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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삐삐회사에서 글로벌신화를 쓴 다윗, ‘기술’만 믿다 ‘소비자’를 놓쳤다

허재경 | 167호 (2014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2013년 중반까지 한국 휴대전화 시장 약 10%를 점유하던 팬택의 몰락 이유

1) 체계적인 위기 대응 전략의 부재

2) 기술 중시, 소비자 취향 경시

3) 스마트폰의 일상재화(commoditization)

4) 규제를 예측하지 못한 신제품 출시 타이밍

 

기독교 구약성서에 나오는다윗과 골리앗의 일화는 아직까지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거미줄처럼 얽힌 약육강식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종종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 벤처 1세대로 통하는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은 흔히 다윗에 비유된다. 중소 벤처로 시작해, 정보기술(IT) 전자업계에서도 가장 치열한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서 골리앗 기업들과 당당히 맞서며 한때 세계 7위까지 올라선 저력 때문이다. 국내 스타트업 기업으로선 드문 독보적인 성공 신화였다. 팬택이 국내 벤처 업계에선 성공적인 롤모델로서의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선다크호스로 주목됐던 이유다.

 

그랬던 팬택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내몰리더니 급기야 새 주인 찾기에 나선 매각 절차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최악의 경우엔 청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2014 12월 초 현재). 국내 유일의 휴대전화 전문 제조업체로 성장가도를 달려왔던 팬택이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이유는 뭘까. 굴곡진 팬택의 히스토리 속으로 들어가봤다.

 

 

종잣돈 4000만 원 벤처에서 매출 3조 원대 기업으로

팬택은 1991 3월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세운 무선호출기(삐삐) 제조사였다. 창업자 박 부회장은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이었다. 경기도 부천의 작은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종잣돈 4000만 원으로 직원 6명과 함께 서울 신월동의 곰달래길에서 회사 문을 열었다. 출발도 좋았다. 무선호출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창업 이듬해인 1992 28억 원의 깜짝 매출을 올렸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숫자가 아닌 문자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문자 삐삐를 선보였다. 1995년엔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에서 쓸 수 있는 광역삐삐까지 출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삐삐 대중화의 절정기였던 1997년엔 매출을 762억 원까지 끌어올리며 국내 무선호출기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자신감을 얻은 팬택에 무선호출기 시장은 비좁았다. 1997, LG정보통신( LG전자)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의 단말기 계약을 따내면서 휴대전화 시장까지 진출했다. 특히 이듬해엔 모토로라로부터 1500만 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당시 글로벌 강자였던 모토로라를 2대 주주로 끌어들이면서 본격적인 휴대전화 시장 진출의 발판도 마련했다. 실탄을 확보한 팬택의 휴대전화 생산엔 탄력이 붙었고 2000년 매출은 2871억 원까지 급상승했다.

 

휴대전화 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팬택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질적 성장기에 들어선 2001년엔 유럽통화방식(GSM) 휴대전화 사업에 나서더니 모토로라와는 주문자개발생산(ODM) 방식의 단말기 공급 계약까지 따냈다. 또 그해엔 현대 큐리텔을 인수해 본격적인 외형 확장에도 나섰다.

 

글로벌 시장 진출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됐다. 2003 10월 중국 기업과의 합자 회사인 다롄팬택통신유한공사 공장을 가동, 자체 브랜드 단말기로 대만 휴대전화 시장에도 들어갔다. 이어 2004년엔 세계 최초의 GSM 지문인식폰과 미국 이동통신업체인 스프린트에 100만 화소급 카메라를 잇따라 수출한 데 이어 러시아 휴대전화 시장에도 상륙했다. 이런 상승세에 힘입어 팬택의 자회사였던 팬택앤큐리텔은 200441회 무역의 날을 맞아 ‘9억불 수출 탑수상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팬택의 진화는 계속됐다. 2005 5,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텔레텍을 인수했고 그해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일본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하면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중견기업이 한국 1위 이동통신업체의 자회사를 흡수했단 자체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외국계 기업의 무덤으로 여겨졌던 일본 휴대전화 시장 진입까지 잇달아 성사시켰다는 사실에 세계 IT 전자업계는 팬택을 태풍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팬택은 연 평균 50%를 웃도는 성장률로 무섭게 질주, 2005년엔 연 매출 3조 원을 달성했다.

 

벤처정신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팬택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자신감 또한 충만했다. ‘계급장 떼고 붙으면 어떤 글로벌 기업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팬택 내부에서 공공연히 떠돌았을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실제로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런 디자인, 차별화된 기능을 장착한스카이브랜드의 팬택 휴대전화는 출시되는 모델마다 50만 대 이상 팔려나가면서 히트상품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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