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즈로 본 금난새의 성공

금난새 신화의 바탕은 ‘본능적 TRIZ정신’

12호 (2008년 7월 Issue 1)

남국, 정임수 기자 dbr@donga.com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TRIZ)를 경험해 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유용하다. 그러나 어렵다”로 요약된다. 트리즈는 발명 특허의 패턴을 분석해서 창의적 문제해결의 공통점을 찾아 40가지 원리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공학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정리된 방법론 숫자도 많아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활용되는 트리즈를 일반인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분야가 아닌 일반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용 트리즈는 상대적으로 이해가 쉽다. 전문가들은 경영자가 조금만 노력하면 트리즈를 활용해 창의적 문제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비즈니스 혁신 사례들을 트리즈 방법론으로 분석하면 역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벤처 오케스트라로 성공을 일궈낸 지휘자 금난새의 성공 요인을 트리즈의 눈으로 분석해 본다.
 
없으면 만들어라. 이게 창조적 생각이다.”
40
년 전 청년 금난새는 지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는 지휘를 전공으로 하는 음대가 없었다. 당연히 지휘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었다. 독학하기로 마음먹은 금난새는 작곡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독학하려 해도 악기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연습할 장소도 없었다.
 
최고 지휘자가 되겠다는 열정은 있었지만 이를 지원할 만한 ‘자원(resources)’은 태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는 기업이 고객 가치를 높이고 싶지만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모순 상황과 비슷하다. 보통 이런 처지에서 많은 경영자나 임직원은 자원을 탓하며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트리즈는 이런 상황에서 40가지 문제해결 원리 가운데 셀프서비스(self-service)와 국부적 품질(local quality) 등의 방법론을 활용하라고 권고한다. 금난새는 트리즈를 알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트리즈적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책을 찾아냈다.
 
여기서 ‘셀프서비스’는 버리는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하라는 취지의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퇴직자를 고용하거나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이 셀프서비스가 추천하는 해결책이다. 금난새는 각 대학에 다니고 있던 서울예고 동창을 불러 모아 모순적 상황을 해결했다. 각 대학에 흩어졌지만 자주 연주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던 동창생들을 사실상 공짜로 활용하기로 한 것. 실제 이런 방법으로 금난새는 약 25명을 모아 오케스트라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물론 단원들의 연주 실력에는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단원의 연주 실력이 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난새는 40가지 트리즈 원리 중 ‘전체 품질을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국부적 품질(local quality)’의 취지처럼 이를 용인했다.
 
연습 장소도 문제였다. 금난새는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옆의 미국공보원 1층 도서관을 가끔 이용하는 동안 이 건물 2층에 강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강당관리 책임자를 찾아가 연습장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남의 강당을 무작정 빌려달라는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 금난새는 트리즈의 발명원리 중 하나인 ‘사전예방조치(preliminary compensation)’와 같은 취지로 미국 공보원 담당자가 거절하기 힘든 사전적 조치를 취했다.
사전예방조치는 문제가 생길 요인에 대해 사전에 예방 또는 보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미국의 음악과 연주회를 활용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미국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해서 공연도 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 문화를 알리는 게 최고의 업무이던 공보원 입장에서는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금난새는 3개월간 무료로 강당을 활용했고, 연주회를 가졌을 뿐 아니라 미국 공보원 요청으로 광주·부산·대구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도 갖게 됐다.

망한 회사 살려야 진정한 CEO
금난새는 베를린 음대에 입학한 뒤 3년 만인 1977년 카라얀국제지휘자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는 등 명성을 쌓아나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KBS교향악단 지휘자를 맡으면서 탄탄한 입지도 구축했다. 하루는 수원시립교향악단에서 연락이 왔다. 1년 전부터 지휘자도 없고, 단원들마저 떠나가 문제가 많은 데다 시에서 오케스트라를 없애려 하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전까지 이런 오케스트라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는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했다. 물론 주변에서는 정신 나갔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좋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도 훌륭하지만, 정말 뛰어난 지휘자라면 망해가는 오케스트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수원시향 재건에도 트리즈의 지혜를 활용했다. 우선 ‘사전예방조치’의 취지와 유사한 방법론을 활용, 수원시청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금난새가 활용한 방법은 바로 깜짝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수원시청에서 열린 신년 시무식이 열리는 동안 로비에서 연주를 준비하고 시무식이 끝난 뒤 사람들이 나올 때 음악회를 연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연주에 감동받았다. 오케스트라를 없애려 했던 간부들은 오히려 단원 보너스를 100% 올려 주기로 했다.
 
