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종합

애니콜, 창의력을 쐈다

12호 (2008년 7월 Issue 1)

애니콜의 창조력
2008년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는 휴대전화의 수는 12억 대에 이른다. 시장 규모도 크지만 성장세도 빨라 각 휴대전화 업체의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에는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2004년부터 삼성전자의 성장이 두드러져 2위인 모토로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2005년 당시 세계 시장 점유율은 모토로라 16%, 삼성전자 14%로 불과 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때 모토로라는 레이저(RAZR)라는 슬립형 휴대전화를 내놓아 한창 성장세에 있던 삼성전자에 큰 타격을 가했다. 레이저 성공으로 모토로라는 2006년 시장점유율이 21%까지 상승한 반면에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2%로 추락했다.
 
2007년 삼성전자는 대반격에 나섰다. 모토로라가 레이저의 성공에만 빠져있을 때 삼성은 초슬림형 휴대전화인 울트라(ULTRA)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았다. 레이저 휴대전화의 두께는 약 2cm였지만 울트라 휴대전화 두께는 1cm 이하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았다. 휴대전화 두께를 1cm 이하로 만들려면 기술적 난제가 수두룩하다. 부품도 문제지만 케이스가 더 큰 문제였다.
 
모토로라는 레이저의 두께를 줄이기 위해 키패드를 금속으로 바꾸면서 케이스는 기존의 플라스틱을 그대로 썼다. 휴대전화 케이스의 소재는 플라스틱이어서 두께를 1cm 이하로 하면 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강도를 높이기 위해 금속 소재를 쓰면 아름다운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 기술적 모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애니콜 개발팀은 이 기술적 모순(technical con-tradiction)을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 문제 해결 기법인 트리즈(TRIZ)를 썼다. 케이스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유리 섬유를 사용했고, 우수한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특수 플라스틱을 혼합하는 신소재를 개발했다. 삼성은 신소재를 쓴 울트라 휴대전화 3개 모델을 동시에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이후에도 6개월이 멀다 하고 신기종을 쏟아냈다.
 
이 결과 2007년 하반기부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했다. 삼성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만큼 모토로라의 점유율은 하락했다.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적자 상태로 돌아섰다. 결국 모토로라 이사회는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분리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모토로라는 세계에서 휴대전화를 최초로 만든 업체이지만 삼성전자의 추격으로 세계 2위 자리를 내줬다. 불가능해 보이던 삼성전자의 세계 2위 탈환은 트리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트리즈가 다른 창의력 기법과 다른 점 7가지
창의력은 어린이부터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까지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창의력을 향상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지 학습 가능한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예술가적 창의력은 타고날 지 모르지만 과학자적 창의력이나 기업가적 창의력은 얼마든지 학습 가능하다.
 
트리즈 창시자인 겐리히 알트슐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창의성은 후천적 학습을 통해 발전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창의성은 프로세스를 통해 학습이 가능하다.” 창의적 문제해결의 프로세스와 툴을 정리해 놓은 트리즈를 이용하면 누구든지 이상적인 해결안을 낼 수 있다.



트리즈가 다른 창의력 기법과 다른 7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트리즈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 특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분석해서 방법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무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2. 트리즈는 이상적인 아이디어(Ideal Idea)를 도출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아이디어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게 만든다.
 
3.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다양한 해결안을 모색하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현상 문제에 매달리거나 주관적 해석을 통해 문제를 추리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4.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컨셉트를 설정하도록 만든다. 기존의 방법 재정리가 아닌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을 찾도록 만든다.
 
5. 원리 중심적 사고를 통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트리즈 해결 원리에는 앞서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가 담겨 있다. 때문에 자신의 문제 해결에 대한 힌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6. 문제 발굴과 해결법을 일련의 프로세스로 정리했기 때문에 집단적 문제를 해결할 때 매우 유용하다.
 
7. 이상의 방법론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해외의 우수한 기술 정보를 검색해 국제 특허를 취득할 수 있다.
 
트리즈는 단편적인 다른 창의력 기법과 달리 문제 발굴에서 창의적 해결에 이르는 전 과정이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를 응용하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트리즈가 문제를 객관화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은 [그림2]와 같다.

어느 기업, 어느 일에서 쓰이나
트리즈는 원래 러시아 해군에서 기술특허를 분석하는 과정에 이용된 기법이지만 광범위한 기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신상품 개발 아이디어, 기술적 문제 해결, 기술 특허 취득을 위한 아이디어 제너레이션(Idea generation) 등에 이용되며 특히 기술적 모순 해결에 유용하다. 주 이용 분야는 군사기술, 기계공업, 전기전자, 화학, 우주개발 등이다.
 
