미리 짜인 악보 없이 협연자들의 즉흥연주에 리얼타임으로 호응하며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어내야 하는 즉흥연주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드시 극도로 짧은 순간에 고도의 즉흥적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극단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혀 예측 못한 위기에 대해 극도로 짧은 결정적 순간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즉흥적 순발력과 같은 고도의 역량을 평소에 갖춰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 높은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역량과 예측 못한 위기에 순발력 있게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은 전혀 다르다. 즉 극단적 위기상황의 대응을 위해서 갖춰야 할 역량은 후자이며 반드시 평소 성과 창출에 필요한 역량과 별도로 의식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역량이 극단적 위기 극복에 효과적일까?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말하듯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그 본질과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예외적 상황인 극단적 위기의 특성은 무엇이며 효과적 대응전략은 무엇일까? 다음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