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TRIZ)를 경험해 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유용하다. 그러나 어렵다”로 요약된다. 트리즈는 발명 특허의 패턴을 분석해서 창의적 문제해결의 공통점을 찾아 40가지 원리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공학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정리된 방법론 숫자도 많아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활용되는 트리즈를 일반인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분야가 아닌 일반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용 트리즈는 상대적으로 이해가 쉽다. 전문가들은 경영자가 조금만 노력하면 트리즈를 활용해 창의적 문제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비즈니스 혁신 사례들을 트리즈 방법론으로 분석하면 역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벤처 오케스트라로 성공을 일궈낸 지휘자 금난새의 성공 요인을 트리즈의 눈으로 분석해 본다.
“없으면 만들어라. 이게 창조적 생각이다.”
40년 전 청년 금난새는 지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는 지휘를 전공으로 하는 음대가 없었다. 당연히 지휘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었다. 독학하기로 마음먹은 금난새는 작곡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독학하려 해도 악기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연습할 장소도 없었다.
최고 지휘자가 되겠다는 열정은 있었지만 이를 지원할 만한 ‘자원(resources)’은 태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는 기업이 고객 가치를 높이고 싶지만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모순 상황과 비슷하다. 보통 이런 처지에서 많은 경영자나 임직원은 자원을 탓하며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트리즈는 이런 상황에서 40가지 문제해결 원리 가운데 셀프서비스(self-service)와 국부적 품질(local quality) 등의 방법론을 활용하라고 권고한다. 금난새는 트리즈를 알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트리즈적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책을 찾아냈다.
여기서 ‘셀프서비스’는 버리는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하라는 취지의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퇴직자를 고용하거나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이 셀프서비스가 추천하는 해결책이다. 금난새는 각 대학에 다니고 있던 서울예고 동창을 불러 모아 모순적 상황을 해결했다. 각 대학에 흩어졌지만 자주 연주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던 동창생들을 사실상 공짜로 활용하기로 한 것. 실제 이런 방법으로 금난새는 약 25명을 모아 오케스트라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물론 단원들의 연주 실력에는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단원의 연주 실력이 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난새는 40가지 트리즈 원리 중 ‘전체 품질을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국부적 품질(local quality)’의 취지처럼 이를 용인했다.
연습 장소도 문제였다. 금난새는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옆의 미국공보원 1층 도서관을 가끔 이용하는 동안 이 건물 2층에 강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강당관리 책임자를 찾아가 연습장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남의 강당을 무작정 빌려달라는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 금난새는 트리즈의 발명원리 중 하나인 ‘사전예방조치(preliminary compensation)’와 같은 취지로 미국 공보원 담당자가 거절하기 힘든 사전적 조치를 취했다.
사전예방조치는 문제가 생길 요인에 대해 사전에 예방 또는 보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미국의 음악과 연주회를 활용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미국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해서 공연도 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 문화를 알리는 게 최고의 업무이던 공보원 입장에서는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금난새는 3개월간 무료로 강당을 활용했고, 연주회를 가졌을 뿐 아니라 미국 공보원 요청으로 광주·부산·대구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도 갖게 됐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