1960∼1970년대만 해도 러시아에서는 트리즈를 군사기밀로 취급했다. 때문에 트리즈를 외부로 전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트리즈 전문가들이 서방세계로 이동하면서 트리즈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트리즈가 먼저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군사장비의 기술 개발에 쓰였으며 점차 대기업 연구실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문제 해결에 쓰이기 시작한 트리즈는 당시 영국과 독일에서 비즈니스 트리즈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 및 모델이 발표되면서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실제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들도 기술 개발과 비즈니스 문제 해결에 트리즈를 이용하고 있다. 비행기 회사로는 보잉과 맥도널 더글러스, 자동차 회사로는 제너럴 모터스(GM), 도요타, BMW, 혼다, 포드, 롤스로이스가 있다. IT 회사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 IBM, HP, 인텔, ITT, 지멘스를 들 수 있다. 전자 회사로는 록웰, 레이시온, 산요, 일렉트로룩스, 제록스 등이다. 생활용품 회사로는 P&G, 존슨&존슨, 킴벌리 클락, 질레트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을 비롯해 삼성그룹의 전 계열사에서 업종과 상관없이 트리즈를 이용하고 있다. LG그룹, 현대자동차, 포스코, SK그룹, CJ그룹 등도 트리즈를 사용하고 있다.
트리즈 응용 사례
트리즈에서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해결원리(Principle)를 추천해 준다. 이 문제해결 매트릭스를 이용하려면 먼저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문제 요소를 파라미터(Parameter)로 전환해야 한다. 문제와 가장 관련 있는 매개 변수를 찾는 것이다.
 
무엇인가 개선하고자 하면 이로 인해 반대로 감소하는 요소가 발생하는 모순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정된 물체의 무게’를 줄이고자 할 때 변화 요소로 ‘모양’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이때의 해결원리는 [그림3]과 같다.

문제해결 매트릭스에서 곡선화(14), 역방향(13), 공기압 사용(29), 사전조치(10)의 원리를 적용해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보라고 사례들을 제시한다.
 
삼성전자에서 보르도TV를 개발한 과정을 보자. LCD TV가 40인치 정도면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벽에 부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가구 같은 TV가 컨셉트인 보르도TV가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려면 벽에서 분리해야 하는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했다. TF팀은 무거운 대형 화면을 이동이 가능한 감성적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 요소를 파라미터 중 움직이지 않는 물체의 무게 2번과 모양을 뜻하는 12번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이 문제해결 매트릭스를 이용해 곡선화 14번, 역방향 13번, 공기 및 유압 사용 29번, 사전조치 10번의 문제 해결 원리를 얻어냈다.
 
그렇다면 이 해결 원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그림4]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르도TV의 TF팀은 해결원리를 기반으로 포도주 잔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와인이 가진 열정과 감성을 TV에 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형 평면TV는 반드시 벽에 고정해야 한다는 관념, TV의 기본 색상에 대한 고정 관념을 뛰어넘기 위해 수 차례 진통을 겪었다. 당시 TV 색상은 대부분 검정과 회색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TF팀은 3∼4번의 품평회와 30∼40개의 컬러를 적용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골몰했다.
 
트리즈가 제시한 해결 원리와 방법, 수 차례의 조사와 실험을 거친 결과 TF팀은 그동안 사각형을 고수하던 TV 형태를 곡선에 가까운 5각형으로 바꿨다. TV 밑에 포도주 잔처럼 받침대를 설치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소재도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TV 무게를 줄였다. 5각형의 곡선화 디자인은 마치 부드러운 포도주 잔을 연상케 했다. 수 차례의 시도와 많은 밤을 지새운 연구 끝에 드디어 흰색 몸체에 레드 와인 색깔로 포인트를 준 보르도 LCD TV가 탄생했다.
 
이처럼 트리즈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유용하다. 트리즈는 개인의 창의력도 증진시키지만 기업이나 조직 전체가 이용하면 큰 경영 혁신 효과를 거둔다. 삼성전자는 식스시그마와 함께 트리즈를 결합해 이용함으로써 세계에서 아무도 못 만들어낸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필자는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이사와 국민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창조경영 아카데미 대표 및 한국 트리즈 협회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트리즈 전문가로서 삼성, LG, 현대자동차에서 창조경영 강의 및 컨설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창조적 습관>, <생각의 지름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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