수원시향의 명성을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된 청소년 음악회의 성공 요인도 트리즈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트리즈의 해결책 중 하나인 ‘셀프서비스’는 버려진 자원을 활용하라는 것 외에도 객체나 시스템이 스스로 기능을 완성하도록 하라는 대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원리대로 청소년들이 용돈으로 표를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인 2000원을 티켓 가격으로 책정했다. ‘복합재료(composite material)’ 원리도 활용했다. 복합재료는 동일한 재료만으로 구성하지 말고 다른 재료를 섞으라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한 재료만 사용하지 말고 교육이나 강연 및 해설 같은 다른 요소를 결합하라는 취지다. 실제로 금난새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 중간에 해설을 넣었다. 또 연주 전에 아이들에게 첼로 소리, 목관 악기 소리를 각각 들려주고 함께 연주했을 때와 비교하게 했다. 휴식시간에는 아이들이 직접 악기를 만져 보고, 연주도 해 보도록 했다. 트럼펫 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느끼게 해줬다. 휴식시간이 끝난 뒤 연주에 대한 아이들의 집중도와 관심은 더 높아졌다. 첫 연주회부터 열광적인 반응이 나왔다. 2300석 전석이 유료로 매진된 것이다. 이후 1년 동안 9차례의 공연 모두 매진됐다.
 
다용도’ 방법론을 활용한 성공
수원시향을 그만둔 금난새는 1999년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그는 여기서도 모순적 상황에 직면했다. 새로 창단한 벤처 오케스트라는 무엇보다 자본력이 취약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공연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게다가 다른 오케스트라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자립형’ 조직을 만들겠다는 대담한 포부도 갖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트리즈는 ‘다용도(multifunction)’란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하나의 물품이나 부품을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발명의 원리다. 예를 들어 침대와 소파를 함께 활용할 수 있게 해 공간을 절약한다든가, 한 직원에게 여러 직무 능력을 훈련시켜 비용을 절감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금난새는 연습장을 찾다가 포스코센터 강당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스코 홍보담당 상무를 찾아갔다. 그런데 강당은 비는 날이 없어 연습실로 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금난새는 강단 대신 포스코센터 건물의 유리로 만든 로비가 맘에 들어 로비에서 음악회를 열고 싶다고 제안했다. 건물 로비라는 전혀 오케스트라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공간을 음악회 장소로 활용하자는 ‘다용도’적 사고는 적중했다. 당시 민영화 과정에 있던 포스코는 이런 식의 문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재미있는 제안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금난새는 1999년 12월 31일 밤 10시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제야 음악회를 열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과 함께 새천년을 맞이했다. 로비에 모인 1000명의 관중이 기립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대성공이었다. 일주일 후 그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로비에서 베토벤 교향곡 9개 전곡을 다 연주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로비에서 제야 음악회의 감동을 맛본 포스코 측은 대환영이었다. 며칠 후 포스코는 서울 외에 광양과 포항 공장에서도 두 차례씩 더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용도’ 아이디어로 시작된 한 차례의 연주는 13차례의 콘서트 계약으로 커졌다. 포스코 로비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종이 되는 리더십
연주회가 끝나고 지휘자가 무대를 떠나면 관중의 박수도 끝이 난다. 지휘자뿐 아니라 단원들이 모두 다 같이 연주했는데 왜 나만 나가면 박수가 끝날까. 우리 단원들도 박수를 받아야 하는데, 정작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 단원들인데….”
 
금난새는 오랜 기간 연주회를 진행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주체로 단원들을 부각시켜 이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의 수가 많아 이들을 모두 소개하면 공연의 안정성(stability)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리즈는 ‘역방향(do it reverse)’이란 해결책을 제시한다. 역방향은 기존 관행과 반대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기에 대부분 기업들은 설비를 축소하지만 공격적인 조직들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한다. 또 고정관념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도 역방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병원은 고정된 장소에서 진료와 치료를 하는 게 일반적 관행이다. 하지만 인도 아라빈드 아이케이시스템은 시골 환자를 위해 기본 진단 도구를 갖춘 원격진료 차량을 운용해 ‘움직이는 병원’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역방향의 방법론과 유사하게 금난새는 혁신적인 시도를 한다. 연주를 끝내고 신호를 보내면 오케스트라 단원부터 나가도록 한 것이다. 단원들이 나가는데 지휘자가 계속 안 나가고 서 있었기 때문에 청중들은 계속 박수를 쳤다. 그리고 금난새가 맨 마지막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5년 전부터 맨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나는 지휘자가 됐다.
 
세계 어디에서도 지휘자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경우는 없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관행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최선의 대안을 찾아냈다. 이는 이상적 최종 결과(IFR, Ideal Final Results)를 추구하는 트리즈의 목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트리즈는 제로베이스에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최고의 해결책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는 지난 4월29일 금난새씨의 KAIST 명사 초청 특강 내용을 토대로 트리즈 전문가인 김영한 창조경영아카데미 원장의 도움말과 김효준 한국트리즈컨설팅 대표의 감수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7호 New Look at Gen X 2022년 06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